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

D-29
이제 더는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무시무시하고 낯선 일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일이 이반 일리치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이반 일리치 한 사람뿐이었으며, 주위 사람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 이런 사실이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이 어색한 자리는 이반 일리치의 집사 소꼴로프가 들어온 덕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에게 그녀가 점찍어 둔 묏자리를 사려면 2백 루블이 든다고 보고했다. 훌쩍임을 멈춘 그녀는 희생양이 된 표정으로 뾰뜨르 이바노비치를 바라보더니 프랑스어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어쩔 수 없는 처지를 십분 이해한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 주었다. 「담배 한 대 태우시지요.」 그녀는 관대하면서도 낙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한 뒤 소꼴로프와 묏자리 가격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뾰뜨르 이바노비치의 귀에 땅값에 대해 이것저것 신중히 따져 묻고는 그중에서 제일 적당한 것으로 고르는 미망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묏자리를 정한 뒤에도 미망인은 성가대에 관해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소꼴로프는 방에서 나갔다. 「모든 걸 이렇게 제가 직접 처리한답니다.」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는 탁자 위에 있던 앨범들을 한쪽으로 치우며 뾰뜨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똘스또이의 중단편집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가 석영중(고려대 교수), 정지원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되는 '세계문학' 시리즈의 238번째 책이다.
이 대목을 읽으니 예전에 장례식장에 가서 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장례업체 사람이 와서 상주와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하고 갔는데, 상주가 와서 말하길 봉안함을 어떤 것으로 할지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꾸 사람이 와서 계속 뭔가를 골라야 하고 가격대를 선택해야 한다고, 아마 쫌 있으면 다른 문제로 또 올 거라고…
그녀는 담뱃재가 탁자에 떨어지려 하자 잽싸게 뾰뜨르 이바노비치의 앞에 재떨이를 밀어 놓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슬퍼서 실질적인 일을 못 한다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오히려, 위로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그이를 위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려는 듯 손수건을 집어 들다가 갑자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는 듯이 몸을 추스르고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선생님께 상의드릴 게 있어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도 담뱃재가 탁자에 떨어지려는걸 잽싸게 받아내는 그 순발력에 픽 웃음이 나옵니다. 아마 그것도 너무 슬프지만 해야만하는 실질적인 일 중 하나겠지요~.
@아침바람 동감입니다~
「마지막 며칠 동안에 그이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했어요.」 「많이 힘들어했던가요?」 뾰뜨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얼마나 끔찍하던지요! 마지막에는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 계속 소리를 질렀어요. 사흘 밤낮을 내리, 똑같은 소리로 비명을 질렀어요. 저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걸 어떻게 견뎌 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방문 세 개를 넘어서까지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아! 제가 그걸 어떻게 다 견뎌 낸 건지!」 […] 미망인은 이반 일리치가 실제로 겪은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소상하게 주워섬기더니(자세한 설명을 통해 뾰뜨르 이바노비치가 알게 된 것은 이반 일리치의 고통이 미망인의 신경을 너무나 자극해 그녀가 무척 힘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아내는 남편의 고통 때문에 본인이 힘들었다는 사실과 국가지원금에만 꽂혀 있네요. 이 부부는 도대체 어떤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인생을 살아온 건지!!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녀가 코를 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코를 다 풀자, 그는 말문을 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비로소 그에게 정작 말하고 싶었던 용건을 꺼냈다. 그 용건이란, 남편의 사망 시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뾰뜨르 이바노비치에게 연금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척했다. 하지만 분명 미망인은 이미 아주 세세한 부분은 물론 심지어 뾰뜨르 이바노비치도 잘 모르는 정보까지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빌미로 국가에서 받아 낼 수 있는 모든 지원금의 종류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돈을 더 긁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짐짓 생각해 보려고 애쓰는 척하다가 예의상 정부의 인색함을 비난하고는 더 이상의 방법은 없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이 조문객을 떨쳐 버릴까 궁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를 알아차린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담뱃불을 끈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미망인의 손을 한 번 잡아 준 후 다른 방으로 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정지원 옮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 양귀자의 '모순' 에서 ) " 이 글귀가 생각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애도의 감정과 더불어 자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고요. 이바노비치의 주변 인물도 다를 수 없겠지요
아! 양귀지의 "모순"에 그런 글귀가 있었군요. 이래서 함께 읽기를 해야 합니다. 혼자 읽으면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정말 이 글귀는 이 작품와 와 닿네요....
결혼한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이반 일리치는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삶에 몇 가지 안락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즉 상류사회가 인정하는 고상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일정한 원칙을 세워 지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 그리고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세상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 들어맞는 그럴싸한 결혼생활의 모습을 표면상으로나마 완벽하게 갖추는 일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57p,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카이사르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었고, 그러니 죽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 바냐, 이반 일리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법률학교 재학 중 그는 참으로 역겨운 행동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는 그런 행동을 한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체 높으신 분들도 그런 행동을 종종 저지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생각을 바꿨다. 비록 좋은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싹 잊어버리고 그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기로 한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와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늦게 참여했네요. 저는 2-3장에서 톨스토이가 전문직의 위선과 허영을 적나라하게 저격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너무 심하잖아, 싶으면서도 하나하나 곱씹어 읽어보면 딱히 부정할 수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 "역겨운 행동"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고 책을 읽으면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끝까지 나오진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행동을 한 자신에게 대해 혐오감"이라는 것은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생각을 바꿨다"는 것은 점차 집단의 hidden curriculum에 젖어갔다는 얘기이겠죠. 저에게는 참 생각이 많아지는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또다른 소설 <부활>이 떠올랐어요. <부활>의 주인공도 젊은 시절 그런 행동을 저질러 놓고 잠시 죄책감을 느끼지만 곧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다 잊고 살다가 세월이 흐른 뒤 재판정에서 마주치게 되죠. 톨스토이가 청년 시절에 방탕하게 살던 자전적 체험이 반영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가 이 대목에도 살짝 한 토막 들어간 게 아닐까.. 그래서 아마 <부활>의 네흘류도프가 했던 짓과 비슷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봤습니다.
공감합니다. 꼭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사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삶의 많은 영역에서 이럴 것 같아요. 이반 일리치의 삶이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했다는 문장에는 이런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실은 괜찮지 않은 일을 해놓고도 점차 마음의 불편함을 잊어버린다는 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건 대단히 끔찍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물음 같아요.
저부분이 저도 궁금했어요. 저 문장구조가 특히 더 쿡쿡 찌르는 효과를 주는 거 같아요. 법률학교, 역겨운 행동, 지체 높으신 분들,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도 개의치 않기로 하다, 이런 표현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열되어 있다니- 다들 그렇게 살지, 누구나 그렇지라는 말에 저 '법조계 지체높은' 사람들이 들어올 줄 몰랐고, 그들이 들어올 줄 몰랐다면서 내가 들어가는 건 '평범한 거'라며 괜찮다고 생각하는 저도 이상하고 모순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불킥, 양심에 찔릴만한 일 정도는 그럴 수도 있지만, 역겨운 행동이라고 표현할만한 건 (제가 생각하는) 평범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반의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가 저의 약하고 가끔 악한 모습과 전반적으로 겹쳐진다고 생각하면서 끄덕이며 읽었더니 저런 갸우뚱한 지점을 놓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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