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찬근 선생님께서 개인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2025년 12월 7일 올리신 글입니다. 이 글을 놓고서 기성 역사학자 선생님께서 반론도 쓰시고 그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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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을 보며: "역사책의 죽음"이 아닌, "좋은 비평의 죽음"이다
이번 한국출판문화상 본심 후보작들은 유독 의미심장하다. 학술도, 교양도 역사책이 전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번역 부문에는 거의 절반 가량이 역사책이었다. "국내 저자가 쓴 역사책의 죽음"을 '엄숙히' 선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출판계와 언론계에 화가 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 화는 출판계나 언론계가 아닌, 역사학계를 향하고 있었다. 독자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초 알라딘에서 "21세기 최고의 책"을 선정했을 때 이미 했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은 기백 명의 오타쿠/연구자(A그룹), 최대 1만 명의 교양 독자(B그룹), 10만 명 가량의 일반 대중(C그룹)으로 나뉘는데, "21세기 최고의 책"은 전적으로 B그룹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학계는 B그룹을 공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출판문화상 학술/교양 후보작에 역사책이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라 생각한다.
그럼 저자, 아니 생산자 그룹은 어떤가? 슬프게도, 역사학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너무나 많은 글을 읽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역사학계는 '자료'로 말하는 학문이고, (낡은 말처럼 보이지만) '실증'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은 언제나 사료/자료를 최우선적으로 붙들고 있다. 존경하는 선배 역사학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무슨 자료를 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언제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난 이 선배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다 보니 책을 책으로 읽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는 누구보다 많은 글을 읽지만 이건 절대다수가 사료고, 자료고, 논문이다. 역사학자는 사료를 모으고, 자료를 참고하고, 논문을 비판하지만, 책을 읽지는 않는다. 최소한 사료, 자료, 논문에 비해서는 그렇다. 그럼 책을 책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필요한 부분만 쏙 뽑아 읽는 게 아니라 한 권을 통째로 읽고, 긴 호흡에서 책이 놓일 위치를 가늠하며 제대로 된 비평을 해주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역사학자들은 능력은 차치하고 일단 책을 책으로 읽을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
역사학자들이 책을 책으로 읽는 데 서투르다는 건 동료 연구자의 논문이나 책에 대한 비평/서평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역사학자들이 책을 내면 으레 학술지에 서평이 실리고는 하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서평들의 형식이 비슷하다. 각 장을 짧게 요약한 뒤, 바로 '실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사료는 해석이 잘못되었다거나, 이 자료를 보지 않았다는 비판이 "역사학자의 역사책 서평"의 핵심이다. 박사논문 집담회를 열어도 거의 비슷하다.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가차없는 사람이기도 해서, 집담회는 대부분 청문회와 같은 엄숙하고 공격적인 분위기로 흐르곤 한다.
써놓고 보니 어째 역사학자를 '실증무새'로 매도하는 것 같지만, 이건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정 부분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사회과학이나 국문학, 철학과 달리 이렇다 할 방법론이 없는 역사학계에서 연구의 질을 담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필요조건은 '실증'이니 말이다. 실제로 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역사학자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바도 '실증'이다. "내가 읽어보니 아니더라"는 논문이나 책을 평가할 때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연구를 평가하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른 문제다. (편의상 박사논문까지 책이라 치자. 슬프게도 요즘 연구자들에게는 그렇게 긴 호흡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므로.) 동료 역사학자의 책 혹은 박사논문을 읽고 서평을 쓸 때는 토론문과는 다른 감각이 요구된다. '실증'도 중요하지만, 저 사람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학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학술지에 실리는 "역사학자의 역사책 서평"은 적지 않은 수가 서평보다는 토론문이나 요약문에 가까워보인다.
이처럼 역사책의 저자/생산자인 역사학자들 역시 책을 읽지 않거나 못한다. 그게 무엇이든 너무 많이 읽는 나머지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동료 역사가의 책에 좋은 서평을 쓰지도 못한다. 일단 읽을 시간이 없고, 읽더라도 서평이 아닌 토론문을 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역사학자의 토론문은 많은 경우 선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료 연구자가 밉거나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사료를 잘못 읽거나 인용한 부분을 지적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사료' 비판만이 동료에게 말을 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건 조금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정치사상사 연구자 김영민이 《한국일보》칼럼에서 (이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사학의 숨은 신" 김용섭을 다룬 적이 있다. 김용섭의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이 논파된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를 대신할 새로운 이론이 나왔느냐며,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영민의 칼럼에 대한 반응은 지극히 역사학계스러웠는데, 요는 내발론을 뛰어넘는 (그러나 식근론으로는 기울지 않는) 훌륭한 실증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영민이 정말 말하고자 했던 바는 단순히 내발론을 대체할 이론이 있느냐가 아니었다. 