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이런 태도를 역할이 바뀌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어요ㅜ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나봐요.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조금 늦게 시작합니다!
9-10,30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희망의 물 한 방울이 반짝 나타나는가 싶으면 이내 절망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통증에 이어 통증이, 고통에 이어 고통이 시작되었다. 늘 똑같았다. 혼자 있을 때면 견디기 힘들 만큼 우울해지면서 누군가를 부르고 싶어지지만,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상태가 더 나빠진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불쌍했다. 게라심이 옆방으로 가자마자 더는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지독한 외로움, 사람들의 냉혹함과 하나님의 무자비함, 그리고 하나님의 부재가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대체 제게 왜 이러는 겁니까? 왜 저를 이렇게까지 만든 겁니까? 왜, 대체 왜 저를 이렇게 끔찍이도 괴롭히는 겁니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어린 시절 그때는,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에 매달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정말로 행복한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을 느꼈던 사람은 이제 없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추억인 것만 같았다. 기억이 현재의 그, 현재의 이반 일리치가 존재하는 순간에 이르자, 그 시절에는 기쁨으로 여겼던 모든 것이 눈앞에서 녹아버리면서 보잘것없고 종종 추악하기까지 한 뭔가로 변해버렸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활기라고는 없던 공직 생활과 돈에 대한 걱정. 1년, 2년, 10년, 20년이 가도 늘 똑같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생기를 잃었다.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정말 그랬어.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만큼 내 발밑에서는 삶이 멀어져갔던 거야······. 이제 다 끝나버렸고, 죽음만 남아 있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무엇 때문이지? 이럴 수는 없어.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추악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삶이 이처럼 추악하고 무의미한 것이라면, 왜 죽어야 하며 그것도 이처럼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 걸까? 분명 뭔가 잘못된 거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때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동료 시바르츠가 위층에서 내려오다 표트르가 들어서는 걸 보고는 걸음을 멈추고 한쪽 눈을 찡끗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참 어리석게 살았어요.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 죽었단 말이지. 그런 일이 언제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런 일은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났을 뿐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날 리도 없다는 지극히 그다운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냥 우울한 기분에 젖은 것뿐이며, 시바르츠가 얼굴 표정으로 분명하게 말했듯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진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제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관심을 보이며 그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자세히 물었다. 마치 죽음은 원래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며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9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시바르츠 얼굴 표정으로 이반 일리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문장이 흥미로워요. 이반 일리치에 대해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는 서술 방식이라고 할까요.
이반 일리치는 그 돈으로 샤르메르 양복점에서 제복을 맞추었고 '결과를 미리 생각하라'는 뜻의 라틴어 글귀를 새겨 넣은 매달도 시곗줄에 달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24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는 예심판사가 되고서도 전임지에서 특별 보좌관으로 일할 때와 다름없이 반듯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과 사를 구분했기 때문에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26면) 이반 일리치는 이런 권력을 절대 함부로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권력을 부드럽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자신이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그 권력을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직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매력이었다. (27면)
그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반 일리치에게 그 결혼은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 같은 여성을 아내로 맞아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29면)
양귀자 소설 『모순』으로 독서모임 할 때,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여주 주인공이 두 남자를 두고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거든요. 모임 참석자는 모두 여성이었고요, 배우자가 책임감 있다고 느껴질 때, 믿음직하다고 생각 될 때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소설에서 '결혼을 결심한 이유'라는 문장 수집을 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딱 나왔습니다.
공적 업무에서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사교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은 허영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가 진정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카드놀이를 할 때였다. 시끄럽지 않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즐기는 카드놀이였다. 반드시 네 명이 모여 앉아 머리를 쓰면서 신중하게 게임을 한 뒤 저녁 식사를 하며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이반 일리지에게는 진정한 기쁨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3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예전 같으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그게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에 맞서 싸우고 싶다는 충동, 마음속에 어렴풋이 떠오를라치면 서둘러 떨어내버렸던 그 충동, 그것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의 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가 다 거짓일 수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 해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변호하려 하는 것이 너무도 헛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호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나이가 들어가니 요즘은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지는데 (보통 동료나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이지요) 그때마다 얼마를 보낼 것인가 (보통은 10만원으로 통일하고 각별한 사이면 20만원) 내가 직접 가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게 되는게 1장의 표뜨르 이바노비치의 세속적인 모습과 그리 다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얼마전엔 학부때는 친했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친구의 부친상에 한강을 건너 과연 가야 할 것인가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갔더랬죠 (그래도 가서 잘 했다 싶긴 했어요) 그게 나쁘다 좋다 판단할 건 아니고 결국 죽음이란 과정이 일반적으로 관계의 단절과 소외, 고독을 거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렇지 않으면 좋겠고, 저 자신은 그러고 싶진 않으며, 잘 준비하면 관계와 일상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반 일리치의 삶은 대체로 그가 마땅하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즉 유쾌하고 점잖게 계속 흘러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3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연경 옮김
이반 일리치의 죽음노벨 연구소 선정 최고의 작품.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호이자 전 세계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에 심오한 영향을 끼쳐 온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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