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전기화 평론가와 [멀고도 가까운] 함께 읽기

D-29
리베카 솔닛을 무척 좋아합니다. 2년 쯤 <멀고도 가까운> 정말 인상 깊게 읽었었어요!
저는 이제야 2장까지 읽었네요~ 부지런히 쫒아가겠습니다. 2장 ‘거울’을 읽으면서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가 생각났어요.
한 여자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가 모친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라는 〈한 여자〉를 써 내려간 작품 『한 여자』가 전문 번역가 정혜용 씨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한 여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10여 개월에 걸쳐 쓴, 자신의 어머니이자 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여자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감정과 회한의 무게에 짓눌리는 법 없이 분석적이고 객관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1장을 읽는데, 처음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안타까웠고, 저희 어머니나 시어머니가 걸리면 어쩌지란 생각을 하고 계속 읽어나갔습니다....헉 근데 이 반전은 뭐죠? 젊은 시절 딸을 질투했던 어머니라니...제 생애 이런 어머니상은 처음이라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최악의 모녀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는 딸로서의 작가가 대단했습니다. 저도 사실 저희 어머니와 딱히 사이가 좋지 않지만,(어머니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지만, 저 혼자 거리두기하고 산지 20년쯤 된 거 같습니다) 저 정도는 아니고 서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사는 정도거든요. 저라면 서로 보지 않고 사는 쪽을 택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겐 미운 정이란 없느니만 못한 감정이라서요. 근데 2장을 계속 읽으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 45p 내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당신의 동생 이름으로 부르곤 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나보다 사반세기 전에 태어난 질투와 애착을 덮어써야만 했다. 47p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신데렐라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건 대부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 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본인의 삶의 방식이 왜곡돼 버린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안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란 생각입니다. 심지어 자기 딸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투영시켜 괴롭히는 모습이 이해 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2장의 마지막 부분엔 어머니에 관한 얘기가 아닌,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59p : 연애 초기에, 지긋지긋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와 함께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은 소피에게, 그녀의 부모님은 차근차근 안정적인 직장의 단계를 밟아가기를 그만두고, 알 수 없는 세계로 자신을 던지는 것은 큰 실수라고 적어 보내셨다. -> 저는 이 부분이 항상 의문인데....그 분들이 생각하는 실수라는 게 무얼까요? 이혼? 가정불화? 부모님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결혼이라는 게 이혼 안하고 살면 성공한 결혼생활인지 의문이 듭니다. 결혼 생활에 성공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우습지만, 한 인간이 본인의 선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실수’라고 비난하다니요. ‘본인의 의지 없이, 선택하지 못하는 삶’이 더 실수이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눈길을 사로잡고 잠시 멈춰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전자책으로 읽고 있어서 페이지는 생략했습니다.) 1장에서는 “노인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낭만적 사랑이나 아이를 낳는 일 같은 다른 종류의 헌신에 비해, 조언이나 독려가 될 만한 분량의 글이 없다. 그 일은 마치 예정에 없던 어떤 일처럼 슬그머니, 마침 한 번도 경고를 받지 못했고 지도에도 없던 암반으로 가득한 해변처럼, 갑자기 당신 앞에 닥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야기에서 삶의 말년은 그 모든 세월이 지혜가 되는 황금빛 시기이지, 엉망진창인 어린 시절로 혹은 그 너머로 퇴행하고, 정신병처럼 보이는 질병으로 썩어 가는 시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왕성한 정신으로 지식을 쌓아 가는 반면, 인생의 반대쪽 끝에 있는 이 단계에서는 그 지식들이 해체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인 만큼, 두 단계는 다르다.” 여기서 한 해가 지나고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간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막상 ‘나이 듦’과 그에 따라 찾아올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비단 부모님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요. “어머니의 기억뿐 아니라 우리의 기억도 부분적으로 변형되고 희미해졌다. 기억이란 지나가는 물고기를 모두 잡는 일은 결코 없으면서, 종종 있지도 않은 나비를 잡아 버리는 그물 같은 것이었다.”, “살구는 내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 거의 모든 일이 잘못 풀려나가던 이후의 열두 달 동안 내가 그 의미를 찾아야 할 이야기였다.” 여기서는 기억과 이야기, 그 속의 감정과 왜곡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 긴가민가한 이야기들이 불쑥 찾아오면 어떨 때는 당시의 감정과 뒤섞여 지나치게 왜곡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은 의미가 남아 이야기가 되었고, 어떤 순간은 이름을 붙이듯 의미를 붙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2장에서는 “커다란 살구 더미에는 덜 익은 열매와 익어 가는 열매, 썩어 가는 열매가 섞여 있었다.” 이 문장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이야기 자체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다시 읽어보았던 문장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 행동의 뿌리에도 다른 인물이나 역사의 힘이 작용했을 테고, 그런 식의 논리적 연결은 끝이 없기 마련이다.” 이 부분과 함께 뒤에 나오는 내용을 읽으며 누군가, 특히 부모님의 영향과 그 속의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러면 그러한 영향 밖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아닐까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얻은 자원과 통찰을 지닌 채 어린 시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는 것은 종종 효과가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 상태, 얼어붙은 채로 그렇게 동작을 멈추고 몸이 녹기를, 잠에서 깨어나 다시 살아가기를 기다리는 상태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의 당신은 얼어붙고, 말을 잃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며, 그 감정과 그 감정을 낳은 잔인한 이유를 알아보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느끼는 일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기다린다.” 이 부분은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최근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황과 그때의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지나쳐왔나 싶습니다. 제게 남은 흔적들임에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이제야 꺼내 봤던 터라 쉽진 않았지만 이름을 붙이고 충분히 소화될 때까지 느껴보려 하는 중입니다.
