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그들은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만나고, 그 후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적 삶으로 돌아간다. 소도시와 소기업에서는 아마도 화이트칼라와 임금노동자 사이에 지위의 경계선이 매우 선명하게 그어져 있을 것이다. 대도시 권역에서는 화이트칼라가 임금노동자와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도시의 물리적 배치, 직업에 따른 이동 경로 분리에 따라 사람들은 곧잘 서로 다른 지인 집단 속으로 제한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76~37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직장에서는,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실제의 직업적 지위를 부풀리기 어렵다. 그러나 직장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실제의 직책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직장에서의 지위 열망과 주장이 좌절되는 만큼이나, 직장 밖에서 이를 실현하려고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진짜 직업을 숨긴 채 직함이나 회사에서 위신을 얻으려 하고, 직함이나 회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득과 생활방식을 알려주는 신호인 거주지는 이런 식의 지위 인플레이션을 제한한다. 직장 동료와 마찬가지로 이웃에게는 더 높은 위신 주장이 쉽사리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영역도 있다. 쉽사리 위치를 '알아챌' 수 없는 익명의, 피상적으로만 아는 낯선 사람에게는 자신의 위신 주장을 실현할 수 있다. 그중 첫 번째이면서 종종 유일한 것이기도 한 요소로서 인상은 지위 주장에서 단기간의 성공을 낳을 수 있으며, 때로는 일종의 상호 거래로 이어질 수도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현대의 조건하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은 상당한 정도로까지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변형되었다. 개인의 가치와 진실성은 중요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탁월함에 대한 평판은 설사 존중에 대한 갈망이 정말 수수한 것이라고 해도,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노출되는 환경이 너무 광대한 탓에 충족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직접적인 이웃이 아닌 사람들의 눈앞에서 존엄성과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경제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실질적으로 경제적 성공과 일치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외의 과정이 노동의 의미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처럼, 지위에 대한 속물 근성과 모방 소비의 요구가 여가의 의미를 텅 비게 한다. 내면의 자원은 없고, 값싸거나 심지어 무료인 오락 형태는 피하고 싶을 때, 여가시간에 멋진 일을 하려면 돈이 든다. … 대도시에서는 직업이 불안정한 기반이 되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요소가 되면서, 여가와 외모의 영역이 지위에 더욱 중요해진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만나는 사람 대부분에게 지불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 말고는 우리에게 '보여줄 게 많지 않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해도 일시적인 호감을 누리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를 존중하게 만드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성공의 외양은 매우 바람직하며, 실질적인 내용보다 더 선호되는 경우도 많다. 현대사회의 산업 조직은 사실상 이 한 줄로 모방의 범위를 좁혔다. 동시에, 모방에 전념할 인간의 노력의 여유를 넓히기 위해 물질적으로 훨씬 더 쉽게 생계와 안락의 수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38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375~381쪽에 걸쳐 점진적으로 작가가 설명하는 이 과정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고립되고 무관심한 도시환경 → 타인에 대한 진정성의 평가 불가 → 위신과 계급을 확인할 수단으로서의 외견과 인상착의 → 홍보수단이자 지위의 표시로서 외모의 중요성 증가 대도시의 구획화 되고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만 기능하는 물리적 단위가 어떻게 사람들의 내면과 더불어, 타인을 평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또 우리 자신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도시 또는 농촌에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이웃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직업인이 단지 경제적인 구성원을 넘어, 타인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죠. 옆집 소기업가 사장님은 누군가에게 이웃이면서 동시에 손님일 때도 있고, 어딘가의 농민이나 장인은 교회나 음식점에서 마주치는 친구나 친척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반면 대도시는 역사에 따른 시간적/지리적인 자연스런 흐름과 별개로 기능성에 따라 구역이 분할되어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커진 도시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개발된 신도시면 더더욱 그렇죠. 주거단지와 업무단지가 구분되고 업무 단지 내에서도 특정 산업이나 기업체를 집중시킵니다. (산업단지, 클러스터 등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소기업가나 농민을 마주하기 힘들며,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누군가의 지위 하에 일하는 임금노동자/화이트칼라이거나 극소수의 대기업가와 그 주변인들 뿐이죠. 이들은 건물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본에 의한 위계와 지위에 지배 받는 관계로 인격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설령 내가 속한 회사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거리의 다른 사람은 어디에서는 임원이거나 사장일 수 있으니까요. 자신과 개인적인 연관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이로 인해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공간이 됩니다. 이런 곳에서 도시인들은 원하는 바를 얻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 능력의 외면적 표현 수단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요. 전문적이고 잘 갖춰입은 복장, 신경쓴 외모와 자기관리의 모습,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과 인상을 남길만한 취향이나 특기의 홍보는 모두 비슷한 맥락입니다. 작가가 앞서 판매직에서 말한 부분이 떠오르는데요. 이제는 세상의 모든 영역이 전부 '판매술'의 영역으로 바뀌면서 모두가 자신의 장점이나 특성을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게 홍보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말의 연장선 같습니다. 그 결과, 현상이 역전되어 내면적 가치와 개인적인 내밀함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조직이 좋아할만한 외견적 요소를 갖추면 조직에서는 더 유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성관계건, 취업시장에서건, 인사평가와 승급심사에서건 쾌활하고 매력있는 사람은 그 자체의 특성으로 우호적 기대를 얻게 되고요.
