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D-29
개인적으로 이 장면 있는 부분 하면 아주 명연기를 하실 것 같습니다. "털이 북실북실한 족제비, 자 드시죠!" ㅎㅎㅎ
그 동안 읽었던 작품들보다 <바냐 아저씨>는 특히 더 답답한 느낌입니다 지질한 내로남불, 지성인인 척 하는 소인배들이 등장해 염치를 모르고 떠들고 있는 것 같아요 3막에서는 그 격정이 (n) 특히 극에 달하는데, 이렇듯 고조된 분위기가 오늘 그믐밤에 대체 어떻게 표현될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ㅎ 주옥 같은 대사들이 많아, 읭? 어쩌라구? 심정으로 잔뜩 필사해 두었는데, 저녁 일정 때문에 낭독에 참여 못해 아쉽네요 후기 많이 남겨 주세요~
1막 아스트로프 (엘레나에게) 언제든 소냐와 함께 저희 집에 한번 들러 주시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제 영지는 고작해야 30헥타르쯤으로 크진 않지만, 그래도 흥미가 있으시다면 근방 1000마일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원과 묘목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의 영지는 국유림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산림관은 늙고 병들어, 사실상 제가 모든 일을 관리하고 있답니다. (…) 소냐 아니요, 이건 정말 흥분되는 사업이에요. 미하일 리보비치는 해마다 새로운 숲을 가꾸세요. 그래서 이미 동메달과 상장도 받으셨어요. 선생님은 옛날 숲이 파괴되지 않도록 잘 보살피고 계세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보시면 분명 수긍이 가실 거예요. 숲은 대지를 아름다움으로 장식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를 일깨우고 고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게다가 숲은 혹독한 기후를 누그러뜨려주지요. 기후가 온화한 지방에서는 그만큼 자연과의 싸움으로 낭비되는 힘이 줄어들다보니, 사람들도 친절하고 너그러워질 거예요. 행동거지나 말씨도 아름답고, 온순하고, 섬세하고, 우아해지겠죠. 기쁨의 철학과, 예술, 과학이 꽃피겠지요.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무척 고상할 테고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해설에서 바냐 아저씨는 원작 <숲의 주인>을 개작한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의사역 지분이 꽤 크네요. ‘숲’ 과 ‘아름다움’이 바냐 아저씨 극 내내 나와서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숲은 대지를 아름다움으로 장식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를 일깨우고 고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믐30 님께서 언급해 주신 바냐 아저씨의 원작 <숲의 주인>을 개작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안톤 체홉의 극을 보면 숲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들이 나오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지도 좀 궁금했습니다^^ 전 왜 갑자가 엘레나에게 도면 이야기를 하는 건가 의아했거든요^^;;
(2막) 아스트로프 인간은 모든 면에서 아름다워야 해, 얼굴, 옷차림, 마음, 생각까지, 물론 네 새어머니는 미인이지 하지만. 그녀는 먹고 자고 산책하고 그 미모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게 전부라고,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게 그녀를 위한 것이지. 내 말이 틀렸니? 게으른 인생은 결코 순수할 수 없어. (…) (시계를 본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내 인생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나의 게임은 끝났어. 난 늙고 지쳤어. 나는 하찮은 인간이야. 감수성도 메말라진 지 오래야.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애착을 갖지 못할 거야,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겠지! 아름다움만이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 아름다움은 나를 깊게 감동시키지. 엘레나는 마음만 먹으면, 그 미모로 충분히 내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리게 만들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야. 그건 애정이 아니라고. (몸을 떨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 소냐 (혼자서) 결국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어……그분의 마음과 영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데, 왜 난 이리도 기분이 좋은 걸까? (행복하게 웃는대) 난 그 분에게 말했어. 당신은 우아하고 고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셨다고 말이야……혹시 실수한 것은 아닐까? 아직도 그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져, 그 목소리가 포근히 날 어루만지는 듯해. (두 손을 그러주면서) 오, 내가 못생긴 게 한이야! 아, 무서운 일이야. 난 내가 못생겼다는 걸 알아. 알고 있어. 잘 알고말고……지난 일요일에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오면서 나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어. "마음씨 곱고 속이 넓은 여자지만, 저렇게 못생겼으니 가엾기도 하지……” 못생겼어…… (3막) 소냐 난 못생겼어요. 엘레나 넌 머릿결이 아름다워. 소냐 아니에요!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려고 뒤돌아본다) 아니에요! 여자가 예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눈이 아름다워요, 당신은 머릿결이 고와요……“ 전 그 분을 6년 전부터 사랑해 왔어요.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더 사랑해요. 매 순간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과 악수하던 손길을 느끼죠. 그리고 문을 바라보고 기다려요. 그분이 당장이라도 들어올 것 같은 생각이 늘 들어서요. 지금도 보시다시피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어머니께 온 거예요. 그분은 요즘 매일 이곳에 오시지만, 제겐 눈길도 주지 않아요……너무 괴로워요. 제겐 희망이라곤 없어요. (절망적으로) 오, 하느님, 제게 힘을 주세요……밤새 기도했어요……자주 그분한테 가서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그분의 눈을 빤히 바라보기도 해요……저한텐 이미 자존심도, 스스로를 통제할 힘도 없어요……참지 못하고, 어저께는 바냐 아저씨께 그분 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어요……그래서 하인들까지도 제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모두 안다니까요. 엘레나 그 사람은? 소냐 아뇨, 그분은 전혀 몰라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해설 파트에 적혀 있기로는 <바냐 아저씨>로 개작하면서 소냐를 못생긴 소냐로 내용을 바꿨다고 하는데, 외모의 이름다움 vs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봄방학이라 함께 낭독항 생각에 신나 있었는데, 밤새 끙끙 앓았더니 목상태가 너무 안좋네요. 들으러 들어가겠습니다. 몰골이 사나워서 화면도 끄고 듣겠습니다.
