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법원에서도 이반 일리치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땐 사람들이 자신을, 마치 머지않아 일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 바라보듯 주의 깊게 살피는 것처럼 느꼈고, 또 어떤 땐 별안간 동료들이 건강을 염려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허물없는 사이인 양 친근하게 놀려대는 것처럼 느꼈다. --- 이반 일리치는 십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몹시 마음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86,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가 딱하면서도, 그의 아픔에 무감하고 '구경'하는 이들의 시선을 보며 저를 생각했어요. 이란에서 발생한 전쟁의 참화를 보며, 아, 나는 저 땅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저를요. 이반 주변의 인물들과 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잠시도 쉬지 않고 이반 일리치를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통증이 의사의 모호한 설명과 합해져 이전과 다른, 그리고 이전보다 더 심각한 의미로 다가왔다.' 4장.. 의사가 내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텐데.. 의사들은 저마다의 권위를 내보이기 위한 진단을 하는 것 같아 보이네요.. 환자를 중심에 두고 본다면 저렇게 제각각의 진단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은게.. 그렇게..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 이반 일리치를 더욱 죽음과 가까운 수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시무시하고 낯선 일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일이 이반 일리치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이반 일리치 한 사람뿐이었으며, 주위 사람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 이런 사실이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장,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내 고통 밖의 세상이 평화로울때.. 누워서 '그믐'의 세상을 거닙니다.. 어떤 이들은 '포탄'을 피하고 있을텐데요..
어떤 면에서는 어쩌면 제가 이반 일리치의 입장에서 있을지 모르겠다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저는 그 밖 사람들의 역할이었네요.. 세상이 이반 일리치 역의 누군가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는 절대 없는 노릇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스쳐만 지나가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모두와 모든 것들이 가끔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할 테지요..
어떤 이들은 포탄을 피하고 있을 터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럴 때 책을 읽을 수 있는 제 호사가 더 감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불편하기도 한 날들이네요.
3월 11일(수) 오늘은 4장과 5장을 읽어보았습니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의 스토너 같은 경우는 그래도 죽기 직전에 핀치가 찾아와줬는데. 이반 일리치는 많이 불쌍하네요. >>>그렇게 그는 파멸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이해하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 >>>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나 말고는 모두들 다 분명히 알고 있다. 쯧쯧. 그래도 그가 나름 진지하게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보고. 아내가 손님을 맞이하는 동안 서재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그려지긴 했으나, 왠지 모르게 자업자득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매일같이 메멘토모리를 무의식,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사는 저에게는 이반 일리치의 다 죽어가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까지 큰 임팩트는 없지만 역시나 죽음이란 것은 저에게든 누구에게든 필연적인 수순이기에.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즉, 가능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매순간 스스로에게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몇 안되는 삶의 당위 같은 것들은 느껴집니다. 사실 당위적 사고를 매우 경계하는 편이긴 한데 (REBT 비합리적 신념) 그것과는 별개로, 한 인간이 인생을 살 때는 매사 근본적인 것, 본질적인 것, 깨닫는 것,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 여유를 갖는 것 등의 것들은 정말이지 중요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반짝이던 이반 일리치라는 별이 초신성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조차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처럼 굴고 있는데. (아내를 증오하고 확 밀쳐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낌)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하네요. 그럼 다들 수고하세요!
존 윌리엄스 <스토너>에서 스토너는 이반 일리치와는 반대의 삶, 외부의 명성과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지극히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그의 이야기를 읽을때 뭔가 가슴이 깊게 충만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록 죽음은 좀 허망하게 찾아왔지만, 삶의 밀도가 그토록 높았고 또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친구가 마지막까지 있었고 ,무엇보다도 제삼자의 보살핌이나 애정을 간절하게 바라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조용히 마무리짓는 모습에서 스토너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애요.