그의 칼럼은 역사학계가 보다 뚜렷하게 '이야기'를 내세우기를,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작업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비평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쓴 글이었다. 다름 아닌 김영민이 그런 비평의 작업을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해왔던 연구자이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이 모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국문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이 사료를 읽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심한 경우 국문학자/사회학자 아무개가 역사학자 아무개의 연구를 사실상 그대로 갖다 썼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역사학자들의 이런 맹비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역사학이란 인문학 중에서도 투자 대비 효율이 정말 안 나오는 학문이고, '실증'에 유달리 민감한 나머지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이야기는 밋밋하게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신들이 고생고생해서 밝혀낸 '팩트'를 팬시하게 가공해 주목받는 일부(어디까지나 일부!!) 사회과학자나 국문학자가 눈꼴시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는 이런 생각이 든다. 역사학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곤 하는, 사료를 읽지 않는 (일부!!) 사회과학자나 국문학자야말로 역사학계의 작업을 존중하는 충실한, 그리고 유일한 독자가 아닐까? 이들이 사라진다면, 역사학자들의 논문과 책을 꼼꼼히 읽고 비평해줄 사람이 더 남아 있을까? 국문학이야 그렇다 쳐도, 과연 정치학계나 사회학계에서 역사학계의 작업을 앞으로도 중요하게 참고할까? 정치사상사나 역사사회학, 지식사회학 전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지금? 어쩌면 김영민이 역사학계가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비평가가 아닐까?
역사학자가 쓴 책은 읽기 쉽지 않다. 일단 글의 밀도가 높다. 자칫 빽빽한 사료의 나열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찾기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역사책을 읽고 나름의 비평을 하는 건 역사학자든 일반 독자든 퍽 어렵고 수고로운 일이다. 어느 책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동료 역사학자가 쓴 책에 대한 비평에 인색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계 내부의 비평이든, 외부의 비평이든 말이다.
다소 과장하는 것도 같지만, 이번 한국출판문화상 학술/교양 후보작에 역사책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역사학계에선 올해도 주목할 만할 작업이 많이 나왔다. 정병준의 《김규식과 그의 시대》가 있었고, 강명관의 《홍대용 평전》이 있었다. (강명관이 국문학자라는 반론은 받지 않겠다.) 올해 학술 부문은 유독 민주주의 관련 책들이 많이 선정됐는데, 그렇다면 공저긴 하지만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도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책들이 정작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히고, 소개되고, 좋은 비평이 나오고, 비판과 반론이 오고가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역사학자들에게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책이 한국출판문화상 본심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건 넌센스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은 과거 수상자들로 구성되곤 했지만, 올해는 상과 관련 없는 연구자 및 비평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 역사학자나 역사 전공자는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역사학계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비평에 소홀했고, 외부의 비평가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문화상이 단순히 훌륭한 책이 아닌, 한국 출판문화에 이바지한 책에 주는 상이라면, 비평이 없는 책은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
사실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에 역사책이 올랐냐 오르지 못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비단 독서 대중뿐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역사책이 읽히지 않고,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결국 역사학계 자체가 동료 역사학자의 연구에 토론이나 비판이 아닌, 비평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이 역사학계에 있다면, 변화 역시 역사학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료의 연구를 '책으로' 읽는 연습을 하고, 좋은 비평을 사적으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건넬 수 있어야 한다.
잘 모르는 분들은 요새 젊은 역사학자들이 책을 낼 생각은 없고 논문만 쓰려 한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책을 내고자 하는 열망은 강하다. 여러 사정 상 책을 내지 못할 뿐 여건만 받쳐준다면 좋은 책을 쓸 연구자가 정말, 정말 많다. 이들이 책을 내고 싶어하는 건 무슨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줄 독자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독자를 찾기란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는 일보다도 난망하다. 다름 아닌 역사학계에서 동료의 책을 잘 읽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독자가 되어주는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 것만큼 좋은 책에 대한 좋은 비평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엔 역사학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외부의 비평가에게 보다 관대해지는 동시에, 스스로가 좋은 비평을 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D-29

