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몹시 궁금한 사람들

D-29
@짱가사랑 '고통의 존재를 부인하는 놀라운 자유'라는 구절에 저도 밑줄 그었는데, 짱가사랑님 반갑습니다. 한달 동안 함께 책 읽게 되서 기쁩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한달 동안 함께 ‘고통받는 몸’을 읽어나갈 유월의숨 입니다. 제가 몸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저에게 ‘신체화’ 증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략 20년 동안 폭식증과 함께 살아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 공부를 몇년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심리적인 괴로움 속에 있을때 주로 신체 증상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조금 실마리를 찾은것 같은데, 내 몸에 대해서는 ‘더’ 아는게 없다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몸'이라고 해야 할것 같지만요. 아무튼 이를 계기로 몸에 대한 공부를 해보기로 했는데, 학교나 어떤 단체에 속해서 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스스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분들과 생각을 주고 받는게 도움이 될것 같아 그믐에서 이런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질문은, [무엇을 계기로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입니다. 두번째 질문은, [저자는 고통의 표현불가능성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통은 '대상을 갖지 않는다'라며 그 특수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이나 다른 깊은 감정을 느낄 때도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은 고통만이 가진 유독 특별한 소통의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언어라는 수단 자체가 고통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실존적 감각을 담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유롭게 답해주세요. 함께 생각해볼만한 다른 질문이 있으면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이번 주는 서론 중심으로 읽고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쓴 이유와 어떤 주장을 펼쳐나갈것인지 서술이 되어있고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개념들도 있어서 페이지 수는 얼마 안되지만 꽤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아직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도 많지만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명확해지리라 생각해요. 🌚🖤
매주 읽을 양이 공지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각자 알아서 읽으면 될까요? 저는 해외 거주중인데 이북이 없는 관계로 영문으로 시도해보려합니다.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하려는데 @유월의숨 님이 발제하신 질문을 먼저 생각해보고,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중에 또 답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무엇을 계기로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나에게 온전히 속해(?)있는 유일한 물체인 것 같아요. 하지만 몸을 생각과 마음으로 이해하려다보니 언제나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몸은 부위별로 매우 감각적이고, 본능적이고, 반응적이에요. 책은 고통을 서술할 때 '고통에 있는 사람은 노력없이 고통에 휩쌓인다'는 말을 하죠,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고통과 감각은 매우 파충류와 비슷한 영역의 반응이고, 생각과 표현은 훨씬 더 고차원의 영역이라 거리가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에게 설명할 때 조차 말을 고르게 되죠. 생각하는 우리는 그 자체로 너무 차원이 높습니다. 본능과 생각 그 사이 연결고리가 부족한 거 같아요. 게다가 생각을 언어로 다시 또 걸러서 표현해야하죠. 몸을 어떻게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궁금한 것 같아요. 기능으로 분해해서 보는것과는 또다른 차원으로 접근해보고 싶습니다. [저자는 고통의 표현불가능성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통은 '대상을 갖지 않는다'라며 그 특수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이나 다른 깊은 감정을 느낄 때도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은 고통만이 가진 유독 특별한 소통의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언어라는 수단 자체가 고통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실존적 감각을 담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감정들도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도 고통은 너무나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어떻게든 타인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누구라도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니까요. 공감을 받고자 하는 감정으로서의 목적 뿐 아니라, 해소되었으면 하는 감각적인 목적이 병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합니다. 다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분량은 매주 시작때 공지하려고 합니다. 영문으로 읽으신다니 원문에 멋진 문장 만나시면 공유해주셔도 너무 좋을것 같아요~! 말씀하신 '몸을 기능과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몸을 다각도에서 보고자 하는 저의 생각과도 닿아있는것 같고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라는 문장을 보니 이 책의 미주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르네요. 실제로 환자들이 본인들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을때 행복해하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책은 미주도 굉장히 읽을만한 내용이 풍부한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M-M님! 