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비록 자신의 삶이 완전하지 못했다 해도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침묵하며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뜨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톨스토이의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날카롭고 냉정한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니 저는 제 개인적인 상황과 겹쳐서 이것 저것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반일리치가 겪는 죽음에 대한 외로움, 두려움 보다는 이반일리치가 어린 시절부터 회고했을 때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되게 무섭더라고요. <죽음을 인터뷰하다>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흐지부지 살면 흐지부지 죽는다고 하는데요. 이반일리치는 치열하게 살지 않았나,,, 그치만 죽음 앞에서 인생이 다 무의미하고 헛되게 느껴질까 의아했고요. 결혼과 결혼 생활이 이반일리치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않고 아내를 진심으로 증오하는 모습도 참 속상하더라고요.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의 모습이 히스테릭할 뿐 가족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가 죽음을 앞에 놓고서야 어리광 피우고 싶고 자신을 측은하게 여겨주길 바라는 게 욕심 같기도 하고 그래요. 저희 아빠가 자꾸 겹쳐보여서 속이 아프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빠에게 가족은 그 정도밖에 안되는 거였고 그럼에도 아빠의 일에 영향 받고 챙겨야 하고 그럼에도 마음을 다하지 않고 좀 짜증내면서 챙긴다고 아빠가 억울해하고 화내는 모습이요.... 이반의 시점에서는 이기적으로만 보이는 아내와 딸의 입장이 자꾸 걸렸어요.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가. 결혼이란, 나이듦이란 다 이런 걸까 싶고 미래가 두렵더라고요.
*(수정) 그치만 왜 죽음 앞에서 인생이 다 무의미하고 헛되게 느껴질까 의아했고요. (아마 진짜 자신이 바라는 삶과 상류층을 따라가려는 삶을 고민해보지 않고 구분하지 못해서 그럴까요?) 아무튼,
저도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보이다가..배우자도 혹시..하는 마음이 생기다가..아니아니 나도? 하게 된다는 ㅎ
이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언제 자리를 비워줄 것인지, 그래서 자신의 존재 때문에 산 자들이 겪어야 하는 구속을 없애주고 그 자신 또한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지에 쏠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66~67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는 흐느껴 울고 싶었고, 누군가 그런 자신을 달래며 같이 울어주길 바랐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73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1년, 2년, 10년, 20년이 가도 늘 똑같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생기를 잃었다.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정말 그랬어.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만큼 내 발밑에서는 삶이 멀어져갔던 거야|ᆢᆢᆢ.
이반 일리치의 죽음 87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종종 그랬듯, 이 모든 것이 그가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자신이 늘 올바르게 살았음을 떠올리며 이 이상한 생각을 떨어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88쪽,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저는 이 소설이 '사로잡힘'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요. 그저 병에 걸린 게 아니라, 고통과 죽어간다는 생각 자체에 붙들리죠. 이반이 잠시라도 죽어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아내를 증오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의식이 조금 밀려났을까요..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죽음에서 자유로워지기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험이라, 아무리 그것을 전해보려 해도 듣는 사람은 어쩌면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죽을만큼 아프다, 그래서 죽어간다.. 그걸 이해하려 애쓰고, '괜찮아질거라'는 따뜻한 말을 건낼 수는 있겠지만 이반은 그 조차도 잔인한 거짓말이라 느꼈어요. 어떤 노력을 해도 고통받는 사람과 고통 밖에 있는 사람의 간극은 좁혀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반의 고통은 결국 혼자'만' 통과해야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반은 외롭고 깊이 고립되어 있어요. 이반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받아들이지 못한 채 죽음을 부정하고(고통이 또다시 알려주지만), 분노하고, 짜증내면서 충동적인 감정에 휘둘려요.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병세가 더 심해졌겠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죠. 더이상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지 않고, 그를 통과하는 감정들도 생긴 거 같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죽음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닿기도 하고요. 죽어가고 있다는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에게 조금 솔직해진 것 같아요.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걸 살아있는 동안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거에요. 어쩌면 끝까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하루쯤 더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놓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진짜 오는구나 싶을 거 같아요.
