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가길 기다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기력함과 끔찍한 고독, 인간들의 잔인함, 하느님의 무자비함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로 서러워 울었다. ‘어찌하여 당신은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까?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왜 나를 이토록 끔찍하게 괴롭힙니까?’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대답도 없거니와, 대답이 있을 수도 없어서 울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카이사르의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반일리치를 보며 어쩜 이렇게 환자들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진단과 예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를 꺼리며 (당시의 의학수준에선 당연히 불확실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 많지만) 환자보다는 장기의 문제에 집착하는 의사들도 사실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못 받아들이는 분을 사실 의료인들끼리는 “insight 가 없다”며 문제환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이반일리치를 읽을 때마다 인간은 당연히 그럴 것이고 나도 아프면 저럴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는 되는데 여전히 이반일리치에 나오는 의사처럼 살게 되는 것은 일종의 관성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은 달라지겠지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이반 일리치의 죽음> 3월 4주차 ■■■■ ● 함께 읽기 기간: 3월 22일(일) ~ 3월 28일(토) ● 함께 읽기 분량: 10장 ~ 12장 (완독) 드디어 마지막 장에 다다릅니다. 지난 3주간 우리는 이반 일리치라는 한 남자의 '평범해서 더 끔찍한' 생애와 그가 마주한 고독한 투병기를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10장에서 이반 일리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자루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공포를 느낍니다.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신은 침묵하고, 그는 자신의 과거가 과연 정당했는지 처절하게 복기하기 시작하죠. '제대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제대로 죽을 수 있는가'로 치환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마주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을 끝까지 붙들고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지금'을 살아야 할지 각자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완독 소감과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완독의 기쁨을 함께 나눠요! ^^
사랑을 말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릴 때는 사랑이라는 말이 참 쉬웠습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굳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의 사랑은 그저 공기처럼 늘 곁에 있는 것이었고, 굳이 말로 꺼내 확인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낯선 질문들이 마음속에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을 표현한다는 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단순히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의 시간이나 체력, 혹은 작은 욕심을 덜어내어 기꺼이 내어주는 일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내 삶의 초점을 잠시 옮겨, 온전히 그 사람을 향하게 하는 정성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자주 머뭇거리게 됩니다. 가족 앞에서는 특히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챙겨주고, 이만큼 참고, 또 이만큼 함께 살아왔으니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다 이해할 거라 짐작합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는지 알지 않느냐”라는 말 한마디로 많은 설명을 대신하곤 하죠. 하지만 가끔은 그 믿음이 너무 우리에게만 편한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은 존재한다’는 그 확신이 과연 온전한 진실일까요.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아주 담담하게, 마치 이미 다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죠. “언젠가는 가겠지, 사람은 다 그런 거니까” 하고요. 그런데 실제로 죽음이 눈앞에 닥쳐오면 사람들은 소리를 지릅니다. 공포에 질리고, 분노하고, 끝내 부정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니었나요. 분명 다 받아들였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 이반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은 늘 남의 일이었고, 자신 또한 예외일 거라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마주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단순히 몸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옆구리를 파고드는 둔한 통증이었습니다. 점점 깊어지더니, 마치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무리 자세를 바꿔도, 아무리 생각을 돌리려 해도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살아온 삶이 과연 옳았는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정하고 성실했던 삶,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착실히 쌓아온 시간들. 그것이 정말 ‘잘 산 삶’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고통과 함께 밀려옵니다. 그 순간부터 통증은 단순한 육체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비명을 지릅니다. 아파서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확신할 수 없어서. 그때 그는 깨닫습니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과, 진짜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요. 사랑도 어쩌면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믿는 사랑,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넘겨버린 마음들 말입니다. 그 믿음 역시 우리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든 가짜 확신은 아닐까요. 사랑은 마음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배려 섞인 행동 하나, 사소한 선택 속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결국 상대에게는 영영 확인되지 않은 감정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사랑을 표현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아마 정답은 하나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말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묵묵한 기다림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믿음 속에서는 단단해 보일지 몰라도 막상 필요한 순간에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안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졌던 이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짐작 대신 괜히 한 번 더 말을 꺼내보려 합니다. 사랑한다고, 혹시 잊으셨을까 봐요.
