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의 예고르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과 닮았다는 나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을 좋아하는데요, 극적인 판타지를 지우고 현실 속 찌질한 모습 그대로 여과없이 드러내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4월에 방영되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도 그래서 기대하고 있어요.
<백야>와 <약한 마음>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캐릭터들은 조울증은 기본이고 독자를 숨막히게 만드는 어마무시한 장광설로 혼을 쏙 빼놓는데요, 제가 예전에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닌데도 라포 형성이 잘 된 선생님 앞에서는 한 시간이 모자랄만큼 주저리주저리 말을 끊지않고 쉴 새 없이 하게끔 되더라고요. 마음 속에 담긴 말들을 다 끄집어낼 버튼을 누가 눌렀는지, 어떤 심리적 작용으로 이어지는지 모르지만 <쓰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의 문제적 캐릭터 포마 포비치의 긴 웅변은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캐릭터들의 장광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
D-29

여름길

히어로
포마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인물이라 장광설은 비슷하게 느껴져요. 다만 고집 부리고 억지 부리는 것 같은 뉘앙스가 좀 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광설은 진짜 작품에 빠져봐야 맛볼 수 있는 거라서 저의 이런 말이 전달이 되려나 모르겠어요. 라포가 형성 안 되어도 도스토옙스키 인물들은 모두 다 장광설을 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시오사이
약하거나, 악한 경우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이라서 쉽게 이해가 되는 점도 있지만, <쓰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의 예고르 처럼 모든 걸 남에게 양보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인간적이지 않은 인물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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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시오사이님의 대화: 약하거나, 악한 경우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이라서 쉽게 이해가 되는 점도 있지만, <쓰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의 예고르 처럼 모든 걸 남에게 양보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인간적이지 않은 인물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듯합니다. 하나는, 이 작품이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을 마치면서 쓴 책이라는 점. 즉 아직 도스토옙스키의 노련함이 충분히 익지 않아 인물의 다층적인 면이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보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예고르 같은 진짜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을 어떤 상징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포마 역시 마찬가지이기도 하잖아요. 두 사람을 대립구도로 보며 상징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거죠. 이게 도스토옙스키의 중기작 중 장편이 등장하는 시기라서 미완성적인 맛을 음미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나중에 후기작, 그러니까 우리가 4대 장편이니 5대 장편이니 하는 작품들로 들어가게 되면 인물의 다층적인 면이 얼마나 깊고 풍성해지는지 금방 알게 되실 거예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히어로
자 다들 오늘과 내일은 ‘상처받은 사람들’로 나눕니다. 한두 문장이라도 나눠주시면 이 방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거예요.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히어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제가 재독을 하면서 다시 본 작품이랍니다. 길지만 쉽게 똥 싸면서 읽을 수 있을만큼 부담이 없어요.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궁금한 점, 혹은 자유롭게 나누고 싶은 것들 맘껏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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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히어로님의 대화: 다들 오늘 내일은 중기작 쓰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 편을 나눕니다. 자유롭게 마눠주세요~
“ 그렇다면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 반대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에 대한 답을 '기생하려는 욕망'에서 찾습니다. 포마와는 달리 골랴드낀은 비록 하급 관리직이었지만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주하는 아파트도 있었고 거기에 딸린 하인도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더라도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포마는 식객일 뿐이었습니다. 직장은 물론 거주할 집조차 없어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존재였습니다. 기생할 필요가 없던 골랴드킨과 그래야만 했던 포마의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적 독립의 유무라고 봐도 무방한 거이지요.
자존감이 결여되어 시종일관 모욕받는 순간을 살아가는 듯한 포마 포비치.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무능력한 존재. 그는 기생할 숙주를 찾아야 했고 장군 부인이라고 소개되는 아저씨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빨판을 들이대며 첫 번째 재물로 삼았습니다. 마침 이 장군 부인은 스째빤치꼬보 마을 지주인 아저씨를 근거 없이 미워하고 있었고 마침 그렇게 미움받는 아저씨는 미련 할 정도로 착했습니다. 아, 이 오묘한 조합이라니요! 교활하고 영악한 포마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포마는 광대 짓을 시작으로 조금씩 자기 세력을 구축했고 이젠 기어코 숙주보다 더 비대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의 모든 하인들까지 그의 세력 아래 무릎 끓었고 그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신적 지위에 오른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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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거북별85님의 문장 수집: "그렇다면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 반대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에 대한 답을 '기생하려는 욕망'에서 찾습니다. 포마와는 달리 골랴드낀은 비록 하급 관리직이었지만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주하는 아파트도 있었고 거기에 딸린 하인도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더라도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포마는 식객일 뿐이었습니다. 직장은 물론 거주할 집조차 없어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존재였습니다. 기생할 필요가 없던 골랴드킨과 그래야만 했던 포마의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적 독립의 유무라고 봐도 무방한 거이지요.
자존감이 결여되어 시종일관 모욕받는 순간을 살아가는 듯한 포마 포비치.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무능력한 존재. 그는 기생할 숙주를 찾아야 했고 장군 부인이라고 소개되는 아저씨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빨판을 들이대며 첫 번째 재물로 삼았습니다. 마침 이 장군 부인은 스째빤치꼬보 마을 지주인 아저씨를 근거 없이 미워하고 있었고 마침 그렇게 미움받는 아저씨는 미련 할 정도로 착했습니다. 아, 이 오묘한 조합이라니요! 교활하고 영악한 포마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포마는 광대 짓을 시작으로 조금씩 자기 세력을 구축했고 이젠 기어코 숙주보다 더 비대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의 모든 하인들까지 그의 세력 아래 무릎 끓었고 그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신적 지위에 오른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
전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을 읽지 않았지만 @히어로 님이 책을 읽으면 이 작품속 숙주를 찾는 포마포비치란 인물이 섬뜩하네요. 실제 우리 삶에서 볼수 있는 인물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가끔은 더 힘이 있고 지혜로운 자들도 이런 기생하는 자에게 먹혀 비대해지는 그에게 무릎을 끓고 찬양하는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전 이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 속 포마 포비치와 유사한 다른 작품 속 인물이 누가 있는지도 살짝 궁금해집니다.