힝구힝구 아프지마세요~ 푸욱 쉬세요오ㅠㅠㅠ
감사합니다
오늘 일정이 있어 참석을 못해서 아쉽네요. 덕분에 작품은 완독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파반느>를 인상깊게 봐서 요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읽고 있는데,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끌림을 생각하고 있었네요. 소냐가 예뻤다면 이야기가 완전 달라졌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완전 달라졌을 겁니다. ㅠㅠ
소냐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테죠. 아,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아저씨, 우리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거예요.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겪었던 우리의 슬픔을 돌아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될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우린 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믿어요,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의 두 손에 얹고는 지친 목소리로)  그곳에서 우린 쉴 수 있어요.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소냐   평화롭게 쉴 수 있을 거예요. 천사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면서요. 모든 악과 고통은 온 세상을 감싸는 위대한 자비의 빛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예요. 그날은 평화롭고 순수하고 따스할 거예요. 난 믿어요. 굳게 믿어요.(눈물을 닦는다)  불쌍한 바냐 아저씨, 울고 계시군요.(흐느낀다)  아저씨는 평생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아오셨죠. 하지만 기다려요, 바냐 아저씨, 기다려야 해요. 우리는 쉴 수 있을 거예요.(그를 껴안는다)  쉴 수 있어요.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들린다.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마리야는 소책자 여백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마리나는 양말을 뜨고 있다. 소냐   쉴 수 있어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아까 채팅에서도 얘기 했지만 도시에서 온 커플들이 항상 문제네요(갈매기에서도요). 넘의 생계의 터전에 장난처럼 놀러와서 꽃을 싸지르고 자기들 있기 뻘쭘해지면 도망가고.... 남아 있는 자들만 서글프게 열심히 살자 하고
아... 이건 뭔가 지방소멸 시대에 도시 출신 뜨내기 이주민을 바라보는 지역민의 시각 같은... ㅋㅋㅋㅋㅋ
ㅎㅎ 그렇게 들으니 그런 느낌도 나네요^^ 실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척 행복한데 <바냐 아저씨>에서도 <세자매>에서도 그런거 같긴 하네요~
회식이 있어서 낭독회에 참석 못했습니다. 30분 정도 늦게라도 참석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후배들이 자꾸 끌어앉히는 바람에 이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즐거운 낭독회가 되셨겠죠?
오늘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바냐 아저씨에서 바냐는 주인공이 아닌 것만 같았는데 오늘 모임에선 확실한 존재감이 느껴졌습니다. 4막까지 계속 듣고 싶을 정도로 희곡을 읽기만 했을 때와는 달리 등장 인물들의 심리가 느껴져서 몰입하게 되더군요. 마이크가 안 되는 바람에 관객 모드로 급전환했는데 그 재미가 또 쏠쏠했습니다.