저도 예전에 스토너 책 모임에서 어느 분이 "스토너는 단 한 순간도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적이 없다."란 의견을 내서, 조용하고 소심하게 어깨 한번 못 펴는 것처럼 산다고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는 게 과연 맞는가? 나는 잘하고 있는가?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오오,, "스토너는 단 한 순간도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말도 맞네요. 이반일리치도 그런 거 같고요.
오!!<스토너> 아직 읽지 않았는데 끌리네요. 설명해주신 삶을 살았다면 잘 산거 같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이 나쁜 것은 죽음이 그를 자꾸 죽음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이란 놈은 그에게 무슨 일이든 하도록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은 채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며 그것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도록 만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10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거짓말 말고도, 아니 거짓말 때문이겠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그가 바라는 만큼 마음 아파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몹시도 괴로웠다. 어떤 때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리고 나면, 이런 고백하기가 부끄럽긴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보듯 가엾게 여겨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달래듯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입맞춰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주길 바랐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런데 게라심과의 관계에는 그런 바람을 충족해주는 뭔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와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이반 일리치는 흐느껴 울고 싶었고, 누군가 그런 자신을 달래며 같이 울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울면서 위로를 구하는 대신 진지하고 엄숙하며 깊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면서 오랜 버릇대로 배법원 결정에 대해 견해를 말하고는 자기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다른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이반 일리치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그의 마지막 남은 삶을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는 아내와 처남의 만류도 뿌리치고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이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연봉 5천 루블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부서가 어디고 업무의 종류와 성격이 무엇인지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연봉 5천 루블만 받을 수 있다면 관청이든 은행이든 철도 기관이든 마리아 여제 귀족학교든, 하다못해 세관이든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5천 루블의 연봉을 받을 수 있고 그를 인정해주지 않는 지금의 부서를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직의 이유가 '연봉' 뿐인 회사라면 옮기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전 연봉은 1억 정도 더 준대도 지금 직장을 옮기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 책의 주제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지만, 아프기 전 이반 씨의 행적도 꽤 흥미롭네요. 자기가 왜 이렇게 아픈지 억울해 하는 부분도요.
3월 12일(목) 오늘은 오전에 잠깐 짬이 나서 6장만 재빠르게 읽어보았습니다. 6장을 초입에 나오는 이 문장들 앞에 저는 잠시 머물러 있었습니다. >>>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인정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맞아요. 제가 이 문장에서 잠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이런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정말 죽고 싶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방문을 닫은 적은 몇 번 있긴 한데. 이렇게 자의가 아닌 질병에 의해 죽음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드는 경험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우 낯설게 느껴졌는데. 이런 낯섦을 이반 일리치 같은 명랑한 인간의 입으로 머리로 듣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언제고 요가 맨 마지막 동작을 하기 위해 반듯이 누워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내가 누워서 땅에 묻히면 이런 느낌이겠지. 조금은 차갑고 딱딱하구나. 외롭겠네. 그리고 그립겠고.' 이반 일리치의 삶을 모두 긍정할, 모두 부정할 아무런 생각도 사실은 없지만 이런 문장을 우려내는 그의 뒤통수를 보며 저는 그를 좀 긍정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치우쳤습니다. 그가 느낄 곤란과 외로움 때문에 잠시 경건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 그가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바로 그 방이었다. 그때 다친 옆구리에서 병이 시작되었으니 결국 이 방을 꾸미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면 쓴웃음이 나왔다. 이 부분은, 계속해서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만 더듬고 있던 두 사실을 (작가가) 한 공간에 - 이어지는 문장으로 - 모아둬서 조금은 화들짝 했습니다. 슬프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러네. 우리는 모두 각자 어떤 방을 꾸미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과 다름없는 생을 살다가 이렇게 죽고 말겠구나. 슬프다. 적적하다. 엣 세트라. 쩜쩜쩜. 그러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죠. 그리고 저는 다시 한번 이 마음가짐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졸잼.' 그럼 수고하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참 어리석게 살았어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녀(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남편이 사망한 경우 국가로부터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었으며, 다만 조금이라도 더 받을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20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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