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올려주셨던 기사 읽은 기억 있어요~ ㅎ 이 내용이 이분들이라는 것은, 지금 생각나네요 ㅎㅎ
『3월 1일의 밤』은 다시 부분적으로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신청했어요~
천천히 2권 시작할게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D-29

오구오구

향팔
뭉클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YG


오구오구
이런 흑백사진을 보면 가슴이 떨려요~ 왜그럴까요.

stella15
“ 김규식이 의화군의 도미 유학 동행인이자 관비유학생이었고, 유학 생활 중 워싱턴 주미공사관으로 일했음을 의미한다. 영어에 능통하고, 미국 생활에 이해가 높은 김규식이 방학 중 혹은 요청에 따라 워싱턴공사관의 일을 도왔음이 분명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86,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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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 예과는 1학년 학업 준비가 안 된 사람들, 부분과 경영과를 들으려는 사람들, 기타 불충분하거나 비정규적인 준비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예과는 정규 1학년에 입학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한 수업 과정을 진행했고, 가급적이면 정규 교수들이 담당했다. 예과 학생들은 도서관과 문학회 등 대학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들은 라틴어, 그리스어, 영어, 수학, 자연과학, 역사, 지리, 신화, 영어습자를 배웠 으며, 매주 작문과 열선 연습을 해야 했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예비학교를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았으며, 상대적으로 소수만이 대학 1학년 입학에 필요한 수업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로녹대학의 강점이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90,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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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은 혈혈단신이었지만, 로녹다학에서 배우고 익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에 대해 자유로운 언어 구사력을 지녔고, 서양고전과 역사.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지성인이었다. 파리강화회의 각국 외교관과 언론을 상대할 수 있는 지성과 언어 구사력, 품위를 지녔던 것이다. 김규식은 이러한 필수과목 외에 정치경제, 철학, 영어성경, 웅변, 독해, 예술, 천문학, 식물학, 동물학, 생리학, 상업수학, 부기, 맞춤법 등을 추가로 수강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93,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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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192p에도 김규식이 로녹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했는가 표로 볼 수 있지만 그외에도 공부한 게 저렇게 많을 줄이야. ㅠ 역시 나랏일 할 사람은 그 배움부터가 남다르단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 나이에 그렇게 공부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고, 책이라도 한 장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의요정
공부도 많이 했지만, 로녹대학에서의 생활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따뜻했던 시절 같아요. ^^

stella15
맞아요! 제가 인용한 바로 앞장에 보면 김규식이 학교를 따스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던 걸 보면. 학생이 200명쯤된다니 얼마나 가족적이겠어요?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학생수가 어디를 가나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초등부터 대학까지.

꽃의요정
“ 로녹대학은 김규식에게 학업과 생활의 공동체였고, 한국에서와 다른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그에게 선사했다. 출신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고, 미국 남부의 따뜻함이 제공하는 기독교의 포용 속에서, 지성의 전당에서 학문과 자유를 향유하며, 미국과 세계를 주도하는 세계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버려진 고아 본갑이는 한국 땅에서 느껴 보지 못한 상냥함과 따뜻함을 맛보며 새로운 가족과 결속해서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한 학년 20-30명, 전교생 200여 명에 불과했던 로녹 시절의 동창생들은 그의 평생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235p,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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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 김규식은 1904년 4월 9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을 떠나서 일본 요코하마로 가는 콥틱호에 탑승했다. (중략) 16세의 나이로 한국을 떠났던 사고무친의 소년이 이제 미국 대학을 졸업한 21세의 청년 문학사로서 귀국하게 된 것이다. 그는 유망한 청년인재로 성장했지만, 그의 조국은 몰락 직전에 놓여 있었고, 그의 앞길에는 희망과 비관으로 교직된 불투명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240p,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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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배우는 데 열망이 있는 그는 1894년 가을 공부를 위해 워싱턴 한국공사관의 지위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는 정직하고 완화한 성품으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았다.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95,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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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 김규식의 <자필 이력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여름 방학 및 틈날 때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선물배달원, 하우스보이, 웨이터, 집사, 요리사, 백만장자 요트의 집사, 연극작가의 개인 비서 등으로 일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98,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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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논픽션만 읽다가 지쳐서 잠깐 쉬고 소 설을 읽고 있는데요, 바로 쿠앙의 <바벨>입니다. 1권 거의 다 읽어 가는데 공교롭게도 이 소설과 지금까지 읽었던 벽돌책이 묘하게 얽혀있네요.
1. 주인공 로빈이 갑자기 고아 신세가 되어 외국인의 도움으로 선진국으로 가게 되고 뛰어난 언어 재능을 발휘한다: <김규식과 그의 시대> 주인공 김규식이 연상됩니다.
2. 은이 세상을 움직이는 주요 광물로 등장한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에서 은의 국제 거래에 대해 많이 배웠죠.
3. 249쪽에서 주인공을 업신여기던 있는 집 자식이 퍼시 비시 셸리의 시를 언급: <메리와 메리>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딸 메리 셀리의 남편이 바로 퍼시 비시 셸리죠.

