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2분기 큐레이션 역시 1분기의 흐름을 이어가고자 철학, 르포(논픽션), 문학 순으로 내실 있게 구성했습니다. 4월의 여정을 함께할 모임이 이미 모집중으로, 활짝 열려 있으니 이번에도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참여 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https://www.gmeum.com/gather/detail/3469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반 일리치는 아내도 안쓰러웠다. 그때 갑자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떠나지 않으려 하던 것이 두 방향에서, 열 방향에서, 온갖 방향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식구들이 안쓰러웠고, 그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 모든 고통에서 가족을 구해내고 자신도 벗어나야 했다. 98쪽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다 끝났습니다. !" 누군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반 일리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 이반 일리치는 숨을 훅 들이마시다가 그대로 몸을 축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었다. 99쪽
이반 일리치의 죽음 98~99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며칠 전에 아흔을 바라보는 어른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요즈음은 '어떻게 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하시면서 주위를 자꾸 살피게 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는 동안 바친 만큼, 죽는 데도 한참 공을 닦고 쌓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읽을 때 건뜻 지나간 문장들 회원님들과 같이 보니 모두가 속뜻이 깊어 보였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요즘 제 주변에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그래도 나는 괜찮아서 다행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을 떠올리게 되죠. 나도 다를 게 없는 사람인 걸 새삼 한 번 더 깨닫습니다. <이번 일리치의 죽음>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이반 일리치의 부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느끼고 나니 이젠 그 생각이 좀 약해진 것도 같습니다. 남의 죽음을 결코 반가워해서는 안 되지만, 제 삶의 1인칭 시점은 언제까지나 나의 시점이기 때문에, 저도 소중한 지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는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이번 일리치의 죽음>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견디기 힘든 통증에 달라붙어 증식하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괴로웠던 이반의 마지막 순간들. 병에 걸린 건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불과하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죽음은 삶에서 벗어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시간앞에서 버티는 힘을 내려놓고 유유히 흘러가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울 거라는 것 또한 압니다. 우리는 속이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나의 고통이 더 큽니다. 나의 유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곁에 있는 가족들이 안쓰러워보였던 이반은 가족도 자신도 모든 고통에서 벗아나길 바랍니다. 죽음의 곁에서야 우리는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면서 함께 소리죽여 견딥니다.
[1] (p. 9)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아직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신문을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에게 건넸다. 검은색 테두리 안에 이반 일리치의 부고가 실려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항소법원 판사였던 이반 일리치 골로빈이 1882년 2월 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p.14) 죽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반 일리치도 아주 묵직한 모습으로 관에 누워 있었다. (...) 죽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반 일리치의 얼굴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진중해 보였다. 해야 할 일을 다 이루었으며 그것도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었다고 그 얼굴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또한 그 표정에는 살아있는 자들을 향한 책망과 경고도 담겨 있었다. [2]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삶은 굉장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아주 끔찍하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는 항소법원 판사로 일하다 마흔다섯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3]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고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1880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해는 이반 일리치의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 그들은 그렇게 살아갔다. [6] (p. 62)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끊임없이 절망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사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p. 63) 카이사르는 죽을 운명을 타고 난 인간이었고, 그러니 죽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 바냐, 이반 일리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10] (p. 89) 또 두 주일이 지났다. 이반 일리치는 그동안 내내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는 버려두고 소파에만 누워 지냈다. 거의 온종일 벽 쪽을 보고 누워 도무지 끝날줄 모르는 고통에 홀로 괴로워했고, 해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홀로 매달렸다. <이게 뭐지? 정말 죽는 건가?> 그러면 내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래 맞아.>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거지?> 이번에도 내면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냥 그런거야. 이유같은 건 없어.> 더 기다려봐도 다른 대답은 없었다. [11] (p. 93) 의사는 이반 일리치의 육체적 고통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그보다 훨씬 심하며,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바로 이 정신적인 고통이라고 말했다. (p. 94)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망쳐 놓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는 똑바로 누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 이반 일리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삶과 죽음을 가려버리는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똑똑히 보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의 육체적 고통은 열 배쯤 커졌다. (...) 그것 때문에도 이반 일리치는 그들이 증오스러웠다. [12] (p. 98)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떨어지면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비록 자신의 삶이 완전하지 못했다 해도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침묵하며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뜨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 이반 일리치는 아내도 안쓰러웠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2판 1쇄 발행 2024년 9월 10일,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순영 역자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인간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은 죽음을 맞는 순간의 자기반성을 통해서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부고소식으로 시작되는 이반일리치의 삶과 죽음의 여정(=생로병사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삶과 죽음의 진실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반 일리치가 삶과 죽음의 진실을 <받아들인> 후, 본인이 살아온 과거 삶의 옳고 그름에 대한 의혹과 판단을 <놓아버린> 후, 현재 아직 바로잡을 수 있는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에 집중한 이후에서야, (투병기간 내내 증오하던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며) 비로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정신적인 고통'을 떨쳐내면서 '죽음'을 온전히 맞이하게 되는 '끝'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광활한 우주 속 반짝이는 푸른 별로 탄생해서 희미한 붉은 별로 변해가며 소멸해버린 별의 탄생과 소멸을 숨죽이며 지켜본 듯한 느낌이었고, 안톤 체홉이 와병 중에 아내에게 보냈다는 편지 속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마치 당근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면서 (..) 내게 당근은 그냥 당근이듯 (..) 내게 인생은 그냥 인생이다") 오늘을 또렷이 살아가도록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는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의 세번째 여정도 그믐 회원님들의 밀도있는 감상들과 함께 충만한 여정이었습니다.
