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

D-29
첫날부터 겨우 겨우 따라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긴 후기를 남기기 어려워서 눈팅만 하고 있긴 한데요, 도스토옙스키는 비열한 인간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것 같아요. 마치 희곡의 대사처럼 내밀한 속내의 구석구석까지 들춰내서 보란듯이 펼쳐보이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독자인 제가 다 화끈거릴 정도입니다. <악몽같은 이야기>의 이반 일리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나마 마지막에 이르러 스스로 "엄격함 뿐이지, 엄격하면 되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자책하며 의자에 주저앉아버리는 모습에서는 일말의 가능성이 보이긴 했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보며 독자들도 자기 객관화를 해보게 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거울 보듯 들여다보면서 말이죠.
동감입니다. 파렴치한 말종 인간을 보면서 내 모습을 반추하게 되죠. 화끈거리는 게 내 안의 어떤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의심도 들면서요.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그믐의 다른 방에서 안톤체홉의 <바냐 아저씨> 낭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 중 주인공 바냐 아저씨가 자신이 매형만 아니었다면 도스토옙스키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문장이 나오던데. 도스토옙스키는 살아생전에도 사회적으로 유명한 부와 명예를 이루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한강작가님 처럼 말이죠)
명예는 몰라도 부는 적어도 누리지 못했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부인 안나 도스토옙스카야가 쓴 회고록을 읽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도스토옙스키가 돈을 벌지 못한 건 아닌데 돈이 들어오면 금세 그 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줘버렸다고 해요. 그 사람이 거짓으로 속여도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줄 정도였다고 하네요. 답답하다고 볼 수도 있고 분별력이 없다고도 볼 수도 있고 착해빠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안나가 없었다면 도스토옙스키는 파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관계의 단절과 고립, 파괴를 야기하는 모든 행위가 살인에 해당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계의 단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살면서 저로 인해 상처받았을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벌은 파괴된 관계로 인해 고립된 삶이지요. 가장 큰 벌은 스스로에게 주는 벌임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외부적인 벌도 필요하지요. 토스토옙스키의 장편을 읽어봐야지 하고 처음으로 구입한 종이책이 '죄와 벌'입니다. 언제 읽을 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저녁식사'에서 해당부분을 읽으며 빨리 읽어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녁식사'의 이 부분을 다시 읽어봐야지요. 사실 스토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강 빨리 읽고 넘어갔거든요 ㅎㅎ
우리가 무감각할 정도로 흔하게 행하고 있는 살인이 바로 관계 단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죄와 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저렇게 해 보면서 우리 삶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대화가 될 것 같아요.
출장 다녀오면서 독서 리듬이 깨져 한참동안 책의 진도가 안나갔습니다. 이제 겨우 따라잡았네요 ^^ 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원작을 읽어야할텐데요.
도스토옙스키는 노름의 경험을 가지고 '노름꾼'을 썼다고 하는데, 현대 사람들은 굳이 노름을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중독의 경험을 가지고 이 책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주식이나 코인 투자는 노름과 별로 다르지 않지요. 가끔 대박을 치긴 하지만, 그 기억으로 계속 해서 돈을 넣고 결국은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많이 보니까요. 특히 경제적 풍요를 부러워하는 지금, 자신의 가치를 '돈 따는(버는) 것'으로 치환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재독하면서 3년 전 초독 때와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라고 적으셨는데, 재독 때는 다른 책으로 보신 건가요?
초독은 미국에서 했고, 재독은 한국에서 했는데, 한국 올 때 책을 다 처분했거든요. 다시 샀지요. 그런데 저는 밑줄 그은 문장들을 따로 옮겨놓는 습관이 있어서 동일한 문장에 밑줄 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놀라운 경험이었죠.
오늘과 내일은 '노름꾼'으로 나누게 됩니다. 이 작품도 읽어볼 만해요. 상대적으로 짧고 쉬워서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삶도 녹아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지요. 지금까지 나누지 않은 분들도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노름꾼은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유럽여행이 연애와 도박으로 얼룩진 얘기를 소설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27일만에 급조되어 속기사 안나에 의해 씌어졌지만, 구상은 3년전부터 유럽여행에서부터 있어왔다고 전해집니다. 독일 여행중 비스바덴에서의 룰렛 도박에서 돈을 몽땅 다 잃고 나서의 허탈함을 소설 끝에 이렇게 적어가고 있었습니다. 난 그때, 몽땅 잃고 말았다, 몽땅 다 ...... . 역에서 나와 뒤져보니 내 조끼 주머니 속에는 1굴덴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러면 결국 이 돈으로는 밥을 먹어야 하겠구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1백 걸음쯤 지나 왔을때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되돌아갔다. 그 1굴덴을 망크에 걸었다. 그때는 망크가 잘 나오고 있었다. ...... 정말로 마지막 남은 굴덴을 걸때 드는 그런 느낌 말이다. 때때로 마지막 굴덴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내일, 내일이면 모든것이 끝난다!
