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시바르츠 얼굴 표정으로 이반 일리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문장이 흥미로워요. 이반 일리치에 대해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는 서술 방식이라고 할까요.
이반 일리치는 그 돈으로 샤르메르 양복점에서 제복을 맞추었고 '결과를 미리 생각하라'는 뜻의 라틴어 글귀를 새겨 넣은 매달도 시곗줄에 달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24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는 예심판사가 되고서도 전임지에서 특별 보좌관으로 일할 때와 다름없이 반듯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과 사를 구분했기 때문에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26면) 이반 일리치는 이런 권력을 절대 함부로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권력을 부드럽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자신이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그 권력을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직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매력이었다. (27면)
그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반 일리치에게 그 결혼은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 같은 여성을 아내로 맞아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29면)
양귀자 소설 『모순』으로 독서모임 할 때,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여주 주인공이 두 남자를 두고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거든요. 모임 참석자는 모두 여성이었고요, 배우자가 책임감 있다고 느껴질 때, 믿음직하다고 생각 될 때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소설에서 '결혼을 결심한 이유'라는 문장 수집을 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딱 나왔습니다.
공적 업무에서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사교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은 허영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가 진정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카드놀이를 할 때였다. 시끄럽지 않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즐기는 카드놀이였다. 반드시 네 명이 모여 앉아 머리를 쓰면서 신중하게 게임을 한 뒤 저녁 식사를 하며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이반 일리지에게는 진정한 기쁨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3면,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예전 같으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그게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에 맞서 싸우고 싶다는 충동, 마음속에 어렴풋이 떠오를라치면 서둘러 떨어내버렸던 그 충동, 그것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의 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가 다 거짓일 수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 해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변호하려 하는 것이 너무도 헛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호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나이가 들어가니 요즘은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지는데 (보통 동료나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이지요) 그때마다 얼마를 보낼 것인가 (보통은 10만원으로 통일하고 각별한 사이면 20만원) 내가 직접 가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게 되는게 1장의 표뜨르 이바노비치의 세속적인 모습과 그리 다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얼마전엔 학부때는 친했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친구의 부친상에 한강을 건너 과연 가야 할 것인가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갔더랬죠 (그래도 가서 잘 했다 싶긴 했어요) 그게 나쁘다 좋다 판단할 건 아니고 결국 죽음이란 과정이 일반적으로 관계의 단절과 소외, 고독을 거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렇지 않으면 좋겠고, 저 자신은 그러고 싶진 않으며, 잘 준비하면 관계와 일상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반 일리치의 삶은 대체로 그가 마땅하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즉 유쾌하고 점잖게 계속 흘러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3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연경 옮김
이반 일리치의 죽음노벨 연구소 선정 최고의 작품.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호이자 전 세계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에 심오한 영향을 끼쳐 온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갑자기 소름끼쳤다. 잘 살고 있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그게 함정일지 모른다는.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이반 일리치의 죽음> 3월 2주차 ■■■■ ● 함께 읽기 기간: 3월 8일(일) ~ 3월 14일(토) ● 함께 읽기 분량: 4장 ~ 6장 지난 모임에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이 생각납니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면 슬픔보다도 '어디를 봐야 할지', '절은 언제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고 당혹스러웠던 경험들 말이죠. 재미있게도 1장에서 마주한 주인공의 친구, 표트르 이바노비치 역시 그랬습니다. 고인의 얼굴을 마주하기 두려워 성호를 긋는 타이밍을 고민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 저녁에 있을 카드 게임을 더 걱정하던 그의 서툰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를 닮아 있어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지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어쩔 줄 모르는 이방인'이 되곤 하나 봅니다. 이제 이번 2주차(4장~6장)에서는 그 '어색한 조문객'들의 시선을 벗어나, 고통의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이반 일리치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봅니다. 작품 속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어느 부인이 '성상(聖像)을 이용한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때, 이반 일리치는 어느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연약해진 환자들에게 비과학적인 치료법들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참 비슷하다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고통 속에 홀로 깨어있는 밤, 이반 일리치의 곁을 지키는 마음으로 이번 주도 함께 읽어 내려가 볼까요? 