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읽는『허즈번즈』- 결혼 후, 남편이 한 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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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우선… 책이 갓 나왔을 때의 저는 유치원생 같은 모드였다면, 지금은 그래도 초등학교 2학년 정도로는 성숙 & 진정이 된 것 같습니다. ㅎㅎㅎ 인상적인 반응으로는 한국판 <흐르는 강물처럼> 같았다는 말이랑, <파친코>가 생각났다는 말(영광입니다)과 제 문체에서 박완서 작가님이 떠올랐다는 평(영, 영광입니다. 흑)과 X쪽 독자님이신데 수향이 복수하는 장면을 보고 “오올치!”하고 손글씨로 추임새를 넣는 메모를 붙이셨는데 이 세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박완서 작가님 떠올랐다는 평도 접하셨군요. 다른 평들은 저도 접했어요. X에서 <허즈번즈>에 무척 열광하시는 분이 계시죠 ㅎㅎ
저도 파친코 떠올렸는데..파란만장한 여자의 일생이 떠올라서가 아닐까요..
Q2) 자, 그럼 시작점으로 가볼게요. <허즈번즈>는 첫 시작은 어느 날 꾸신 꿈이었죠. 작가의 말에 쓰셨지만 그날에 대한 기억과 특별한 느낌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수향이 그런 행위를 했다는 게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한 상황을 보면 솔직히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세 남편(?)을 건사해 나갔다는 게 대단한 것이죠.
맞습니다. 수향이 잘한 건 아니죠. 만약 전쟁 상황이 아니었다면 쇠고랑 감 맞아요. 전쟁이 일종의 고치처럼 나가스 저택과 그 안의 사람들을 보호해준 거죠. 수향이… 덩치만 컸지 어린 소년 같은 세쌍둥이를 건사한 건 맞는데 한편으론 막상 부모와 시아버지가 사라졌을 때 수향 곁엔 아무도 없는 상황이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수향과 세 쌍둥이가 숲에서 그렇게 된 것은… 이 네 명이 특별히 관능적이거나 그런 게 아니라 살인이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수습하여 하나로 연대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나 굿 같은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수향도 세쌍둥이도 세상 경험이 적고 연애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젊은이들이니까요. 시대와 상황이 이들을 일처다부 같은 가족 형태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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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이 아니라 수향이겠지요? ㅎㅎ 근데 그게 수향이 그 남자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기를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나가스 저택이라는 일종의 치외법권 같은 폐쇄된 구역에 여성이 수향 혼자다 보니 독점적인 관심을 받게 된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 수향은 화장도 잘 안하고 편한 치마 저고리 차림을 즐기는 소박한 책벌레이지요. 시대와 상황이 그녀를 강인하게 바꾸었을 뿐 수향의 원래 본성은 오히려 평범하고 겁많은 소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모와 시아버지가 짜고 친 사기극이 그녀를 흑화시켰는데, 흑화된 수향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다른 남자들을 끌어당긴 건 아닐까 하고 흑화론도 펼쳐봅니다. (크) 참고로 제2차 대전 때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일본인들끼리 몇 십 명의 남성에 여성이 단 한 명이다 보니 일처다부제가 된 경우가 있었는데… 이게 실제로 몇 년 간 벌어진 일이었지요. 이 사건을 기리노 나쓰오가 <도쿄섬>이란 작품으로 그려냈는데… 이 <도쿄 섬>의 영향도 좀 받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 무의식 어딘가에…. (먼 바다) 아무튼 작가라기 보다는 같은 여자로서의 저는 수향은 원래 그렇게 되바라진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부모와 시아버지에게 맞서면서 달라진 것이다라고 변론을 펼쳐(?) 봅니다(?).
도쿄 섬'밀리언셀러 클럽' 119권. 나오키 상, 에도가와 란포 상, 추리작가 협회 상, 이즈미 교카 상, 시바타 렌자부로 상 수상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장편소설. 30여명의 남자들과 단 한 명의 여자가 무인도에 표류되면서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리노 나쓰오는 특유의 시니컬한 문체로 독특하게 완성시켰다. 제44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수상작.
앗 죄송합니다..소향은 가수?
솔직히 저는 수향이 남자 복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흔했지만 사실 누구에게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배우잔데, 그것을 정하는 데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킬 수 없다는 건 끔찍하죠.
