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45
헤르만 헤세를 읽으면 자아의 발견과 성찰, 성장과 성숙, 그리고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아의 분열과 대립마저도 점진적인 합일로 나아가지요. 반면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면 바닥까지 곤두박질칠 정도로 난잡하고 추잡한, 그러면서도 세밀하고 농밀한 인간 심리 묘사의 정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헤세를 읽고 나면 무언가 흩어져 있던 것들이 모이고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반면,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나면 벌거벗겨지고 더욱 파헤쳐지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자칫 불쾌할 정도의 씁쓸한 기분까지 들기 때문에 한동안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쉽진 않습니다. 가끔은 정말이지 깔끔하게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비록 도스토옙스키 역시 인간의 절망과 악함의 심연 가운데에도 소망과 사랑과 구원이 깃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렬히 보여주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헤세가 절제되고 상대적으로 우아한 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면 도스토옙스키는 더 낮고 어둡고 여러 갈래로 나 있으며 전혀 정돈되지 않아 어지럽고 복잡한 야생의 숲속을 걷는 느낌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심리의 민낯을 대면하거나 탐구해 보고 싶다면 저는 반드시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다시 말해 보고 싶은 것만이 아닌 언젠가 볼 수 밖에 없거나 반드시 봐야만 하는 추악한 것들도 버젓이 혼재하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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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거북별85
헤르만 헤세도 학생 때 참 좋아했는데 도스토옙스키와 비교한 설명이 참 좋았습니다. 헤세는 좀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드는 것 같네요. 그런데 살다보면 그렇기만은 힘들어서 도스토옙스키의 매력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빠지는 걸까요??^^

히어로
제가 헤세 작품도 작년에 모두 재독을 실시했는데요. 예전같지 않더군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기 때문일까요? 인생의 쓴 맛을 본 사람은 아무래도 헤세로부터는 낭만적이라거나 관념적이라거나 하는 현실과의 거리를 느낄 것 같아요. 대신 도스토옙스키로부터는 현실 바닥과 그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맛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거북별85
p247
'미성년'이라는 제목이 아주 적절하다고 여겨진 건 화자인 돌고루끼에게 부여된 특성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의 돌고루끼는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어설프게 산술적인 공리주의에 입각한 사상을 가진 고독한 이상주의자도 몽상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치>에 등장하는 미쉬낀 공작처럼 순수한 인간미를 간직한 인물로 아니며 미쉬낀 공작과 대비되는 로고진처럼 돈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물도 아닙니다 또한 <악령>에 등장하는 뾰도르처럼 인간의 탈을 쓴 악령이 모습도 스따브로긴처럼 모든 사건의 배후에 존재하는 신적 존재처럼 그려지는 인물도 아닙니다. 돌고루끼는 그저 미성년일 뿐입니다. 설익은 채로 마치 어른처럼 행동하는 인물이랄까요. 그는 성년이 아니면서 성년인 것 처럼 보이려 하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미성년인 존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