거북별85
“ 소설 의 마지막에 행복과 불안이 묘하게 뒤섞이며 해피엔드로 치달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이전보다 더 심통과 고집을 부렸다는 포마 포미치의 모습이 우리 현실을 가장 잘 묘사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화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이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 도대체 왜 그래?"에서 "아,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지"로 변화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오만함'도 아니고 쉽사리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냉정함'도 아닌, 오히려 내게는 버겁지만 그 사람의 날것 그대로의 수용할 때 화해가 일어날 뿐 아니라 나의 성장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관장> ”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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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거북별85님의 문장 수집: "소설의 마지막에 행복과 불안이 묘하게 뒤섞이며 해피엔드로 치달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이전보다 더 심통과 고집을 부렸다는 포마 포미치의 모습이 우리 현실을 가장 잘 묘사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화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이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 도대체 왜 그래?"에서 "아,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지"로 변화하는 것 아닐까? 내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오만함'도 아니고 쉽사리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냉정함'도 아닌, 오히려 내게는 버겁지만 그 사람의 날것 그대로의 수용할 때 화해가 일어날 뿐 아니라 나의 성장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관장>"
맞지 않는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오만함'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관장님 말처럼 쉽사리 단절을 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기 쉽지 않지만 맞는 것 같아요. 대신 나의 상처도 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칼날에 깊숙히 찔리지 않을 만한 거리두기는 필요할 듯 합니다.