실시간 낭독의 묘미!!입니다^^ 하지만 @그랬어 님의 엘레나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바냐) 오, 그래요! 저는 계몽 정신의 소유자였지요. 그걸로 누군가를 계몽시키는데 성공한 적은 없지만요. (사이) 계몽 정신의 소유자! 이보다 더 신랄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내 나이 마흔일곱이에요. 작년까지 나는 어머니처럼 스콜라 철학으로 내 눈을 흐리게 하려고 애썼지요. 참된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어머니가 제 심정을 알아주신다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시기를 너무 어리석게 허송해 버린 것을 생각하면, 울분과 증오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이젠 다 늙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p.170 (바냐) 그런 충실함이라는 건 전부 가짜고 부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파보면 아무 근거도 없는 이야기야. 끔찍하게 싫은 남편을 속이는 건 부도덕하고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자연스러운 젊음의 욕망을 억누르는 건 도덕적이라는 그런 생각 말이야. p.168 (엘레나) 자기 아내도 아닌데 어째서 당신들은 여자를 무심하게 바라볼 수 없는 건가요? 그 의사가 말했듯이 당신들 속에는 파괴의 악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들은 숲도, 새도, 여자도, 다른 그 무엇에 대해서도 동정심이라고는 없어요. p.174 (세레브랴코프) 나는 평생을 학문 연구에 바쳤고, 서재와 대학 강의실에서 존경할 만한 동료들과 함께 지냈어. 그런데 느닷없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이런 무덤 속에 갇혀서 날마다 속된 인간들을 보고, 하잘것 없는 얘기나 들어야 하나... 살맛 나게 살고 싶어. 내가 원하는 건 성공과 명성, 시끌벅적한 세상이야. 그런데 난 이곳에 유배된 신세지. 매순간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다른 사람들의 출세를 부러워하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니... p.178 (아스트로프) 여자가 남자의 친구가 되려면 순서가 있어. 처음에는 아는 사람, 그 다음엔 애인, 그러고 난 다음에 친구. p.184 (아스트로프) 인간은 모든 면에서 아름다워야 해. 얼굴, 옷차림, 마음, 생각까지. 물론 네 새어머니는 미인이지, 하지만... 그녀는 먹고 자고 산책하고 그 미모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게 전부라고.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게 그녀를 위한 것이지. 내 말이 틀렸나? 게으른 인생은 결코 순수할 수 없어. p.186 (아스트로프) 농부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어리석고 더럽고. 교양 있는 인간들은 함께 어울리기가 어려워, 금세 싫증이 나고 말거든. 하나같이 옹졸하고 편협하지. 한마디로, 따분한 인간들이야. 좀 똑똑하다는 인간들은 신경질적이고, 자기 분석에 열을 올리지. 불평하고, 증오하고, 어디서든 문제점을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병적으로 예민한 인간들이야. p.187 (엘레나) 지루해서 죽을 지경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냐) 일은 얼마든지 있어요. 하시려고 한다면야... (중략) 집안일을 해도 되고,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환자들을 보살피거나 얼마든지 있잖아요. (엘레나) 나에게는 무리야... 흥미도 없고. 여자가 밖에 나가 농민들을 가르치고 환자를 보살핀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야. 나 같은 사람이 갑자기 그런 일을 어떻게 하겠어? (소냐) 하지만 어떻게 아무 일도 않고 살아요? 두고 보세요. 금세 익숙해지실 거예요. p.193 (아스트로프) 여전한 늪지와 모기, 보기 흉한 도로, 가난과 티푸스, 디프테리아, 화재... 우리 고장은 격렬한 생존경쟁으로 인해 날로 퇴락해 가고 있습니다. 이는 굶주림, 추위와 질병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제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덥히고 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써버린 탓이지요.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모든 걸 파괴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게 파괴된 반면, 새롭게 창조된 건 아무것도 없지요. p.198 (아스트로프) 당신은 교활한 사람이에요. 당신 말대로 소냐가 실제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당신의 그 심문이 뜻하는 바는 뭡니까? 아니, 놀란 얼굴 하지 마세요. 내가 어째서 매일 여기 오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왜, 누구 때문에 여기 오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어요. 사랑스러운 암호랑이여,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늙어빠진 참새니까... p.200 (바냐) 나는 25년 동안 이 영지를 관리하고, 일하면서 가장 양심적인 관리인으로서 당신에게 이익금을 송금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내게 고맙다고 말한 적 없었죠.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당신에게서 고작 1년에 500루블의 봉급을 받았을 뿐이야. 거지가 1년 동안 적선 받는 돈도 그거보다는 많을 거야. 그런데도 당신은 단 1루블이라도 올려줄 생각조차 한 적 없죠! p.205 (바냐) 우리는 당신을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었지. 하지만 내 눈에 씌어 있던 가리개가 벗겨졌고, 이젠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똑똑히 알게 됐어! 당신은 예술에 관해 글을 쓰지만, 예술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토록 우러러 보았던 당신의 모든 저작은 동전 한 닢의 가치도 없다고! 당신은 우릴 속였어! p.206 (바냐) 그래 나는 미친놈이고, 교수라는 가면 아래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정함을 숨기고 있는 인간은 제 정신이란 말이지. 모두가 보는 데서 늙은 남편을 속이는 여자는 제 정신이라는 거야. 난 봤어, 봤다니까. 자네가 그 여잘 껴안고 있는걸! p.211 (소냐)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테죠. 아,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아저씨, 우리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거예요.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겪었던 우리의 슬픔을 돌아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될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우린 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믿어요,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그곳에서 우린 쉴 수 있어요. 평화롭게 쉴 수 있을 거예요. 천사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면서요. 모든 악과 고통은 온 세상을 감싸는 위대한 자비의 빛 속으로 가라앉게 될 거예요. 그날은 평화롭고 순수하고 따스할 거예요. 난 믿어요. 굳게 믿어요. (중략) 우리는 쉴 수 있을 거예요. 쉴 수 있어요. p.220-221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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