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D-29
나는 앉아서 이렇게 두 눈을 감고 생각했지. 백 년이나 2백 년 뒤의 우리 후손들은 지금 자기들을 위해서 열심히 길을 닦고 있는 우리를 고맙게 생각할까? 대답은 ‘아니다’야. 유모, 그놈들은 우리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릴 거야!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계몽 정신의 소유자! 이보다 더 신랄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내 나이 마흔일곱이예요. 작년까지 나는 어머니처럼 스콜라 철학으로 내 눈을 흐리게 하려고 애썼지요. 참된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난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어머니가 제 심정을 알아주신다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던 시기를 너무 어리석게 허송해 버린 것을 생각하면, 울분과 증오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이젠 다 늙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고백하자면, 난 속물이 되고 말았네. 자네가 보다시피 난 취했어. 대개 한 달에 한번은 흠뻑 취하도록 마시지. 그런 상태가 되면 염치가 없어지고 낯가죽이 두꺼워지거든. 그땐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어려운 수술을 해도 기막히게 해내고,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도 세운다네.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그땐 내 자신이 괴짜라 여겨지지 않고, 내가 인류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아주 거대한 것 말이야! 그럴 때면 하나의 독특한 철학 체계가 생겨나지. 그래서 자네들 모두가 작은 벌레…… 미생물로 보인단 말이지.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물론 네 새어머니는 미인이지, 하지만……. 그녀는 먹고 자고 산책하고 그 미모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게 전부라고.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게 그녀를 위한 것이지. 내 말이 틀렸니? 게으른 인생은 결코 순수할 수 없어.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우리보다 100년이나 200년 뒤에 살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어리석고 무미건조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우리를 경멸하게 될 사람들은 틀림없이 행복해질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나와 자네한테는 딱 한 가지 희망밖엔 없어. 우리가 관 속에 누워 있을 때, 유쾌한 환상이 찾아와 우리를 위로해 주리라는 희망 말일세.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그래, 이 사람아, 이 고장을 통틀어서 성실하고 지적인 인간은 자네와 나, 단 둘뿐이었어. 그런데 십여 년 동안의 비참하고 속된 생활이 우리를 삼켜 버린 거야. 그 썩은 기운이 우리의 피를 오염시켰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속물이 되어 버린 거라고.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엘레나 :  바냐, 당신은 교양도 있고 현명하니까 분명 알고 계실 거예요. 세상은 악인이나 화재 때문에 파멸하는 게 아니라, 증오, 적대감, 온갖 하찮은 일 때문에 파멸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덮어 놓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모두를 화해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아스트로프  : 그런 걸 저는 30킬로를 쏜살같이 달려왔군요. 뭐, 괜찮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니까요. 대신 오늘 밤은 댁에서 묵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잠이라도 푹 자야지요.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비꼬기에 최고시네요.
한쪽 눈으로는 무덤을 보고 있으면서, 다른 눈으로는 그 알량한 책 속에서 새로운 인생의 여명을 찾고 계시거든.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바냐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야를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진정 죽음과 책의 오디세이를 살고 계시는군요. 바냐의 어머니, 마리야와 유모인 마리나가 이름이 비슷해서 좀 헷갈렸는데요, 마리야 할머니가 아무래도 더 높은 신분일테니 반말로 야,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외웠습니다.
엇, 저도요! (찌찌뽕) 대표님 말씀 참고해서 헷갈림을 방지해야겠어요:)
텔레긴 : 마리나, 자네도 아는가? 이렇게 들판을 걷거나 울창한 정원을 산책하거나 혹은 이런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네. 날씨는 매혹적이고, 새는 노래하고, 우린 평화롭고 만족하며 살고 있지. 이 이상 뭘 더 바라겠나? ( 찻잔을 받아든다.) p. 166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바냐 : 없어. 모든게 그대로야. 나는 옛날 그대로야.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나빠졌을지도 몰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늙은 갈가마귀처럼 깍깍거리며 불평이나 하고 있지. p. 166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바냐 : 차라리 자서전을 쓰는 게 나을게야. 얼마나 멋진 소설감이냐 말이야! 퇴직 교수에 늙은 말라깽이, 학식 있는 물고기라고나 할까. 통풍과 류마티즘, 편두통을 앓고, 질투와 선망으로 간이 잔뜩 부어서는 전처의 영지에 살고있지. 지긋지긋해도 어쩌겠나, 도시에 살 형편은 안 되니. 그래서 늘 자기의 불행을 한탄하고 있지.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바냐 : 그 자의 두 번째 아내는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야. 그런 여자가 그 늙다리와 결혼했다고. 찬란한 미모와 자유, 그 모두를 늙다리에게 바쳤단 말이야. 왜일까? 도대체 왜?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
마리야 : ( 아들에게)... 하지만 잘 못된 것은 신념이 아니란다, 너 자신이야. 신념 그 자체만으로는 그저 죽은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잊은 게야.....너는 너대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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