거북별85
히어로님의 대화: '상처받은 사람들'은 제가 재독을 하면서 다시 본 작품이랍니다. 길지만 쉽게 똥 싸면서 읽을 수 있을만큼 부담이 없어요.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궁금한 점, 혹은 자유롭게 나누고 싶은 것들 맘껏 올려주세요~
“ 이 작품 속에서도 권선징악의 패턴이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나타나지만 현실에서 보면 여전히 악인은 승승장구합니다. 돈과 명예를 가진 공작과 같은 신분에 속한 갑들이 악한 마음까지 품을 때는 그들이 아무리 도덕적인 결점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본인이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지 않는 한 그들은 변함없이 승자 독식,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죽을 때까지 살아갑니다.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도덕적이고 고결하고 선하다고 해서 가난했던 삶이 나아지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보기 좋게 한방을 먹여도 대세는 바뀌지 않는 것이지요. 이 끊이지 않는 순환이 바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현실의 단면을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 주려 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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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스며든 그리스도교 사상을 단순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한 단어로 그 일면을 설명한다면 바로 '고결함'이라는 단어입니다. 지난 작품<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 저는 예고르를 유로지비 혹은 백치의 원형으로 보았습니다. 백치의 가장 큰 특징을 고결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무시, 비하, 조롱 당할 수 있어도 그 사람 안에는 그 누구보다도 고상하고 순결한 영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겉과 속의 극적인 대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고결함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천진난만함 혹은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알료샤와 가장 상처받은 존재이자 가장 불쌍한 영혼으로 소개되는 넬리락 할 수 있습니다. ”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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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거북별85님의 문장 수집: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스며든 그리스도교 사상을 단순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한 단어로 그 일면을 설명한다면 바로 '고결함'이라는 단어입니다. 지난 작품<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 저는 예고르를 유로지비 혹은 백치의 원형으로 보았습니다. 백치의 가장 큰 특징을 고결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무시, 비하, 조롱 당할 수 있어도 그 사람 안에는 그 누구보다도 고상하고 순결한 영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겉과 속의 극적인 대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고결함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천진난만함 혹은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알료샤와 가장 상처받은 존재이자 가장 불쌍한 영혼으로 소개되는 넬리락 할 수 있습니다. "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고결함, 유로지비의 등장은 처음에는 좀 어려웠습니다. 읽기 버거울 정도로 인간 밑바닥의 날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면서 이와 대비되는 유로지비의 등장.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히어로
거북별85님의 대화: 전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을 읽지 않았지만 @히어로 님이 책을 읽으면 이 작품속 숙주를 찾는 포마포비치란 인물이 섬뜩하네요. 실제 우리 삶에서 볼수 있는 인물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가끔은 더 힘이 있고 지혜로운 자들도 이런 기생하는 자에게 먹혀 비대해지는 그에게 무릎을 끓고 찬양하는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전 이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 속 포마 포비치와 유사한 다른 작품 속 인물이 누가 있는지도 살짝 궁금해집니다.
저도 포마를 읽으며 섬뜩함을 느꼈어요. 포마의 이미지는 골랴드낀으로부터도 기인하는 것 같지만, 그 이후 작품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 역시 식객이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 역시 식객으로서 상당히(?)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았어요. 파렴치하고 표독스러운 점은 닮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러나 표도르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식객 신세를 면하게 되죠. 아마 표도르가 식객으로 계속 남았다면 포마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히어로
거북별85님의 대화: 맞지 않는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오만함'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관장님 말처럼 쉽사리 단절을 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기 쉽지 않지만 맞는 것 같아요. 대신 나의 상처도 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칼날에 깊숙히 찔리지 않을 만한 거리두기는 필요할 듯 합니다.
적당한 거리두기처럼 말은 쉬우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적당하다는 말처럼 어려운 말도 없는 것 같고요. 우리는 누구나 치우치지 않나요? 적당하다 생각했던 지점에서 언제나 빗나가곤 하죠. 그래서 적당히라는 표현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향해야 하는 것 같아요.

