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미국 젊은이들에게 주입된 고등학교 문화의 훌륭한 저장소인 화이트칼라는 평균 12.4년의 학교 교육을 마쳤으며, 자유 기업가는 8.4년, 임금노동자는 8.2년으로 나타났다. 모든 직업 수준과 비교할 때 화이트칼라 남성과 여성은 더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교육 수준을 선도하는 독립 전문직 종사자의 16.4년을 제외하면 가장 길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직무 만족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빨리 기업에 유입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굶주린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 대학 졸업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만족하는, 어쩌면 이제는 고교 졸업생들도 만족하지 못할 그런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69,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사실, 교육받은 지성인은 규격화된 업무에서는 불이익을 받는다. 규격화된 업무에서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더 즐겁고 효율적으로 일할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한 인사 담당자는 "2,600명의 사무원을 고용할 때, 모두 대학 졸업생으로 뽑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사범학교를 졸업한, 활력과 야망이 넘치고, 앞서 나가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우리는 많은 직책에 대학생을 채용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요컨대 교육은 일종의 좌절의 덫이라고 간주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이 부분에서는 한때 (대충 한 5~8년전이었나요?) 취업시장에 대한 담론 중 많이 나왔던 '과잉스펙'이 떠올랐어요. 사실 대기업이건 중견/중소기업이건 가릴 것 없이 일반 사무직의 업무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죠. 처음에는 어렵다고 해도 결국 적응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들이 많고요. 화이트칼라의 업무는 비용절감의 구조적 압력에 놓여있기에 계속해서 합리화(자동화)의 압박을 받으며, 대체가능한 수준의 일자리는 결국 '누가 와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리죠. 반면 이런 일자리에 지원하는 구직자의 수준은 경쟁 때문에 점점 상향평준화 되고, 이로 인해 나중에 취업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생기는 현상... 이미 1950년대에도 이런 사회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네요.
"좋은 성격을 가진 대학 졸업생은...기업에 채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한, 기술 및 과학 분야를 제외한 모든 직책에서 높은 성적보다 성격이 더 중요할 것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283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예전에 어떤 CEO분께서 하신 얘기와 일맥상통해서 문장수집했습니다. 그 분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일을 정말 못하는 사람 빼놓고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익숙해진다고요. 하지만 성격이 안 좋을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기 때문에, 위에서 볼 때는 일 좀 잘한다고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 제일 골치라고 하셨어요. 근데 전 한 직장에서 거의 20년 일하다 보니....일 못하는 것도 좀 힘듭니다 ㅎㅎㅎ
참 재밌는 거 같아요. 회사들은 분명 성과와 능력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말하고, 또 결과물로 공정하게 평가하겠다고 대외적으로는 말하지만 직원들의 성과와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요소들도 평가에 반영하는 게 말이죠. (물론 성격이 타인과의 협업에 영향을 주므로 결국 성과와도 연관되긴 하지만) 일잘러를 놓치면 분명 팀의 입장에서는 손해이지만, 협업과 소통능력이 떨어지면 계속 끌어안고 가기도 어렵죠... '일을 잘한다'라는 평가는 결국 회사나 상급자가 조직원에게 어떤 면을 더 중요시하냐에 따라 다른 주관적 개념같아요. 가령 전체로서의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조직이라면 말씀하신 인원들은 오래 유지되지는 못할 거에요. 반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만 제대로 가져오면 상관없다는 문화가 지배적이라면 그런 조직에서는 또 바람직한 인물일 수도 있죠. (당해야 하는 입장의 사람은 죽을 맛이겠지만) 예전에 일하던 회사 임원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너네가 거짓말을 하거나, 너네 선에서 (문제를) 덮어도 난 상관 안 해. 나한테 걸리지 말고, 해결만 해오면 그만이야. 안걸리는 것도 재주야 재주." 그 분은 예전 방식의 관리자인지라 리더라기 보다는 보스형에 가까웠는데요. 전형적인 조직 내 군기 잡기를 좋아하시고, 대신 나서서 밑에 사람들 단도리 하는 행동대장을 가장 가까운 편으로 두는 유형이셨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던 사원 시절에 그분을 팀장으로 모셨던지라 그 당시에는 엮일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나놓고 보면 참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말 그대로 결과물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가져오면 무슨 성격적 결함이 있건, 또는 다른 방향에서 실수나 모자란 모습을 보이건 전혀 간섭을 안하셨거든요. 반대로 성격이 아무리 좋거나, 일머리가 있어도 그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처리가 안되면 눈밖에 났습니다. 그런걸 보면서 '일을 잘한다'라는 개념이 바람직하건 아니건 조직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화이트칼라 업무에서 흑인의 수는 미미하고,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흑인의 상당수가 저숙련 및 반숙련 공장 근로자로 일했다. 신중간계급은 다른 직업 계층보다 백인의 비율이 더 높다. 1940년, 화이트칼라의 99.5퍼센트가 백인이고, 자유 기업가의 90퍼센트, 도시 임금노동자의 87퍼센트, 농업 노동자의 74퍼센트가 백인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0~37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우리한테는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에서는 인종과 출신이 계급과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아서 수집했습니다. 화이트칼라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의 형성에 있어 백인 그것도 영미계 출신이 지배적인 이유는 대중매체와 더불어, 그 대중매체가 반영된 현실의 통계적 모습이 있기 때문이었겠죠.