와!! @그믐30 님 후기가 감탄이 절로 ^^ 조용히 저장해 두어야겠습니다~~~ 😁 책전반의 내용을 간결하지만 깔끔하게 그리고 느낌도 단정하게 쓰셔서 부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 책을 읽고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외에 더 좋은 점을 다른 분들에게 알리고 싶은데 고장난 녹음인형처럼 '재미있어요 감동적이예요'라는 말만 반복해서 나와서 안타까웠거든요^^ 저의 팬심과 노력이 시간이 지나면 멋진 후기로 성장하겠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저와는 다른 결로 다양하고 좋은 리뷰들을 남겨주시는 그믐 회원님들 덕분에 <함께 읽는> 즐거움에 푸~욱 빠져 있어요. @거북별85 님의 자유롭고 솔직하고 생동감있는 리뷰들도 참 좋구요.
[책 뒷쪽 레프 톨스토이 연보 중에서] 1828년 9월 9일, 니콜라이 톨스토이 백작의 4남으로 야스나야 폴라나에서 <출생하다.> 부친은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한 퇴역 육군 중령, 모친은 볼콘스키 공작의 딸이었다. 1830년 8월 7일, <어머니> 마리야 니콜라예브나가 <여동생 마리야를 낳고 사망하다.> 1837년 1월, 모스크바로 이사하다. 6월 21일, <아버지> 니콜라이 일리치가 툴라에 갔다가 <거리에서 졸도해 사망하다.> 숙모 오스틴 사켄 부인이 고아가 된 다섯 형제자매의 후견인이 되다. 1841년 가을, <후견인> 오스틴 사켄 부인이 <사망하다.> 형 셋과 함께 다른 숙모인 펠라게야 일리치나 유시코프 부인의 카잔 집으로 옮기다. 1844년 카잔대학 동양어학과(아랍-터키어 전공)에 입학하다. 1845년 진급 시험에 낙제, 법과로 전과하다. 1847년 4월, 카잔대학을 중퇴하고 1848년 페테르부르크대학 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법학사 칭호를 얻다.> 이 해부터 23세까지는 모스크바를 오가며 도박, 술, 여자에 빠져 부랑 생활을 하다. 1851년 5월, 큰형 니콜라이가 복무하는 캅카스 포병대에 입대하다. 1854년 1월, 장교로 승진, 고향에 돌아오다. 3월, 다뉴브 파견군에 종군하다. 7월, 크림 군으로 옮겨져, 세바스토폴에서 전쟁에 참가하다. 1856년 11월, 군대에서 제대하다. 1860년 9월, <큰형 니콜라이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다. 1862년 9월, 궁정의 베르스의 차녀로 당시 18세인 소피야 안드 레예브나와 <결혼하다.> 1864년 사냥을 갔다가 <말에서 떨어져> 왼 손을 다치고 <모스크바에서 수술을 받다.> 1886년 <마차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쳐 <2개월을 병상에서> 보내다. .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간행되다. 1887년 3월, 육식을 끊다. 9월, 은혼식을 올리다. 1897년 3월, 와병 중인 체호프를 모스크바로 방문하다. 1901년 9월, 크림에 가서 <티푸스와 폐렴이 발병, 중태에 빠지다.> 1908년 <탄생 80주년> 축하회가 거행되다. 1910년 10월 26일 미명, 아내에게 <최후의 유언장을 남겨놓고> 딸 알렉산드라와 주치의를 데리고 <가출하다.> 10월 31일, 여행 도중 <발병>, 간이역 아스타포보에서 하차하다. 11월 3일, 최후의 감상을 일기에 쓰다. 11월 20일 오전 6시 5분, 역장 관사에서 <운명하다.>
3월 24일 (화) 완독을 마쳤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엔, 현대인들은 당대(똘스토이 생전)에 비해 조금 더 지식적으로는 밝아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식하다, 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이요. 하지만 >>> 자신의 인생이 정당했다는 의식이 바로 그를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더더욱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라던지 >>>이제 종말이, 진짜 종말이 다가왔지만 의혹은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던지 라는 문장에서 나와있는 것처럼. 제가 생을 살면서 만나 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는 자기 안의 족쇄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피상적인 것, 대체 누구를 위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를 일그러진 결의를 굳히는 것에 안간힘을 쓰고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현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유리 구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의사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정신적 고통이야말로 바로 환자를 가장 괴롭히는 더 끔찍한 고통이라고 덧붙였다. 라고 하는 아주 상식적이고도 이해가 가는 이 문장을 통해 고매한 정신, 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매한 정신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한 번쯤 자식에게도 권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모두 완독 축하드리고 주말 잘 보내세요.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닫자 계속 절망에 빠져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그저 이해되지 않았고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키제베터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 논법의 예를 따르자면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라고 했다. 그는 평생 이것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 절대 자기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여겨 왔다. 