4장에서는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늘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꿈속에서 살고 있다.”라는 문장들에서처럼 이야기, 이미지, 꿈 그리고 ‘만들다’라는 단어에 집중했습니다. 앞의 세 가지 이야기, 이미지, 꿈은 때로는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때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허상 같지만,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라 여기에 ‘만들다’와 만드는 주체인 ‘나’를 덧붙이는 것으로 더 나은 이야기, 이미지, 꿈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독서), 작가와 독자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우다오쯔처럼 나 역시 그림 속으로, 나의 문장으로 만든 문을 통해 걸어 들어갈 예정이었다.”라는 문장도 좋았습니다. 또한 책 속으로 사라지는 것, ‘나무와 작은 연못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거울 같은 연못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곳’인 도서관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오늘도 도서관에 다녀왔는데 평론가님께서 도서관에 관한 특별한 기억에 대해 짚어주셔서 생각해보니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늘 도서관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책들에 둘러싸여 둘러보는 과정이 미로에서 길을 찾는 모험의 과정처럼 느끼곤 했습니다. 거기에는 두근거림과 설렘이 함께 해 원하는 책을 찾으면 보물을 발견한 듯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을 구할 때도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 확인하고, 근처 도서관에 읽으려는 책이 없으면 도장 깨기 하듯 새로운 도서관들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많은 분들께서 들려주신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좋았어요. 그러다 문득 앞으로 여행을 다닐 때에는 그 지역의 도서관을 들러보는 일정을 포함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행과 여행의 교차, 그런 생각을 해보며 소소하게 즐거웠습니다. @소금인형 님과 @day 님이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나는 사는 곳의 중요한 조건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새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일상의 반경에 도서관을 두는 것, 도서관에 가는 삶을 나 자신에게 주는 것, 그것은 참 멋진 선물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리고 @siouxsie 님이 남겨주신 도서관에 관한 덧글도 흥미롭게 따라가다가 “차별없는 세상”이라는 표현에 이르게 되어 좋았습니다. 6장 <감다>에 이르면 자아의 경계란 것이 ‘수축’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자꾸 쪼그라드는 자아를 ‘확장’ 쪽으로 아주 조금씩 끌어당겨주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 덧글을 읽다 보니 @시민 님이 말씀해주신, 연속성을 제공하는 ‘장소’와 관련하여서는 어쩌면 도서관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시민 님과 day 님이 짚어주신 이 책의 목차, 둥그렇게 휘어진 책 목차의 대칭성을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이 목차에 관해서도 책을 읽어나가며 그 의미를 거듭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주먼지밍 님, 반갑습니다. @바르미 님 아니 에르노의 책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day 님이 짚어주신 2장의 문장, “커다란 살구 더미에는 덜 익은 열매와 익어 가는 열매, 썩어 가는 열매가 섞여 있었다.”는 문장을 함께 곱씹어보고 싶은데요, 5장 <숨>에 이르게 되면 솔닛이 미술관에서 보았던 ‘살구가 담긴 바구니’ 그림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곧 썩기 시작할 것임을 드러내는 작은 상처가 있는 살구가 몇 개 있고, 맨 앞에 놓인 살구에는 파리도 한 마리 앉아 있다.”(131쪽)는 문장이 담긴 묘사가 너무 좋아, 어떤 그림일까 궁금해 하며 찾아보니 반비 출판사 블로그에서 아마도 그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banbibooks/220664967258 5장을 읽으면서는 좋았던 문장들이 참 많았어요, ‘모든 것이 변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변주해가는 솔닛의 글쓰기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사태를 단순하게 파악하지 않고 한번 뒤집어 그것이 품고 있는 복잡성을 읽어내는, 이를테면 ‘썩는다는 것’에 관한 이런 문장이요, “문드러진다는 건 뭔가가 썩고 있음을 암시하는 과정이지만, 그건 또한 무언가가 자라는 과정,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취한 다음 더 큰 환경으로 흩어질 준비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123쪽) 그리고 솔닛이 해석하는 ‘요리’와 ‘글쓰기’(125쪽)에 관한 서술도 무척 재미있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까요? “요리란 그 재료를 먹어버림으로써 사라지게 하는 일, 음식을 먹는 이의 몸 안에 묻는 흥겨운 장례식이다.”라는 문장에는 밑줄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이어지는 ‘절임’에 대한 서술(126쪽)과, 통조림 만들기의 과정에 관한 서술(128쪽), 살구 통조림을 만드는 과정에 관한 서술(129쪽) 등 지극히 구체적인 문장들을 읽으며 즐거웠습니다. 변화와 보존, 찰나와 부패 등을 생각하다보면 인간을 둘러싼, 인간을 통과하는, 인간이 통과하는 수많은 변화란 것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인간의 신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솔닛의 유방암 조직 검사 과정이 다루어지는 이 장에 이어지는 6장에서, 솔닛은 ‘고통’을 새롭게 해석하네요.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발췌되는 160쪽에서 ‘감정의 거리’와 ‘자아의 경계’가 다루어지는 대목을 함께 생각해보아도 좋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여정이 목차의 한중간 7장 <매듭>을 향해 가네요. 