stella15
오, 정말요? 그렇게 말씀하시 니까 쿠앙의 소설 읽어보고 싶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2월 20일 금요일은 6장 2절 ‘신한혁명당과 망명 정부 수립 계획(1915)’과 3절 ‘대동단결선언과 공화주의, 임시정부 수립 노선(1917)’을 읽습니다. 406쪽부터 434쪽까지입니다.

YG
“ 제1차 세계 대전은 1910년대 한국 독립운동에 여러 계기와 전환점을 제공했는데, 그 가운데 결정적인 세 장면은 1915년 신한혁명당의 결성과 활동, 1917년 대동단결선언의 공표,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이었다. 이 세 장면은 한국 독립운동이 어떤 전환점을 통해 변화, 발전했는지를 시계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1915년 신한혁명당은 보황주의적, 근왕주의적 노선을 표방하고 독일의 승리를 전제로 한 고종의 중국 망명 및 망명 정부의 수립과 중한의방조약 체결 등 외교 독립, 무장 독립 노선을 추구했다. 1917년 대동단결선언은 보황주의적 노선을 폐기하고 공화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대한제국이나 조선 왕조가 아닌 해외 한인이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는 임시 정부 수립 노선을 전면적으로 제기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의 대표 파견은 국내외에서 3.1 만세 운동을 전면화했고, 이러한 민족적 에너지에 기초해 공화주의에 기초한 해외 한인들의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즉, 세계 대전이라는 정세 변화 속에 해외 독립운동가들은 공화주의와 임시 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노선으로 결집하게 되는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권 6장 3절, 423~424쪽,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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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그렇지 않아도, 역사학 공부하시는 유찬근 선생님께서 이렇게 투덜거리는 글을 올리신 적이 있답니다.

