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릴게요.
전 골프 안치는 친한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즐거움과 기쁨을 골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데 그걸 안 해보고 죽을 운명이라니 안타깝다. 특히 부부가 나이들어서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최고로 재밌는 운동이 골프인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했든 저처럼 그냥 취미로 시작했든 골프의 재미에 빠지면 ’그저‘ 하고 싶어집니다. 재밌는 책을 마구 읽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임원으로서 주말마다 비즈니스 골프 치는 제 친구가 그와는 별개로 시간을 어떻게든 내어 저랑 골프치는 것을 보면 ’저렇게 내키지 않는 사람들과 자주 치면 골프가 지겨울 것 같은데 아닌가봐‘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라고요.
다만 우리나라에선 골프 비용이 많이 드는게 문제지요. 제가 돈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70세까지 부부가 함께 골프 칠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벌어두어야겠다는 동기부여까지 받았다니까요. ㅎㅎ
골프에 대해 들리는 각종 소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시고 여건을 만들어 골프를 쳐보시기 바랍니다. 잘 맞았을 때 손에 전해지는 그 타구감과 초록 잔디 위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하얀색 공의 아름다운 궤적에 반하게 될 겁니다.
참, 전 이 책을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정도 퀵하게 읽고 인터넷에서 요약본을 본 후 완독은 포기했습니다.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저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 방의 글들은 가끔씩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화이트 칼라라 미련을 못 버렸나봅니다.
[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밥심

은화
안녕하세요 밥심님! 여기서도 뵙네요. 그런 감정과 경험의 세계가 있었군요! 어쩌면 저는 골프를 하는 분들을 다 회사에서만 접해서 그런 관념이 굳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관료제의 세계에서는 골프마저도 자유롭지 않나 봅니다. 😂
저도 이번 책은 작가의 통찰력이나 분석력이 분명 뛰어나다고 느끼지만 문장이 조금만 더 다듬어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치 조밥을 먹는 느낌이랄까요.. 좀 오래 씹어야 하는 책이라서 그런지 진도 빼기가 쉽지 않네요.

은화
“ … 특히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 경쟁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왜냐하면 자유 경쟁이 있고 기업이 끊임없이 성쇠한다면, 기존 지위를 지키는 기업가는 “더 나은 사람”이고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8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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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추상적인 영역에서는 누구나 경쟁을 믿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경제 상황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기업가는 거의 없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8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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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말씀하신 자영업자와 엮이면서 이 부분이 저도 슬펐습니다.

은화
“ 가격 경쟁에 대한 두려움과 안정에 대한 욕망으로 '공정 경쟁'과 '공정 거래'법을 가장하여 일정 마진을 유지하도록 밀어붙이는 등 자유 기업의 부속물을 위한 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존재가 바로 이 독립 소매업자다. 그는 이제 체인점의 매장 수를 대폭 제한하고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라고 정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89,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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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소기업가들은 자유주의와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 했다는 지적도 재밌었는데요. 교통과 통신의 발전으로 대형 유통사와 판매업체가 들어오면서 시장의 경쟁구도가 바뀌자 소기업가들은 '공정한' 경쟁을 근거로 대형업체들의 저가 판매를 제한하려 들기도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보장하는 동결책을 주장하죠. 소기업가들에게 경쟁이란, 자신들의 생존과 유지를 위한 방편이지 실제로 몸으로 맞닥뜨리기를 원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말 같습니다.
사실 누구나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생각이죠. 시장논리와 경쟁이란 단어가 주는 가치와 의의를 표면적으로 접할 때는 모두가 동의해도, 막상 그 무한경쟁에 내던져지면... 경쟁을 회피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경쟁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권력과 영향력의 네트워크에 편입되어 보호받기를 원하는 건 다 똑같을 겁니다.
작가도 지적했듯이 이는 '경쟁'이 더 이상 자유로운 개별 집단의 장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고요. 무한한 경쟁 구도에 놓여 지쳐 나가떨어지는 위기가 한 편에 놓여 있고, 유통구조를 재편하려는 대기업 집단으로의 편입이라는 또 다른 위협이 반대편에 있죠.
양갈래 길로 사람을 몰아넣고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인가를 생각하면 누구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듯, 오늘날의 경쟁의 개념은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작가의 통찰이 인상깊습니다.

