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자본주의는 이제 노동자들에게 자기희생을 넘어 자기착취를 요구한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 멈춘 시점에서 우리는 자아실현과 성취를 위해 자기를 스스로 갈아 넣는 세계로 초대받았다.
자아라는 존재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끄는 무한한 동력이 되었다. p121 ”
『필연적 혼자의 시대』 3장,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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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물론 과거에도 사람들은 일을 통해 보람을 느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자부심이자 기쁨이었다. 그런데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일의 또 다른 핵심 목적으로 자아실현이 급부상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기준 삼아 행동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이를 자기 준거 시스템self-referential system이라고 불렀다.[ 6 ]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충성하는 방식으로 신념 체계를 만들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개인 내면에서 설정한다. 과거에는 가족, 공동체, 종교 같은 외부의 준거점이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자기 자신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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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과거 산업사회에서 이직은 가계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지금은 전보다 이직이 흔해졌지만,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야 하는 기혼 직장인에게는 여전히 부담되는 일이다. 하지만 현지 씨나 희영 씨를 포함해 내가 만난 싱글 직장인들은 자기의 적성, 취향, 흥미, 여건에 맞는 직장을 찾아 이직하거나 직업을 바꾸길 원했다. 이들에게도 이직은 가벼운 사건이 아니지만, 그 부담을 홀로 지면 되기 때문에, 훨씬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들은 직장을 옮겨 다니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걸림돌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노동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공교롭게도 혼자 사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불안정하고 유연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울리히 벡은 이미 1992년에 유연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가 바라는 사회는 결국 자녀 없이 혼자 살아가는 무자녀 사회childless society라고 지적했다.[ 8 ] 나는 노동시장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비혼 직장인들의 모습 속에서 벡의 통찰이 이 론을 넘어 현현하는 사회를 목도했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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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가족은 장시간 노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존재다. “언제 퇴근해?”, “캠핑 가고 싶어.” “아침 등원은 당신이 맡아줘.” “당신,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가족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익숙한 말들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노동자들은 이런 요구를 받거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언뜻 보면 이는 자유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시간과 공간을 다시 일에 투입하다 보면, 이들의 일상은 자신도 모르게 일에 잠식당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유는 결국 멈출 수 없는 질주가 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업무용 인생이 된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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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귀뚜라미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다산책방
환영합니다
진제
“ 기업가적 자아는 학력, 스펙, 커리어처럼 노력 대비 성과가 예측 가능한 영역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나 가족 만들기는 성과 지표가 불분명하고, 실패했을 때 비용도 크다.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생애 단계가 아니라,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이 지는 고위험 인생 프로젝트이다.
...
일이나 학업은 투입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편이다. 야근을 하면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공부를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의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연애에 시간을 쏟아도 이별할 수 있고, 결혼생활에 헌신해도 이혼할 수 있다. 친밀한 관계는 훈련 가능한 능력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변수이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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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떤 삶을 ‘정상’으로 목격하느냐에 좌우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인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자기 준거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자기 준거는 오롯이 개인 내부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혼이나 비혼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속한 업계나 직장의 문화, 그곳의 동료들이 보여주는 삶의 경로를 자신의 기준으로 점차 내면화한다. 자기 준거는 결국 사회적 준거를 통과하면서 완성된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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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피로사회』를 집필한 철학자 한병철은 자기착취를 현대인의 번아웃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14 ]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타인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아실현, 자기성취, 자기계발, 자기관리의 굴레 속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자기착취에 가담한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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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자기관리의 굴레 속에서 자기 착취에 가담한다는 말 정말 공감합니다
진제
“ 사회제도의 구속력이 약해진 액체 근대 사회는 어떤 면에서 개인에게 자유를 선사한 듯 보인다. 하지만 행복과 성공이 출신이나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달렸다는 믿음은 사람들에게 일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임금노동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투여하는 현대사회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성취는 자기 정체성과 지위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일 없이는 자기 존재를 세우기조차 힘든 사회다. 특히 가족이 없는 혼자 사는 노동자들에게 일은 단지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라 정체성 그 자체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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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구이
'홀몸'인 싱글들은 좀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 … 높은 노동 생산설, 탄력적인 노동시간, 빠른 퇴직, 잦은 이직. 1인 가구 노동자들은 이런 변화에 보다 쉽게 자신을 맞출 수 있다. 그들의 홀몸은 액체 근대 사회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이동한다. 마치 신자유주의 노동 시장에 맞춰 제 몸을 재단한 것처럼.
진제
“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폭력이나 억압으로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권력의 얼굴은 더 세련되어진다.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가치와 규범을 ‘좋은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하면 통치 권력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권력은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스스로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든다. 푸코는 이를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고 불렀다.[ 21 ] 통치성은 개개인의 인식과 행동을 통솔하는 힘이다. 겉으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같지만, 실은 사회가 바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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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후기 산업사회의 생산과 재생산 구조가 개인으로 이동한 만큼 이에 맞는 복지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이제 가족임금을 넘어 1인분의 복지를 고민할 때다.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이 1인가구인 지금 이는 소수 집단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가족을 대신해 혼자서 자본주의의 생산과 재생산을 전담하고 있는 개인에게도 마땅히 분배되어야 할 몫의 복지이다. 산업사회의 복지가 노동자를 떠받쳤던 가족을 지원했듯이, 혼자 일하며 스스로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그 짐의 일부를 제도가 나누어 맡는 일이다. 이를 위해 기업 차원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대안들이 있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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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사람은 누구나 우울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1인가구에는 이를 희석해 줄 일상 속 지지망이 부족하다. 힘들 때 회복 속도가 느리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때 바로 곁에서 붙들어 줄 누군가가 없다. 그래서 1인가구가 자살 생각에 빠지는 비율(10.6%)은 다인가구(2.8%)에 비해 무려 3.8배 높다.[ 23 ]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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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 제1차 인구변동은 산업화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출산율과 사망률이 동시에 낮아지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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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구변동은 핵가족 체계가 흔들리며 탈가족화가 진행되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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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처럼 압축적 근대화를 이룬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두 단계의 인구변동도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한편에서는 결혼정보회사가 성행하고 자녀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과열될 만큼 강력한 핵가족 중심주의가 존재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비혼주의와 같은 탈가족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적 풍습이 한 시대에 공존하는 셈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이런 현상을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라고 불렀다.[ 28 ] ”
“ 바우만은 후기 산업사회에 개인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모습을 쇼핑에 비유한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지만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하는, 일종의 쇼핑 중독이라는 것이다. ”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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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구이
그리고, 4장에서 어느 스타트업에다니는 33세 노정호 씨는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지금 있는 직장에서 최대한 성장을 해서 몸값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한 거 잖아요. 그래서 통계를 취미로 갖기로 했죠.'
… 언젠가 대체 수입원이 될 수도 있고, 일을 확장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전략적 자기기획인 셈이다. 그래서 이들이 맺는 친분관계나 소모임 활동에는 항상 생존의 긴장감이 깔려있다.
메롱구이
“ 아이러니하게도 자기힐링은 더욱 강력해진 자아를 탄생시킨다. … 나는 왜 불안한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 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처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해석하면서 무엇이 ‘나에게 의미있는 일’ 인지를 계속해서 묻게 만든다.
...
바우만은 현대인들은 홀로 있을 때 완전한 고독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과 미디어에 접속해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외부세계를 관망한다고 말한다.
…
그래서 이들에게 중요한 건 뷰view이다. … 나는 이들이 찍어온 창가 풍경이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과 너무 흡사해서 놀랐다. … 그들에게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도 담겨있지 않은 백색소음으로 떠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