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

D-29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29일에 이야기를 나눈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한권만 한달 안에 읽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모임을 통해 @히어로 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도 똑같이 느꼈던 지점이나 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히어로 님의 해설과 소개 덕분에 더 이해하기 좋았던 점들이 많았습니다. 도스토옙스키를 흐릿한 안경으로 형태만 두루뭉술하게 봤다면 좀더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방의 시간도 얼마남지 않아 안타깝지만 그래도 1년 반의 경험들과 작품에 대한 여러 지식들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거북별85님 덕분에 이 싸늘한 방의 온기가 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임과 함께 하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졸고가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야 저는 영광입니다.
사실 책은 몰입이 어려워서 어렵게 어렵게 읽었습니다만 <백치>를 읽으면서 로고진의 저택에 걸려있던 한스 홀바인2세의 그림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스탕달신드롬까지 겪었다는 이 그림은 웹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미술관에서 실물을 눈앞에 본다면 어떨까 상상을 하게되네요.
저도 찾아보았었답니다. 그림 보니 충격이었죠. 책 어렵죠. 백친 특히 어려운 것 같아요.
<노름꾼> p192 도스토옙스키는 그 인물을 기어이 한 발자국 더 가도록 만듭니다. 외부 상황이 아닌 그 인물의 내면을 끝까지 몰고 가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진창 속 바닥에서나 맛볼 수 있는 처절하고 자학적인 유머까지 곁들이지요. 독자들은 이런 뜻밖의 장면을 목도하면서 은밀하게 공감하는데 이는 특히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느껴지는 역설적이고 초월적인 병적인 심리 상태의 극한을 전혀 고상하지 않은 언어로 여과없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도스토옙스키는 '마지막 한 발자국만 더 갔으면 떨어져 죽을 뻔 했네' 정도의 갈등 해소를 통해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과 함께 적당한 교훈을 던져 주는 방식이 아닌 '아니, 거기서 한 발자국 더 가면 어떡해! 진짜 죽으려고 그래?'와 같은 탄사를 독자들이 내뱉도록 하면서 끝내 마지막 한 발자국을 디뎌 버린 소설 속 인물의 심리에 숨죽이며 귀 기울이게 만드는 방식을 선보입니다. : 전 책에서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작품에 관해 작가님의 감상과 느낌을 구체적으로 써주시는 부분들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읽는 동안 편하지 않은 느낌은 왜이지 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작가님의 해석을 읽다보면 음, 나만 느낀 것이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예전 작가님들의 북토크를 가거나 하면 왜 주인공을 그렇게 한계까지 몰아붙였냐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독자들이 책 속의 주제나 상황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여야 더 잘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다보면 이분이야 말로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리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p197 한편, 그 운명이라는 힘도 조금 더 뜯어볼 필요를 느낍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확신, 다른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서로 상반되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인간은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한 채 늘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들고 있지요. 저는 이런 모순적인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흥미롭다고 보는데,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과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추적인 힘이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석은 노름꾼의 심리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 보통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인생이 엉킬 때도 있지만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꼭 쥐고 있어 또 엉킬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글을 읽다보면 해야 할것을 못할 때보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할 때 가끔 삶이 나락으로 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운명이라는 힘에 기대는 나약한 모습이 <죄와 벌>에서 살인을 저지르기 전 라스꼴리니꼬프의 모습과도 겹칩니다.
어쩌면 내게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몰라요."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메타인지도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꼬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인것 같습니다.
p203 몰입과 중독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둘은 모두 대상에게 빠져드는 행위를 뜻하지만 맺는 열매가 다릅니다. 몰입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열매를, 중독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열매를 맺습니다. 몰입은 스스로가 이끄는 것이고 중독은 이끌려 가는 것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무엇인가에 빠져 있다면 그것이 중독이 아닌 몰입의 수준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 몰입과 중독도 중용처럼 균형을 잘 잡아야 겠습니다^^
<백치> p215 미쉬낀은 로고진에게 나스따시야를 살해한 흉기가 무엇인지 묻는 일견 엉뚱해 보이는 질문 말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사람들에게서 선한 모습을 찾아낼 줄 알며 자주 남들이 보지 못한느 사람의 내면까지도 꿰뜷어 보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던 미쉬낀 공작은 살인 사건 현장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채 살인자 로고진에게 연민마저 느낍니다. 정상적인 살인 사건의 목격자라면 으레 행해야 했던 신고나 자수 권유등을 무시하고 살인자의 제안을 그대로 띠르는 다분히 광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요.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미쉬낀 공작이 모든 것을 이미 다 파악한 뒤 행한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그저 어쩔 줄 몰라 당황한 아이 아니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의 공포에 큰 충격을 받은 환자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 전 <백치>도 유명하지만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미쉬낀의 모습이 <죄와 벌>의 소냐와는 또다른 모습이네요. 그냥 나약한 순백의 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과연 이러한 백치와 같은 약한 이의 모습이 우리에게 어떤 경계심을 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전 도스토옙스키에 등장하는 유로지비란 인물들도 좀 어렵게 느껴지더라구요. 