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발자국을 따라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책을 하나의 줄기로 꿰어내는 읽기를 정립하는 대신, 앞으로도 흩어지는 발자국을 따라 여기저기 산책하며 함께 읽어나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봄이 더디지만 아주 가까이는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멋진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여행 일정에 도서관 포함하기!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행지에서 독립 서점을 방문해 책을 구매했었는데, 도서관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다음에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장 저도 ‘썩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썩어 가는 것도 다른 생명으로 변신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무언가가 되어 가면서 동시에 무언가가 사라지는 격렬한 과정의 일부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죽음이며 또한 삶이다.” 썩는다는 것은 단순히 사라지기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에서 의미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다른 생명으로 변신하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5장에서는 특히 ‘변화’와 ‘시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중략) 수용이냐 저항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 변신 자체를 피할 수 없다.”라는 문장에서처럼 변한다는 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공감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매년, 매달, 매주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고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우리의 ‘알고 있음’은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을 오래 알아 왔다 해도 그 사람이 지금도, 여전히 제가 아는 사람, 안다고 생각한 사람일 거라고 확신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과거가 눈을 가리고, 때로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며, 때로는 외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리와 글쓰기를 비교한 부분도 재밌게 읽었는데, 보존과 절임을 엮어서 말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이 순간의 조각을 보존해 주더라도, 이메일이나 편지를 수천 통 가지고 있더라도,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문장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는데요.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벅차오를 때, 또는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을 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싶을 때 그런 순간들과 지금의 감정,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에 ‘순간의 박제’를 위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 문장을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무엇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입니다. 요즘에는 카톡 대화, 이메일, 사진 등과 관련된 디지털 저장강박증도 많다고 하는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니타스 회화와 유방암 조직 검사 과정까지 읽으면서는 “그 일시성이 분명해질 때, 숨은 지루하지 않은 것이 된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찰나의 순간, 일시적인 순간을 인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나’의 존재가 당연시되고 익숙할 때는 더더욱 그 유한함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독서를 하며 생각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를 인식하게 만들어 소중한 시간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더 유의미하게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6장 6장에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체화’입니다. 체 게바라 이야기 중 “그 모험에서 그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만났다. 그때까지 그가 접해 보지 못했던 것들, 혹은 접했지만 직접 다가가거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그의 삶으로 들어왔다.”라는 문장에서처럼 무엇인가 삶으로 들어온다는 것, 그것을 직접 느끼고 몸에 배어 ‘내 것’이 되는 것에 대해서요.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는 상상해야만 한다.” 배우고, 상상하며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그걸 해내기 위해서는, 경계를 지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은 무난한 방법으로 이런저런 외면을 한다.” 자기방어적인 측면에서 외면과 회피는 쉽게 발생합니다. ‘나’의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까지도 외면과 회피라는 방법은 얼핏 보기에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본질에 다가가지 않았기에 끝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각자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타인까지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공감함으로써 자아는 확대되지만 그다음엔 자아도 위험과 고통을 분담하게 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현자가 아닌 이상 모든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다.”라는 문장에서처럼 타인에게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의 중요성도 깨닫습니다.
