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문장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실제 그렇긴 하거든요.... 어떤 문제에 이름이 붙여지는가, 어떤 이름이 붙여지는가가 중요하지 그 문제가 당사자에게 어떤 심각성을 지니는지는 타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게 비정한 현실인 것 같습니다. 한편 의학에서는 점차 patient centeredness (환자 중심성)이 강조되고 있어서 좀처럼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것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죽지는 않고 지속되고 있다고는 할 수 있네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Oncoazim
팥죽
누구나 힘들고 아플때는 사회적 지위, 성공이 아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교감이 가장 큰 위로이고 힘인 것 같아요. 이반 일리치의 고통을 전문가인 의사도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모습이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느낌도 들고요.. 나 또한 이반과 같은 일을 겪는다면 나의 주변인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나 또한 어떤 태도를 취할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었어요.
첼이
누군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로, 저는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이나 태도들이 당사자에겐 너무나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픔에 같이 직면해 공감의 태도를 취해야할지, 그것을 회피하고 오히려 가볍게 여겨 그 사람의 마음도 가벼워지길 바라는 태도를 취해야할지. 어렵네요ㅜㅜ
밥심
완독 후 조금 생뚱맞지만 이반의 병명이 뭐였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역한 입맛에 심한 옆구리 통증이라.. 검색해보니 소설에서도 지목했던 맹장염, 신장염 외에도 담낭염, 췌장염 등도 의심되네요. 요즘 같으면 약물과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병들이지만 근대적인 맹장염 수술은 1880년 이후에야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신장염은 19세기 중엽에 진단은 가능했으나 치료는 불가했다고 하네요, 증상 완화만 할뿐. 일단 항생제가 없었으니까요. 맥락 상 옆구리에 심한 타격이 가해지면서 신장에 급성 염증이 생기고 패혈증으로 악화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별 것도 아닌 작은 욕심 때문에 인생을 일찍 마감하게 된 이반으로부터 삶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믐달빛
완독 후 추가 정보를 찾아보는 모습, 대단하시네요..! 덕분의 책의 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병의 원인도 생각보다 작은 곳에 있었군요.. 말씀해주신 대로 삶의 결말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밥심
지난 금요일엔 친구 모친상으로 장례식에 다녀오고 토요일엔 직장 우리 부서 막내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2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가 서 있던 상주 자리에 이번엔 제 친구가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것을 잘 알기에 별 말도 없이 친구와 친구 동생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아직은 동년배의 죽음보다는 부모님 세대 죽음을 주로 겪게 되어 그런지 부고를 접할 때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런 생각은 절대 들지 않고 대부분 고인들이 고통 속에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시기 때문에 죽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감히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제가 직접 겪어 봐야 알겠지요.
결혼식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에 인사차 온 신혼부부. 활력이 넘치는 신부가 생글생글 웃으며 “이 사람 잘 부탁드려요!” 하고 인사를 하길래 깜짝 놀랬습니다. 우리 부서 막내가 장가를 잘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ㅎㅎ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냐 아저씨>와 같은 음울한 러시아 작품들을 읽고 약간 다운되어 있었는데 생동감 넘치는,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부부를 보니 다시 업되는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꽃의요정
지금 전 한참 중간 읽고 있는데 '바냐'가 '이반'의 애칭이란 게 책에 나와서 깜놀했어요. 저만 몰랐던 거죠?! ㅎㅎ
첼이
저도 몰랐어요 ㅎㅎㅎ

거북별85
ㅎㅎ 저도 몰랐네요^^

문화건달
이반 일리치는 참 어리석게 살았어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죠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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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달
“ 그의 모습은 생전과 완전히 달랐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야위었지만, 죽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반 일리치의 얼굴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진중해 보였다. 해야 할 일을 다 이루었으며 그것도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었다고 그 얼굴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또한 그 표정에는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한 책망과 경고도 담겨 있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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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달
“ “이보게 게라심,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했다.
“다 하나님의 뜻인걸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지요.” 게라심이 농부답게 희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그러더니 한창 기운 좋게 일하는 사람처럼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부를 불러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마차에 태우고는, 남은 일을 마저 해야 한다는 듯 다시 현관으로 뛰어갔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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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달
“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간 뒤 이반 일리치는 혼자 남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인생에 독이 스며들었고 이 독은 다른 이들의 삶에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독은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져 그의 몸 전체에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
이반 일리치는 파멸의 끝자락에 매달려 자신을 이해하고 가엾게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갔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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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달
“ 아내와 함께 있는 초상화를 가져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비교해보았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이번에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두 팔을 살펴본 다음 다시 소매를 내리고는 소파에 앉았다. 그의 얼굴이 밤보다 더 까매졌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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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달
‘죽음이라. 그래 죽음이란 말이지. 그런데도 저들은 모르고 누구 하나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나를 딱하게 여기지도 않는구나. 그저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어. (문 저쪽 멀리에서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반주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저들도 다를 게 없지. 언젠간 죽을 거야!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저들은 나중에 가는 것일 뿐, 누구도 그 길을 피할 수 없는 거야! 그런데도 마냥 즐거워하는구나. 저 짐승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미움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고 비참했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끔찍한 공포를 겪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문화건달
“ 카이사르는 인간, 보통의 인간이므로 이 논법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카이사르도 아니고 보통의 인간도 아니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
카이사르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었고, 그러니 죽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 바냐, 이반 일리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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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달
이반 일리치의 외로움이 억울함이 안타깝습니다.결국은 혼자서 통과해야하는 것이라고 하는걸까요.
MㅡM
우리는 모든 순간에 모두가 다른 곳에 서있습니다.
처음에는 죽은 이반 일리치와, '여전히 카드게임이 재미있는 죽지 않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동료들의 입장 차이에 대해서,
후반부에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걸 알기에 죽음과 고통 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던 이반 일리치와, 의사를 통해 이반의 고통과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노력하는 표도르브나, 그리고 '죽어가지 않는' 표도르브나에 대한 이반의 짜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죽어가지 않는 가까운 사람을 보는 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증폭하기 때문인걸까요.
죽어가는 이반은 죽음을 어떤 사건이 아닌 당연히 거기 있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라심과 있을 때에만 조금 더 편했어요. 죽어가고 있다거나, 죽음을 거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희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죽음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던 당사자 이반, 그리고 다양한 욕망과 재미로 살아가는 주변 관찰자 가족과 동료들. 누구의 잘잘못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래, 각자의 위치에서 인생을 사는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새섬
막간 상식 :
5장에서 이반의 아내는 이반을 '장'이라고 부릅니다. 발음도 비슷하지 않은데 왜 '장'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이반과 장은 이름의 뿌리가 같다고 나오네요.
이 이름의 시초는 히브리어인 '요하난(Yohanan)'입니다. "여호와(하나님)는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으로 성경 속 '세례 요한'이나 '사도 요한'의 이름이 기독교 전파와 함께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각 나라의 언어에 맞게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언어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 이름들입니다. 러시아어의 이반 (Ivan), 프랑스어의 장 (Jean), 영어의 존 (John), 독일어의 한스 (Hans) / 요하네스 (Johannes) 스페인어의 후안 (Juan), 이탈리아어의 조반니 (Giovanni)가 모두 같은 이름들이라고 나옵니다.

Aftermoon
저혼자 눈치를 못챈겁니까..'장'이라니..허허..그래서 다시 확인했는데..진짜 '장'!! 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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