저도 kindle ebook으로 영문판으로 읽을 예정이에요~ 저는 선천적 뇌혈관 기형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두 차례 뇌출혈이 있고 수술 및 방사선치료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게다가 어릴 적부터 여러 차례 실신하거나 좀 몸이 약했구요. 몸이 약해서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그 반대를 무시하고 대학도 직업도 인체를 다루는 곳으로 가서 지금도 부모님도 남편도 힘들면 그만두라고 자꾸 권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사람의 마음만큼 저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게 인체인 듯합니다. 그래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 공부해왔지만 여전히 제 몸에 대해서도 남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걸 더 실감할 뿐인 것 같아서 몸과 고통을 철학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표현할 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제가 뇌출혈로 입원했을 때 한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학병원에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이미 뇌출혈로 다른 병원에서 전원 와서 embolism 수술을 받을 예정인데) 제가 두통과 구토 증상을 보임에도 아무도 통증 정도를 측정하지도 제대로 제 증상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더라구요..;;; 그래서 나중에 며칠 지나다 결국 제가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항의하다가 제 발음과 말초신경의 감각이 평소와 살짝 다른 paresthesia를 제가 가장 먼저 눈치챘습니다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어느 정도 이런 걸 공부해서 눈치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급하게 전공의를 호출해서 지금 제 상태를 설명하고 응급 MRI를 찍어보자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두번째 출혈이 이번에는 제4뇌실까지 꽉 차서 조금 있으면 뇌사상태로 빠질 수 있다고 응급수술에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제일 오랜 전통과 앞서간다는 첨단 의학시설에서도 통증 조절이나 사정 등도 제대로 안 되고 환자 본인이 표현하고 진단(?)하기 전까지는 주변 의료인들 아무도 못 알아차리고 제 자신도 1~10까지의 pain scale은 알고 있지만 제 통증을 의대교과서에서 배운 것 이외는 정확히 표현하기가 힘들더라구요.. 하긴 저희가 행복이나 사랑 등을 느낄 때도 모호하게 표현되기는 하죠.. 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통증마저도 그냥 데메롤 당장 달라고!! 외마디 비명 지르는 것 외에는 잘 표현이 안 되더라구요^^;;
오 borumis님 안녕하세요,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씀을 들으니 사회에 통용되는 고통의 표현이 부족할 때에는, 고통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당장 크게 드러나는 증상에 의존하게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증상은 고통보다 조금 더 많이 단순하고 전형적이죠. 그리고 고통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요. borumis님이 스스로의 반응에 예민하셨어서 너무 다행이었네요. 저도 한창 인트로 읽고 있는데 정말 고통의 정도를 표현하는 게 이렇게 부족하구나, 내가 그동안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다'는 대체 표현을 아주 자주 써왔는데 그것들이 다 내 몸 고통 자체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걸 조금 알게 되는 거 같아요. 고통속에 있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얼마나 더 잘 전달하고 싶은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요. temporal, thermal, constrictive 이렇게 다른 차원으로 표현하면서 듣는 사람이 그 조합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개선이 되었을까 싶었어요. 언젠가 친구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너무 아플 때 까무러칠듯이 아프다, 죽을듯이 아프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게 억울해. 그리고 아프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상대는 위로를 하는 것도 이상해'. 인트로를 읽으면서 친구가 많이 답답했겠다 싶었어요. 친구의 고통을 듣고 있던 그 순간에도 속으로 위로의 말을 고르고 있던 제 스스로가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통에 대해 사회적으로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많이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소통 방안을 찾을 수 있길 바라요-
반갑습니다 @borumis 님, 역시 공부하면 할 수록 '내가 모르는게 아직도 많다'고 느끼게 되는걸까요. 경험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은 아무래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인데 '며칠 동안 증상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는 한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대학병원'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막막하네요. 몸에 대해 이미 많은 지식을 갖고 계실듯한데 이 책을 어떻게 다르게 읽으실지 더 궁금해집니다.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그믐 독서모임에 참여합니다. 반갑습니다. 1. [무엇을 계기로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만성질환을 가진 아이가 아플 때 옆에서 간호하면서, 그 고통을 전혀 느낄 수가 없구나, 엄마로서 내가 대신 아프고 싶어도 고통은 완전히 이 아이 혼자의 것이구나 라고 좌절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비슷한 느낌을 만성통증이 있는 환자분들과 일할 때도 자주 느껴요. 그분들의 고통을 아무리 1-10으로 측정하고 자세히 묘사해달라고 하더라도 저는 그걸 알 수가 없고 환자분들은 고통뿐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절대적 고독 때문에 더 괴로우신 것 같아요. 