소도시에 사는 사람의 이웃은 그에 대해 알아야 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반면, 대도시 사람은 소수로 이뤄진 잘 아는 집단 속의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우연히 알게 된 지인들의 이질적인 집단에서 일시적으로 관심을 받는 대상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뒤캐기가 아니라 공식적인 무관심이 관계를 지배한다. 관계를 맺기보다는 접촉하는 데 그치며, 이런 접촉은 수명이 짧고 피상적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5~376,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대도시 사람이 살아온 이력은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고, 그의 과거는 매우 한정된 집단에게만 드러난다. … 친밀감과 인격적인 접촉은 그의 삶의 방식에 더 이상 내재되어 있지 않으며, 종종 비인격적인 조작의 도구로 이용되기까지 한다. 응집력보다는 균일성이, 혈통이나 전통보다는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워졌지만 사회적으로는 멀어진 인간관계는 강렬하면서도 비인격적으로 바뀌고, 모든 면에서 금전적인 관계가 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6,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그들은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만나고, 그 후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적 삶으로 돌아간다. 소도시와 소기업에서는 아마도 화이트칼라와 임금노동자 사이에 지위의 경계선이 매우 선명하게 그어져 있을 것이다. 대도시 권역에서는 화이트칼라가 임금노동자와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도시의 물리적 배치, 직업에 따른 이동 경로 분리에 따라 사람들은 곧잘 서로 다른 지인 집단 속으로 제한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6~37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직장에서는,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실제의 직업적 지위를 부풀리기 어렵다. 그러나 직장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실제의 직책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직장에서의 지위 열망과 주장이 좌절되는 만큼이나, 직장 밖에서 이를 실현하려고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진짜 직업을 숨긴 채 직함이나 회사에서 위신을 얻으려 하고, 직함이나 회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득과 생활방식을 알려주는 신호인 거주지는 이런 식의 지위 인플레이션을 제한한다. 직장 동료와 마찬가지로 이웃에게는 더 높은 위신 주장이 쉽사리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영역도 있다. 쉽사리 위치를 '알아챌' 수 없는 익명의, 피상적으로만 아는 낯선 사람에게는 자신의 위신 주장을 실현할 수 있다. 그중 첫 번째이면서 종종 유일한 것이기도 한 요소로서 인상은 지위 주장에서 단기간의 성공을 낳을 수 있으며, 때로는 일종의 상호 거래로 이어질 수도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현대의 조건하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은 상당한 정도로까지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변형되었다. 개인의 가치와 진실성은 중요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탁월함에 대한 평판은 설사 존중에 대한 갈망이 정말 수수한 것이라고 해도,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노출되는 환경이 너무 광대한 탓에 충족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직접적인 이웃이 아닌 사람들의 눈앞에서 존엄성과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경제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실질적으로 경제적 성공과 일치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외의 과정이 노동의 의미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처럼, 지위에 대한 속물 근성과 모방 소비의 요구가 여가의 의미를 텅 비게 한다. 내면의 자원은 없고, 값싸거나 심지어 무료인 오락 형태는 피하고 싶을 때, 여가시간에 멋진 일을 하려면 돈이 든다. … 대도시에서는 직업이 불안정한 기반이 되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요소가 되면서, 여가와 외모의 영역이 지위에 더욱 중요해진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만나는 사람 대부분에게 지불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 말고는 우리에게 '보여줄 게 많지 않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해도 일시적인 호감을 누리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를 존중하게 만드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성공의 외양은 매우 바람직하며, 실질적인 내용보다 더 선호되는 경우도 많다. 현대사회의 산업 조직은 사실상 이 한 줄로 모방의 범위를 좁혔다. 