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D-29
바냐 : 하지만 말은 바로 해야지, 그 인간 예술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면서 25년 동안 예술에 관한 책을 쓴다고 저러고 있단 말이야. 사실주의니 자연주의니 하며 남의 사상이나 주워 섬기고 있으면서 말이지. 똑똑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무식한 인간들은 관심도 없는 그런 것들을 연구한답시고 25년 동안이나 헛수고를 하고 있잖아.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얼마나 대단한지! 불평은 또 얼마나 늘어놓는지! 25년 동안 남의 자리 꿰차고 앉아 교수 흉내만 내다가 은퇴해놓고 보니 알아주는 이 하나 있나. 그런데 걸음걸이를 보라고. 반신반인이나 되는 것처럼 걸어가는 품새라니!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오, 저는 <바냐 아저씨>에 대한 사전 지식 하나 없이 읽기 시작해서, 이런 이미지의 인물인지 몰랐습니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상상했던...
나의 아저씨랑 비슷한 제목일지도 모른다고 저도 생각했어요. 그 시절 평범한 삶을 사는 불행한 사람들, 그러나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 플롯 같아서요. 너무 일반화..ㅎㅎ
저도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해서, 따뜻한 바냐 아저씨를 상상했더랬죠. 현실은 불륜으로... (제가 읽은 부분까지는 그래요)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저도 안톤체홉 작품 속 불륜들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2026년에 살아가는 대한민국보다 훨씬 자유로워요^^ 전에 <갈매기>에서는 소설가 트리고린을 사이에 두고 주인공 남자의 엄마와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성이 서로 삼각관계인 것도 신기했구요. 결국 남주 트레플료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엄마의 남친에게 뺏기고 말죠. <세자매>에서도 안드레이의 부인 나타샤가 대놓고 바람피우거나 둘째 마샤가 남편이 있는데도 육군중령 베르쉬닌과 바람피우는 장면들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2026년 한국이 유교나라인지 아니면 당시 러시아가 자유로웠던건지 살짝 궁금해지더라구요^^ <바냐 아저씨>에서도 엘레나에게 눈독 들이는 남성들이 많은 걸 세레브랴코프 교수는 알았을까요? 그냥 모른 척하는 걸까요?
저도 바냐아저씨 읽는 김에 갈매기와 세자매를 막 같이 읽었어요. 모든 사람이 불행을 입 밖으로 표현하고, 미-기혼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게 아주 자주 나오네요. 사랑의 결실이 결혼인 것 같지도 않고 여자의 혼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사회였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교수는 알았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런 촌뜨기들의 구애, 전혀 신경쓸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교수는 엘레나의 성향-무엇도 간절하게 바라지는 않는-도 알고 있어서 자기를 사랑하진 않지만 다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지도 않을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나이의 이런저런 경험을 한 교수로, 적당한 온도의 사랑 정도는 위협이 아닌가보다..
@MㅡM 님의 글을 읽으니 이해도 더 잘되고 공감이 갑니다~~👍👍👍
바냐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른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겠어? 당신은 나의 행복이고, 나의 인생이며, 나의 청춘이야! 당신이 나를 사랑할리 없다는 거 알아. 그래도 상관없어. 그저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만 해주면 돼.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우리가 알고 지낸 이후로 내겐 단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었어. 그러니 어떻게 늙지 않겠나? 게다가 삶 자체가 따분하고 어리석으며 추잡하거든……. 이런 생활에 질질 끌려가고 있으니 말이야. 더구나 주변에는 하나같이 괴짜들뿐이고, 그런 자들과 한 이삼 년 같이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괴짜가 되는 거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긴 수염을 비틀면서)  아니, 수염만 자랐구먼……. 어리석은 수염 같으니. 난 괴짜가 되고 말았어, 유모…….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나는 앉아서 이렇게 두 눈을 감고 생각했지. 백 년이나 2백 년 뒤의 우리 후손들은 지금 자기들을 위해서 열심히 길을 닦고 있는 우리를 고맙게 생각할까? 대답은 ‘아니다’야. 유모, 그놈들은 우리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릴 거야!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계몽 정신의 소유자! 이보다 더 신랄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내 나이 마흔일곱이예요. 작년까지 나는 어머니처럼 스콜라 철학으로 내 눈을 흐리게 하려고 애썼지요. 참된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어머니가 제 심정을 알아주신다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시기를 너무 어리석게 허송해 버린 것을 생각하면, 울분과 증오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이젠 다 늙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고백하자면, 난 속물이 되고 말았네. 자네가 보다시피 난 취했어. 대개 한 달에 한번은 흠뻑 취하도록 마시지. 그런 상태가 되면 염치가 없어지고 낯가죽이 두꺼워지거든. 그땐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어려운 수술을 해도 기막히게 해내고,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도 세운다네.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그땐 내 자신이 괴짜라 여겨지지 않고, 내가 인류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아주 거대한 것 말이야! 그럴 때면 하나의 독특한 철학 체계가 생겨나지. 그래서 자네들 모두가 작은 벌레…… 미생물로 보인단 말이지.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물론 네 새어머니는 미인이지, 하지만……. 그녀는 먹고 자고 산책하고 그 미모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게 전부라고.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게 그녀를 위한 것이지. 내 말이 틀렸니? 게으른 인생은 결코 순수할 수 없어.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우리보다 100년이나 200년 뒤에 살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어리석고 무미건조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경멸하게 될 사람들은 틀림없이 행복해질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나와 자네한테는 딱 한 가지 희망밖엔 없어. 우리가 관 속에 누워 있을 때, 유쾌한 환상이 찾아와 우리를 위로해 주리라는 희망 말일세.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그래, 이 사람아, 이 고장을 통틀어서 성실하고 지적인 인간은 자네와 나, 단 둘뿐이었어. 그런데 십여 년 동안의 비참하고 속된 생활이 우리를 삼켜 버린 거야. 그 썩은 기운이 우리의 피를 오염시켰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속물이 되어 버린 거라고.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엘레나 :  바냐, 당신은 교양도 있고 현명하니까 분명 알고 계실 거예요. 세상은 악인이나 화재 때문에 파멸하는 게 아니라, 증오, 적대감, 온갖 하찮은 일 때문에 파멸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덮어 놓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모두를 화해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아스트로프  : 그런 걸 저는 30킬로를 쏜살같이 달려왔군요. 뭐, 괜찮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니까요. 대신 오늘 밤은 댁에서 묵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잠이라도 푹 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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