제 큰 꿈이 "전 세계 도서관 투어"입니다. 잡지 Chaeg(스펠링...맞나 모르겠네요)에서 소개해 주는 전 세계의 멋진 도서관들 다니려면 부자되어야겠더라고요...교통비를 계산하다 투어를 포기했답니다. 그래도 꿈은 꿈이니! 안물안궁이시겠지만, 중간 꿈은 한국에 있는 도서관 투어, 작은 꿈은 "매일 도서관에 출근해서 3시간씩 책 읽다 오는 것"이고요. 지금은 작은 꿈을 지하철 통근 시간에 실행 중입니다. ^^
늦었지만~~ 3장에서는 북극에서 시작해 메리 셸리의 이야기로 이어지네요. 책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저는 극지방에 대한 얘기에 ‘어디갔어 버나뎃’과 ‘메리셸리’란 영화를 떠올리며 읽었습니다. 메리 셸리 이야기는 영화를 보면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본인에게 결여된 것들을 집약해서 영혼을 갈아 쓴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데, 읽는다 읽는다 하면서도 아직도 프랑켄슈타인을 못 읽고 있네요. ^^ 근데 계속 읽다 보니 ‘아티스트 웨이’에서 미션 중 하나인 아침에 글 3장 쓰기한 것을 모아 놓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글이 좋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으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생각도 납니다. 혹시 번역자가 같나요?ㅎㅎ 4장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도 솔닛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공교롭다’는 단어가 둥실하고 떠오릅니다. 코로나 이전에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괴롭힘, 아이가 20살 될 때까지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독박(같은) 육아로 정신적 황폐가 극에 달했을 때, 코로나가 터져 -모두에게 너무나 죄송합니다만- 제 삶의 여유를 찾았습니다.(경제적으로 위기가 온 건 안비밀) ‘중쇄를 찍자!’란 일본 만화/드라마에서 살인을 저지르려는 비행청소년에게 한 노인이 “운은 모을 수 있다네. 이 세상은 더하고 빼서 0이 될 수도 있네. 갖고 태어나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도 패는 모두 동등하게 나뉘네. 좋은 일을 하면 운이 쌓이고 나쁜 일을 하면 바로 운은 줄어들지. 살인은 인생의 끝이야. 운을 자기편으로 만들면 행복이 몇 십 배는 많아질 걸세..... 생각하고 생각해서 토할 정도로 생각해서 판단을 내려. 운을 잘 다뤄야 해.” 다들 너무나 잘 아는 얘기지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쏜 화살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고, 본인이 베푼 인정과 자비도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뭔가 ‘시크릿’처럼 얘기하고 말았는데, 솔닛도 그런 의미에서 하늘에서 도우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115p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 -> 저는 정말 좋은 이유가 있어도 모험은 가능하면 거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만의피셜이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꼰대로 가는 지름길이란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거든요. 관성에 의해 안주하는 것이 매우 편하고 좋지만, 조금은 무리를 해야(무리라고 하는 이유는 다들 못하는 이유가 수만가지더라고요) 새로운 일에 도전할 ‘짬’이 나더라고요. 이 모임 또한 저한테는 작은 모험 중 하나입니다. ^^
@day 님이 짚어주신 '썩는다는 것'에 대한 부분이 저도 참 좋습니다. 썩는 것에 자동적으로 결부되는 부정적인 느낌들을 ‘격렬함, 살아있음’으로 뒤집는 문장을 읽으며, 오랜 통념과 멀어지는듯해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6장에서 놓치고 온 지점들도 세심히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siouxsie 님이 짚어주신 ‘공교로운’ 순간과 ‘거절하지 않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작은 꿈과 중간 꿈, 큰 꿈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이 책이 의식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신 것도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번역자 두 분은 다른 분이시네요), 오늘은 이 책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아도 좋겠습니다. 7장 <매듭>에서 솔닛은 병원에서 보낸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가운데 넬리와 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특히 앤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아픈 서술도 많았지만 동시에 앤이 얼마나 강인하고 멋진 사람인지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앤이 만든 마지막 작품, “커다란 벽에 석고로 만든 섬들을 이어서 만든 양각의 지형도”에서 “가늘고 빨간 실로 각각의 섬들을 이은” 작품은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어요. 솔닛은 그것이 “모든 것은 이어져 있음을 우아하게 주장하는 작품”(192쪽)이라고 해석합니다. 어쩐지 이것은 이 책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이 책은 오로지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관철시키지 않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가운데 여러 사람들-여러 존재들의 이야기가 그물처럼 얽혀들고 있지요. 앤이 그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면 솔닛은 그것을 서사라는 형식에서 구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솔닛은 자신의 삶을 ‘세상을 꿰매는 바느질’처럼 상상해본다고 말해요. “내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세상이 꿰매지고 있는 것 같은 상상. 다른 이들이 만들어 내는 길과 교차하기도 하면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로 엮이는, 수많은 바느질들의 교차. 인간의 삶을, 인간과 세계가 맺는 관계를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군요. ‘바느질’이 곧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며, 그 이야기가 바로 당신의 삶인 것 같다”는 문장에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자아낸다’와 ‘풀어버린다’는 동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7장의 <매듭>은 8장의 <풀다>로 이르게 되네요, 그리고 우리가 1장에서 보았던 문장이 다시 한 번 등장하는군요,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앤의 작품은 8장에서도 다시금 다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실처럼, 시간에 따라 풀려나가는 하나의 서사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 하지만 우리들 각각은 그저 하나의 섬이고, 그 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실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일 뿐이다.”(213쪽) 앤의 작품은 원서의 Thanks to에 실린 이름 ‘Ann Chamberlain’을 근거로 찾아보았어요. 바로 그 작품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솔닛의 묘사를 따라가며 상상한 것과 상당히 비슷했는데요, https://www.artbusiness.com/1open/firstth0906a.html 이곳에서 중간쯤 내려보시면 확인해보실 수 있어요. 그리고 217쪽에서 이야기되는 모나카론의 작품은 이렇게나 강렬하군요. https://monacaron.com/artivism/world-watching