YG
유찬근 선생님께서 개인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2025년 12월 7일 올리신 글입니다. 이 글을 놓고서 기성 역사학자 선생님께서 반론도 쓰시고 그랬더라고요.
*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을 보며: "역사책의 죽음"이 아닌, "좋은 비평의 죽음"이다
이번 한국출판문화상 본심 후보작들은 유독 의미심장하다. 학술도, 교양도 역사책이 전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번역 부문에는 거의 절반 가량이 역사책이었다. "국내 저자가 쓴 역사책의 죽음"을 '엄숙히'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출판계와 언론계에 화가 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 화는 출판계나 언론계가 아닌, 역사학계를 향하고 있었다. 독자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초 알라딘에서 "21세기 최고의 책"을 선정했을 때 이미 했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은 기백 명의 오타쿠/연구자(A그룹), 최대 1만 명의 교양 독자(B그룹), 10만 명 가량의 일반 대중(C그룹)으로 나뉘는데, "21세기 최고의 책"은 전적으로 B그룹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학계는 B그룹을 공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출판문화상 학술/교양 후보작에 역사책이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라 생각한다.
그럼 저자, 아니 생산자 그룹은 어떤가? 슬프게도, 역사학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너무나 많은 글을 읽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역사학계는 '자료'로 말하는 학문이고, (낡은 말처럼 보이지만) '실증'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은 언제나 사료/자료를 최우선적으로 붙들고 있다. 존경하는 선배 역사학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무슨 자료를 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언제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난 이 선배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다 보니 책을 책으로 읽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는 누구보다 많은 글을 읽지만 이건 절대다수가 사료고, 자료고, 논문이다. 역사학자는 사료를 모으고, 자료를 참고하고, 논문을 비판하지만, 책을 읽지는 않는다. 최소한 사료, 자료, 논문에 비해서는 그렇다. 그럼 책을 책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필요한 부분만 쏙 뽑아 읽는 게 아니라 한 권을 통째로 읽고, 긴 호흡에서 책이 놓일 위치를 가늠하며 제대로 된 비평을 해주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역사학자들은 능력은 차치하고 일단 책을 책으로 읽을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
역사학자들이 책을 책으로 읽는 데 서투르다는 건 동료 연구자의 논문이나 책에 대한 비평/서평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역사학자들이 책을 내면 으레 학술지에 서평이 실리고는 하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서평들의 형식이 비슷하다. 각 장을 짧게 요약한 뒤, 바로 '실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사료는 해석이 잘못되었다거나, 이 자료를 보지 않았다는 비판이 "역사학자의 역사책 서평"의 핵심이다. 박사논문 집담회를 열어도 거의 비슷하다.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가차없는 사람이기도 해서, 집담회는 대부분 청문회와 같은 엄숙하고 공격적인 분위기로 흐르곤 한다.
써놓고 보니 어째 역사학자를 '실증무새'로 매도하는 것 같지만, 이건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정 부분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사회과학이나 국문학, 철학과 달리 이렇다 할 방법론이 없는 역사학계에서 연구의 질을 담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필요조건은 '실증'이니 말이다. 실제로 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역사학자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바도 '실증'이다. "내가 읽어보니 아니더라"는 논문이나 책을 평가할 때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연구를 평가하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른 문제다. (편의상 박사논문까지 책이라 치자. 슬프게도 요즘 연구자들에게는 그렇게 긴 호흡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므로.) 동료 역사학자의 책 혹은 박사논문을 읽고 서평을 쓸 때는 토론문과는 다른 감각이 요구된다. '실증'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학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학술지에 실리는 "역사학자의 역사책 서평"은 적지 않은 수가 서평보다는 토론문이나 요약문에 가까워보인다.
이처럼 역사책의 저자/생산자인 역사학자들 역시 책을 읽지 않거나 못한다. 그게 무엇이든 너무 많이 읽는 나머지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동료 역사가의 책에 좋은 서평을 쓰지도 못한다. 일단 읽을 시간이 없고, 읽더라도 서평이 아닌 토론문을 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역사학자의 토론문은 많은 경우 선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료 연구자가 밉거나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사료를 잘못 읽거나 인용한 부분을 지적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사료' 비판만이 동료에게 말을 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건 조금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정치사상사 연구자 김영민이 《한국일보》칼럼에서 (이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사학의 숨은 신" 김용섭을 다룬 적이 있다. 김용섭의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이 논파된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를 대신할 새로운 이론이 나왔느냐며,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영민의 칼럼에 대한 반응은 지극히 역사학계스러웠는데, 요는 내발론을 뛰어넘는 (그러나 식근론으로는 기울지 않는) 훌륭한 실증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영민이 정말 말하고자 했던 바는 단순히 내발론을 대체할 이론이 있느냐가 아니었다. 