“ 이를 전후해 사단이 발생했다. 통칭 제1차 조러밀약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의 경과에 대해서는 다보하시 기요시가 정리한 바 있다. 러시아 교관 초빙 문제를 둘러싸고 청일은 모두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과 영향력 확대를 우려했고, 이는 국제적인 분쟁이 되었다. 고종은 문제를 외아문으로 넘긴 채 발뺌을 함으로써 사건은 유야무야되었다. 이 와중에 김용원의 러시아 파견 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03쪽,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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