여러분의 소중한 감상들을 기다리겠습니다. ^^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어둠을 응시했다. '죽음이라. 그래 죽음이란 말이지. 그런데도 저들은 모르고 누구 하나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나를 딱하게 여기지도 않는구나. 그저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있어. 저들도 다를게 없지. 언젠가 죽을 거야!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저들은 나중에 가는 것일 뿐, 누구도 그 길을 피할 수 없는 거야! 저 짐승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미움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끔찍한 공포를 겪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p. 59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그래, 병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생각해보자. 옆구리를 부딪쳤는데, 그날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다음날도 괜찮았어. 그러다 조금씩 쑤시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졌지. 그래서 의사를 찾아갔고, 자꾸 걱정이 되고 우울해져서 또 의사를 찾아갔어. 그렇게 나락으로 다가가고 있었던 거야. 자꾸만 힘이 삐지면서 점점 더 나락으로 가까이 갔던거야. p. 59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어제 3장까지 읽었습니다. 작가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삶에 관한 이반과 주변인들의 심정과 상황들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도 꼼꼼하고 세밀하게 표현한 까닭에 읽는 내내 제 기분은 언짢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인류가 집단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타인 중심의 삶'은 우리의 삶을 지켜가는 태도 중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가 싶었습니다. 작가는 인간이 지닌 이기심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과연, '가까운 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멀지 않은 친척 어르신 두 분도 그러했지만 나름 가깝다 여기던 지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떠올렸던 건 그 분들 삶의 파편들이었습니다. 직접 혹은 전해 들은 그분들의 생활 패턴이나 마주 앉아 나눈 대화 속에서 얻었던 그분들의 생각과 지식이 전부여서 그 기억의 조각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만 마치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아마추어 감독이 어설프게 이어 붙인 영상처럼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죽음은 결국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피는 계기가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1886년 즈음의 러시아는 심각한 사회적 불균형으로 인해 농민들의 경제적 빈곤과 관료층의 물질적 풍요가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고 검색이 됩니다. 농부이던 게라심의 "하느님의 뜻인걸요. 우리 모두 그렇게 될 텐데요." 라는 말을 통해, 이러저러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한 증인으로서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옅볼 수 있습니다. 죽음이 닥치면, 산해진미를 맛보며 사는 고급 관료도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농민도 모두 같은 모습으로 관에 눕혀지고 스스로는 절대 그 안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실상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멋진 집을 사고 그 집을 더욱 멋지게 꾸며 결국은 지인들 입에서 '멋지다'는 말을 듣고 흡족해 하는 이반 일리치의 삶은, 어떤 브랜드인지 구입가가 얼마인지 딱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가방과 팔찌를 챙겨 외출을 준비하는 요즘의 이들과 거울처럼 닮아 있습니다. 아, 제가 몇 년 전 들은 단어가 떠오릅니다. 자동차 판매점에서 사용하는 단어라고 하는데요. 바로 '하차감'입니다. 한국에서만 쓰는 단어라는 설명을 덧붙이더군요.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3장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작가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시작을 알리려 하는 군.'
3장 마지막에서 ' 모든 것이 별다른 변화 없이 흘러갔으며,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라고 나오고. 4장 시작에 ' 가족 모두 건강했다. 이반 일리치가 이따금 입 안에 이상한 맛이 느껴지고 왼쪽 옆구리가 어쩐지 거북하다고 하긴 했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라고 하는데 '이반 일리치를 죽음에 몰고간 고통'의 시작점은 타인 중심의 삶에서 더 이상 추구할 만한걸 못찾으니 나타나게 되는 그런 정신적 허무감에서 비롯된 균열일까요?
3장의 마지막을 제가 그렇게 해석한 이유는 이반 일리치의 모든 가치가 타인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1장을 읽으며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의 삶이 가장 만족스럽게 흘러간 후에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걸 짐작하는 거죠. 완벽한 '타인 중심의 삶'의 끝은 무엇일까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버려둔 채 지나온 세월에 대한 스스로의 책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이반 일리치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만큼 자기 자신에게도 정성을 들였다면 조금은 일찍 병세를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당시의 의료 수준으로는 (저는 이반 일리치의 병명을 췌장암으로 추측합니다) 췌장암을 진단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만, 결과가 어쨌거나 적어도 고통 속에서 그가 혼자 남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타인을 위한 삶이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지 이반 일리치를 통해 알게 되는 것 같아요ㅜ
그는 자신이 죽는 다는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거짓되고 잘못되고 병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올바르고 건강한 생각을 기져다 놓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 생각은 그저 생각만이 아닌 분명한 현실로 다시 그 앞에 다가와 단단히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막아주던 예전 사고 흐름으로 돌아가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 이전에 죽음에 관한 생각을 막고 감추어주던 모든 것이 이제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p. 63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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