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전 드디어 오늘부로 책을 완독했습니다. 정말... 긴 여정이었네요 😂 처음에는 화이트칼라의 심리나 직업적 특징을 묘사하는 책 정도로만 생각하고 골랐습니다. 막상 펼쳐보니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계급적 요소를 모두 낱낱이 해체하고 분석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직장인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 무가치함, 공허함, 방향상실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느껴지네요. 종종 그 방대함이나 책 특유의 건조한 중립적 문장에 헤맬 때도 있지만 화이트칼라의 개인적인 처지와 심리와 거시적인 차원의 경제사회 환경과 문제를 오가는 분석과 접근법이 알찼습니다. 정말 화이트칼라를 낱낱이 잔가시까지 다 발라먹는 느낌이랄까요. 전반적으로 화이트칼라의 특성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소외'라고 작가는 정의한 것 같습니다. 재산으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자신의 노동의 과정과 결과물로부터도 소외되고, 그로 인해 직업의식과 장인정신에서도 소외되며, 정치적으로도 소외된 계층. 그렇기에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오직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아이돌과 정치적 우상들에서만 대리 만족을 느끼는 계층. 소외의 공백감을 소비와 여가, 대중문화로 일시적으로 해소하지만 근본적인 갈증을 채우지 못하는 계층. 1950년대의 작품임에도 아직까지 유효한 분석과 공감이 되는 단락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수집한 문장도 많았습니다. 저는 책 진도 때문에 중간에 한 번 반납하고 재대출해서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다시 재독해 보려고 합니다.
와우~부럽습니다~ 전 지금 10장 노동 읽고 있어요~ 내일이나 모레 완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현대의 조건 아래서, 노동의 직접적인 기술적 과정은 대다수 근로자에게 의미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소득, 권력, 지위와 같은 노동의 다른 특징이 부각되고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44,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돈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노동이 가지고 있었던 본질적 의미를 결여하게 된 상황의 일부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44,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더 높은 소득이 수반하는 권력과 지위를 얻고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상 노동의 만족일 수 있으며, 이런 종류의 만족은 인간활동의 내재적인 필요성과 완전한 발전 같은 공예의 경험 따위와는 아무 관계도 없을 수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47~34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현대 직장인이 직업에서 만족을 얻는 방법은 이제 과거와 같은 내적 발전이나 충만함과는 별개가 되었다는 말 같습니다. 오늘날 직장인은 자신의 유용성, 기능성, 쓸모를 입증해야 하기에 이를 보여줄 외적인 '표현수단'으로서 더 높은 직급과 직책에 올라서는 게 제1목표가 되었죠. 일반적으로 직급이 상승하면 소득이 오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의 크기는 곧 권력의 크기가 되며, 권력의 크기가 사회에서의 지위로 이어지고 이것들이 모여 총체적인 만족을 이루죠. 이는 반대로 말하면 현대인은 오직 조직 안에서만 자신의 권리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예속된 처지라는 말일 겁니다. 따라서 작가는 화이트칼라의 만족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만 달성 가능하며, 이로 인해 삶의 행복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에서의 소외는 인생에서 제일 공들여 주의력을 기울이는 시간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희생한다는 의미다. … 요컨대, 그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에 대해, 심지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 동안, 나아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 동안 진지하고 꾸준하게 임해야 한다. 따라서 여가시간은 권위주의적인 일의 진지함으로부터 벗어난 진지하지 않은 자유를 의미하게 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52,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가 상사나 윗분들, 고객이나 단골과 맺는 관계가 너무 비인간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그들로부터 위신을 빌리기가 매우 어려울 경우, 종종 회사나 기업 자체에서 위신을 빌리기도 한다. 기업에 대한 물신 숭배와 동일시는 관리자뿐만 아니라 직장 내 피고용인에게도 흔하다. … 구인광고("록펠러 센터에 있는 아름답게 꾸며진 사무실", "전국적인 대기업",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32층에 있는 사무실")는 사무직 노동자의 지위 추구에 대한 의식적인 집착을 드러낸다. 이런 직책은 충원하기가 더 쉬운데, 높은 연봉이나 빠른 승진 때문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나 위치가 주는 매력 덕분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5,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객관적인 근무조건이나 급여 수준 외에도 대기업이나 외국계기업이라는 '이름값'과 '명성'이 화이트칼라의 직업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통 젊을수록 이런 가치에 중요성을 두는 것 같아요.
