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몹시 궁금한 사람들

D-29
오늘 한 배우의 강아지가 강아지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나혼산에서 재밌는 에피소드에도 나왔던 강아지라 저도 기억하고 있던터라 애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 좀 흥미로워서(?) 이곳에 전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고통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비슷한 메카니즘이 있으려나 싶어서요. 최근 상실의 소식이 좀 있었던건지 해당 배우는 '연속적인 슬픈 소식이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고통에 대해 말할 때에도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신경써서 제대로된 표현을 못하는 것 같다고 며칠 전에 여기에 글을 남겼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족들에게 잘 알리지 않습니다. 나의 속상한 일로 가족들이 속상할 때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보니, 애초에 알리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마찬가지 맥락인 거 같아요. 공감이라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과한 공감이 개인의 온전한 경험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나의 경험, 너의 경험, 우리의 경험의 경계가 어디에 세워져야 건강한 표현이 보장될까요.
안녕하세요 @총총9314 님, 저는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서 그믐에 최근에 가입하고 처음 이 모임지기를 맡게 되었어요. 반갑습니다. '대신아파줄 수 없는 무기력'은 엄마들이 한번 이상 경험하게 되는 감정인것 같아요. 그때 철저히 우리가 서로 타인이라는걸 절감하게 되는거 같고요. 그리고 고통이 듣는 사람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도 공감합니다. 얼마 전에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있는 누군가가 '나는 자기 고통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민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을 하는걸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만 조금 위험할수도 있는 발언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무엇을 계기로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저는 태어 나자마자 3일 밤낮을 울면서 젖도 빨지 않아 신생아 사망율이 높았던 시절이라 거의 포기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3일후부터 겨우 젖을 빨아 생명을 건졌다고 합니다. 걸음마를 배울 때 오른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데, 나중에 제가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되 결국 오는발 마비의 결과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처럼 달리거나 뜀박질 하는데 서툴렀고,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는 항상 열외로 있었습니다. 제 신체적 핸디캡은 항상 제가 제 몸에 관심을 갖게 했고, 성인이 된 현재까지 고혈압, 당뇨, 이명을 동반한 메니에르병, 척추관 협착증, 백내장 등 다양한 질환을 직접 겪으며 살아 왔습니다. 아주 극심한 고통을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한 개인의 질병은 오롯이 자신만의 경험이고,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동일한 경험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만이 가진 유독 특별한 소통의 장벽] 저자는 고통의 감정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단순히 표현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지향성((intentionality)이 없는 유일한 정신 상태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무언가를 향하고', 사랑은 '누군가를 향하지만', 고통은 순수하게 '안으로만 존재한다' 또한 고문과 전쟁에서의 고통은 표현 불가능성이 말 못하는자는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권력에 의해 착취된다고 말한다. 행복이나 슬픔은 언어를 '담기 어렵게' 만들지만, 가끔은 언어적 창조성을 촉진하는 경향도 보인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을 겪은 고문 생존자들은 그 순간을 서술하려 할 때 언어는 실제로 무력해진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행복이나 슬픔, 공포적 경험을 언어로 전달하지 못해도 정치적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은 직접적인 권력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고문 피해자가 말하지 못하면 자백이 조작되고, 만성 통증 환자가 통증을 설명하지 못하면 보험 청구가 거부되며, 임산부가 통증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면 의사가 과소평가하게 된다" 행복을 표현하지 못해서 불이익을 받는 구조는 없다. 그러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의료적, 법적,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실질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모든 깊은 내적 경험에 대해 투명하지 않다. 그러나 고통은 그 불투명성이 언어를 능동적으로 파괴하고, 정치적으로 착취 가능한 침묵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다른 경험들과 구별된다."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계기는 역시 많은 경우 질병과 고통에 있는것 같다고 느껴지네요. @짱가사랑 님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권력 불균형'이 크게 와닿는데요.. 감옥과 병원, 심지어는 가정안에서도 고통을 받는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 간의 간극은 엄청나게 큰것 같아요.
이번주는 [제1장 고문의 구조]를 함께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어 판본은 96페이지까지 입니다. 다 읽지 못하더라도 읽은 곳 중에 눈에 띄는 문장이나 내 삶과 연결되는 지점 등 함께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고문 도입부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얼마 전 호암미술관에서 있었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가 떠올랐어요. 제가 '고통'이라는걸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한것은 아마도 출산과 육아라는 경험이 그 시작이었던것 같아요. 저는 그 흔한 월경통도 크게 겪어 본적이 없었거든요. 루이스 브루주아의 작품 사진 몇장을 공유합니다.