남겨주신 글을 통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책 제목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7장, 8장에서는 사람, 인생, 함께 살아감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메스를 든 신들에게 책 선물을 제물로 바쳤다. 의사들과 수간호사에게 주었던 이런 선물은 비록 사람들이 일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기는 하지만, 돈이 열정과 진심으로 일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어떤 인정의 표시였다.(7장)” -> 저 또한 ‘열정’과 ‘진심’이 ‘돈’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 공감했던 문장이었습니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해도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 노동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생각에 잠겨 봅니다. “질병이나 재난의 의아한 점 중 하나는, 그런 상태에 빠진 사람이 무언가를 희망하고 무언가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는 점이다.(7장)”,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 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8장)” -> 질병과 재난의 두 가지 공통점을 꼽아 보자면 대체로 갑작스럽게 닥친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유한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가장 실감하게 되는 것도 죽음인 것 같습니다. 막연히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은 다를 테니까요. 5장에서 선종의 명상에서 기초가 되는 숨을 세고 집중하는 훈련에서 불평하는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그 일시성이 분명해질 때, 숨은 지루하지 않은 것이 된다.”라는 말처럼, 일시성을 인식하는 순간 현재 나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여러 가지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잃기 전에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는 건, 자신이 겪지 않고도 깨닫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 깨닫는 순간, 깨닫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곧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니까요. 그리고 절망 속 희망이 없다면 생을 이어나갈 힘을 잃게 될 것이고, 또한 변화를 꿈꾸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 희망 아닐까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7장)”, “그 섬과 섬 사이에는 삶과 정신을 이어 주는 생각과 대화가 있다. 그 생각과 대화가 발생하고 효과를 미칠 때 혹은 당신이 관심을 기울일 때, 어쩌면 운이 좋을 때, 둘은 비로소 이어진다.(8장)” -> 개인이 ‘단절’을 느끼더라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저를 스쳐 지나갔고, 제가 만들어 온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책을 통해 그 이야기 속의 ‘생각과 대화’를 다시 깨닫습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현재에서부터 미래로 흘러가도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연대’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5장과 6장도 묘하게 연결이 되네요. 5장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은 변화를 의미하고, 변신의 과정(썩고 해체되는)을 거쳐야 새로움이 탄생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많이 보아 왔던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절임이라는, 시간을 멈춰 버리게 만드는 개념은 처음 보는 것이라 꽤 흥미로웠습니다. p126 무언가를 보존하는 일은 그 변신 과정을 무한히 연기하는 일이다. 어쩌면 절임이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간은 무심하다. 시간 자체가 우리의 비극이며,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맞서 각자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라는 문장을 보며, ‘절임’이란 처치로 시간의 흐름을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지만, 영원히는 멈출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6장에서는 나병과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감각이 무뎌져 상처와 병을 그대로 방치하고 결국 썩어갈 수밖에 없는 몸에 빗댄 ‘정신의 나병화’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던 체 게바라의 모습과 점점 개인의 삶을 등한시하고 ‘대의명분’이란 이름 하에 고통에 무뎌져 정신적 나병에 걸린 혁명가 체 게바라 저의 경우에는, 어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뉴스를 잘 보지 않는데, 그런 뉴스를 계속 보면 어느 순간 ‘이제 좀 그만하지’라며 타인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그것만 보도하는 뉴스를 질려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몰아치는 영상들로 인해 사유와 고통이 쉽게 묻혀 버리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작가 본인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무뎌졌던 원인을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6장의 마지막에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끝이 아니라고 미끼를 던지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하네요. ^^
6장의 '감다' 7장의 '매듭' 8장의 '풀다' 7/8장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제목이 6장부터 연결되는 느낌이네요. 우리의 이야기를 감고, 매듭을 지었다 다시 풀어내는... 180p 화폐가 우리의 몸들을 따로 떨어지게 하고, 우리가 그렇게 떨어져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 같다.는 문장에서 자본주의가 우리의 나쁜 짓들을 얼마나 합리화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181p의 양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이해를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양을 적게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서 양을 많이 가진 부자의 합리화 같다는 생각만 들어 몇 번을 다시 읽었지만, 제 기준에선 합리화 외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전체 내용과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197p에서 ‘그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안 예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부분에서 혼자 빵 터졌습니다. 입원했을 때의 내 몸의 추례함도 정말 싫은데, 환자복까지....고통의 과정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속의 작은 아름다움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만일까요? 저는 (자칭)기독교인이지만, 항상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불교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8장에서의 고타마에 대한 이야기와 미얀마 승려들의 군부에 대한 저항정신도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216p에 그릇을 엎어 군부의 공양 따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 행위를 차단하는 것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일수록 큰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225p : 많은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다스리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의 외적인 원인을 근절하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만물에 공감할 것을 강조한다. 작가님이 올려주신 Anne의 작품을 보았는데, 범죄자나 범죄자를 잡기 위한 실마리를 잡을 때 벽에 사진이랑 지도랑 붙여놓고 실로 연결해 놓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작품이네요. 모나 씨의 작품은 가두시위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상징적인 그림이고요. 두 작품 다 어떤 이미지일까 했는데, 직접 보니 더 와 닿네요.