저 완독했어요!!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실은 그 이면의 삶을 얘기하고 있네요. 지난번 두 책도 좋았지만 이번 책은 더 생생해서 더 고민하게 하고 그래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물론 짧아서 더 좋.. ㅋㅋ 그리고, 역시 이야기의 힘!!은 세다고 느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모임에서 계속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있지만, 오히려 그러기에 어떻게 생을 살아갈 것인지 더 많이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모든 게 똑같군, 똑같아. 이 끝없는 낮과 밤. 조금 더 빨리 왔으면…. 뭐가? 죽음? 어둠? 아니야, 아니야. 모든 것이 죽음보다는 나아!’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가길 기다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기력함과 끔찍한 고독, 인간들의 잔인함, 하느님의 무자비함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로 서러워 울었다. ‘어찌하여 당신은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까?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왜 나를 이토록 끔찍하게 괴롭힙니까?’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대답도 없거니와, 대답이 있을 수도 없어서 울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카이사르의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반일리치를 보며 어쩜 이렇게 환자들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진단과 예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를 꺼리며 (당시의 의학수준에선 당연히 불확실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 많지만) 환자보다는 장기의 문제에 집착하는 의사들도 사실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못 받아들이는 분을 사실 의료인들끼리는 “insight 가 없다”며 문제환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이반일리치를 읽을 때마다 인간은 당연히 그럴 것이고 나도 아프면 저럴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는 되는데 여전히 이반일리치에 나오는 의사처럼 살게 되는 것은 일종의 관성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은 달라지겠지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이반 일리치의 죽음> 3월 4주차 ■■■■ ● 함께 읽기 기간: 3월 22일(일) ~ 3월 28일(토) ● 함께 읽기 분량: 10장 ~ 12장 (완독) 드디어 마지막 장에 다다릅니다. 지난 3주간 우리는 이반 일리치라는 한 남자의 '평범해서 더 끔찍한' 생애와 그가 마주한 고독한 투병기를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10장에서 이반 일리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자루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공포를 느낍니다.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신은 침묵하고, 그는 자신의 과거가 과연 정당했는지 처절하게 복기하기 시작하죠. '제대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제대로 죽을 수 있는가'로 치환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마주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을 끝까지 붙들고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지금'을 살아야 할지 각자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완독 소감과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완독의 기쁨을 함께 나눠요! ^^
사랑을 말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릴 때는 사랑이라는 말이 참 쉬웠습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굳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의 사랑은 그저 공기처럼 늘 곁에 있는 것이었고, 굳이 말로 꺼내 확인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낯선 질문들이 마음속에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을 표현한다는 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단순히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의 시간이나 체력, 혹은 작은 욕심을 덜어내어 기꺼이 내어주는 일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내 삶의 초점을 잠시 옮겨, 온전히 그 사람을 향하게 하는 정성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자주 머뭇거리게 됩니다. 가족 앞에서는 특히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챙겨주고, 이만큼 참고, 또 이만큼 함께 살아왔으니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다 이해할 거라 짐작합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는지 알지 않느냐”라는 말 한마디로 많은 설명을 대신하곤 하죠. 하지만 가끔은 그 믿음이 너무 우리에게만 편한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그 확신이 과연 온전한 진실일까요.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아주 담담하게, 마치 이미 다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죠. “언젠가는 가겠지, 사람은 다 그런 거니까” 하고요. 그런데 실제로 죽음이 눈앞에 닥쳐오면 사람들은 소리를 지릅니다. 공포에 질리고, 분노하고, 끝내 부정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었나요. 분명 다 받아들였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 이반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은 늘 남의 일이었고, 자신 또한 예외일 거라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마주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단순히 몸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옆구리를 파고드는 둔한 통증이었습니다. 점점 깊어지더니, 마치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무리 자세를 바꿔도, 아무리 생각을 돌리려 해도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살아온 삶이 과연 옳았는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정하고 성실했던 삶,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착실히 쌓아온 시간들. 그것이 정말 ‘잘 산 삶’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고통과 함께 밀려옵니다. 그 순간부터 통증은 단순한 육체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비명을 지릅니다. 아파서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확신할 수 없어서. 그때 그는 깨닫습니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과, 진짜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요. 사랑도 어쩌면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믿는 사랑,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넘겨버린 마음들 말입니다. 그 믿음 역시 우리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든 가짜 확신은 아닐까요. 사랑은 마음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배려 섞인 행동 하나, 사소한 선택 속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결국 상대에게는 영영 확인되지 않은 감정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사랑을 표현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아마 정답은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말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묵묵한 기다림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믿음 속에서는 단단해 보일지 몰라도 막상 필요한 순간에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안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졌던 이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짐작 대신 괜히 한 번 더 말을 꺼내보려 합니다. 사랑한다고, 혹시 잊으셨을까 봐요.
정말 '그믐'스러운 감동이..전 이 책 읽으면서 생각지 못한 지점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독하면서 마음에 남는 문장을 잘 담아두는 시간이 소중해집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 그래도 소회를 남기는 모습이 다행스럽네요 작년 가을 엄마가 떠나시며 자꾸 고마워를 말하고 쳐다보시던 눈망울이 너무 아픈데 또 위로가 되고 따스함으로 기억되네요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들이 남는 독서입니다 살면서 뜻하지 않게 꺽이는 지점에 잘 살피고 정비하고 그런 일들이 소중해집니다
「더 이상 싫다고 하지 마세요. 전부 다 제가 좋자고 하는 거니까요.」 그녀는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 모든 게 그를 위한 거니 그는 반대할 자격이 없다는 투였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이 하도 뒤엉켜서 이제는 뭐가 뭔지 도무지 가닥조차 잡을 수 없었다. 사실 아내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했다. 그런데 이제 대놓고 그렇다고 말하니까, 남편으로서는 오히려 반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믿을 수 없이 교활한 전략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p.99-10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너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냐?> <무엇이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거지?> <그래, 사는 것. 예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p.10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잘못 살아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올바르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며 그 이상한 생각을 바로 떨쳐 버렸다. p.111 처음 인생이 시작되던 바로 그 지점에 밝게 빛나던 한 점의 빛이 있었다. 그러나 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두워져 갔고, 어두워지는 속도 역시 점점 빨라져만 갔다. p.114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욱 끔찍했던 것은 그의 정신적 고통이었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고통이었다. (중략) <만약에, 의식적으로 살아온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그게 아닌 삶》이었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업무,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 가족, 사회와 직장에서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호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략)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p.118-119 그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던 것은 자기의 삶이 좋은 것이었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삶에 대한 정당화가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어 그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중략) 저쪽, 나락의 맨 끝에서 무언가 환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있을 때 종종 겪곤 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차가 실제로는 뒤로 가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갑자기 실제 기차의 방향을 깨닫게 되는 것과 흡사한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모든 게 그게 아니었어.」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그것>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대체 뭐지?」 (중략)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중략)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통증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통증은 어디로 갔지? 이봐, 너, 어디로 간 거야?> 그는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에 있었군. 그래, 뭐, 거기 있으라고 해.>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로 갔지?> 그는 그동안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p.123-125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p.111/114/118-119/123-125,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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