동시에, 모방에 전념할 인간의 노력의 여유를 넓히기 위해 물질적으로 훨씬 더 쉽게 생계와 안락의 수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375~381쪽에 걸쳐 점진적으로 작가가 설명하는 이 과정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고립되고 무관심한 도시환경 → 타인에 대한 진정성의 평가 불가 → 위신과 계급을 확인할 수단으로서의 외견과 인상착의 → 홍보수단이자 지위의 표시로서 외모의 중요성 증가 대도시의 구획화 되고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만 기능하는 물리적 단위가 어떻게 사람들의 내면과 더불어, 타인을 평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또 우리 자신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도시 또는 농촌에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이웃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직업인이 단지 경제적인 구성원을 넘어, 타인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죠. 옆집 소기업가 사장님은 누군가에게 이웃이면서 동시에 손님일 때도 있고, 어딘가의 농민이나 장인은 교회나 음식점에서 마주치는 친구나 친척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반면 대도시는 역사에 따른 시간적/지리적인 자연스런 흐름과 별개로 기능성에 따라 구역이 분할되어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커진 도시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개발된 신도시면 더더욱 그렇죠. 주거단지와 업무단지가 구분되고 업무 단지 내에서도 특정 산업이나 기업체를 집중시킵니다. (산업단지, 클러스터 등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소기업가나 농민을 마주하기 힘들며,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누군가의 지위 하에 일하는 임금노동자/화이트칼라이거나 극소수의 대기업가와 그 주변인들 뿐이죠. 이들은 건물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본에 의한 위계와 지위에 지배 받는 관계로 인격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설령 내가 속한 회사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거리의 다른 사람은 어디에서는 임원이거나 사장일 수 있으니까요. 자신과 개인적인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이로 인해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공간이 됩니다. 이런 곳에서 도시인들은 원하는 바를 얻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 능력의 외면적 표현 수단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요. 전문적이고 잘 갖춰입은 복장, 신경쓴 외모와 자기관리의 모습,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과 인상을 남길만한 취향이나 특기의 홍보는 모두 비슷한 맥락입니다. 작가가 앞서 판매직에서 말한 부분이 떠오르는데요. 이제는 세상의 모든 영역이 전부 '판매술'의 영역으로 바뀌면서 모두가 자신의 장점이나 특성을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게 홍보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말의 연장선 같습니다. 그 결과, 현상이 역전되어 내면적 가치와 개인적인 내밀함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조직이 좋아할만한 외견적 요소를 갖추면 조직에서는 더 유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성관계건, 취업시장에서건, 인사평가와 승급심사에서건 쾌활하고 매력있는 사람은 그 자체의 특성으로 우호적 기대를 얻게 되고요.
그래서 그렇게 90년대-2000년대 사이에 명품 바람이 불었었나 싶어요. 가방이나 내 옷/소지품에 붙어 있는 브랜드 로고가 나를 말해 줄 거라는 착각... 요새도 계속 부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엄빠돈 못 쓰고 제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해 사회적 지위가 급하강해서 못 느끼는 걸 수도 있겠네요. 백화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꿔요.
휴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더욱 극적인 연간의 지위 주기도 있을 수 있다. 도시 대중은 휴가를 '그저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에서 벗어난 휴식'으로 기대한다. 이런 표현 이면에 담긴 의미는 종종 성공적인 지위 주장을 통한 상승 효과다. 휴가 중에는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해도 더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는 느낌을 구매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싼 리조트, 3박 4일에 그칠지라도 호화로운 호텔, 일주일 동안의 일등석 크루즈 여행 같은 것 말이다. 많은 휴가 장치가 이러한 지위 주기에 맞춰져 있다. 직원과 고객 모두 성공적인 환상의 일부가 되기로 상호 동의한 것처럼 전체 설정을 연기한다. 1년에 한 번인 그런 경험을 위해, 회색빛의 긴 평일 동안 종종 희생이 이루어진다. 빛나는 2주는 지루한 삶에 꿈 같은 삶을 채워준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383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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