역설적으로 썼는데 그대로 받아들이시니 주의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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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표지 날개의 작가의 말이나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도 적었는데… 실제 꿈은 <허즈번즈> 속에 표현한 강도에 비하면 상당히 순한 맛입니다. 한 여성이 (저의 무의식인지 아니면 제 꿈이 저 편할려고 만들어낸 제3의 여성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나무 아래서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눕니다. 두 사람인 부부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연인 정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정사는 나무 그늘 아래서 격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장면을 꾸면서 저도 모르게 몰입하면서 계속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 그늘 위쪽의 언덕에서 여성이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보다 연배가 훨씬 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여성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성은 처음에는 엿보는 이의 존재를 모릅니다. 그러다가 관계가 끝나고 쉬고 있을 때에야 그 남자의 존재를 눈치챕니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그 남자를 노려보지만 그 남자의 눈빛에 화가 가라앉습니다. 엿보는 이는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여성과 그 엿보는 이가 아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여성은 수향처럼… 자신을 지켜본 이에게 이끌립니다. 이상한 감정이 그녀를 감싸고 그녀는 심술 궂게 그 남자를 향해 미소를 보냅니다. 엿보던 남자는 화들짝 놀라 마치 숲에서 갑자기 사냥꾼을 만난 사슴처럼 달아나 버립니다. 대충 꿈에서 꾼 장면은 이랬고, 이 장면이 <허즈번즈>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죠. 이미 짝이 있는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의 짝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게 된 제 3의 남자, 그리고 그 제 3의 남자에게 이상하게 끌리게 된 여인….
저는 늘 이야기에서 매력적으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미드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플롯의 허리라고 생각하는데 거기로부터 작품이 시작된 셈이니 재미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 한편으로는 그 꿈을 꾸시고 어떻게 이런 서사를 앞뒤로 구성하셨는지 경외감마저 생깁니다.
사실 저도 제가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잘 안나요. 계약을 했으니까 원고를 토해냈습니다. 마감 한창 할 때는 대신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먼 바다) ㅎㅎㅎ
그런데 세쌍둥이는 처음부터 설정이 그냥 떠오르셨나요? 전 정말 세쌍둥이를 예상치못해서 ㅎㅎㅎ
예 처음부터요. :)
어찌하여 갑자기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꿈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소설로 풀어내시다니!!! 멋져요. 저도 이런저런 꿈을 많이 꿨는데 어떻게 발전시켜야하나...
지도 몰라유… (먼 바다)
저는 사실 물어보고 싶었던 부분이.. 혹여라도 공격을 받을까봐 걱정하지 않으셨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나름 할 말 하고 서는 성격인데..) 해석하기에 따라 공격 받을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이 추상적인 건 .. 그게 어떤 부분이라고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
사실 수향과 세 쌍둥이 씬이 주는 인상 때문에 소설에 대해 악평을 남기는 독자분들이 좀 계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여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향은 제 소설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 혹은 남성들과 관계를 갖는데 그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그 행위 자체만 놓고 유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잣대를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소설에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표현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오히려 소설적 완성도나 설득력에 대해서 지적할 수는 있지만 도덕성에 대해서는 글쎄요, 궁금한 건 이겁니다. 여러분은 일처일부제가 잘 지켜지는 제도 하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알콩달콩 사랑하고 자녀 낳고 잘 사는 이야기를 읽고 싶으세요? 어떠세요? ㅎㅎ 그런 소설은 별로 읽고 싶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좋은 소설은 기본적으로 긴장에서 출발합니다. 수향과 세 쌍둥이의 씬은 제가 소설을 더 긴장감 있게 만들기 위해 제공한 일종의 장치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억눌려 살아온 수향에게는 일종의 해방구가 되었을 테고요. <파친코>나 <작은 땅의 야수들>에 나오는 여성들은 무척 희생적이고 의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시대 소설에 그려낸 과거의 여주인공들은 자신의 욕망보다는 가족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수향을 다르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시대와 상관 없이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탈리아 몬다도리 편집장님이 저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현대 이탈리아에서조차도, 여전히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주체적으로 삶을 헤쳐나간다는 게 쉽지 않으며 그렇기에 수향은 인상적인 여성 영웅이라고 말씀해주신 거예요. 서구권 여성들 역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운 이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우와........ 너무 만족스러운 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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