@day 님, 저도 선종의 명상에 관한 서술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는데, 7장과 8장의 내용과도 연결하여 읽어볼 수 있겠네요. 일시성을 깨닫는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지속되는 것이 없다는 데 관한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들 간의 연결, 책과의 대화, 독서와 연대를 연결해주신 부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를 day 님의 문장을 통해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siouxsie 님이 짚어주신 문제, 큰 사건을 다루는 뉴스들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한 보도에 질려버리게 될 나의 마음이 두려워 그것을 피하게 된다는 말은 제게도 오래 머무네요. 최근 읽은 김소연 시인의 글(<기대어왔던 것들에 기대어서>)에서 “애도는 많은 경우 종료되지 않은 세계이다. 사회적 죽음에 대한 애도는 더더욱 종료될 리 없는 세계이다. 영원히 현재에 있다.”는 문장을 읽었는데 애도의 완료 불가능성과 그것에 관한 끈질긴 사유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181페이지의 가난한 농부의 양을 자신의 손님에게 대접한 부자의 이야기는 저도 아리송한 부분이 있는데요, 인류학적 감수성으로 읽어야 하는 상징적 에피소드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사건이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주고받음을 상정한 큰 그물망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해집니다 ^^ 그리고 ‘예쁜 환자복’에 관해 들려주신 이야기에도 적극 공감합니다. 세심하게 읽고 포착해주셔서 저도 덕분에 그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9. 숨>에서는 이야기가 새처럼 이동하며 다른 이야기와 섞이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의미도 이동하고 모든 것이 변신한다는 서술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솔닛은 자신이 원래 익숙하던 공간과 거리를 확보한 아이슬란드에서 조금씩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네요. 그리고 <10. 비행>에 이르러서는 ‘미로’에 관한 문장들, 미로는 ‘실타래’와도, ‘책’과도 닮았다는 문장들이 흘러나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미로를 통해 인간은 ‘실제로 멀리 나아가지 않고도 대단한 여정’을 하게 되며, ‘출발했던 곳이 진짜 끝이기도 하다’는 문장은 저에게 낯설고도 설레는 감정을 가져다주었어요. 관련하여 솔닛의 문장으로 자세히 묘사되고 비평되는 엘린의 작품도 살포시 남겨둘게요, https://elinhansdottir.net/PATH 이어지는 부분에서 ‘듣는다는 것’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것이며,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284쪽)이라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오며 거듭 생각해오던 주제인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표현되고 있네요. 그리고 <12. 거울>에 이르러서는 잠시간 멈춘 듯 보였던 어머니와의 관계에 관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이 장에서 제시되는 ‘용서’에 관한 서술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부자 이야기는 저도 처음에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올랐으나 다시 읽어보면서 부자가 가난한 이웃의 양을 대접한 것으로 대접한 양에 대한 손님의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의 범위를 부자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넓힌 거라고 이해했습니다. 만약 부자가 자신의 양을 대접했다면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의 범위는 부자로 한정되었을 테니까요. 더불어 부자도 가난한 이웃의 양을 대접했기에 손님과 마찬가지로 이웃에게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라는 그물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결국 가난한 이웃은 부자와 손님 모두와 연결되어 ‘양 한 마리를 잃음으로써 더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뒤에 나오는 것처럼 ‘호의’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베푸는 것을 말하기 위한 내용이지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 지인의 이야기, 작품 이야기에 동화까지 더해지며 책을 읽을수록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고, 챕터가 딱 구분되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9장> 저도 9장에서 이야기의 이동과 의미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더불어 ‘불교에서 말하는 차가움’이 ‘무관심’이 아닌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관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는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너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가 찾아올 때도 있으나 대부분 갑작스럽기보다는 서서히 쌓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언가 변화가 찾아오면 변화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는 알아차리기가 힘든 것 같아요. 폭풍 전야처럼, 태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무언가 올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만 있다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비단 영화나 소설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남들은 갑자기 무언가를 하고 바뀐 것 같으나 그 사람도 그 사람만의 발걸음에 맞춰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거기서 나는 조금씩 변해 갔다. 지난 몇 년 동안의 끔찍했던 불안은 서서히 사라지고, 내 안에 평화가 쌓여 갔다.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꿈처럼, 아주 긴 항해에서 툭툭 마주치는 풍경처럼 보였다. 그렇게 꿈같은 상태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내는 생활은 깊은 잡처럼 몸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 앞에서 나온 그런 ‘변화’나 ‘변신’의 과정에서는 이렇게 외부 세계와 차단되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부에는 많은 소음이 존재하고, 우리 대부분은 내부의 소리를 듣는 게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가 ‘익숙하던 공간과 거리를 확보’를 통해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듯, 그렇게 함으로써 찾아오는 것들, 깨닫는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0장> “다른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차가운 섬. 그 섬의 작은 반도 끝에 있는 마을의 언덕 위 오래된 도서관에 딸린 가구도 없는 방에서, 나는 낯선 사람들과 새들과 함께 지냈다.” -> 이 문장은 10장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뭔가 눈길을 끌었는데 끝부분에도 똑같이 나오는 걸 보고 더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언젠가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야를 통해 ‘빛’과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엘린의 작품인 미로에서도 나타나는 그 빛과 어둠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그 의미는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에 있다. 그것은 어둠이었고, 둘둘 감긴 길이었으며, 공간에 울리는 소리였고, 희미하게 비치는 빛이었으며, 혼란스러운 감각이었다. 