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저부분이 저도 궁금했어요. 저 문장구조가 특히 더 쿡쿡 찌르는 효과를 주는 거 같아요. 법률학교, 역겨운 행동, 지체 높으신 분들,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도 개의치 않기로 하다, 이런 표현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열되어 있다니- 다들 그렇게 살지, 누구나 그렇지라는 말에 저 '법조계 지체높은' 사람들이 들어올 줄 몰랐고, 그들이 들어올 줄 몰랐다면서 내가 들어가는 건 '평범한 거'라며 괜찮다고 생각하는 저도 이상하고 모순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불킥, 양심에 찔릴만한 일 정도는 그럴 수도 있지만, 역겨운 행동이라고 표현할만한 건 (제가 생각하는) 평범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반의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가 저의 약하고 가끔 악한 모습과 전반적으로 겹쳐진다고 생각하면서 끄덕이며 읽었더니 저런 갸우뚱한 지점을 놓친 거 같아요.
@oncoazim @MㅡM 저도 이 부분을 궁금해 하며 읽었습니다 이야기의 후반에는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했고요 혼자 추측해 보기로는, 톨스토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활』에서 드미트리가 카츄샤를 유혹해 임신시키고 버리면서 타락시킨 사건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잡아넣을 수 있다는 권력의식, 비록 외적인 것이지만 법정에 들어설 때나 부하 직원을 만날 때 분명하게 전해져오는 존경 어린 시선, 상관들과 부하들 앞에서 과시할 수 있는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 스스로도 잘 느끼고 있는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 등등 이런 모든 것들에서 그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덧붙여 동료들과의 대화와 식사, 그리고 카드놀이 등등이 그의 삶을 채워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들은 흔히 윤리, 사명의식 등을 강조하지만 이런 면 (권력의식과 과시욕,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만족 등)이 없다고 하긴 어렵고 딱히 이게 나쁘다, 고 저격할 수만도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다만 톨스토이는 이것으로 충분한가, 삶이 이런 것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과연 스스로에게 진실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방금 전자책 (문예출판사) 구입하고, 늦.은. 가입 신고/인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바로 그러한 자신과 그 주위의 거짓이 그의 삶의 마지막 날들을 망쳤다 p)89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고일 옮김
"저하고 같이 좀 가주시겠어요? 추도식 시작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팔 좀 빌려주세요." 미망인이 말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팔을 내주었고, 두 사람은 시바르츠를 지나쳐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시바르츠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딱하게 됐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장난기 어린 시선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카드놀이는 틀렸군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하더라도 섭섭해하지 마세요. 다섯 명이어도 괜찮으니 빠져나올 수 있으면 오시고요.'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아까보다 더 깊고 서글프게 한숨을 내쉬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감사의 표시로 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보다 카드놀이에 빠질 수 있다는게 더 깊고 서글픈 한숨을 나오게 했다니... 사람의 속내가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슷한 부류에게는 그게 또 다 보여지는구나 싶네요.
저도 첫 부분을 읽을 때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집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진심 어린 한탄과 슬픔을 보았음에도 그의 집을 나서자 떠오르는 생각이 카드놀이라니. 저 같았으면 무거운 마음에 다른 생각은 떠올리지 못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을 텐데 말이죠.. 물론, 더 앞 부분에서 나왔듯이,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인한 이득도 있었지만요.. 처음에는 번역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나, 의심하기도 했었죠;;^^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거짓이었다. 그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들었을 뿐이고 안정을 취하고 치료만 잘한다면 곧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모두들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도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과 죽음 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중략) 이반 일리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끄 판사가 찾아오자 울며 동정을 구하는 대신 이반 일리치는 심각하고 엄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타성적으로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하고는 거듭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다.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환자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거짓말이 환자를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환자도 주변인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환경이 고통을 배가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네요.
마침 4년전 이맘때 읽은 감상이 남아있었습니다. 다시 읽고 새로운 생각을 더하겠습니다.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앞으로도 두고 두고 여러 번 읽게 되겠지만, 작년에는 그야말로 '일로 읽은 책'. 누구든 언제고 죽을 수도, 뜻하지 않게 퇴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로 닥칠 때의 마음은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 일이 내 맘 같지 않다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그런 경우는 원하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거나 오히려 잘 되지 않는 편이 선방하는 것이란 믿음으로 마음을 달랜다. 웬만한 걱정은 죽음 앞에 오징어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고전 중의 고전. 죽어보지 않고 죽음의 과정에 있는 사람을 묘사할 수 있다는 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듯.
그가 보기에는 자신에 대한 처우가 극히 무례하고 잔인하도록 부당한 것인데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일로 받아들였다.--- 오직 그 자신 한 사람만이 자기 처지가 정상적인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62p,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하지만 그 집은 사실 실제로는 대단한 부자가 아니면서 대단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집을 꾸미고 있는 장식품들도 모두 그런 종류의 그만그만한 것들이어서 남들의 주목을 끌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 본인에게는 집 안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68p,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촛불과 탄식소리, 향 연기, 눈물과 흐느낌 속에서 추도식이 시작되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침울한 표정으로 서서 발끝만 바라보았다. 시신 쪽으로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으면서 끝까지 우울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다가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과 함께 방을 나왔다. 현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사 일을 돕는 농부 게라심이 고인의 방에서 급히 나오더니 억센 손으로 손님들의 외투를 일일이 들추며 이바노비치의 외투를 찾아 건네 주었다. "이보게 게라심,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했다. "다 하나님의 뜻인걸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지요" 게라심이 농부답게 희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농부 게라심은' 죽음이 나와 딴 얘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네요. 그래서 죽어가는 이반 일리치를 다른 인물들 처럼 외면하지 않고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성심껏 돌볼 수 있었던 걸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삶은 굉장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아주 끔찍하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가 살아가는 내내 잃지 않았던 성품은 이미 법률학교 시절에 갖췄다. 그는 능력있고 쾌활하고 선량하며 사교적이면서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은 철저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은 바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릴때도 성인이 되었어도 아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날벌레가 불빛을 향해 날아들듯 아주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상류사회 사람들에게 이끌렸으며, 그들의 태도나 인생관을 습득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법률학교 시절, 그는 이전이라면 몸서리쳐지게 혐오했을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 행동을 하는 순간에도 역겹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마음이 달라졌다. 그런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머리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렸고 다시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일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때까지 이반 일리치는 꼭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푹 빠진 걸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결혼을 못할 이유는 뭐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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