고문을 신체에 직접 가해지는 고통인줄로만 알았는데, 피고문자의 world-unmaking과 고문자의 권력화 과정 등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고문이 피고문인, 고문인 양측 모두에게 다층적이고 체계적인 경험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사회에서 고통을 외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사회가 가했음에도 피해자의 체험을 객관화하려는 태도-이 '배신'이라는 단어로 잘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엠네스티 활동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 목소리 회복 과정이 정말 많이 중요하다는 게 조금은 이해됩니다. 여러번 더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그랬듯, 고문을 단편적인 신체적 고통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사회에서 폭력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고문의 구조를 읽으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더 잘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 저는 강렬한 고통으로 인해 언어가 파괴되고, 일상적인 물건들이 무기가 되며, 피해자가 지켜온 신념과 세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너지는 과정들을 읽으면서, 비록 범위와 성격은 다르지만 '가정폭력'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책에서 고문 장소가 주로 방이었다는 점과, 피해자의 세계를 축소하면서 허상의 권력을 행사하는 부분이 특히 관련있는 것 같아요. 익숙한 공간과 사물을 무기화하고 폭력에 일상적인 네이밍을 하는 건 정말이지 잔인합니다. 피해자가 폭력 경험을 설명하기 어렵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듣거나 공감하지 않으며, 폭력의 동기나 목적이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해자가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어 피해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방어를 하는 것까지 유사해 보입니다. 피해자가 고문자에게 미움 뿐 아니라 애정을 느끼는 점과, 고문자의 체계성 수준이 가장 다른 부분이지만요.
저는 영화에서 고문하는 장면을 보면서 굳이 왜 저리 힘을 들여서 사람을 괴롭힐까 어차피 진실을 위조할 거면서.. 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진실을 캐내려는 의도인 척 하지만, 사실은 피해자의 세계관, 자아, 목소리를 파괴함으로써 불안정한 권력을 확장하고 실체화하려는 것이 고문의 구조라는 점을 읽으니 의문이 풀립니다. 고문 중 의식이 붕괴되고 "undoing of civilization" 을 당하는 과정을 보니 저는 이 부분에서 1984의 결말이 떠올랐어요. 윈스턴이 한창 젊은 시절에 줄리아를 사랑하고 체제를 저항할 때는 고문하며 살려두더니, 결국 시간이 흘러 본인의 인간성과 세계 자체를 잃고 진심으로 빅브라더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에야 마침내 삶이 끝나는 장면 말이죠. 이 글을 읽고 다시 떠올려보니, 빅브라더 입장에서는 윈스턴이 마지막 고백을 하는 순간 체제의 권력을 극대화시키는 효용을 다했으니 죽인 건가 해석하게 되네요. 한편으로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은, 굳이 신체적 고문이 아니라도 죽음이 닥친다는 걸 알게 되면 고문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자아와 목소리까지 잃으며 world dissolution을 경험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그 논의를 우리 모두의 나이들고 죽어가는 과정에까지 확장하니 제 일상과의 접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여름에 요양원에서 뵙고 온, 모든 존재감이 딱 앉아계신 휠체어에 국한될 정도로 작아져보였던 외할아버지도 생각이 났어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떻게 나와 내가 사랑했던 대상들에 대한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 시한부인 분들이나 침대에 갇힌 노인분들을 대할 때 어떻게 그분들의 목소리라도 확장될 수 있게 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책이 어려워서 진도가 잘 안 나고 지금 읽은 부분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조금씩이라고 읽어보려 합니다. 같이 으쌰으쌰합시다!