카이사르는 보편적 인간이므로 이것은 완벽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카이사르 같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들과 다른, 완전히 특별한 존재였다. ••• 카이사르는 정확히 필멸의 존재고, 따라서 그가 죽는 것은 옳지만 나, 바냐,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라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어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끔찍한 일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위안이 될 만한 다른 방어막을 찾아 헤맸고, 그 다른 방어막이 나타나서 잠시나마 그를 구원해 주는 듯도 했지만 금방 또다시 허물어졌다. 아니, 투명해졌다. 그 때문에 그것은 모든 것을 꿰뚫고 침투했으므로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를 제일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왠지 모두가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아플 뿐 죽어 가는 것이 아니며, 잠자코 치료를 잘 받으면 뭔가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묵인하는 거짓말 말이다. 그는 무슨 짓을 하든 더 괴로운 고통과 죽음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를 괴롭힌 것은 거짓이었다. 즉 모두가 그들 자신도 알고, 그도 아는 사실을 부인해 가며 오히려 그의 끔찍한 처지를 두고 거짓말을 하려 들 뿐 아니라, 그에게마저 거짓에 동참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일어나는 저 거짓, 저 무섭고 장엄한 죽음이라는 사건을 병문안과 커튼과 만찬의 철갑상어 수준으로 격하해 버리는 저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는 괴롭기 짝이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똑같았다. 희망이 한 방울 반짝이는가 하면 절망의 바다가 휘몰아쳤다. 끊임없이 통증, 또 빌어먹을 통증이 밀려오고 마음은 계속, 계속 똑같이 괴로웠다. 혼자 있자니 무섭고 또 괴로워서 누구든 부르고 싶지만 정작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 나빠지리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는 이 모든 것이 헛소리이자 공허한 기만임을 확실히,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의사가 무릎을 꿇고 상체를 세운 채 내려다보며 몸을 쭉 펴고, 위아래로 귀를 기울이고, 몹시 의미심장한 얼굴로 다양한 체조 동작을 펼쳐 보일 때면 깜박 넘어가고 만다. 변호사들이 연신 거짓말을 함을, 심지어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지 매우 잘 알면서도 그들의 연설에 깜박 넘어갔듯이 말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한창 대화를 나누다가 표도르 페트로비치는 이반 일리치를 쳐다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번득이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이반 일리치는 그들에게 성질이 났음이 분명했다.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지만 도무지 수습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침묵을 깨야 했지만, 아무도 감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 점잖은 거짓이 어쩌다 갑자기 허물어질까 봐,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봐 모두 무서워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모두 일어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 그들이 나가자 이반 일리치는 한층 가뿐한 느낌이었다. 거짓은 그들과 함께 떠났기에 더는 없었지만 통증만은 남았다. 한결같은 통증, 한결같은 공포가 딱히 더 괴로울 것도, 굳이 더 가뿐할 것도 없었다. 점점 더 나빠질 뿐이었다. 다시 일 분, 또 일 분이,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지나가고 계속 똑같고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제일 두려운 것은 피할 수 없는 종말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모두 일어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 그들이 나가자 이반 일리치는 한층 가뿐한 느낌이었다. 거짓은 그들과 함께 떠났기에 더는 없었지만 통증만은 남았다. 한결같은 통증, 한결같은 공포가 딱히 더 괴로울 것도, 굳이 더 가뿐할 것도 없었다. 점점 더 나빠질 뿐이었다. 다시 일 분, 또 일 분이,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지나가고 계속 똑같고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제일 두려운 것은 피할 수 없는 종말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자기가 삶을 잘못 살아왔다는,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런 가정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가장 높은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투쟁하려는 충동, 그가 당장 떨쳐 내려 했던 아득한 저 충동이야말로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직장도, 삶의 방식도, 가족도, 사교계와 직장의 이해관계도,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을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앞에서 이 모든 것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돌연 스스로 변호하는 데에 참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자 변호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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