정말 '그믐'스러운 감동이..전 이 책 읽으면서 생각지 못한 지점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독하면서 마음에 남는 문장을 잘 담아두는 시간이 소중해집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 그래도 소회를 남기는 모습이 다행스럽네요 작년 가을 엄마가 떠나시며 자꾸 고마워를 말하고 쳐다보시던 눈망울이 너무 아픈데 또 위로가 되고 따스함으로 기억되네요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적인 말들이 남는 독서입니다 살면서 뜻하지 않게 꺽이는 지점에 잘 살피고 정비하고 그런 일들이 소중해집니다
「더 이상 싫다고 하지 마세요. 전부 다 제가 좋자고 하는 거니까요.」 그녀는 비꼬는 투로 말했다. 이 모든 게 그를 위한 거니 그는 반대할 자격이 없다는 투였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이 하도 뒤엉켜서 이제는 뭐가 뭔지 도무지 가닥조차 잡을 수 없었다. 사실 아내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했다. 그런데 이제 대놓고 그렇다고 말하니까, 남편으로서는 오히려 반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믿을 수 없이 교활한 전략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p.99-10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너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냐?> <무엇이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거지?> <그래, 사는 것. 예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p.10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잘못 살아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올바르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며 그 이상한 생각을 바로 떨쳐 버렸다. p.111 처음 인생이 시작되던 바로 그 지점에 밝게 빛나던 한 점의 빛이 있었다. 그러나 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어두워져 갔고, 어두워지는 속도 역시 점점 빨라져만 갔다. p.114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욱 끔찍했던 것은 그의 정신적 고통이었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고통이었다. (중략) <만약에, 의식적으로 살아온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그게 아닌 삶》이었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업무,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 가족, 사회와 직장에서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호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략)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p.118-119 그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던 것은 자기의 삶이 좋은 것이었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삶에 대한 정당화가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어 그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중략) 저쪽, 나락의 맨 끝에서 무언가 환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있을 때 종종 겪곤 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차가 실제로는 뒤로 가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갑자기 실제 기차의 방향을 깨닫게 되는 것과 흡사한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모든 게 그게 아니었어.」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그것>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대체 뭐지?」 (중략)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중략)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통증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통증은 어디로 갔지? 이봐, 너, 어디로 간 거야?> 그는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에 있었군. 그래, 뭐, 거기 있으라고 해.>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로 갔지?> 그는 그동안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p.123-125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모노 에디션) p.111/114/118-119/123-125,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착각한 이반 일리치의 삶이지만 그에게 불운처럼 닥친 질병과 죽음은, 통증을 덜어주지도, 질환을 치료하지도 않은(못한) 채 점잖은 척 냉철한 척 x소리만 늘어놓는 의사들을 보며 = 법정에서의 자신의 모습도 똑같이 기만적이었음을 깨닫게 했고, 가족과 친구 중에도 진실한 애정과 걱정을 갖고 그가 낫기를 간곡히 바라는 사람 없이 각자의 허영과 욕심에만 집중하면서도 도덕적인 척 희생하는 척 가장하는 것을 보며 = 자기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사랑이나 이타심을 베푼 적 없이 껍데기뿐인 관계만 해왔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의 삶이 나쁜 것이었고 잘못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는 빛을 보게 되고 그 삶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됩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나고 자라,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비싼 집과 차를 사고,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중산층과 교류하는 삶은 대개 '잘 살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다 중병을 얻고 세상을 떠나면 하느님이 대체 왜 이런 벌을 내리시냐며 안타까워 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며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삶과 죽음의 진정한 빛을 만나게 되는 것이네요 이런 불편하고 직접적인 표현 대신, 정교한 짜임과 완벽한 전개로 압도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톨스토이 선생님 ♡
수북강녕님의 후기를 읽으니 또 생각이 깊어지네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살아나가는데요. 결국 죽음 앞에서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의 삶이 아니길, 자신에게 진정한 삶으로 잘 살아내지 못한 것에 허망함을 느끼지 않기를 또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이 알려주기전에..진실된 마음으로 관찰하고 닦아내며 알아가야겠더라고요..자신이 무엇이고 무엇과 함께하여야 하는지..
p104 (리디북) - '이게 뭐람? 이것이 정말 죽음이란 거야?'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가 답했다. '그래, 맞아. 왜 이런 고통을 겪는 거지?' 그러자 또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어.' 그런 대답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죽음에 대해 작가가 내린 정의는 어쩌면 이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새로 구입한 주택의 인테리어를 하다 옆구리를 심하게 부딪히고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와 가족들은 건강하고 원만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병의 증상들이 시작되며 이반 일리치는 발병의 원인을 집을 꾸밀 때 사다리에서 넘어지며 부딪힌 데서 찾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엄청난 발전을 해온 현대의학 기술로도 발병 원인을 찾지 못한 질병들이 제법 많습니다. 저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이 내게 온 것도, 내가 겪어야 할 병이 내가 아끼는 이에게 간 것도 아닙니다. 작가의 말 그대로, '그냥, 아무 이유 없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완독했습니다. 죽음에 직면해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고 대답없는 신에게 아이처럼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 보며 죽음의 순간엔 필연적으로 인간적인 번민과 고통에 휩쌓이는 것일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성찰하도록 만드는 톨스토이 작가님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장면들의 연속이네요. 본인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과 세속적인 삶들이 부딪혀 들리는 파열음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증폭되는 느낌이 컸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소설입니다.
십여년전 러시아 여행 가서 톨스토이 묘에 들를 귀한 기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누군가가 <이반일리치의 죽음> 일부를 낭독해 주셨는데 그 숲에서, 나무들 사이에서,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 아래서 들은 구절들이 인상에 크게 남았지요. 여행에서 돌아와 책을 사두고도 읽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함께 드는, 연로하신 아버지와 나이들어가는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이 행간과 글자 사이에 꽉 차 있어 당장은 간단한 소감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네요.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서 다시 한 번 이반 일리치의 생각들과 밑줄 그은 문장들을 읽어봐야겠어요. 함께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와, 야스나야 뽈랴나에 가보셨군요! 저도 20대 때 러시아에 갔었는데 막상 그곳에는 들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열린책들 ‘역자 해설’을 보니 톨스토이 무덤 방문기로 시작하고 있네요. 글이 아주 인상적이라, 조금 길지만 옮겨봅니다.