총총님 남겨주신 글을 읽다보니 죽음과 고통이 가까울수록 작아지는 세계(자기 반경 2m와 내 몸 밖에 생각할 수 없게되는)에 대해 저자가 언급한 부분이 기억났어요. 정말 쉽지 않은 책인데(사실 이렇게 벽돌인지도 몰랐어요. 책을 실물을 받아보고서야 알았다는..;) 이렇게 같이 으쌰으쌰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
고문은 한 개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피해자가 속한 모든 세계(가정, 일, 관계, 정체성)를 망가뜨린다. 또한 고문을 가하는 권력자는 피해자의 몸에서 나오는 비명을 통해 '권력'에 물질적 근거를 찾는다.저자는 고문에서 사용되는 사물들(의자, 욕조, 전구)이 일상적 안락함의 도구에서 고통의 도구로 역전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문명 자체가 역설적으로 잔혹함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문명이 발달했음에도, 현재까지 독재 국가에서는 고문의 방식과 잔혹성이 더욱 심해 지는 것을 보면 과연 인간의 정신적 과정은 발전적으로 더욱 성숙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동물적 잔혹함은 과연 극복이 가능할까?
저도 '지금 이게 나아진거 맞아?'라는 의문이 들때가 많아요..
"고통받는 것은 확실성을 갖는 것이고, 타인이 고통받는다고 듣는 것은 의심을 갖는 것이다." 고문을 통한 고통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만성 통증 환자가 '꾀병' 의심 받는 것, 법정에서 피해자 증언이 의심 받는 것 등은 모두 이런 고통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 "고문의 목표는 몸을 고통으로 압도적으로 현재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목소리(언어)를 파괴함으로써 부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몸의 고통을 극대화함으로써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고문하는 자들이 고통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수감자의 고통이 커질수록 수감자의 세계는 작아지고, 그에 비례해 고문자의 세계는 커진다. 고통은 권력이 된다." "신체적 고통을 의학적 맥락에서 언어화하려는 시도들 — 맥길 통증 질문지처럼 — 은 내면의 사건에 외부적 이미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의학의 객관화 도구가 고통의 언어 문제를 우회하지 해결하지는 않는다.
[1장 고문의 구조: 갈무리] ‘권력이라는 허구를 창조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가시화하고 이용한다'는 저자의 분석이 너무 사실이라 와닿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권력'을 허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모든 개념어들 역시 ‘허구(유발 하라리가 말한 ‘상상된 질서imagined order’)라고 할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고문'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내려는 ‘권력'이라는 허구는 소수의 탐욕만을 채우기 위해 작동하니까 일종의 ‘부정적인(다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상상된 질서’라고 볼 수 있겠지만요. 지금 이 시대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걸 많은 사람들이 뉴스로 보면서 계속 ‘권력은 실재한다'라고 믿게 되는거겠죠. 소수의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99.9%의 평범한 인간들에게 이 권력이라는 허구를 끝까지 실재로 느낄수 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약간 무력감도 느꼈고요. 그런가하면 이 장에서는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저자는 심문의 언어 성격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 말할 때 의문문과 평서문과 명령문이, 나아가 이 세 종류 문장의 강한 꼴인 감탄문이 이렇게 심문에서처럼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이처럼 문장 형태가 뒤섞이는 일이 육체적 잔혹 행위는 수반하지 않으면서 사적이고 비정치적인 언어 안에서 발생할 때는, 질문하는 사람의 존재가 정말로 청자의 응답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 … 이들은 자신만의 확신에 빠져 있다가, 또 다음 순간엔 청자가 인정하길 애걸한다.“ 44ㅍ 저는 이런 의문문과 평서문과 명령문, 감탄문을 다 품고 있는 그런 문장을 언제 사용한적이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내 자신을 심문(!)하는 상황에서 그런 문장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죠. “넌 대체 왜 주6일 풀시퀀스로 아쉬탕가 수련을 하지 못하는거야!?” 이런 폭력적인 말은 이제 삼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영문학과 교수라는 점이 드러나는 지점이 곳곳에 보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고통으로 인한 언어의 부재, 언어가 가진 힘, 그 힘을 이용해서 자아를 확장하려는 시도들 모두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서 흥미진진합니다. (많은 문학 작품이 계속 언급되기도 하는데 특히 사르트르의 단편 소설 <벽 The Wall> 은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문과 죽음 둘 다 몸 때문에 발생한다. 둘 모두에서 의식의 내용물은 분쇄된다. 고문과 죽음은 가장 격렬한 부정으로, 반 인간적인 것, 절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 것이다. 단 하나는 부재이고 다른 하나는 몸으로 느끼는 현존이며, 하나는 감응력의 중단 안에서 일어나고 다른 하나는 감응력의 끔찍한 과부하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맥락에 상관없이 육체적 고통은 언제나 죽음을 모방하며,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은 언제나 모의 처형이다.” 48-49ㅍ 죽음과 고통의 유사성과 모의 처형에 관한 논의도 저에게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정체모를 혹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불안이 닥쳤을때 이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고통'으로 해결하려는 저의 패턴을 떠올릴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밀도가 있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는 속도는 느리지만 지금까지 저자의 논리 전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계의 unmaking이 어떻게 making으로 연결되는지, 계속 찬찬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벌써 3월 중순이네요. 