히어로
거북별85님의 대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고결함, 유로지비의 등장은 처음에는 좀 어려웠습니다. 읽기 버거울 정도로 인간 밑바닥의 날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면서 이와 대비되는 유로지비의 등장.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유료지비가 도스토옙스키의 시베리아 유형 이후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저는 고결함을 인간이라는 존재자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귀한 보석, 즉 인간다움이랄까 인간성이랄까 하는 것과 연결되는 가치가 아닌가 싶어요. 그것이 기독교적인 해석과 맞물릴 때 구원의 통로로 역할할 수도 있는 것 같고, 현실적으로는 그 어떤 인간의 추악하고 더럽고 파렴치한 짓거리들을 모두 잠잠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그 무엇 같다는 생각이에요. 결국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에 대한 처절한 민낯을 보여주면서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거북별85
@히어로 작가님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를 읽다보면 '아! 그렇구나 '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비워져서 헛헛했던 부분들이 채워져 나가는 기분이 들어 좋습니다^^
작가님은 도스토옙스키를 이미 학창시절에 읽어 보셨을까요?
만만치 않은 도스토옙스키 작품으로 북클럽을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이유나 동기가 있으셨을까요?
작가님도 학창시절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어보았다면 이번에는 초기작품부터 모두 다 읽으면서 예전에 비해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저도 이번에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으면서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시 좀 채워지는 것 같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가볍지가 않아 오래 읽고 생각해야 할 거 같더라구요. 그 점에서 작가님의 1년반의 북클럽은 참 대단하세요.
전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도 쉽지 않더라구요^^;;
시베리아 유형지 이후에는 성경의 종교적 색채도 깊이 담겨져서 이런 이해들 없이는 소화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었구요. 그럼에도 누구보다 처절한 인간의 내면의 바닥을 끄집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도스토옙스키라는 위대한 작가에 대한 작품 이해에 필요한 퍼즐이 점점 더 맞춰져서 더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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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거북별85님의 대화: @히어로 작가님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를 읽다보면 '아! 그렇구나 '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비워져서 헛헛했던 부분들이 채워져 나가는 기분이 들어 좋습니다^^
작가님은 도스토옙스키를 이미 학창시절에 읽어 보셨을까요?
만만치 않은 도스토옙스키 작품으로 북클럽을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이유나 동기가 있으셨을까요?
작가님도 학창시절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어보았다면 이번에는 초기작품부터 모두 다 읽으면서 예전에 비해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저도 이번에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으면서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시 좀 채워지는 것 같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가볍지가 않아 오래 읽고 생각해야 할 거 같더라구요. 그 점에서 작가님의 1년반의 북클럽은 참 대단하세요.
전 도스토옙스키의 장광설도 쉽지 않더라구요^^;;
시베리아 유형지 이후에는 성경의 종교적 색채도 깊이 담겨져서 이런 이해들 없이는 소화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었구요. 그럼에도 누구보다 처절한 인간의 내면의 바닥을 끄집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도스토옙스키라는 위대한 작가에 대한 작품 이해에 필요한 퍼즐이 점점 더 맞춰져서 더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
학창시절에 카라마조프를 읽긴 했는데 글자만 읽었던 것 같아요. 아무런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아요. 필독도서라고 해서 억지로 읽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나머지 질문들은 제가 최근에 인터뷰한 게 있어서 그게 공개되면 링크 알려드릴게요. 질문에 대한 답이 길거든요. 이렇게 댓글로 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책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를 좀 더 알게 되셔서 영광입니다. 감사해요!

거북별85
히어로님의 대화: 저도 포마를 읽으며 섬뜩함을 느꼈어요. 포마의 이미지는 골랴드낀으로부터도 기인하는 것 같지만, 그 이후 작품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 역시 식객이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 역시 식객으로서 상당히(?)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았어요. 파렴치하고 표독스러운 점은 닮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러나 표도르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식객 신세를 면하게 되죠. 아마 표도르가 식객으로 계속 남았다면 포마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표도르와 포마라니 이해가 되네요^^
표도르로부터 스메르쟈코프가 나오지요!!
표도르에게서 스메르쟈코프와 알료사가 같이 나올수 있다는 것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매력인거 같아요

거북별85
히어로님의 대화: 적당한 거리두기처럼 말은 쉬우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적당하다는 말처럼 어려운 말도 없는 것 같고요. 우리는 누구나 치우치지 않나요? 적당하다 생각했던 지점에서 언제나 빗나가곤 하죠. 그래서 적당히라는 표현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향해야 하는 것 같아요.
네 적당한 거리란 공자의 중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느낌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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