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

D-29
또한 도스토옙스키는 단절, 고립, 소외, 배제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은 자기애, 나르시시즘, 자기 객관성 상실과 이어지고 자존감 상실, 체면과 자존심 세우기에 급급해하는 삶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 속에서 그리스도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고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이나 <상처받은 사람들>에서 형상화 했던 그리스도교의 이미지를 보여 주지도 않았지만 그 정반대의 인간을 거울 삼아 이 작품에서도 그리스도교 사상을 보여 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동굴이 필요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어떤 상황이 생겨도 그 동굴을 요새로 만들지 않길 바랍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자기 안에 갇히거나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화자처럼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쓰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랍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전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직접 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의 책속에서 이 부분을 읽으니 왠지 뿌옇던 눈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 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속 인물들의 장광설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이 부분을 독자인 나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책을 읽다보면 이 부분에서 헤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해설을 읽으니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에 빠진 인물들이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동굴에 빠져 자신만이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인다는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편향된 지식과 편향된 사고에 빠진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로 보였구요. <지하로부터의 수기> 속 인물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신만의 sns에 빠져 편향된 지식만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논리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100여년 전 작품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흡사한지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위대한 고전으로 뽑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이 오늘날 현대인들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왠만하게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가난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덜하니까요. 대신 그래서 자신들의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신의 편협한 사고를 합리화하는 일들이 많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작품해설을 읽다보니 그의 모습에서 예전의 저의 모습이 보여 너무 신기했습니다.
맞아요. 자기만의 지하세계가 어떤 것인지 한 번쯤은 곰곰히 성찰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 중 하나가 아닐까 해요.
자, 드디어 오늘부터 5대 장편 나눔이 시작됩니다. 오늘과 내일 '죄와 벌' 나눕니다. 이 작품은 읽으신 분들이 꽤 많으실 것 같아요. 풍성한 나눔 기대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고독한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였습니다. 주위와 단절된 채 관 같은 작은 방에 틀어박혀 생각만 해 댄지 벌써 한 달째였습니다. 그가 가진 해괴망측한 사상은 자신을 포함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단번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돈을 많이 가진 극소수의 이(lice)같은 인간들을 제거하여 그들의 돈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어설프게 산술적인 공리주의에 입각한 사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인간의 본성, 특히 양심을 고려하지 못한 심각한 오류에 불과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아무 결함이 없더라도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순 없는노릇입니다. 그 어떤 인간에게도 살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조금 더 넓은 해석을 적용해 보자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지만 관계를 죽이는 것도 살인입니다. 관계의 단절과 고립, 파괴를 야기하는 모든 행위가 살인에 해당될지도 모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이후 라스꼴리니꼬프의 삶은 죽음보다 못한 '죽음의 삶'이었습니다. 그건 죄에 대한 벌이었습니다. 관계를 죽이는 행위가 죄라면 그 죽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벌입니다. 이런 이유로 구원은 관계 속에 임합니다. 막히고 끊어지고 파괴되었던 관계의 회복이 구원입니다. 소냐의 사랑이 없었다면 라스꼴리니꼬프의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라스꼴리니꼬프가 저지른 살인뿐아니라 관계의 단절과 고립도 살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만의 동굴에 갇혀 자신만의 편향된 지식만을 추구하며 편협한 지식을 진리로 착각하는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또 이들에 의해 비극들도 발생하구요. 오늘날도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과 비슷한 비극들이 발생할 여러 비슷한 환경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그러면 도스토옙스키처럼 장광설에 빠져 자신만의 동굴에 사는 인물들을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도 이런 인물들과 흡사한 모습이 있어서였을까요? 당시 사회 속에 이런 인물들이 많아서였을까요?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에 빠진 인물들과 비슷한 결의 작품들이나 작가가 또 있을지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장강명 작가님이 항상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장작가님의 <재수사>의 범인도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자신만의 편향된 지식을 진리인양 떠드는 모습이 나오는데 신기했습니다. 이런 인물들에게서 우리들은 어떤 매력을 계속 느끼는 걸까요?^^