몸을 부딪쳐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공간이었다.” -> 이 문장에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 또한 혼란이 찾아와도 직접 부딪치며 걷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을 듣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작품 속에 살고 있다.”, ‘동일시’, ‘감정이입’ ->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란 무엇인지, 그곳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만가만 짚어봅니다. 화자가 되는 것과 청자가 되는 것, 그 속에 온전히 속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11장>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개인의 이야기가 과연 그 사람만의 이야기인가, 그것으로 끝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답변하게 되는 챕터였습니다. “프로이켄은 전체 그림의 한쪽 모퉁이밖에 보지 못했다. 그림은 언제나 그렇게 커진다. 언제나 해야 할 이야기는 더 있고. 실 한 올이 다른 실과 얽히고, 그 실이 멈추면 다른 실이 이야기를 계속 앞으로, 지평선 너머로 끌고 간다.”, “그린란드 동부의 작은 집에서 얼어 버린 프로이켄의 숨처럼, 조금씩 당신을 조여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다지 근사하지 않은 도구나 들숨을 가지고 힘겹게 벗어나려고 애쓰게 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녹아 없어지는 썰매처럼 해체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그렇듯이, 폭풍우와 어둠 속에서 길을 알려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수 없고, 많은 이야기가 얽히고 얽힌 세상 속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 듣는다는 것, 서로의 이야기 안에서 산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아타구타룩의 일화를 다루는 다양한 이야기는, 이야기 속 주인공보다는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이에 관해 더 많이 말해 준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로가 되어 버린 이야기였다.” -> ‘이야기 속 주인공’보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는 이 문장을 읽으며 이야기와 각각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어떻게’라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다 보니 ‘그 자체로 하나의 미로가 되어 버린 이야기’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12장> 12장에서는 말하는 방법, 변화, 이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봤습니다. “이들이 영원불멸의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조각가 자신, 즉 돌을 통해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었다.” -> 말이나 글, 돌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 말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 방법에 대해 11장에 이어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변화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나왔던 살구를 함께 떠올렸습니다. ‘방한 토시’, ‘종이’처럼 많은 것이 ‘유지’되고 ‘오래 살아남을 것’이지만, 인간은 결국 변하고 지워집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그노미’라는 하나의 단어에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다는 내용을 보며 과연 이 모든 단어를 동일한 의미로 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용서’에 관한 서술에서는 “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다. 그건 단지 결점을 덮어주는 것과는 다르고,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이 와닿았습니다. 용서가 쉽지 않은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 그렇게 타인이 되어보며 한 이해는 ‘일종의 용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용서란 공적인 행동, 혹은 두 당사자 사이의 화해이지만, 용서가 마음속에서 벌어질 때 그 과정은 좀 더 불명확하다. 갑자기 혹은 서서히 무언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마치 어떤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을 넘어선 것만 같다. 그러다 그 무언가는 그것에서 벗어난 당신 스스로를 축하하려는 바로 그 순간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 여기서 타인을 용서하는 것과 자신을 용서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에게 주는 것’인 용서를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에게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주는’ 용서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것들을 고민해 보게 됩니다.
매 장의 제목 전에 있는 페이지(회색의 한 쪽짜리 글)의 내용이 이어지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다 읽고 나서 그 부분만 연결해서 읽어 보려고요. 그리고 풀다 이후에 9장 숨과 10장 비행으로 돌아오네요. 그래서 앞에서 했던 이야기(체 게바라 등)의 얘기가 다시 나왔던 것 같아요. 9장에서 충격적이었던 건 아이슬란드의 사망원인 1위가 기상 재해라는 것이었어요. 내용에서도 혹독한 겨울 날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260p 선 사상의 스승인 순류 스즈키 로시도 영혼의 수련에 관해 비슷한 말을 했다. “일단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면, 급격히 남다른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늘 조금씩만 나아진다. 젖을 걸 알고 소나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다르다. 안개 안에 있으면 몸이 젖어 가는 줄을 모르지만,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젖어 드는 것이다.” ->티도 안 나는 루틴 속에 사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 10장 269p 냉기는 안정된 것이고, 온기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 위의 문장을 읽고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모든 것이 고정된 극지방에서는 온기가 모든 걸 파괴?하는 것을 보고 저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277p 미로와 미궁(전 비슷한 단어의 차이를 훌륭히 설명해 주는 부분은 항상 가슴에 새겨 둡니다.) 미로는 미궁과 정반대다. 미궁은 하나의 복잡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이며, 때로는 중심도 없다. 그 안에서 헤맴은 끝이 없고 최종적인 도착지도 없다. 미궁이 대화라면, 미로는 주문이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미로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꺾이고 뒤틀린 곳에서 길을 잃게 마련이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이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 된다. 285p 굶주리는 어린이 한 명의 입장은 쉽게 상상이 되지만 수백 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지역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큰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저 또한 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크기의 문제는 항상 체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돕자는 마음이 항상 앞서는데, 이것도 마음뿐 실제로는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과 연결해....286p 감정이입은 당신이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것을 보살피며 그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나서는 여정이다. 눈앞에서 괴로움을 직접 목격할 때도 그 사람이 관절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최근에 집을 잃어 버렸는지를 알고 싶다면 말이 필요하다.