그의 칼럼은 역사학계가 보다 뚜렷하게 '이야기'를 내세우기를,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작업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비평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쓴 글이었다. 다름 아닌 김영민이 그런 비평의 작업을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해왔던 연구자이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이 모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국문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이 사료를 읽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심한 경우 국문학자/사회학자 아무개가 역사학자 아무개의 연구를 사실상 그대로 갖다 썼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역사학자들의 이런 맹비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역사학이란 인문학 중에서도 투자 대비 효율이 정말 안 나오는 학문이고, '실증'에 유달리 민감한 나머지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이야기는 밋밋하게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신들이 고생고생해서 밝혀낸 '팩트'를 팬시하게 가공해 주목받는 일부(어디까지나 일부!!) 사회과학자나 국문학자가 눈꼴시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는 이런 생각이 든다. 역사학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곤 하는, 사료를 읽지 않는 (일부!!) 사회과학자나 국문학자야말로 역사학계의 작업을 존중하는 충실한, 그리고 유일한 독자가 아닐까? 이들이 사라진다면, 역사학자들의 논문과 책을 꼼꼼히 읽고 비평해줄 사람이 더 남아 있을까? 국문학이야 그렇다 쳐도, 과연 정치학계나 사회학계에서 역사학계의 작업을 앞으로도 중요하게 참고할까? 정치사상사나 역사사회학, 지식사회학 전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지금? 어쩌면 김영민이 역사학계가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비평가가 아닐까?
역사학자가 쓴 책은 읽기 쉽지 않다. 일단 글의 밀도가 높다. 자칫 빽빽한 사료의 나열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찾기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역사책을 읽고 나름의 비평을 하는 건 역사학자든 일반 독자든 퍽 어렵고 수고로운 일이다. 어느 책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동료 역사학자가 쓴 책에 대한 비평에 인색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계 내부의 비평이든, 외부의 비평이든 말이다.
다소 과장하는 것도 같지만, 이번 한국출판문화상 학술/교양 후보작에 역사책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역사학계에선 올해도 주목할 만할 작업이 많이 나왔다. 정병준의 《김규식과 그의 시대》가 있었고, 강명관의 《홍대용 평전》이 있었다. (강명관이 국문학자라는 반론은 받지 않겠다.) 올해 학술 부문은 유독 민주주의 관련 책들이 많이 선정됐는데, 그렇다면 공저긴 하지만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도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책들이 정작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히고, 소개되고, 좋은 비평이 나오고, 비판과 반론이 오고가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역사학자들에게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책이 한국출판문화상 본심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건 넌센스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은 과거 수상자들로 구성되곤 했지만, 올해는 상과 관련 없는 연구자 및 비평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 역사학자나 역사 전공자는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역사학계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비평에 소홀했고, 외부의 비평가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문화상이 단순히 훌륭한 책이 아닌, 한국 출판문화에 이바지한 책에 주는 상이라면, 비평이 없는 책은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
사실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에 역사책이 올랐냐 오르지 못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비단 독서 대중뿐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역사책이 읽히지 않고,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결국 역사학계 자체가 동료 역사학자의 연구에 토론이나 비판이 아닌, 비평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이 역사학계에 있다면, 변화 역시 역사학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료의 연구를 '책으로' 읽는 연습을 하고, 좋은 비평을 사적으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건넬 수 있어야 한다.
잘 모르는 분들은 요새 젊은 역사학자들이 책을 낼 생각은 없고 논문만 쓰려 한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책을 내고자 하는 열망은 강하다. 여러 사정 상 책을 내지 못할 뿐 여건만 받쳐준다면 좋은 책을 쓸 연구자가 정말, 정말 많다. 이들이 책을 내고 싶어하는 건 무슨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줄 독자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독자를 찾기란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는 일보다도 난망하다. 다름 아닌 역사학계에서 동료의 책을 잘 읽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독자가 되어주는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 것만큼 좋은 책에 대한 좋은 비평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엔 역사학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외부의 비평가에게 보다 관대해지는 동시에, 스스로가 좋은 비평을 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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