그래서 몸과 고통에 대한 문학/철학적 접근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2. [여러분은 고통만이 가진 유독 특별한 소통의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언어라는 수단 자체가 고통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실존적 감각을 담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고통이 특히 언어의 한계에 취약한 이유가 대상성이 없어서일 뿐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본능적인 두려움, 혐오감을 주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피나 시체 처럼 몸의 손상이나 고통을 보면 자동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생존기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더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피하는 게 아닐까요. 게다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마음, 직장 스트레스 등 대상성이 있는 경험을 들을 때에는 청자로서 개입하거나 조언할 여지가 생기지요. 직장을 옮겨라, 그 사람과 멀어져라, 고백하라 등등. 그런데 진통제나 의약적 처치도 듣지 않는 "그냥"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을 들으면, 대상과의 관계를 바꾸라고 조언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더 막막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해외에 있어서 영문판 책의 인트로를 읽고 있는데요, 위에서 말한 개인적인 막막함을 해결하고자 읽다 보니 특히 다음 구절이 제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아 밑줄 그었습니다. The depth of his belief in the referential powers of the human voice only becomes visible, however, when one recognizes that he has found in language not only the record of the felt-experience of pain, the signs of accompanying disease, and the invitation to appropriate treatment but has found there even the secrets of the neurological and physiological pathways themselves; for, according to his own account, it was while listening to the language of his patients that he first intuited what in its later formulation became known to us as the “Gate Control Theory of Pain.” (pp. 8-9).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게요. 의학적인 부문에서는 너무 필요하지만, 그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그저 친구에게는 고통을 잘, 제대로 전달해야하는 동기가 뭘까 생각이 듭니다. 표현을 하면서 표현을 재경험 하는 것도 힘들고, 총총님 말씀대로 상대가 그걸 간접경험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닐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오히려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하니 감정적이고 상상을 섞어 고통을 표현을 할 수 밖에 없어 상대가 과한 경험을 할 거라는 불안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건 다른 얘기지만, 제 친구는 좋아하지 않는 걸 입밖으로 표현합니다. 같이 있다가 그 얘기를 들으면 저는 그걸 '그의 거부, 나의 해결이 필요'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예를 들어, 이거 왜이렇게 매워-라고 하면 저는 그 친구가 그걸 먹고 싶지 않으니 내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럼 제가 '내가 그걸 먹고 네가 저걸 먹어'라고 하면 그 친구는 '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그런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우리가 대화하는 모든 방식이, 아무리 함께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서로를 직접적으로 향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대요. 자기가 불평하는 건 자기가 그 순간에 그 표현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저의 직접적인 개입을 원하는 건 아니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 친구가 하는 어떤 말에는 그렇구나, 끄덕이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상대가 고통을 표현할 때 그것에 대해 내가 너무 동화되려 한다거나, 너무 위로하려 한다거나,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서로가 고통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어쩌면 고통을 대하는 서로의 역할이 아닐까.. 총총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면서 생각나서 남겨봅니당 :D
오늘 한 배우의 강아지가 강아지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나혼산에서 재밌는 에피소드에도 나왔던 강아지라 저도 기억하고 있던터라 애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 좀 흥미로워서(?) 이곳에 전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고통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비슷한 메카니즘이 있으려나 싶어서요. 최근 상실의 소식이 좀 있었던건지 해당 배우는 '연속적인 슬픈 소식이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고통에 대해 말할 때에도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신경써서 제대로된 표현을 못하는 것 같다고 며칠 전에 여기에 글을 남겼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족들에게 잘 알리지 않습니다. 나의 속상한 일로 가족들이 속상할 때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보니, 애초에 알리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마찬가지 맥락인 거 같아요. 공감이라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과한 공감이 개인의 온전한 경험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나의 경험, 너의 경험, 우리의 경험의 경계가 어디에 세워져야 건강한 표현이 보장될까요.