이 소설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한 사람이 방탕과 욕망과 운에 맡긴 도박속에서 허무하게 사멸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정 러시아의 미래의 운명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도스토옙스키는 그들이 가진 꿈과 미래에 대한 도전도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작품속에서 보여주기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으로 갱생되고 교화되며 부활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기도 합니다.
자 벌써 29일이 거의 끝나가네요. 백치에 이어 오늘과 내일은 악령을 나눕니다. 많이들 나눠주시지 않아서 아쉽지만 그만큼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읽어내는 게 힘들다는 걸 반영하는 거겠죠. 아무튼 제 책으로 도스토옙스키를 입문하시고 종주에 성공하시길 빕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29일에 이야기를 나눈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거 같습니다^^;; (한권만 한달 안에 읽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모임을 통해 @히어로 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도 똑같이 느꼈던 지점이나 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히어로 님의 해설과 소개 덕분에 더 이해하기 좋았던 점들이 많았습니다. 도스토옙스키를 흐릿한 안경으로 형태만 두루뭉술하게 봤다면 좀더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방의 시간도 얼마남지 않아 안타깝지만 그래도 1년 반의 경험들과 작품에 대한 여러 지식들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거북별85님 덕분에 이 싸늘한 방의 온기가 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임과 함께 하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졸고가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야 저는 영광입니다.
사실 책은 몰입이 어려워서 어렵게 어렵게 읽었습니다만 <백치>를 읽으면서 로고진의 저택에 걸려있던 한스 홀바인2세의 그림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스탕달신드롬까지 겪었다는 이 그림은 웹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미술관에서 실물을 눈앞에 본다면 어떨까 상상을 하게되네요.
저도 찾아보았었답니다. 그림 보니 충격이었죠. 책 어렵죠. 백친 특히 어려운 것 같아요.
<노름꾼> p192 도스토옙스키는 그 인물을 기어이 한 발자국 더 가도록 만듭니다. 외부 상황이 아닌 그 인물의 내면을 끝까지 몰고 가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진창 속 바닥에서나 맛볼 수 있는 처절하고 자학적인 유머까지 곁들이지요. 독자들은 이런 뜻밖의 장면을 목도하면서 은밀하게 공감하는데 이는 특히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느껴지는 역설적이고 초월적인 병적인 심리 상태의 극한을 전혀 고상하지 않은 언어로 여과없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도스토옙스키는 '마지막 한 발자국만 더 갔으면 떨어져 죽을 뻔 했네' 정도의 갈등 해소를 통해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과 함께 적당한 교훈을 던져 주는 방식이 아닌 '아니, 거기서 한 발자국 더 가면 어떡해! 진짜 죽으려고 그래?'와 같은 탄사를 독자들이 내뱉도록 하면서 끝내 마지막 한 발자국을 디뎌 버린 소설 속 인물의 심리에 숨죽이며 귀 기울이게 만드는 방식을 선보입니다. : 전 책에서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작품에 관해 작가님의 감상과 느낌을 구체적으로 써주시는 부분들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읽는 동안 편하지 않은 느낌은 왜이지 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작가님의 해석을 읽다보면 음, 나만 느낀 것이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예전 작가님들의 북토크를 가거나 하면 왜 주인공을 그렇게 한계까지 몰아붙였냐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독자들이 책 속의 주제나 상황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여야 더 잘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다보면 이분이야 말로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리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p197 한편, 그 운명이라는 힘도 조금 더 뜯어볼 필요를 느낍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확신, 다른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서로 상반되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인간은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한 채 늘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들고 있지요. 저는 이런 모순적인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흥미롭다고 보는데,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과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추적인 힘이 바로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해석은 노름꾼의 심리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 보통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인생이 엉킬 때도 있지만 버려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꼭 쥐고 있어 또 엉킬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글을 읽다보면 해야 할것을 못할 때보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할 때 가끔 삶이 나락으로 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운명이라는 힘에 기대는 나약한 모습이 <죄와 벌>에서 살인을 저지르기 전 라스꼴리니꼬프의 모습과도 겹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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