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 <그 산이 정말~> 혼자 읽어볼게요.

D-29
이렇게 자연에 대해서 표현한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좋았다. 글만 읽어도 푸릇하고 상쾌해지는 기분. 애호박도 호박도 멋들어진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반가웠고, 나를 가장 반겨 주신 분은 역시 할아버지였다. 사랑의 할아버지는 반년 전보다 훨씬 더 고적하고 추비해 보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고적하다 2 孤寂하다 (형용사) 외롭고 쓸쓸하다. 추비하다 3 麤鄙하다 (형용사) 거칠고 더럽고 낮다.
서울 문밖에서 궁색하기 짝이 없이 사는 주제에 시골 가면 어떡하든 뻐길 궁리부터 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방세도 들어오고 오빠가 월급도 많이 타 와 엄마는 삯바느질을 덜 했다. 오빠 몰래 꼭 엄마의 솜씨를 원하는 사람한테만 해 주는 것 같았다. 오빠는 효성이 지극해서 엄마가 남의 바느질 하는 것만 보면 슬픈 얼굴로 골을 냈다. 내 집에서 산다는 것과 월급을 타서 한 달을 설계하고 식구끼리 서로 화목한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어린 마음에도 느껴졌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엄마가 바라는 지식의 출세도 물론 일제의 그늘 아래에서의 일일 뿐, 엄마는 조선의 자주적인 운명에 대한 바늘구멍만 한 예감도 갖고 있지 않은 범용한 아낙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범용하다 1 凡庸하다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하다. 변변하다 1. 됨됨이나 생김새 따위가 흠이 없고 어지간하다. 2. 제대로 갖추어져 충분하다. 3. 지체나 살림살이가 남보다 떨어지지 아니하다.
오학년 때였는데 처음으로 친한 친구가 생겼다. 전학생이었는데 선생님이 나하고 짝을 시켰다. 전학해 온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동안 마음이 순한 아이하고 짝을 시키는 게 선생님들의 공통된 버릇이었다. 나는 반에서 존재 없는 아이여서 아무 일에도 뽑힌 적이 없건만 그런 일엔 단골로 뽑혔다. 나는 속으로 모욕감을 느꼈지만 드러내 놓고 싫은 눈치도 못 했다. 나는 내가 착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바라는 유일한 기대를 배반할 용기가 없어 그런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나는 그런 환경에서도 구김살 없이 명랑한 그 애가 불쌍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 그 애는 손수 부엌에 들어가 감자 껍질을 몽당숟가락으로 박박 벗기더니 쪄서 나에게 대접했다. 그런 꾸밈없는 태도도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나에게도 드디어 동무가 생겼다는 걸 느꼈다. 그때까지 놀 애가 아주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내 우정에 대한 갈망을 채워 준 건 그 애가 처음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개성으로 수학여행 떠나는 날 엄마는 경성역까지 배웅을 나와서 혹시 개성역에 누가 마중을 안 나오더라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잘 놀다 오라고 타이르고 들어갔다. 제발 아무도 안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나올 것 같아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채 기차가 개성역에 도착했다. 육학년은 총 다섯 반이었다. 개성역 앞 광장에 반끼리 줄을 서서 인원을 점검할 때였다. “완서야, 완서야.” 하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저만치서 할머니가 무법자처럼 아이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숙모도 아니고 할머니였다. 어찌나 창피한지 잠시 꺼질 수 있는 거라면 꺼지고 싶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주인공 이름 처음 등장! 작가님 이름!
그 후에도 엄마는 두고두고 오빠 몰래 그 일을 심란해했다. 오빠가 하는 일을 그만두게 하려고 집요하게 극성을 떨 때하고는 딴판으로 문득문득 후회하는 기색이랄까 미련 같은 눈치까지 보인 적도 있었다. 자식의 안전을 위해 법에서 금하는 불온한 사상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식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니만치 뭔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고 싶은, 가장 우리 엄마다운 이중성이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그러나 엄마는 의외로 안색에 단박 불쾌한 빛을 드러내면서 나를 꾸짖으셨다. 자기가 삼십에 과부가 됐을망정 누구한테도 장차 일부종사를 어찌할까 싶은 걱정이나 의심은 물론 동정도 받아 본 적이 없거늘 딸자식한테 별 해괴망측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진노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일부종사 一夫從事 한 남편만을 섬김. 또는 그 도리.
그러고 나서 다시는 엄마의 개종을 권할 엄두를 낸 적이 없건만 엄마 또한 그 후 다시는 내 앞에서 기독교 계통의 책을 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불교를 믿으면서 예수교 책에 흥미를 갖는 게 자식한테 처신을 잃는 짓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뻔했다. 참으로 지겨운 엄마였다. 그러나 육친이란 싫어하는 면을 더 닮게 마련인가. 엄마가 자식한테일수록 처신을 잃는 짓을 극도로 경계했듯이 나 또한 엄마에게 처신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삶에는 종종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우리는 그 일이 생애 전체에 미친 영향에 대해 겨우 짐작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지금 박완서를 읽으며, 정이현 소설가, 박완서 지음
일단 문장 수집부터 정리하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시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성년의 나날들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의 대표작인 ‘소설로 그린 자화상’ 연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리커버 특별판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2025서울국제도서전’을 뜨겁게 달군 사진작가 이옥토의 작품으로 표지를 갈아입고 장정을 새롭게 꾸며, 그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기억의 공간을 지금 이곳으로 되살린다.
거기 그 동산 말예요. 그 예쁜 동산을 꼭 그렇게 만들어야 했을까요? 운동할 데가 그렇게 없나요? 라고. 그러나 아무도 호응을 안 한다. 거기가 동산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 예쁜 동산을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아니면 일부러 시침을 떼는 걸까. 그 동산이 없어져서 잘된 사람도 없지만 아쉬운 사람도 없는데 웬 걱정이냐는 투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무섭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 간다. 나도 요샌 거기 정말 그런 동산이 있었을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 산이 사라진 지 불과 반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시멘트로 허리를 두른 괴물은 천년만년 누릴 듯이 완강하게 버티고 서 있고, 그 밑에 묻힌 풀뿌리와 들꽃 씨는 다시는 싹트지 못할 것이다. 내년 봄에도 후년 봄에도, 영원히.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지음
내가 살아 낸 세월은 물론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펼쳐 보면 무지막지하게 직조되어 들어온 시대의 씨줄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늬를 짤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동시대를 산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고, 현재의 잘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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