은화
소기업가를 평가할 때 기존 상위계층은 지위와 '배경'으로, 하위계층은 소득과 겉모습으로 더 많이 판단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1~102,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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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대기업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도시를 떠나겠다는 위협이다. 이 거부권은 도시의 경제생활에 대한 사실상의 생사여탈권이며, 도시의 은행, 상공회의소, 소기업가, 노동자, 공무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3,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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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2023
저도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서로 대기업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마치 이 도시의 생사가 걸린 것처럼 구애를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한 대목 같았거든요. 특히 일자리와 인프라로 연결되는 부동산 가치로 까지 연결되는 모습을 보면 대기업이 가진 파워라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어요.

은화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책에 있던 문장이 떠오르네요. 한때 노동자들은 연대를 통해 작업을 중단하거나 지연시킴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업이 그 반대로 회사를 옮기겠다는 협박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요. 그렇기에 노동자는 '일자리에 나갈 자유'라는 최소한의 마지막 권리마저도 빼앗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인데요. 당연히 들어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근처에서 대량의 산업 용수와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데 과연 이걸 다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이런 의견은 소수에 불과하고 현재 대부분의 시민단체와 위원회는 유치를 위해 여러 활동과 압력을 행사 중입니다.
대기업 집단의 경제 적 영향력이 시민의 정치적 권리의 행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대기업은 직접 행동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대기업이 소기업가들을 오히려 본인들의 경제적 이권을 대변하는 존재로 활용하는 대목도 이와 비슷할테고요.

꽃의요정
영화 <노매드랜드> 에서 공장이 사라지면서(우편번호가 사라졌다는 표현이 끔찍했어요.) 그 땅에 뿌리를 두고 살던 사람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시작하고, 이미 은퇴할 나이임에도 본인이 일할 수 있다는 걸 끊임없이 매니저에게 어필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과연 괜찮은가?란 생각을 했어요.
몇 년 전에 군산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곳도 현대중공업이 철수하면서 유령도시처럼 바뀌어 있었던지라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저희 가족 중에 하나는 경기지역 공장쪽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서울로 옮기래서 서울로 갔다가 회사 사정 안 좋아졌다고 다시 원래 일하던 경기지역 사무실로 옮기래서 다시 옮기고...여기도 대기업입니다.
저는 그야말로 코딱지만한 회사를 다니는데, 대기업VS소기업의 현실을 '대체공휴일' 때 뼈저리게 느낍니다.
'우리는 과연 쉬어도 되는가?'

Alice2023
당신은 결정의 하수인, 권위의 조력자, 관리의 앞잡이다.
당신은 임금노동자보다는 관리에 더 가깝지만, 당신이 내리는 결정이 최종 결정인 경우는 거의 없다.

Alice2023
권력자가 익명으로 존재하면서 적을 찾아 내기 어려워 지는 교묘한 조작과 책임의 주체가 모호해지는 문제는
오늘날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상황에서 화이트 칼라는 책임감도 옅어 지고 서로 익명성 뒤에 숨는 인간성 상실까지 이르게 된다는 점이 그동안 저희가 무수시 봤던 모럴 해저드로 인한 많은 사건 사고 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은화
외부에서 볼 때는 '어떻게 저런 회사가 다 있지?', '어떻게 저런 비도덕적인 결정을 할 수 있지?' 싶은 기사들이 나오는 이유도 말씀하신 바의 연장선 같아요. 어느 정도 상하급자가 존재하는 직장에 다니다 보면 다들 느끼게 되죠. 결재자가 많아질수록, 중간에 합의와 참조를 거치는 단계가 많아질수록 책임은 오히려 옅어집니다.
하급자는 상급자들이 책임을 지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판단을 보류하게 되고, 상급자는 하급자가 실무를 했기에 본인은 세부 내용을 몰랐다고 하는 도돌이표가 반복되고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비용 절감 때문에 노후 설비를 계속 교체하지 못하고 몇십 년이 된 기계들을 아직도 쓰고 있어요. 당연히 그 당시의 제조업체도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고장나면 부품을 못 구하니, 제원과 사양을 작업자가 알아내서 다른 제조업체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정도인데요. 어찌어찌 굴러는 가고 있지만 언젠가 저런 노후화된 설비가 안전사고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만일 나중에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지 모르겠어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안으로 설비 교체를 보류한 실무자가 책임져야 할지, 그것을 승인한 팀장이 책임져야 할지, 그걸 알지만 경영방침 때문에 묵인할 수 밖에 없는 안전관리자의 문제인지, 항의를 제대로 못한 작업자들의 문제인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승인한 경영진의 문제일지...
관료제가 조직 곳곳을 더 깊숙이 장악하고 세분화될수록 말단에서부터 최상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결국 자신이 하는 일의 실체를 알 수 없기에, 책임도 질 수 없는 구조가 되는 현상이겠죠..