@day 님이 적어주신 “화자가 되는 것과 청자가 되는 것, 그 속에 온전히 속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란 문장은 12장에서 솔닛이 짚어내는 ‘신이나 성인, 보살’의 시각과 연동하여 읽혔습니다. ‘자아나 분열이 없는, 존재와 생성, 소멸의 거대한 순환’만이 있는 세계란 보통의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일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에 연루되고 나의 감정을 엮음으로써, 타인의 삶 안으로 들어섬으로써 (견고하다고 착각되곤 하는) 자아의 경계를 조금씩, 꾸준히 흐트러뜨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시그노미’에 관한 서술과도 이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솔닛은 이 단어가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 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고 말합니다. 이해와 감정이입, 그리고 용서가 따로 있지 않다는 이 말을 다시 들여다보며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용서’라는 것에 관해 나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 잠시 머뭇거리게 되더라고요. 특히 day 님이 짚어주신 나 자신에게 주는 용서라면 어떠할까, 용서의 층위를 갈라 섬세하게 따져보며 생각을 좀 더 이어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김혜진 작가의 소설 <경청>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가 다루어지는데, 다시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siouxsie 님이 짚어주신 것처럼 각 장의 뒤에 붙어있는 쪽글들은 이어집니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는 2006년 과학 기사의 제목에서부터 출발한 이 문장들(“당신은 슬픔을 먹고 지낼 수도 있다. 당신의 눈물은 달콤하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이 문장이 당신을 싣고 어딘가로 데려간다.”)이 어떻게 흘러가고 변주되는지 따라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에요. 자고 있는 새는 ‘무심하게’ 자신을 내어주고, 눈물로 배를 채운 나방은 날아갑니다. 그리고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의 이미지는 이야기를 먹고 사는 인간과 겹쳐집니다. “우리는 슬픔을 먹고 살고, 이야기를 먹고 산다. 그 이야기가 열어 주는 널찍한 공간에서 우리는 한계를 넘어 상상력을 여행한다. 이야기가 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자아의 가능성을 넓혀 보라고 재촉한다. 남동생이 종이 박스 세 개에 담아온 살구 더미, 그것도 눈물이었을까. 이 책도 눈물일까. 누가 당신의 눈물을 마시는 걸까. 누가 당신의 날개를 가지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걸까.”(371쪽) 어느덧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13. 살구>에 이르면 <1. 살구>로 돌아가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구성은 원환구조처럼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13장이 다시 1장의 꼬리를 물고 반복된다는 식으로. 그러나 이 책의 구성은 솔닛 자신이 해석한 미로에 보다 가깝지 않은가요, “미로 속 여정의 끝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리 한가운데가 아니라, 다시 입구로 나오는 것이다. 출발했던 곳이 또한 진짜 끝이기도 하다. 그것은 순례나 모험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집과 같다. 미로 안에서는 볼품없던 모퉁이나 여백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여정은 어딘가로 들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어 나오는 여정이기 때문이다.”(277쪽) 글을 읽고 쓰는 행위란 많은 경우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무언가가 되어 나오는’ 경험을 여러분도 경험해보셨나요? 오늘은 책의 문장을 많이 옮겨 적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틈’이라는 단어도 오래 붙잡고 굴려보고 싶고요. “명심하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허술한 배처럼 물 샐 틈이 많고, 삶의 대부분을 다른 누군가로 살아간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낯선 이로 살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적인 ‘나’는 사실주의 소설에 특히 자주 등장하는 물 샐 틈 없이 단단한 그릇 같지만, 사실 그 ‘나’는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경험하는 그 많은 틈들은 하나도 담아내지 않는다. 풀려 버린 끈, 낯선 꿈, 망각과 잘못된 기억, 다른 이들의 이야기 안에서 살았던 삶, 앞뒤가 맞지 않는 일과 일관성 없는 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장, 가까이 있는 유령 같은 것.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361-362쪽)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겨울 기운이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꽃들에 눈이 계속 팔려 발걸음이 흩어집니다, 가끔은 부러 먼 길로 돌아 걸어보려는 마음도 먹게 되고요. 이 시기를 지나며 이 책을 여러분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산책과 산문의 ‘산散’, 흩어지는 발걸음, 완고하지 않은 이음새, 그러나 그 덕에 틈 사이로 흘러들고 흘러가며 섞이는 말들, 연결되고 교차하는 이야기들,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무늬, 그런 것들이 여정에 깃들기를 바랐고, 이 책은 그렇게 함께 또 따로 걷기에 참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조금은 적적할 수 있었을 산책길을 함께 걸어주신 덕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며칠 뒤면 이 공간도 닫히지만, 그 전에 혹 남길 이야기들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꼭 챙겨 읽겠습니다. 모두 멋진 봄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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