YG

오구오구
잘 읽었습니다~ 저는 페북을 거의 안하는데, 이런 투덜거림이 공론의 장에서 이루어진다는게 신기하네요. 저도 페북생활을 해봐야겠네요.

stella15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이런 난제와 고민이 있는 줄 몰랐네요. 문득 홍수중 가뭄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저는 작년에 <3월 1일의 밤>도 그렇고 맨 먼저 느끼는 건 낮설다고나 할까요? 내가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하는 건 전제로하고, 그럼에도 동시에 느끼는 건 문장이 너무 딱딱하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정병준 교수가 노력을 많이 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같은 사실을 몇번이나 반복하는 걸 보면서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건가? 그냥 이 책은 논문 같은 책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 잘 모르겠더라구요. 조금 심하게 말해서 이쪽에 계신 분들은 글 쓰기에 대해 어느만큼 공부하시고, 훈련을 받으셨을까? 의구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문장의 맛도 느끼고 책 읽는 즐거움도 누리면서 학문의 세계에 빠지면 좋을텐데 오로지 사료만 붙들고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 걸까?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책을 낼 때 전문 편집자가 있었을까? 저의 좁은 소견이지만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처럼 편집자를 불편해하는 작가들도 없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편집자들이 고작 하는 일은 오자 잡아내는 정도? 소설이나 에세이를 내는 것도 이럴진대 더구나 깐깐한 역사학자들이 자신이 쓴 글을 편집자의 손에 맡긴다? 전 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역사학자 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이든 통섭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은데 유근찬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좀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그나마 저 같이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 관심을 갖게된 건 요즘 잘 나가는 역사 일타 강사의 현란한 강의나 역사 강의 프로그램 때문이기도 한데 진짜 학자들은 그들을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 갭도 참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서누리
잘읽었습니다. 역사학자에게 애정이 담긴 조언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연해
'일부!!' 에 달린 느낌표가 의미심장합니다. 제가 이 책을 유독 힘들어했던 이유가 이 글에 아주 잘 담겨있었네요(하하하). 특히 이 대목("역사학자가 쓴 책은 읽기 쉽지 않다. 일단 글의 밀도가 높다. 자칫 빽빽한 사료의 나열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찾기 쉽지 않다.")에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한국출판문화상이 단순히 훌륭한 책이 아닌, 한국 출판문화에 이바지한 책에 주는 상이라면, 비평이 없는 책은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은 조금 씁쓸하기도 하고요.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에 역사책이 올랐냐 오르지 못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역사책이 읽히지 않고,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지만, 후보에 오르지 못하면 독자들이 책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는 게 슬픈 현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이들이 책을 내고 싶어하는 건 무슨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줄 독자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에서는 괜히 숙연해지기도 했어요. 따끔한 말씀도, 애정 어린 말씀도 다 좋네요. 이번 벽돌 책을 더 열심히!! (저도 해봅니다, 느낌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오구오구
어제 도서관, 산책겸 갔다가 눈에 들어와서 빌려왔어요. 김규식과 그의 시대에 나오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이 궁금했는데, 박시백 작가님이 나름 고증해서 그리신것 같아서 좋더라구요 ㅎ



