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 <그 산이 정말~> 혼자 읽어볼게요.

D-29
서울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쫙 깔린 달개비꽃의 남색이 얼마나 영롱하다는 걸. 그리고 달개비 이파리엔 얼마나 고운 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달개비 이파리의 도톰하고 반질반질한 잎살을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면 노방보다도 얇고 섬세한 잎맥만 남았다. 그 잎맥을 입술에서 떨게 하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겨우 소리만 냈지만 구슬픈 곡조를 붙일 줄 아는 애도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https://naver.me/5kLrCDb7 달개비꽃. 나도 본 적이 있었던가.
구슬픈 곡조도 들어보고 싶다. 애들이 풀도 뜯고 풀피리를 불며 노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 좋다.
나는 숨넘어가는 늙은이처럼 헐벗고 정기 없는 산을 혼자서 매일 넘는 메마른 고독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추억을 만들고, 서울 아이들을 경멸할 구실을 찾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제목 등장! 그나저나 나는 초등학교 뒤 동산에 아카시아꽃이 추억의 꽃인데 이 꽃 먹다가 토하고 싱아 생각을 하는 주인공을 보며 초큼 안타깝더라...☆
한참 입이 궁금할 나이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어릴 땐 계속 뭔가를 먹었다. 집에 먹을 게 없으면 김을 다 뜯어먹거나 그냥 기름장을 만들어서 손가락에 찍어서 빨아 먹기도 했다. 짭조름한 맛을 좋아했다. 학교 가고 오는 길에도 계속 주워 먹던 그 식성이 떠올랐는데 그게 한참 입이 궁금할 나이여서 그랬겠구나 싶고. 표현이 좋다.
성인이 된 요즘은 호르몬 영향 + 외로울 때 폭식했다. 뭔가 어릴 때처럼 입이 궁금한 느낌은 아니긴 하네.
그러나 만약 그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내어 유난히 민감한 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건 깨어지기가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 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이렇게 자연에 대해서 표현한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좋았다. 글만 읽어도 푸릇하고 상쾌해지는 기분. 애호박도 호박도 멋들어진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반가웠고, 나를 가장 반겨 주신 분은 역시 할아버지였다. 사랑의 할아버지는 반년 전보다 훨씬 더 고적하고 추비해 보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고적하다 2 孤寂하다 (형용사) 외롭고 쓸쓸하다. 추비하다 3 麤鄙하다 (형용사) 거칠고 더럽고 낮다.
서울 문밖에서 궁색하기 짝이 없이 사는 주제에 시골 가면 어떡하든 뻐길 궁리부터 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방세도 들어오고 오빠가 월급도 많이 타 와 엄마는 삯바느질을 덜 했다. 오빠 몰래 꼭 엄마의 솜씨를 원하는 사람한테만 해 주는 것 같았다. 오빠는 효성이 지극해서 엄마가 남의 바느질 하는 것만 보면 슬픈 얼굴로 골을 냈다. 내 집에서 산다는 것과 월급을 타서 한 달을 설계하고 식구끼리 서로 화목한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어린 마음에도 느껴졌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엄마가 바라는 지식의 출세도 물론 일제의 그늘 아래에서의 일일 뿐, 엄마는 조선의 자주적인 운명에 대한 바늘구멍만 한 예감도 갖고 있지 않은 범용한 아낙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범용하다 1 凡庸하다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하다. 변변하다 1. 됨됨이나 생김새 따위가 흠이 없고 어지간하다. 2. 제대로 갖추어져 충분하다. 3. 지체나 살림살이가 남보다 떨어지지 아니하다.
오학년 때였는데 처음으로 친한 친구가 생겼다. 전학생이었는데 선생님이 나하고 짝을 시켰다. 전학해 온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동안 마음이 순한 아이하고 짝을 시키는 게 선생님들의 공통된 버릇이었다. 나는 반에서 존재 없는 아이여서 아무 일에도 뽑힌 적이 없건만 그런 일엔 단골로 뽑혔다. 나는 속으로 모욕감을 느꼈지만 드러내 놓고 싫은 눈치도 못 했다. 나는 내가 착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바라는 유일한 기대를 배반할 용기가 없어 그런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나는 그런 환경에서도 구김살 없이 명랑한 그 애가 불쌍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 그 애는 손수 부엌에 들어가 감자 껍질을 몽당숟가락으로 박박 벗기더니 쪄서 나에게 대접했다. 그런 꾸밈없는 태도도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나에게도 드디어 동무가 생겼다는 걸 느꼈다. 그때까지 놀 애가 아주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내 우정에 대한 갈망을 채워 준 건 그 애가 처음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박완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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