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사람들의 거짓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두들 이반 일리치는 병이 들었을 뿐 죽는 것은 아니며 안정을 취하고 치료를 받는다면 훨씬 좋아질 거라는 빤한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이제 남은 건 점점 더 지독해지는 고통에 시달리다 죽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이반 일리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사람들의 거짓말은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도 알고 이반 일리치도 아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그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이반 일리치까지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길 바랐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거짓말 말고도, 아니 거짓말 때문이겠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그가 바라는 만큼 마음 아파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몹시도 괴로웠다. 어떤 때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리고 나면, 이런 고백 하기 부끄럽긴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보듯 가엾게 여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달래듯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입맞춰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주길 바랐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중요한 자리에 있는 관리인 데다 수염까지 하얗게 센 사람이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이반 일리치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게라심과의 관계에는 이런 바람을 충족해주는 뭔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와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이반 일리치는 흐느껴 울고 싶었고, 누군가 그런 자신을 달래며 같이 울어주길 바랐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녀는 오로지 자신 만을 위해서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를 위하는 일이라고 공언함으로써...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위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고일 옮김
모든 법도에 따라 연출해온 사기극이 갑자기 깨지고 진실이 드러나는 게 무서워졌다... 그들이 나가자 이반 일리치는 그제야 좀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 함께 거짓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통증은 남아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고일 옮김
그는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 나락에 떨어지고 싶었다...그는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 절대 고독, 사람들의 냉혹함, 신의 냉혹함, 신의 부재가 서러워 울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고일 옮김
최종 결과가 지금의 자신인 회상이 시작되자마자, 당시 기쁨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눈 앞에서 녹아내려 부질 없는 것으로, 그리고 왕왕 추한 것으로 변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고일 옮김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였다. 모든 것이 항상 그랬던 대로 진행되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법정에서 그 자신이 그러했기에 익히 아는 짐짓 근엄한 척하는 의사의 태도도, 여기저기 두드려 보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미리 정해져 있기에 굳이 답할 필요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저 우리한테 맡겨 주면 모두 알아서 처리하리라고, 모든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확실히 잘 안다고,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똑같이 대한다고 주장하는 의미심장한 표정도 말이다. 모든 것이 법정과 똑같았다. 그가 법정에서 피고를 대하며 짓는 표정을, 저명한 의사는 환자를 대하며 똑같이 짓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리고 그 논쟁 끝에 의사는 이반 일리치의 눈앞에서 휘황찬란하게 맹장염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소변 검사를 통해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그때 가서 다시 검토하리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 모든 절차는 그동안 이반 일리치가 피고에게 그토록 휘황찬란하게 늘어놓은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 의사는 역시나 휘황찬란하게 요약해 준 다음, 안경을 살짝 내리고서 의기양양하고 즐겁게 피고를 내려다보았다. 의사의 요약문을 통해 이반 일리치는 나쁘다는, 즉 의사는,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 역시 관심 없을 테지만 자기 상태가 나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 결론에 병적으로 충격을 받은 이반 일리치의 내부에서는 자신에 대한 크나큰 동정심이, 그리고 이토록 중요한 문제에 지독히 무심한 의사를 향한 크나큰 증오심이 치솟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병원에서 저명한 의사가 그를 대한 태도에서 이반 일리치는 법원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의사는 마치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휘황찬란한 설명과 함께 결과를 내놓았고, 법원에서의 이반 일리치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에,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 분야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와 의사는 자신들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게, 즉 상대가 스스로 그들이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음을 느끼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보다 그 분야에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만 적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저명한 의사도 세계 최고의 명의 앞에서는 이반 일리치에게 그랬듯이 휘황찬란하게 자신의 진단을 설명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둘의 의기양양한 태도는 두 명이든 열 명이든 어느 무리 안에서 자신이 가장 우위에 있을 때만 드러나는 상류층의 일종의 ‘자랑’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요..
이런 태도를 역할이 바뀌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어요ㅜ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나봐요.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조금 늦게 시작합니다!
9-10,30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희망의 물 한 방울이 반짝 나타나는가 싶으면 이내 절망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통증에 이어 통증이, 고통에 이어 고통이 시작되었다. 늘 똑같았다. 혼자 있을 때면 견디기 힘들 만큼 우울해지면서 누군가를 부르고 싶어지지만,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상태가 더 나빠진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불쌍했다. 게라심이 옆방으로 가자마자 더는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지독한 외로움, 사람들의 냉혹함과 하나님의 무자비함, 그리고 하나님의 부재가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대체 제게 왜 이러는 겁니까? 왜 저를 이렇게까지 만든 겁니까? 왜, 대체 왜 저를 이렇게 끔찍이도 괴롭히는 겁니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어린 시절 그때는,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에 매달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정말로 행복한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을 느꼈던 사람은 이제 없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추억인 것만 같았다. 기억이 현재의 그, 현재의 이반 일리치가 존재하는 순간에 이르자, 그 시절에는 기쁨으로 여겼던 모든 것이 눈앞에서 녹아버리면서 보잘것없고 종종 추악하기까지 한 뭔가로 변해버렸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활기라고는 없던 공직 생활과 돈에 대한 걱정. 1년, 2년, 10년, 20년이 가도 늘 똑같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생기를 잃었다.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정말 그랬어.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만큼 내 발밑에서는 삶이 멀어져갔던 거야······. 이제 다 끝나버렸고, 죽음만 남아 있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엇 때문이지? 이럴 수는 없어.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추악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삶이 이처럼 추악하고 무의미한 것이라면, 왜 죽어야 하며 그것도 이처럼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걸까? 분명 뭔가 잘못된 거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때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동료 시바르츠가 위층에서 내려오다 표트르가 들어서는 걸 보고는 걸음을 멈추고 한쪽 눈을 찡끗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참 어리석게 살았어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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