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영화 <노매드랜드> 에서 공장이 사라지면서(우편번호가 사라졌다는 표현이 끔찍했어요.) 그 땅에 뿌리를 두고 살던 사람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시작하고, 이미 은퇴할 나이임에도 본인이 일할 수 있다는 걸 끊임없이 매니저에게 어필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과연 괜찮은가?란 생각을 했어요. 몇 년 전에 군산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곳도 현대중공업이 철수하면서 유령도시처럼 바뀌어 있었던지라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저희 가족 중에 하나는 경기지역 공장쪽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서울로 옮기래서 서울로 갔다가 회사 사정 안 좋아졌다고 다시 원래 일하던 경기지역 사무실로 옮기래서 다시 옮기고...여기도 대기업입니다. 저는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회사를 다니는데, 대기업VS소기업의 현실을 '대체공휴일' 때 뼈저리게 느낍니다. '우리는 과연 쉬어도 되는가?'
당신은 결정의 하수인, 권위의 조력자, 관리의 앞잡이다. 당신은 임금노동자보다는 관리에 더 가깝지만, 당신이 내리는 결정이 최종 결정인 경우는 거의 없다.
권력자가 익명으로 존재하면서 적을 찾아 내기 어려워 지는 교묘한 조작과 책임의 주체가 모호해지는 문제는 오늘날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상황에서 화이트 칼라는 책임감도 옅어 지고 서로 익명성 뒤에 숨는 인간성 상실까지 이르게 된다는 점이 그동안 저희가 무수시 봤던 모럴 해저드로 인한 많은 사건 사고 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어떻게 저런 회사가 다 있지?', '어떻게 저런 비도덕적인 결정을 할 수 있지?' 싶은 기사들이 나오는 이유도 말씀하신 바의 연장선 같아요. 어느 정도 상하급자가 존재하는 직장에 다니다 보면 다들 느끼게 되죠. 결재자가 많아질수록, 중간에 합의와 참조를 거치는 단계가 많아질수록 책임은 오히려 옅어집니다. 하급자는 상급자들이 책임을 지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판단을 보류하게 되고, 상급자는 하급자가 실무를 했기에 본인은 세부 내용을 몰랐다고 하는 도돌이표가 반복되고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비용 절감 때문에 노후 설비를 계속 교체하지 못하고 몇십 년이 된 기계들을 아직도 쓰고 있어요. 당연히 그 당시의 제조업체도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고장나면 부품을 못 구하니, 제원과 사양을 작업자가 알아내서 다른 제조업체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정도인데요. 어찌어찌 굴러는 가고 있지만 언젠가 저런 노후화된 설비가 안전사고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만일 나중에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지 모르겠어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안으로 설비 교체를 보류한 실무자가 책임져야 할지, 그것을 승인한 팀장이 책임져야 할지, 그걸 알지만 경영방침 때문에 묵인할 수 밖에 없는 안전관리자의 문제인지, 항의를 제대로 못한 작업자들의 문제인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승인한 경영진의 문제일지... 관료제가 조직 곳곳을 더 깊숙이 장악하고 세분화될수록 말단에서부터 최상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의 실체를 알 수 없기에, 책임도 질 수 없는 구조가 되는 현상이겠죠..
저는 오늘부로 2부까지 읽었습니다. 2부는 다양한 산업과 직군에서 관료제가 어떻게 시작되고, 확산되었으며, 그것이 개별 직무의 근로자/노동자의 의식세계에 영향을 주는지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는데요.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분석이 많아 사람에 따라서는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네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7장 '지식인'에 대한 내용은 이해가 되지 않아 읽다가 중간에 넘겼습니다. 다른 장들에 비해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얘기가 많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는데 굳이 안 읽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네요. 지식인 계급이 화이트칼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나 정의가 다르기도 할테고요. 작가가 말하는 '지식인' 사회계층이 어떤 직장이나 직업을 말하는지 잘 감이 안 잡혔습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개념은 언론인, 비평가, 평론가, 예술가, 정치 및 사회운동가를 염두에 둔 내용 같고요. 언론과 편집/출판도 산업화 되고 자본의 논리와 관료제가 개입되면서 사상의 자유가 이전 같지 않다는 개념 정도만 숙지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게시판 글을 읽고 겨우 따라잡고 있습니다. ^^ 제가 작가님이 말하는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런지, 어디에 대입을 해서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계속 읽겠습니다.