stella15
“ 김규식과 주미공사관의 관계는 이범진 공사가 떠난 이후에도 지속되크다. 이번에는 1897년 도미했던 의화군이 재차 미국에 온 것이다. 1900년그화군이 미국에 도착하자, 김규식은 통역 겸 수행비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의화군은 시티오브페킹 (City of Peking)호를 타고 1900년 8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주미공사 신태무와 시종 한응이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는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영어 공부를 할 계획으로 알려졌는데, 동부의 로녹대학, 서부의 캘리포니아주립대학·스탠퍼드대학(LelandStanford) 등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외화군은 미국 도착 직후 1900~1901학년도에 로녹대학에 입학할 계획이었으나, 워싱턴 한국공사관 에서 수개월 체류하며 영어를 공부했다. 의화군은001년 3월 7일 세일럼으로 내려왔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201~2,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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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 의화군은 시종 한웅이를 대동하고 델라웨어에 도착해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생활하며, 4~5개의 방을 가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문제는 웨슬리언대학이 남녀공학이었다는 점이다. 워싱턴디씨나 세일럼의 로녹대학은 남녀공학이 아니었으며, 젊은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웨슬리언대학으로 옮긴 이후 의화군을 둘러싼 가십성 연애기사가 미국 신문에 보도되었다.
첫 번째 기사는 1903년 1월이었는데, 의화군이 웨슬리언대학세의 앤지 그래이엄(Angie Graham)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으로, 그레이엄은 웨스트버지니아의 유명 목사인 그래이엄 목사(Rev. Dr. CGraham)의 딸이었다. 의화군은 기자에게 고종이 사망하면 형인 왕세자가 계승할 것이고, 그다음은 자신에게 왕위가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계약에 의해 결혼이 이뤄지기 때문에 온갖 불행인 집안에 가득며 이혼법이 없으므로 불행한 결혼을 끝낼 수 없다고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205~207,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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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누리
진도를 쫓아가고는 있는데 워낙 느리게 읽는 편이라 잘 못쫓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좀더 속도를 내보려고요.
저는 이번 처음 참여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밌고 유익해서 올려주시는 글들을 읽는 것만으로 정말 새롭고 재밌네요 ㅎㅎ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치고 있습니다 ㅎㅎ
정병준 선생님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말이지 사료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 아닐까합니다. 유찬근선생님이 말하셨듯 본인의 이야기가 없다고 보여지려나 싶지만서도 사료를 쫓아가는 맛이 어느새 쏠쏠하게 느껴져요. 그러다가도 유려한 글솜씨로 사료들을 한큐에 정리해주는 문장들이 그야말로 질투나게 탁월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문장 적어봅니다.

연해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치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에 웃었습니다. 저도 자주 이러거든요. '앗, 이 말을 댓글로 엮어야지' 해놓고, 타이밍을 놓치곤 합니다(하하하). 특히 YG님이 써주시는 긴 글은 여러 번 읽고 생각을 곱씹다가 할 말을 또 놓치고... (글이 워낙 밀도 높을 때가 많아서)
이번이 첫 참여라고 하셨는데, 남은 주말 동안도 진도에 대한 부담 없이 즐거운 독서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향팔
설 연휴 동안 책이라고는 한 글자도 보지 않아서 저도 지금 진도가 난리 났네요 ㅎㅎ 드뎌 명절의 심적 굴레에서 해방된 따수운 주말, 여유롭게 커피 한잔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같이 찬찬히 읽어보아요! 저도 이 책의 서술 스타일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이 정도면 정말 재밌게 잘 읽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를 할 때 내 취향에 딱 맞추어 책을 고르고 읽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가끔은 내가 책에게 맞추며 적응해나가는 과정도 그 자체로 재미있고 좋더라고요.

stella15
설날 바쁘셨군요. 안 보여서 어디 여행이라도 가셨나 했습니다. 근데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다른 거 같긴하네요. 저도 생각 보다 잘 읽혀서 향팔님 말씀이 맞구나 하며 읽는데 그래도 뭔가 아쉬운 건 제가 김규식을 너무 좋아하게 되버린 탓이거나 떠벌이 아줌마인 탓일겁니다. ㅋㅋ

향팔
설 쇠고 와보니 그동안 @stella15 님 프사가 바뀌었네요! 색감이 너므 청량하고 산뜻해요.

stella15
앞으로 더워질 거니까 미리! 근데 돌아오는 겨울엔 보는 것만으로도 에취하게 될겁니다. >.<

서누리
“ 김규식이 미국식 근대와 만나는 지점에 고종과 의화군 등 조선 왕실이 등장한다는 사실, 즉 미국식 근대와 조선왕실 인물이 교차하며 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향후 그의 시대 인식과 활동 방향을 헤아리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권, 220쪽,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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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