안녕하세요 @총총9314 님, 저는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서 그믐에 최근에 가입하고 처음 이 모임지기를 맡게 되었어요. 반갑습니다. '대신아파줄 수 없는 무기력'은 엄마들이 한번 이상 경험하게 되는 감정인것 같아요. 그때 철저히 우리가 서로 타인이라는걸 절감하게 되는거 같고요. 그리고 고통이 듣는 사람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도 공감합니다. 얼마 전에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있는 누군가가 '나는 자기 고통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민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을 하는걸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만 조금 위험할수도 있는 발언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무엇을 계기로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제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저는 태어 나자마자 3일 밤낮을 울면서 젖도 빨지 않아 신생아 사망율이 높았던 시절이라 거의 포기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3일후부터 겨우 젖을 빨아 생명을 건졌다고 합니다. 걸음마를 배울 때 오른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는데, 나중에 제가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되 결국 오는발 마비의 결과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처럼 달리거나 뜀박질 하는데 서툴렀고,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는 항상 열외로 있었습니다. 제 신체적 핸디캡은 항상 제가 제 몸에 관심을 갖게 했고, 성인이 된 현재까지 고혈압, 당뇨, 이명을 동반한 메니에르병, 척추관 협착증, 백내장 등 다양한 질환을 직접 겪으며 살아 왔습니다. 아주 극심한 고통을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한 개인의 질병은 오롯이 자신만의 경험이고,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동일한 경험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만이 가진 유독 특별한 소통의 장벽] 저자는 고통의 감정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단순히 표현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지향성((intentionality)이 없는 유일한 정신 상태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무언가를 향하고', 사랑은 '누군가를 향하지만', 고통은 순수하게 '안으로만 존재한다' 또한 고문과 전쟁에서의 고통은 표현 불가능성이 말 못하는자는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권력에 의해 착취된다고 말한다. 행복이나 슬픔은 언어를 '담기 어렵게' 만들지만, 가끔은 언어적 창조성을 촉진하는 경향도 보인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을 겪은 고문 생존자들은 그 순간을 서술하려 할 때 언어는 실제로 무력해진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행복이나 슬픔, 공포적 경험을 언어로 전달하지 못해도 정치적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은 직접적인 권력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고문 피해자가 말하지 못하면 자백이 조작되고, 만성 통증 환자가 통증을 설명하지 못하면 보험 청구가 거부되며, 임산부가 통증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면 의사가 과소평가하게 된다" 행복을 표현하지 못해서 불이익을 받는 구조는 없다. 그러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의료적, 법적,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실질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모든 깊은 내적 경험에 대해 투명하지 않다. 그러나 고통은 그 불투명성이 언어를 능동적으로 파괴하고, 정치적으로 착취 가능한 침묵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다른 경험들과 구별된다."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계기는 역시 많은 경우 질병과 고통에 있는것 같다고 느껴지네요. @짱가사랑 님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권력 불균형'이 크게 와닿는데요.. 감옥과 병원, 심지어는 가정안에서도 고통을 받는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 간의 간극은 엄청나게 큰것 같아요.
이번주는 [제1장 고문의 구조]를 함께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어 판본은 96페이지까지 입니다. 다 읽지 못하더라도 읽은 곳 중에 눈에 띄는 문장이나 내 삶과 연결되는 지점 등 함께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고문 도입부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얼마 전 호암미술관에서 있었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가 떠올랐어요. 제가 '고통'이라는걸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한것은 아마도 출산과 육아라는 경험이 그 시작이었던것 같아요. 저는 그 흔한 월경통도 크게 겪어 본적이 없었거든요. 루이스 브루주아의 작품 사진 몇장을 공유합니다.
고문을 신체에 직접 가해지는 고통인줄로만 알았는데, 피고문자의 world-unmaking과 고문자의 권력화 과정 등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고문이 피고문인, 고문인 양측 모두에게 다층적이고 체계적인 경험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사회에서 고통을 외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사회가 가했음에도 피해자의 체험을 객관화하려는 태도-이 '배신'이라는 단어로 잘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엠네스티 활동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 목소리 회복 과정이 정말 많이 중요하다는 게 조금은 이해됩니다. 여러번 더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그랬듯, 고문을 단편적인 신체적 고통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사회에서 폭력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고문의 구조를 읽으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더 잘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 저는 강렬한 고통으로 인해 언어가 파괴되고, 일상적인 물건들이 무기가 되며, 피해자가 지켜온 신념과 세계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너지는 과정들을 읽으면서, 비록 범위와 성격은 다르지만 '가정폭력'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책에서 고문 장소가 주로 방이었다는 점과, 피해자의 세계를 축소하면서 허상의 권력을 행사하는 부분이 특히 관련있는 것 같아요. 익숙한 공간과 사물을 무기화하고 폭력에 일상적인 네이밍을 하는 건 정말이지 잔인합니다. 피해자가 폭력 경험을 설명하기 어렵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듣거나 공감하지 않으며, 폭력의 동기나 목적이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해자가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어 피해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방어를 하는 것까지 유사해 보입니다. 피해자가 고문자에게 미움 뿐 아니라 애정을 느끼는 점과, 고문자의 체계성 수준이 가장 다른 부분이지만요.
