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신해혁명은 중국과 한국의 혁명가들뿐만 아니라 일본 우익들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일본의 우익들은 중국혁명에 개입해서 ‘만몽(滿蒙) 문제’ 해결, 즉 만주와 몽고의 식민지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우익 현양사와 흑룡회는 1900년 이후 청조 타도를 내건 손문·송교인 등 혁명파를 보호·후원했다. 이들은 혁명파를 지원해 이들을 친일화하는 한편, 중국 대륙에서 경제적 이권 확대와 만몽문제 해결을 희망했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을미사변의 주역 미우라 고로 전 주한공사, 흑룡회의 주역 도야마 미쓰루, 일진회의 조종자 우치다 료헤이 등은 낭인회(浪人會)를 개최하여 일본정부가 중국혁명에 엄정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한편, 흑룡회는 유린회(有隣會)를 결성(1911. 11)하고 낭인들을 중국 각처에 파견했다. 이들 대아시아주의자들의 목표는 모두 만주와 몽고를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시켜 일본 세력권으로 만든다는 ‘만주 문제’의 해결에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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