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춘추와 연개소문 중 하나만을 택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반반 성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는 연개소문처럼 원칙과 중심을 분명히 세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껴요. 기준이 없으면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김춘추처럼 외교와 연합, 즉 유연한 선택이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원칙을 가진 유연함을 지향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큰 방향과 가치관은 지키되, 방법과 방식은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사람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한스미디어] 대중 사학자 신간 <신병주의 라이벌로 읽는 한국사> 함께읽기 ⭐도서 이벤트⭐
D-29
밍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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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질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아직 독서를 다 못하신 분들을 위해 스포로 지정하였으니 가장 최근 한스 모임지기의 댓글을 확인해주세요. :)🔥🔥
dulce06
외교와 연합 / 21세기에 보다 더 복잡하고 국가 간의 이해 대립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할 경제, 정치 외교, 국가 안보 문제에 관한 긴밀한 타협과 우호적 동맹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봅니다.
원칙도 원칙이지만 그 틀에 박혀 편협적이고 비효율적인 이기주의가 판을 친다면 이 또한 개인을 넘어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에 딱이지 않나 나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원칙의 유연함이 각 처해진 상황에 따라 조율이 가능하다면 너무도 좋을 것 같네요.
모드리치
외교적 연합은 필요가 아닌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김춘추의 방식은 당시 언더독인 신라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신라는 연합을 통해 강대한 세력을 갉아먹고 자신의 실리를 도모하는 방식을 취함과 동시에 연합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나제동맹을 파기했던 장본인으로서 당나라와의 연합 역시 불안정하다고 판단하여 자주국방을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김춘추의 방식이 두루두루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연개소문 입장에서 내부통제와 자주국방은 피할수 없는 선택입니다. 신라의 외교적 제안은 토사구팽일게 분명합니다. 백제 침공에 쓸 국방력을 쿠데타와 내부통제를 위해 쓸 생각이었을 겁니다. 결국 중요한 시기, 본인의 욕심으로 인해 강대했던 나라를 망치게 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이유없는 원칙은 적폐입니다. 왜라는 물음과 함께 모든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달라짐을 생각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저와는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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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잘 따라오고 있으시죠?😎 오늘부터 2주차 함께 읽기가 시작됩니다! 끝나지 않은 연휴를 보내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오늘만 버티면 다시 주말!의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금요일 밤부터 주말까지 독서로 함께 불태워 봅시다.🔥🔥 한스 모임지기는 화요일에 2부 질문을 남기러 돌아올게요!
가연마미
Q. '김춘추 vs 연개소문' 편에서 보면 김춘추는 외교와 연합을, 연개소문은 강력한 내부 통제와 자주 노선을 택했습니다. 오늘날의 나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선택은 어느 쪽인가요? 이 대결을 보며 "원칙을 지키는 강경함" 과 "상황에 맞춘 유연함" 중 나는 어떤 성향에 더 가까운 사람인가요?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것 같다. 예전에는 강경함이였다면 지금은 유연함에 많이 치중되었다.
아이가 어리고 학교다닐때는 어떤 결정에 타협보다는 해야하는 것이 먼저이고 원칙이 있으니 많은 부분이 강경했다면 성인이 된 아이들은 내가 직업을 구할때나 집에 대해 들어가는 금액등 모든것이 빠르게 달라져서 상황에 맞춘 유연함이 돋보이게 많아져서 아이들도 이야기하면서 예전의 엄마가 아닌데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가와책읽기
우리 한민족의 방파제인 고구려의 은덕을 배신하고 당과 야합한 김춘 추는 더럽디 더러운 민족 반역자이다. 저 광활한 요동 반도와 만주을 넘어 시베리아에 이르는 우리의 영토를 내놓고 극히 일부인 한반도의 남쪽만으로 고작 신라의 땅을 넓힌 지경에 어찌 그것을 통일이라 이를 수 있으리? 반쪽의 통일도 통일이란 말인가? 아아아 연개소문이여, 그리고 그 못난 자식들이여~°
독서중
한때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비판을 받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에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설명이 실리기도 했었고요.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지금의 시선에서 그저 "안타까움"만을 담아 바라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 당시 삼국은 "한민족"이란 개념이 완벽히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그런 상황 속에 김춘추에게는 자국(신라)을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했으니까요. 무조건 당나라부터 찾아간 것이 아니라 고구려에 먼저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던 것을 보면,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바라는 통일을 막아선건 원칙만을 고수했던 연개소문의 강경함이 아니었을까요?
꼿꼿하면 부러지기 쉽다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상황에 맞춘 유연함이 필요한 때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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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차 질문! 조선시대를 다루는 3부를 읽고 있는 만큼, 뚱뚱이(?) 질문으로 남겨봅니다.
'최영 vs 이성계' 편을 읽고 최영은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했고, 이성계는 새로운 질서를 선택했습니다. 이 장을 읽으며 ‘배신’과 ‘결단’의 경계는 어디라고 느꼈나요?
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의 태도는 이상적이지만, 국가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고수되어야 했을까요?
ㄴ 만약 내가 당시대의 신하였다면 무너져가는 고려에 남았을지, 새 질서를 택했을지...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 이유는 무엇일지 같이 생각을 나눠 봅시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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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읽기 모임자 여러분! 어느덧 2주차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다룬 제3부는 어떠셨나요?
2주차 질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이 또한 스포로 지정하였으니 가장 최근 한스 모임지기의 댓글을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내일 특별히 또 하나의 질문을 들고 찾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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