화이트칼라 숙련의 습득에 필요한 시간과 습득 방법은 이들의 위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다. … 숙련의 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화이트칼라 숙련이 직장보다는 학교에서 습득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미국 젊은이들에게 주입된 고등학교 문화의 훌륭한 저장소인 화이트칼라는 평균 12.4년의 학교 교육을 마쳤으며, 자유 기업가는 8.4년, 임금노동자는 8.2년으로 나타났다. 모든 직업 수준과 비교할 때 화이트칼라 남성과 여성은 더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교육 수준을 선도하는 독립 전문직 종사자의 16.4년을 제외하면 가장 길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직무 만족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빨리 기업에 유입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굶주린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 대학 졸업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만족하는, 어쩌면 이제는 고교 졸업생들도 만족하지 못할 그런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9,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사실, 교육받은 지성인은 규격화된 업무에서는 불이익을 받는다. 규격화된 업무에서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더 즐겁고 효율적으로 일할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한 인사 담당자는 "2,600명의 사무원을 고용할 때, 모두 대학 졸업생으로 뽑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사범학교를 졸업한, 활력과 야망이 넘치고, 앞서 나가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우리는 많은 직책에 대학생을 채용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요컨대 교육은 일종의 좌절의 덫이라고 간주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이 부분에서는 한때 (대충 한 5~8년전이었나요?) 취업시장에 대한 담론 중 많이 나왔던 '과잉스펙'이 떠올랐어요. 사실 대기업이건 중견/중소기업이건 가릴 것 없이 일반 사무직의 업무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죠. 처음에는 어렵다고 해도 결국 적응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들이 많고요. 화이트칼라의 업무는 비용절감의 구조적 압력에 놓여있기에 계속해서 합리화(자동화)의 압박을 받으며, 대체가능한 수준의 일자리는 결국 '누가 와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리죠. 반면 이런 일자리에 지원하는 구직자의 수준은 경쟁 때문에 점점 상향평준화 되고, 이로 인해 나중에 취업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생기는 현상... 이미 1950년대에도 이런 사회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네요.
"좋은 성격을 가진 대학 졸업생은...기업에 채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한, 기술 및 과학 분야를 제외한 모든 직책에서 높은 성적보다 성격이 더 중요할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283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예전에 어떤 CEO분께서 하신 얘기와 일맥상통해서 문장수집했습니다. 그 분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일을 정말 못하는 사람 빼놓고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익숙해진다고요. 하지만 성격이 안 좋을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기 때문에, 위에서 볼 때는 일 좀 잘한다고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제일 골치라고 하셨어요. 근데 전 한 직장에서 거의 20년 일하다 보니....일 못하는 것도 좀 힘듭니다 ㅎㅎㅎ
참 재밌는 거 같아요. 회사들은 분명 성과와 능력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고, 또 결과물로 공정하게 평가하겠다고 대외적으로는 말하지만 직원들의 성과와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요소들도 평가에 반영하는 게 말이죠. (물론 성격이 타인과의 협업에 영향을 주므로 결국 성과와도 연관되긴 하지만) 일잘러를 놓치면 분명 팀의 입장에서는 손해이지만, 협업과 소통능력이 떨어지면 계속 끌어안고 가기도 어렵죠... '일을 잘한다'라는 평가는 결국 회사나 상급자가 조직원에게 어떤 면을 더 중요시하냐에 따라 다른 주관적 개념같아요. 가령 전체로서의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조직이라면 말씀하신 인원들은 오래 유지되지는 못할 거에요. 반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만 제대로 가져오면 상관없다는 문화가 지배적이라면 그런 조직에서는 또 바람직한 인물일 수도 있죠. (당해야 하는 입장의 사람은 죽을 맛이겠지만) 예전에 일하던 회사 임원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너네가 거짓말을 하거나, 너네 선에서 (문제를) 덮어도 난 상관 안 해. 나한테 걸리지 말고, 해결만 해오면 그만이야. 안걸리는 것도 재주야 재주." 그 분은 예전 방식의 관리자인지라 리더라기 보다는 보스형에 가까웠는데요. 전형적인 조직 내 군기 잡기를 좋아하시고, 대신 나서서 밑에 사람들 단도리 하는 행동대장을 가장 가까운 편으로 두는 유형이셨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던 사원 시절에 그분을 팀장으로 모셨던지라 그 당시에는 엮일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참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말 그대로 결과물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가져오면 무슨 성격적 결함이 있건, 또는 다른 방향에서 실수나 모자란 모습을 보이건 전혀 간섭을 안하셨거든요. 반대로 성격이 아무리 좋거나, 일머리가 있어도 그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처리가 안되면 눈밖에 났습니다. 그런걸 보면서 '일을 잘한다'라는 개념이 바람직하건 아니건 조직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화이트칼라 업무에서 흑인의 수는 미미하고,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흑인의 상당수가 저숙련 및 반숙련 공장 근로자로 일했다. 신중간계급은 다른 직업 계층보다 백인의 비율이 더 높다. 1940년, 화이트칼라의 99.5퍼센트가 백인이고, 자유 기업가의 90퍼센트, 도시 임금노동자의 87퍼센트, 농업 노동자의 74퍼센트가 백인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0~37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우리한테는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에서는 인종과 출신이 계급과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아서 수집했습니다. 화이트칼라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의 형성에 있어 백인 그것도 영미계 출신이 지배적인 이유는 대중매체와 더불어, 그 대중매체가 반영된 현실의 통계적 모습이 있기 때문이었겠죠.
소도시에 사는 사람의 이웃은 그에 대해 알아야 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반면, 대도시 사람은 소수로 이뤄진 잘 아는 집단 속의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우연히 알게 된 지인들의 이질적인 집단에서 일시적으로 관심을 받는 대상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뒤캐기가 아니라 공식적인 무관심이 관계를 지배한다. 관계를 맺기보다는 접촉하는 데 그치며, 이런 접촉은 수명이 짧고 피상적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5~376,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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