31일까지 남은 2주 정도의 기간에는 2장 [전쟁의 구조]를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한국어판 258페이지까지 인데 양이 꽤 많아서 읽는데까지 읽어보는걸로 하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은데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죠.. 참담하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은, 그야말로 언어를 상실하게 하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데요. 부디 사람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고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읽으시면서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나 질문은 이곳에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전쟁은 인간 경험 중 이례적이라고 이야기되곤 한다. 평화 시에는 모든 국가가 범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살인 행위를 전쟁이 허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확한 관찰이며,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동기에서 행한 살인 행위가 국가를 해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p200 인간들은 전쟁의 잔혹성과 파멸을 역사적으로 수없이 경험했으면서도, 현대 문명의 시대에서도 전쟁이 계속되는 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도적 결함의 문제 인지 알 수 가 없네요. 저자는 인간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전쟁이 이념 검증의 대체 불가능한 도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네요. 수십만 명의 훼손된 몸은 — 그 몸들의 무게 자체가 — 승자의 이념을 '사실'처럼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고통과 상해의 경쟁이라는 생각을.. 안해본 적도 없지만 해본적도 없는 것 같아요. 사진 등에서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이 보일 때에는 상해와 사람을 떠올리지만, 대부분 전쟁을 접하는 방식은 기사나 뉴스 속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들이어서 사람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쓰여진 명분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중동지역에 살아요, 전쟁과 가까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있는 지역의 영공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미사일이 날아오고, 그걸 잘 방어하고 있어요. 제 세상은 정상적으로 일상이 유지되고 있고 물리적으로 파괴되고 있지 않지만, 오늘은 몇 시 쯤 요격소리가 들리려나 불안하긴 합니다. 이 전쟁에 저와 같은 사람의 불안은 고려되지 않지만, 불안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은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저 역시 전쟁의 명분이 어떻든지간에 어서 끝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 한 켠에는 제가 있는 쪽에 미사일을 날리는 나라의 파괴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게 전쟁의 끝인 줄 알았으니까요. 책을 읽으니, 그저 오랜 폭격에 반발할 힘이 사라진 상태를 패배라고 부르고, (아마도) 상해가 덜 한 상대국의 정치적 지배가 당연히 따라오는 절차라고 착각해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상해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지배력의 명분이 생기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니, 너무 당연한 말인 걸 전혀 몰랐어요. 올림픽에서 1등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는 로직에 빗대어 생각하니 정말 이상하더라구요. 그런 논리적 비약을 눈치채지 못했다니, 어지간히 생각없이 받아들였었던 것 같습니다. 없는 명분을 힘으로 밀어붙여 추상적으로 가져다 붙여왔다는 걸, 그리고 (대부분 그럴 수 밖에 없지만)상대가 온전히 파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싸움의 재발여지가 언제나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승리라는 말에 가려진 상해와 고통과 파괴, 그리고 명분잃은 목표- 파괴를 하는 사람과 파괴를 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남는 트라우마. 다시한 번 전쟁의 잔인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문과 마찬가지로 unmaking이라는 체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는 어디선가 그걸 반복할지도 모르겠어요. 고문과 전쟁의 구조를 읽으면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훨씬 규모가 작은 폭력도(고문의 구조에서는 제가 가정폭력을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리적 고통으로 상대에 대한 지배력을 주장하고, 개인을 파괴한다는 면 등에서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동 지역에 살고 계시다니, 이 책의 내용이 더욱 더 강렬하게 다가오실것 같습니다.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안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장에는 이해가 바로 되지 않는 문장들이 여전히 많지만, 그래도 치열한 사유의 결과로서 치밀한 문장들을 읽는 재미가 있네요.