은화
저는 오늘부로 2부까지 읽었습니다. 2부는 다양한 산업과 직군에서 관료제가 어떻게 시작되고, 확산되었으며, 그것이 개별 직무의 근로자/노동자의 의식세계에 영향을 주는지 여러 관점에서 조명하는데요.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분석이 많아 사람에 따라서는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네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7장 '지식인'에 대한 내용은 이해가 되지 않아 읽다가 중간에 넘겼습니다. 다른 장들에 비해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얘기가 많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는데 굳이 안 읽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네요. 지식인 계급이 화이트칼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나 정의가 다르기도 할테고요.
작가가 말하는 '지식인' 사회계층이 어떤 직장이나 직업을 말하는지 잘 감이 안 잡혔습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개념은 언론인, 비평가, 평론가, 예술가, 정치 및 사회운동가를 염두에 둔 내용 같고요. 언론과 편집/출판도 산업화 되고 자본의 논리와 관료제가 개입되면서 사상의 자유가 이전 같지 않다는 개념 정도만 숙지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꽃의요정
저는 처음부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게시판 글을 읽고 겨우 따라잡고 있습니다. ^^
제가 작가님이 말하는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런지, 어디에 대입을 해서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계속 읽겠습니다.

은화
“ 사회적 출신과 사업상의 접촉으로 인해 노동과 더 가깝기 때문에 소기업가는 노동의 힘에 대한 분노를 더 쉽게 과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 소기업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얻어내는 고임금과 노동이 국가의 복지 재원에서 획득하는 사회보장 비용 모두를 충족시킬 능력이 대기업에 비해 떨어진다. 특히 지난 15년 동안 노조가 조직화되고 정치적 압력을 강화하면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임금이 상승하면서 소기업가는 깊은 분노를 느꼈고, 그의 반노동 이데올로기에 불이 붙었다. 그가 말하길 노동자는 좋은 사람이지만 노조는 나쁘고 노조 지도자들은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소기업가의 태도는 그 힘을 확대하고, 그의 분노는 인신공격의 모양새를 띤다. ”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6~10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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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대기업이 소기업을 방패막이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 때문이다. 대기업가와 큰 노동자가 난투극을 벌일 때 소기업가는 자주 대기업 편에 서는 것 같다. 마치 파산에 가까워질수록 더 미친 듯이 자신의 이상에 잡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대기업에 집착하면서도 대기업을 문제 해결사로 여기지 않고 이상하게 정부를 바라본다. … 그는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위안을 얻겠다며 정부를 바라보지만 동시에 정부의 규제와 세금에는 분개하고, 더 큰 힘이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정부를 이용하고 있다고 막연하게 느낀다. ”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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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정부에 대한 소기업인의 태도는 노동자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이데올로기의 수중에 있다. 둘을 향한 태도 모두에서 소기업가는 노동조합과 정부의 통제에 맞서는 돌격대 역할을 한다.
직접적인 경쟁자들에 더해 큰 정부, 조직된 노동, 대기업이 소기업에게 불안의 토양이 된다. 이러한 불안이 이데올로기로 성장해가는 데는, 종종 잘못되기는 했어도 근거가 없지는 않은 두려움이 저 깊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은 소기업을 향해 조성한 바로 그 불안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한다. ”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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