사회적 출신과 사업상의 접촉으로 인해 노동과 더 가깝기 때문에 소기업가는 노동의 힘에 대한 분노를 더 쉽게 과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 소기업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얻어내는 고임금과 노동이 국가의 복지 재원에서 획득하는 사회보장 비용 모두를 충족시킬 능력이 대기업에 비해 떨어진다. 특히 지난 15년 동안 노조가 조직화되고 정치적 압력을 강화하면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임금이 상승하면서 소기업가는 깊은 분노를 느꼈고, 그의 반노동 이데올로기에 불이 붙었다. 그가 말하길 노동자는 좋은 사람이지만 노조는 나쁘고 노조 지도자들은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소기업가의 태도는 그 힘을 확대하고, 그의 분노는 인신공격의 모양새를 띤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6~10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대기업이 소기업을 방패막이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 때문이다. 대기업가와 큰 노동자가 난투극을 벌일 때 소기업가는 자주 대기업 편에 서는 것 같다. 마치 파산에 가까워질수록 더 미친 듯이 자신의 이상에 잡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대기업에 집착하면서도 대기업을 문제 해결사로 여기지 않고 이상하게 정부를 바라본다. … 그는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위안을 얻겠다며 정부를 바라보지만 동시에 정부의 규제와 세금에는 분개하고, 더 큰 힘이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정부를 이용하고 있다고 막연하게 느낀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정부에 대한 소기업인의 태도는 노동자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이데올로기의 수중에 있다. 둘을 향한 태도 모두에서 소기업가는 노동조합과 정부의 통제에 맞서는 돌격대 역할을 한다. 직접적인 경쟁자들에 더해 큰 정부, 조직된 노동, 대기업이 소기업에게 불안의 토양이 된다. 이러한 불안이 이데올로기로 성장해가는 데는, 종종 잘못되기는 했어도 근거가 없지는 않은 두려움이 저 깊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은 소기업을 향해 조성한 바로 그 불안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민감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일종의 성역인 '소상공인, 자영업자, 서민경제'가 생각나는 내용이었어요. 정부나 정권의 성향을 불문하고 대중의 인기와 지지도, 대외적 이미지 등을 위해서도 친서민적 행보와 정책을 많이 홍보하고 내세우죠.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대한 규제를 하려면 불가피하게 그 프랜차이즈에 소속된 점주들을 손댈 수 밖에 없고, 제조업체들을 건드리면 그들과 연관된 대리점과 협력업체들의 영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보다 큰 경제집단과 연관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의존하거나 종속되는 관계에 놓이면서 대기업을 견제하기란 더 어려운 문제가 되어 가고 있고요. 꼭 소기업가가 아니더라도 왜 어떤 사람들은 의존적/종속적인 체제를 확산하는 대기업보다 정부와 노동자를 더 적대하는지 감정의 근원을 알 수 있어 기억에 남았습니다. 대기업의 관료제는 이미 경제적 여건의 뿌리 곳곳에 스며들었기에 거부할 수 없지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부/노조는 외부인이기에 불만과 불안의 화살을 돌리게 되나 봅니다.
저도 이 부분 문장 수집했습니다.
화이트칼라의 정치적 문제는 그 방향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떤 것이 되든 그들이 정치적 방향을 선택할지 여부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35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는 불신과 조작의 맥락 속에서 공동체와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노동과 성격 시장과 자아로부터 소외되며, 개인적 합리성을 박탈당하고, 정치적으로 냉담하다. 이들은 새로운 '작은 사람'들이며, 의지도 없이 현대사회의 전위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화이트칼라에 대한 희망에 찬 교육도 그들을 준비시키지 못하는 상황들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고전적 민주주의의 요람인 기업과 재산의 폭넓은 연계는 더 이상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소기업가의 사회가 아니다. 이제 소기업가는 여러 계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 위에 대기업이 있고, 그들 아래 소외된 근로자가 있다. 그들 뒤에는 그들이 주도하던 세상이 있고 그들 앞에는 이제 정치적으로 의존적으로 바뀐 잔재들의 운명이 놓여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115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현대사회에서 직업은 노동의 사회적 분업 안에서 수행되는 특정 기능이며,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얻기 위해 판매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 남북전쟁 이후 직업에서 나타난 주요한 변화는 이러한 산업상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서, 전체 노동력에서 사물을 조작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사람과 상징(추상)을 다루는 사람은 늘어났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24,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한 이윤으로 전환하는 일을 돕고, 그중 일부는 생산수단 더 가까이에서 실제의 제조 작업을 감독하며 수행된 작업을 기록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24,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신중간계급의 직업들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재산 위에서 타인을 위해 일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3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이 문장이 정수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소유물은 오직 노동 뿐으로, 그 노동마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바쳐야 하는 삶. 책 내용과는 별개로 찰스 라이트 밀스는 굉장히 절제된 사무적 언어로 시를 쓰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 범위와 직군의 다양함만큼이나 모호한 화이트칼라의 의식, 고용형태, 경제적 역할 등을 압축해서 담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띄네요.
재산의 측면에서 화이트칼라는 '자본과 노동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자와 똑같은 재산-계급 지위에 있다. 이들은 생산수단과 직접적인 재정적 연계가 없으며, 재산에서 나오는 수익에 대한 우선 청구권도 없다. 공장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그런 생계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32,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 근로자는 권위의 조력자이며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파생된 권력이지만, 그들이야말로 바로 그 권력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35,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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