똘스또이의 무덤 모스끄바에서 남쪽으로 약 2백 킬로미터 떨어진 뚤라현의 작은 마을 <야스나야 뽈랴나>는 러시아 대문호 레프 똘스또이가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똘스또이 백작 가문의 영지인 이곳 저택에서 대문호는 가정을 꾸렸고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 『부활』에 이르는 대표작들 대부분을 집필했으며, 부인 소피야와 함께 열세 명의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대문호 일가가 살았던 저택과 주변 대지는 현재 똘스또이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해마다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야스나야 뽈랴나(빛나는 초원)>는 그 이름에 걸맞게 드넓은 풀밭, 떡갈나무와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 그림 같은 호수와 과수원을 자랑한다. 정문을 지나 <쁘로시뻭뜨>라 불리는 자작나무 오솔길을 따라 저택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화살표 모양의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 표지판이 가리키는 <똘스또이 묘소> 방면으로 한참 걷다 보면 나지막한 철제 울타리로 둘러쳐진 공터에 불쑥 솟아 있는 작은 흙무덤이 눈에 들어온다. 무덤이라기보다는 흙더미 위에 풀이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이 무덤에는 십자가도 없고 묘비도 없고 안내판도 없다. 사전 정보나 가이드 없이 온 방문객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모양새다. 평지에 관을 놓고 흙을 덮은 이 무덤은 그 <없음>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덤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똘스또이는 유언장에서 자신이 사망할 경우 화환도 추도문도 추도식도 다 생략하고 가장 간소한 장례 절차를 지켜 달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당했으므로 그리스도교식 장례는 어차피 불가능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기이하게 소박한 무덤은 전적으로 고인의 유지를 받든 결과라 할 수 있다. 필자는 2017년 5월에 똘스또이의 묘소를 방문했는데,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그랬던지 방문객은 아무도 없었다. 인적이 완전히 끊긴 무덤가에는 꽃 한 송이도 없었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휭휭거리는 비바람 속에 하늘과 땅과 나무와 풀만 있었다.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철제 울타리밖에 없었다. 거장은 죽어서까지 온몸으로 문명을 거부하고 있는 듯했다. 보는 이에 따라 이 무덤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모든 허세를 떨쳐 버린 거장의 고결함에 머리를 숙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조금 지나친 게 아닐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어딘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조금 뒷걸음을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반응이 어떠하건 이 무덤과 관련된 두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첫째, 여기 있는 것은 문명에 반대했던 한 위대한 인간의 죽음과 자연이다. 둘째, 삶과 죽음은 똘스또이가 일생 동안 중단 없이 탐구했던 주제인 만큼 이 기이한 무덤은 그 어떤 기념비보다도 웅변적으로 거장의 삶과 작품 세계를 요약해 준다. 그렇다. 똘스또이는 평생 동안 문명을 비판했고 평생 동안 죽음을 성찰했다. 그의 무덤은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역자 해설 : 죽음은 끝났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저는 8월에 갔었는데, 무성한 초록 숲 속에, 간간히 햇살이 나뭇잎을 뚫고 내려드는 작은 공터에, 무덤이라고 하니 무덤인가 싶은 소박한 무언가를 둘러섰던 일행들이 기억납니다. 오가는 길에 본 자작나무들도요. 나누어 주신 문장 덕에 그 특별하던 날을 다시 한 번 추억하게 되었네요.
@성동 님께서 나눠 주신 그날의 기억도 해설에 나온 묘사만큼이나 무척 인상적입니다. 톨스토이의 무덤 앞에 직접 서 본다는 건, 그의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나는 것과도 같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주 특별한 체험일 듯해요.
멋지네요 톨스토이 말만 들어보다가 이번에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처음 만났어요. 아직 잘 모르지만 무덤에 얽힌 일화도 인상적이에요. 작가와 어울려요.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다산북스/책 증정] 『모든 계절의 물리학』을 저자 &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번역가와 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송승환 시인과 함께 시를 읽습니다
[문학실험실/신간] 송승환 시집『파』(문학실험실, 2026) 출간 이벤트. 시집 완독회!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읽기 모임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버지니아 울프의 다섯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4월 16일, 체호프를 낭독합니다
[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싱글챌린지로 읽었어요
아니 에르노-세월 혼자 읽기 챌린지숨결이 바람 될 때MT 법학 싱글 챌린지밀크맨 독파하기
스토리 탐험단이 시즌 2로 돌아왔어요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10번째 여정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스토리 탐험단 9번째 여정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유디테의 자본주의 알아가기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그믐의 흑백요리사, 김경순
브런치와 디저트 제대로 만들어보기ㅡ샌드위치와 수프디저트와 브런치 제대로 만들어보기솥밥 제대로 만들어보기
혼자 읽어서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