ㅎㅎ ‘무기'에 대한 고찰, 영미권에서는 arm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더 몸(즉 ‘나')의 투사로 볼 수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고 동서양의 몸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장기간 계속되는 모의처형'이라는 측면에서 고문이 죽음보다도 더 잔인하다는게 와닿았습니다. ______ 거북한 주제를 피하려는 경향은 사람들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고문을 논하길 꺼리는 태도도 여기서 나온다. 이런 태도는 우리를 권력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98ㅍ 고통은 몸의 철옹성과도 같은 사적 상태에서 언어로 끌어올려지는 순간, 즉시 몸 안으로 다시 떨어진다. 그 무엇도 고통의 이미지를 세계 안에 유지해주지 않으며 고통이 나온 장소를 가리키며 경고해주지도 않는다. … 고통의 강력한 때문이기도 하다. 고통의 강력함은 고통을 고립시키고, 다른 사건들의 맥락에서는 고통이 보이지 않게 만들며, 언어에 막 도달한 고통이 다시 뒤로 물러나 파괴적인 상태에 머물게 한다. 고통이 자신을 인정해달라는 주장은 절대적이지만, 고통이 결국 인정되지 못하는 채로 남는 데 바로 이 절대적인 주장이 일조한다. 99ㅍ 전쟁의 목적은 살인이다. 반면 일반적으로 고문은 살인을 극화한다. 감각의 측면에서 죽음과 등가인 고통을 가해서, 처형을 장기간 계속되는 모의처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101ㅍ 무기는 집합적으로 일컫는 말로 ‘무기들/팔들arms’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확인되듯, 무기는 인간 몸이 연장된 것이다. … 무기도 도서관이나 도시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투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110ㅍ ______
“놀이를 할 때 감각은 감각 자신을 경험하며, 그래서 놀이는 감각적일 때가 잦다. 반면 노동은 놀이보다 훨씬 더 깊숙한 체화를 수반한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세계에서 자신을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와의 상호작용 안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멈춘다면 인간은 죽을 수도 있으며, 그래서 인간은 이어지는 일단의 움직임을 거의 멈춤없이 계속 한다. 놀이의 속성은 다르다. 활동이 이루어지는 세계 안에 잠겨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일부뿐이고, 이 사람은 그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사람들은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놀이를 바로 시작할 수 있고, 또 그만큼이나 바로 끝낼 수 있다. … 노동하는 사람은 세계 안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려 ‘애쓴다/노동한다work’. … 세계 안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노동의 본성으로, 석탄 캐기, 농사, 건설, 물건 만들기 같은 육체 노동이나 수작업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 모든 종류의 노동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자신을 노동의 원료와 뒤섞으며 결국엔 그 원료에서 자신을 분리할 수 없게 된다.” 135~136ㅍ 저자의 놀이, 노동에 대한 서술이 저에게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그 세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가 없는가, 그 행동이 자신을 변화시키는가 아닌가 같은 기준이 흥미로웠는데요. 저는 이 부분에서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예술은 놀이와 노동 그 사이에 어디쯤 있는걸까. 혹은 제 3의 영역인건 아닐까. 작가는 자신의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진입하고 또 나오기도 하고, 아주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기도 하며 마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또 어떻게 보면 예술만큼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바꿔놓는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정신적으로 말이죠. 아무튼, 고통과 전쟁에 관한 책이지만 사유해볼 수 있는 여러 지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후 making 부분도 모임이 진행되나요? @유월의숨
안녕하세요 @MㅡM 님, 이 책의 후반부를 읽는 모임은 6월에 그믐에 다시 열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5월 초에 아마 공지가 올라갈겁니다. 그동안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타지에서 늘 건강하시고 6월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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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다섯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4월 16일, 체호프를 낭독합니다
[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싱글챌린지로 읽었어요
아니 에르노-세월 혼자 읽기 챌린지숨결이 바람 될 때MT 법학 싱글 챌린지밀크맨 독파하기
스토리 탐험단이 시즌 2로 돌아왔어요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10번째 여정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스토리 탐험단 9번째 여정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유디테의 자본주의 알아가기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우리 입말에 딱 붙는 한국 희곡 낭독해요!
<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
그믐의 흑백요리사, 김경순
브런치와 디저트 제대로 만들어보기ㅡ샌드위치와 수프디저트와 브런치 제대로 만들어보기솥밥 제대로 만들어보기
혼자 읽어서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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