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좋아요' 버튼이 있다면 백만개 누르고 싶네요. 러시아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올 때 모델로 삼았던 나라가 프랑스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러시아 귀족사회에서는 프랑스풍이 유행이었다고도요. 그래서 '장'이군요. 이반(일리치)과 장(자크 루소), 한스(안데르센)와 후안(후안 미로,)이 같은 이름이라니... (첫 번째로 생각나는 성들을 붙여보았어요)
이반의 아내가 이반을 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속물근성과 허영심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느껴졌습니다. 남편이 죽을듯한 고통에 시달리는데, 공연을 우아하게 보러가며 '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이 역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지만,결국 죽음앞에 평범하고 주변인들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의 허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오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지금 체홉 작들도 같이 읽는 중인데, 그 시절 프랑스는 부와 교양의 상징?같은 역할을 했던 거 같더라고요. 가장 고통스럽고 외로운 그 순간에 장이라고 부르다니, 잔인한 묘사라고 생각했어요. 이반과 아내의 허영 가득한, 서로에 대한 사랑보다 그 구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그 삶이라면 반대로 아내가 아팠더라도 이반 역시 외부로 보여지는 활동을 했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허상이지만 그게 ‘가족‘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거 였을지도요..
맞아요. '3장'에 나오는 것처럼, 아내와의 결혼이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면서, 동시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고 여기는 생각에서부터 이반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가족의 의미는 이미 이렇게 끝나리라 결론지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괜히 미안할때 다정해지는 그런 느낌인거군요!! 우와 몰랐습니다 ㅎㅎ
저도 이반 일리치의 병명이 궁금해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통증이 왼쪽 복부인 점으로 보아 맹장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발병 후 '입에서 악취가 나는'것 같은 증상은 췌장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소화불량이나 구강 건조로 인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높이 들면 통증이 완화되는 것 같다는 것으로 짐작해 보면 췌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알 수 있겠습니다. 발병이 시작되고 사망까지의 기간이 육개월을 조금 넘긴 것으로 보아 발병 당시 이미 말기 췌장암이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1880년대에는 췌장암에 대한 진단도 치료도 불가능하던 시기라고 합니다. 증상 완화를 위한 처방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봅니다.
오호 췌장암이라면 현대에도 치료가 힘든 암중의 하나 아닙니까. 저자가 신장과 맹장 이야기만 하고 췌장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엔 이 질환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건 맹장이나 신장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은 여기에 있다가 이제 서서히 떠나가고 있어. 그리고 난 그걸 막을 수 없는 거야. 그래, 이렇게 나 자신을 속여봐야 뭐하겠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나만 빼고 다들 분명히 알고 있잖아.
이반 일리치의 죽음 5장,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모두가 죽는다는 이 절대불변의 진리가 나에게 적용될 때는 왜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가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이 정도로 아파도 질병과 죽음을 이제야 연관지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이반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한들 뭐가 다를까.. 하는 맘이 듭니다.
맞아요. ! 저는 죽음에 관한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죽음에 관한 책이든 사람이든, 무엇을 통해서든 많이 접하게 될 수록 익숙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엔, 죽음이 익숙해져도 되나 하는 괜한 죄책감이 생길 때도 있었는데, 농부 게라심의 생각처럼, 모두가 언젠가 죽을텐데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하면 계속해서 익숙해지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항상 죽음을 곁에 둬야 우리 삶도 그만큼 빛나지 않을까요
그녀는 남편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서둘러 식사를 끝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자신이 잘 참아낸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남편이 포악한 성격을 지녔고 남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결론을 내린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그녀는 남편이 미워졌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7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법원에서도 이반 일리치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땐 사람들이 자신을, 마치 머지않아 일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 바라보듯 주의 깊게 살피는 것처럼 느꼈고, 또 어떤 땐 별안간 동료들이 건강을 염려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허물없는 사이인 양 친근하게 놀려대는 것처럼 느꼈다. --- 이반 일리치는 십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몹시 마음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86,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반 일리치가 딱하면서도, 그의 아픔에 무감하고 '구경'하는 이들의 시선을 보며 저를 생각했어요. 이란에서 발생한 전쟁의 참화를 보며, 아, 나는 저 땅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저를요. 이반 주변의 인물들과 제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잠시도 쉬지 않고 이반 일리치를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통증이 의사의 모호한 설명과 합해져 이전과 다른, 그리고 이전보다 더 심각한 의미로 다가왔다.' 4장.. 의사가 내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텐데.. 의사들은 저마다의 권위를 내보이기 위한 진단을 하는 것 같아 보이네요.. 환자를 중심에 두고 본다면 저렇게 제각각의 진단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은게.. 그렇게.. 알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 이반 일리치를 더욱 죽음과 가까운 수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시무시하고 낯선 일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일이 이반 일리치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이반 일리치 한 사람뿐이었으며, 주위 사람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 이런 사실이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장,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내 고통 밖의 세상이 평화로울때.. 누워서 '그믐'의 세상을 거닙니다.. 어떤 이들은 '포탄'을 피하고 있을텐데요..
어떤 면에서는 어쩌면 제가 이반 일리치의 입장에서 있을지 모르겠다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저는 그 밖 사람들의 역할이었네요.. 세상이 이반 일리치 역의 누군가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는 절대 없는 노릇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스쳐만 지나가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모두와 모든 것들이 가끔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할 테지요..
어떤 이들은 포탄을 피하고 있을 터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럴 때 책을 읽을 수 있는 제 호사가 더 감사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불편하기도 한 날들이네요.
3월 11일(수) 오늘은 4장과 5장을 읽어보았습니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의 스토너 같은 경우는 그래도 죽기 직전에 핀치가 찾아와줬는데. 이반 일리치는 많이 불쌍하네요. >>>그렇게 그는 파멸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이해하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 >>>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나 말고는 모두들 다 분명히 알고 있다. 쯧쯧. 그래도 그가 나름 진지하게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보고. 아내가 손님을 맞이하는 동안 서재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그려지긴 했으나, 왠지 모르게 자업자득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매일같이 메멘토모리를 무의식,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사는 저에게는 이반 일리치의 다 죽어가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까지 큰 임팩트는 없지만 역시나 죽음이란 것은 저에게든 누구에게든 필연적인 수순이기에.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즉, 가능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매순간 스스로에게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몇 안되는 삶의 당위 같은 것들은 느껴집니다. 사실 당위적 사고를 매우 경계하는 편이긴 한데 (REBT 비합리적 신념) 그것과는 별개로, 한 인간이 인생을 살 때는 매사 근본적인 것, 본질적인 것, 깨닫는 것,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 여유를 갖는 것 등의 것들은 정말이지 중요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반짝이던 이반 일리치라는 별이 초신성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조차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처럼 굴고 있는데. (아내를 증오하고 확 밀쳐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낌)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하네요. 그럼 다들 수고하세요!
존 윌리엄스 <스토너>에서 스토너는 이반 일리치와는 반대의 삶, 외부의 명성과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지극히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그의 이야기를 읽을때 뭔가 가슴이 깊게 충만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록 죽음은 좀 허망하게 찾아왔지만, 삶의 밀도가 그토록 높았고 또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친구가 마지막까지 있었고 ,무엇보다도 제삼자의 보살핌이나 애정을 간절하게 바라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조용히 마무리짓는 모습에서 스토너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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