악과의 대비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을 통해 우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선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닌 유로지비란 존재를 창조하게 된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사상이나 이념, 즉 악령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을 퇴치하거나 그것에 물들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답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예언자로까지 불리던 도스토옙시키도 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다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저는 다시 서게 됩니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답을 얻은 것 같다가도 근간부터 흔들리는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되거든요. 이 질문은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이유이자 나를 읽고 타자를 읽고 세상을 읽는 통로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악령>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는 반가웠습니다. 우선은 제가 가장 읽기 힘들어했던 작품인데 작가님과 북클럽에서도 어려웠다고 하니 좀 위안이 되었던거 같습니다^^ 그믐에서 예전에 <죄와 벌> <악령><까라마조프의 형제들> 3부작을 같이 읽는 적이 있었는데 아! 전 <악령>이 가장 어려웠거든요. 실은 장강명 작가님이 항상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꼽아서 저도 그 감동을 느끼고 싶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ㅜㅜ 혹시 @히어로 님께서 알려주실 <악령>을 좀더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좀 더 있을까요? @히어로 님께서 책모임을 진행할 때 회원분들이 책속 이야기 외에 또 주고 받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책속 다희 회원님의 후기가 재미있습니다 "악령, 어렵다, 독자를 악령으로 만들려는 책인가, ~~~" ^^
악령을 쉽게 읽는 방법이 있었다면 장강명 작가님이 먼저 알려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이 작품은 어려웠답니다. 재독을 해도 마찬가지였어요. 백치도 어려웠지만 말이죠. 한 가지 팁이라면 인물들을 사람으로 보지 말고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으로 보면 좀 낫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려면 각 인물들이 상징하는 사상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고 연구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사실 이게 악령을 읽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꼭 읽어보셔요~
네, 저도 악령을 읽어 보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확인해 보았는데요. 대게가 3권으로 되어있거나 2권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한번 속독으로 읽어 나가도 처음에는 내용이 잘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점검하면서 표지 앞뒷면의 줄거리와 짧은 해석들을 읽어 보면서, 다시 읽어 나가면서 조금씩 악령의 줄거리가 해석이 되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작가님의 스쩨빤에서 시작된 5인조 악령과 5인조 악령의 숙주로의 이동의 해석은 탁월한 해석중의 하나로 잘 읽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작가도 제정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격동기에서 일어났던 급진주의와 허무주의에 사로 잡혔던 젊은이들에게 경고하면서, 모순과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여러 군상들의 행동을 보여주고 그들을 고발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저의 해석이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해설에서 말해주는 시대적 배경과 연관지어 읽고 해석하는 방법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런 객관을 비탕으로 주관적인 해석도 시도해보시면 훨씬 풍성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전자는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이뤄지는 거고, 후자는 독서모임에서 이뤄지는 것들이죠.
p245 헤르만 헤세를 읽으면 자아의 발견과 성찰, 성장과 성숙, 그리고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아의 분열과 대립마저도 점진적인 합일로 나아가지요. 반면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면 바닥까지 곤두박질칠 정도로 난잡하고 추잡한, 그러면서도 세밀하고 농밀한 인간 심리 묘사의 정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헤세를 읽고 나면 무언가 흩어져 있던 것들이 모이고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반면,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나면 벌거벗겨지고 더욱 파헤쳐지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자칫 불쾌할 정도의 씁쓸한 기분까지 들기 때문에 한동안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쉽진 않습니다. 가끔은 정말이지 깔끔하게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비록 도스토옙스키 역시 인간의 절망과 악함의 심연 가운데에도 소망과 사랑과 구원이 깃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렬히 보여주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헤세가 절제되고 상대적으로 우아한 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면 도스토옙스키는 더 낮고 어둡고 여러 갈래로 나 있으며 전혀 정돈되지 않아 어지럽고 복잡한 야생의 숲속을 걷는 느낌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심리의 민낯을 대면하거나 탐구해 보고 싶다면 저는 반드시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다시 말해 보고 싶은 것만이 아닌 언젠가 볼 수 밖에 없거나 반드시 봐야만 하는 추악한 것들도 버젓이 혼재하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도 학생 때 참 좋아했는데 도스토옙스키와 비교한 설명이 참 좋았습니다. 헤세는 좀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드는 것 같네요. 그런데 살다보면 그렇기만은 힘들어서 도스토옙스키의 매력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빠지는 걸까요??^^
제가 헤세 작품도 작년에 모두 재독을 실시했는데요. 예전같지 않더군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기 때문일까요? 인생의 쓴 맛을 본 사람은 아무래도 헤세로부터는 낭만적이라거나 관념적이라거나 하는 현실과의 거리를 느낄 것 같아요. 대신 도스토옙스키로부터는 현실 바닥과 그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맛볼 수 있을 것 같고요.^^
p247 '미성년'이라는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고 여겨진 건 화자인 돌고루끼에게 부여된 특성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의 돌고루끼는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어설프게 산술적인 공리주의에 입각한 사상을 가진 고독한 이상주의자도 몽상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치>에 등장하는 미쉬낀 공작처럼 순수한 인간미를 간직한 인물로 아니며 미쉬낀 공작과 대비되는 로고진처럼 돈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물도 아닙니다 또한 <악령>에 등장하는 뾰도르처럼 인간의 탈을 쓴 악령이 모습도 스따브로긴처럼 모든 사건의 배후에 존재하는 신적 존재처럼 그려지는 인물도 아닙니다. 돌고루끼는 그저 미성년일 뿐입니다. 설익은 채로 마치 어른처럼 행동하는 인물이랄까요. 그는 성년이 아니면서 성년인 것 처럼 보이려 하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미성년인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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