저는 영화에서 고문하는 장면을 보면서 굳이 왜 저리 힘을 들여서 사람을 괴롭힐까 어차피 진실을 위조할 거면서.. 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진실을 캐내려는 의도인 척 하지만, 사실은 피해자의 세계관, 자아, 목소리를 파괴함으로써 불안정한 권력을 확장하고 실체화하려는 것이 고문의 구조라는 점을 읽으니 의문이 풀립니다. 고문 중 의식이 붕괴되고 "undoing of civilization" 을 당하는 과정을 보니 저는 이 부분에서 1984의 결말이 떠올랐어요. 윈스턴이 한창 젊은 시절에 줄리아를 사랑하고 체제를 저항할 때는 고문하며 살려두더니, 결국 시간이 흘러 본인의 인간성과 세계 자체를 잃고 진심으로 빅브라더를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에야 마침내 삶이 끝나는 장면 말이죠. 이 글을 읽고 다시 떠올려보니, 빅브라더 입장에서는 윈스턴이 마지막 고백을 하는 순간 체제의 권력을 극대화시키는 효용을 다했으니 죽인 건가 해석하게 되네요. 한편으로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은, 굳이 신체적 고문이 아니라도 죽음이 닥친다는 걸 알게 되면 고문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자아와 목소리까지 잃으며 world dissolution을 경험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그 논의를 우리 모두의 나이들고 죽어가는 과정에까지 확장하니 제 일상과의 접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여름에 요양원에서 뵙고 온, 모든 존재감이 딱 앉아계신 휠체어에 국한될 정도로 작아져보였던 외할아버지도 생각이 났어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떻게 나와 내가 사랑했던 대상들에 대한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 시한부인 분들이나 침대에 갇힌 노인분들을 대할 때 어떻게 그분들의 목소리라도 확장될 수 있게 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책이 어려워서 진도가 잘 안 나고 지금 읽은 부분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조금씩이라고 읽어보려 합니다. 같이 으쌰으쌰합시다!
총총님 남겨주신 글을 읽다보니 죽음과 고통이 가까울수록 작아지는 세계(자기 반경 2m와 내 몸 밖에 생각할 수 없게되는)에 대해 저자가 언급한 부분이 기억났어요. 정말 쉽지 않은 책인데(사실 이렇게 벽돌인지도 몰랐어요. 책을 실물을 받아보고서야 알았다는..;) 이렇게 같이 으쌰으쌰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
고문은 한 개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피해자가 속한 모든 세계(가정, 일, 관계, 정체성)를 망가뜨린다. 또한 고문을 가하는 권력자는 피해자의 몸에서 나오는 비명을 통해 '권력'에 물질적 근거를 찾는다.저자는 고문에서 사용되는 사물들(의자, 욕조, 전구)이 일상적 안락함의 도구에서 고통의 도구로 역전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문명 자체가 역설적으로 잔혹함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문명이 발달했음에도, 현재까지 독재 국가에서는 고문의 방식과 잔혹성이 더욱 심해 지는 것을 보면 과연 인간의 정신적 과정은 발전적으로 더욱 성숙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동물적 잔혹함은 과연 극복이 가능할까?
저도 '지금 이게 나아진거 맞아?'라는 의문이 들때가 많아요..
"고통받는 것은 확실성을 갖는 것이고, 타인이 고통받는다고 듣는 것은 의심을 갖는 것이다." 고문을 통한 고통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만성 통증 환자가 '꾀병' 의심 받는 것, 법정에서 피해자 증언이 의심 받는 것 등은 모두 이런 고통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 "고문의 목표는 몸을 고통으로 압도적으로 현재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목소리(언어)를 파괴함으로써 부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몸의 고통을 극대화함으로써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고문하는 자들이 고통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수감자의 고통이 커질수록 수감자의 세계는 작아지고, 그에 비례해 고문자의 세계는 커진다. 고통은 권력이 된다." "신체적 고통을 의학적 맥락에서 언어화하려는 시도들 — 맥길 통증 질문지처럼 — 은 내면의 사건에 외부적 이미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의학의 객관화 도구가 고통의 언어 문제를 우회하지 해결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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