우리와 비슷해서일 수도 있고 너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죠. 어떤 인물로부터 매력을 느끼는지는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죄와 벌이 각각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가운데 모두 비슷한 결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죄'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 자'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지 감히 판단하려고 하는 것, 즉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하는 의지와 행동이라는 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잊고 신의자리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신에 대한 반항이자 반역일 수 있습니다. 물론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말이지요. 한편 '벌'은 라스꼴리니꼬프의 삶 전체라는 데에 입을 모았습니다. 고립되고 단절되고 소외된 외톨이로 살아가며 고뇌하고 병든 삶을 지탱하는 것이 그 자체로 벌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가끔 북토크에서 작가님의 의도나 해석을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작품은 독자의 해석에 따라 재탄생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학이 수학공식처럼 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도 독자의 해석이 너무 산으로 가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히어로 님이 작가의 의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독자만이 자의적인 해석만으로 작품읽기를 끝낸다면 최악의 독서 방법이 아닐까라는 말을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말씀처럼 작품을 읽을 때는 훌륭한 해석을 위해 훌륭한 주해가 기반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이런한 노력없이 혼자만의 자의적 해석만으로 독서를 끝내는 것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주인공이나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식의 독서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확한 지적이셔요. 저는 서평 혹은 감상문 혹은 리뷰, 등 뭐라 불리든 상관없이 책을 읽고 남기는 평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믿어요. 무조건 반대하거나, 저자의 의도를 완전 무시하거나 하는 식의 태도는 독자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 생각하고요. 라스꼴리니꼬프 식의 독서방법이라는 표현이 멋집니다^^
저도 작품배경이나 저자의 의도를 어느정도는 참조해서 작품을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에 @히어로 님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의 글을 읽으면서 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가끔 어떤 독서모임을 가면 그냥 목소리 큰 사람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의견을 주도적으로 이끌때가 있어서 모임 후 작품감상이 산으로 갈때가 있거든요^^;; 요즘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사회분위기라고 우울해하지만 지금 그믐에서 있다보면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으시더라구요 책에 대한 내공도 높으시구요^^ 솔직히 처음에 책을 접하면 놀이공원에서 부모잃은 아이처럼 어디로 가야 하나 방향 잡기도 막막하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모임에서 @히어로 님의 글을 읽을수록 독서난민들을 손을 잡아줄 독서 모임지기들이 세상에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도 그런 자기 목소리가 커서 독서모임의 방향이 자기 자랑인 건지 책을 좀 더 깊고 풍성하게 읽고 나누고 싶은 건지 헷갈릴 때가 있더라고요. 아마 전자이겠지요. 그런 사람은 독서를 수직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죠. 그러나 제가 지향하는 독서는 수평적인 거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죠. 물론 저자의 의도에 토를 달면 안 된다는 건 아니에요. 그게 기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토를 다는 것이 중심 없이 퍼져나가는 물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죠. 배가 산으로 가게 되고요. 언제나 주해 다음에 해석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습니다. 저자를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독서모임 구성원들을 존중할 수 있겠어요.
첫날부터 겨우 겨우 따라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긴 후기를 남기기 어려워서 눈팅만 하고 있긴 한데요, 도스토옙스키는 비열한 인간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것 같아요. 마치 희곡의 대사처럼 내밀한 속내의 구석구석까지 들춰내서 보란듯이 펼쳐보이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독자인 제가 다 화끈거릴 정도입니다. <악몽같은 이야기>의 이반 일리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나마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 "엄격함 뿐이지, 엄격하면 되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자책하며 의자에 주저앉아버리는 모습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이 보이긴 했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보며 독자들도 자기 객관화를 해보게 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거울 보듯 들여다보면서 말이죠.
동감입니다. 파렴치한 말종 인간을 보면서 내 모습을 반추하게 되죠. 화끈거리는 게 내 안의 어떤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의심도 들면서요.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그믐의 다른 방에서 안톤체홉의 <바냐 아저씨> 낭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 중 주인공 바냐 아저씨가 자신이 매형만 아니었다면 도스토옙스키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문장이 나오던데. 도스토옙스키는 살아생전에도 사회적으로 유명한 부와 명예를 이루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한강작가님 처럼 말이죠)
명예는 몰라도 부는 적어도 누리지 못했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부인 안나 도스토옙스카야가 쓴 회고록을 읽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도스토옙스키가 돈을 벌지 못한 건 아닌데 돈이 들어오면 금세 그 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줘버렸다고 해요. 그 사람이 거짓으로 속여도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줄 정도였다고 하네요. 답답하다고 볼 수도 있고 분별력이 없다고도 볼 수도 있고 착해빠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안나가 없었다면 도스토옙스키는 파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관계의 단절과 고립, 파괴를 야기하는 모든 행위가 살인에 해당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계의 단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살면서 저로 인해 상처받았을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벌은 파괴된 관계로 인해 고립된 삶이지요. 가장 큰 벌은 스스로에게 주는 벌임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외부적인 벌도 필요하지요. 토스토옙스키의 장편을 읽어봐야지 하고 처음으로 구입한 종이책이 '죄와 벌'입니다. 언제 읽을 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저녁식사'에서 해당부분을 읽으며 빨리 읽어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녁식사'의 이 부분을 다시 읽어봐야지요. 사실 스토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강 빨리 읽고 넘어갔거든요 ㅎㅎ
우리가 무감각할 정도로 흔하게 행하고 있는 살인이 바로 관계 단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죄와 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저렇게 해 보면서 우리 삶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대화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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