그래서 그렇게 90년대-2000년대 사이에 명품 바람이 불었었나 싶어요. 가방이나 내 옷/소지품에 붙어 있는 브랜드 로고가 나를 말해 줄 거라는 착각... 요새도 계속 부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엄빠돈 못 쓰고 제가 벌어 먹고 살아야 해 사회적 지위가 급하강해서 못 느끼는 걸 수도 있겠네요. 백화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꿔요.
휴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더욱 극적인 연간의 지위 주기도 있을 수 있다. 도시 대중은 휴가를 '그저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에서 벗어난 휴식'으로 기대한다. 이런 표현 이면에 담긴 의미는 종종 성공적인 지위 주장을 통한 상승 효과다. 휴가 중에는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해도 더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는 느낌을 구매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싼 리조트, 3박 4일에 그칠지라도 호화로운 호텔, 일주일 동안의 일등석 크루즈 여행 같은 것 말이다. 많은 휴가 장치가 이러한 지위 주기에 맞춰져 있다. 직원과 고객 모두 성공적인 환상의 일부가 되기로 상호 동의한 것처럼 전체 설정을 연기한다. 1년에 한 번인 그런 경험을 위해, 회색빛의 긴 평일 동안 종종 희생이 이루어진다. 빛나는 2주는 지루한 삶에 꿈 같은 삶을 채워준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383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저도 이 문장 따로 수집해뒀어요. 휴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구나 싶어서 신선했거든요. 노동과 여가가 완전히 구분되고 상호단절된 세상에서, 여가도 자본이 있어야만 소비할 수 있기에 결국 화이트칼라는 휴식에서도 온전히 쉬지 못한다는 지적이겠죠.
전 저의 심리를 꿰뚫는 것 같아 조금 뜨끔했어요. 일하는 동안에는 받지 못했던 소위 '대접'을 호텔이나 휴양지 가서 받으려는 태도. 그에 응하는 호텔 직원들의 '연기'까지 내 능력에서 약간 벅찬(너무 벅차면 안됨) 호텔을 예약해서 평소에는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누리려 하고요. 30대에 한창 돈벌기 시작할 때는 그런 게 인생의 행복의 척도인 것마냥 흥청망청 돌아다녔는데, 이젠 그럴 돈도 없지만 다른 것에 더 눈을 돌리게 되어서 좀 다행입니다.
휴가에 대한 이 글을 보니 크루즈 여행의 민낯을 까발린 두 작품이 생각나네요. 그나저나 전 이 책의 서문과 6장 오래된 전문직과 새로운 기술만 읽었지만 여러분들이 올려주신 수집된 문장들을 훔쳐보다보니 다 읽은 기분입니다. ㅎㅎ
슬픔의 삼각형호화 크루즈에 협찬으로 승선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휴가를 즐기던 사이,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전복되고 8명만이 간신히 무인도에 도착한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구조 대기뿐인 사람들. 이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미국 소설가다. 그는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3편의 장편소설, 3권의 소설집, 3권의 산문집을 남기고 2008년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에세이 선집이다. 그가 집필한 세 권의 산문집에서 9편을 골라 엮었다.
저도 슬픔의 삼각형 보고 크루즈 여행 딱 하기 싫어졌어요. 근데 아직 로망이 조금 남아 있긴 합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책 하나도 안 읽어 봤는데, 두껍고 어렵기로 악명 높은? 'infinite jest'가 어느 책엔가 나와서 읽어 보고 싶어서 찾았으나 다행히 번역이 안 돼서 못 읽었네요! ^^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이 에세이집 첫번째 에세이가 저자가 크루즈 여행을 하고 쓴 에세이인데 150쪽 정도 되며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소설은 어렵다고 하는데 저도 안 읽어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빌 브라이슨의 책표지 같아 마음에 들어요. 제목도요! 읽어 보겠습니다. ^^ 여담이지만, 제 친구가 예전에 피부미용으로 크루즈 승무원을 한 적이 있는데, 어땠는지는 물어보지를 않았네요.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라. 미소 짓고... 잘 들어주라. 상대방의 관심을 기준 삼아 이야기하라. 상대방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라. 그리고 진심으로 대하라.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데일 카네기는 말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394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제가 일할 때 직원이든 고객님이든에게 가지려는 마음인데...좀 많이 어렵습니다. 본성이 거칠어서일까요? ㅎㅎ 어제도 지하철에서 카네기 책 읽는 청년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 심성이나 성격에 대한 자기계발 책들을 어느 순간 안 읽게 됐어요. 알더라도 그 순간의 상황에서 기억을 해가며 인지하고 통제하기도 어렵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직급이나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감정도 상대적이라고 느끼거든요. 그냥 요즘은 남에게 대놓고 무례하거나 티를 내지만 않는 선에서 제 감정에 솔직한 것이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하며 삽니다..
구중간계급이 불안정한 소규모 재산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자식을 자신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동시에, 임금노동자들은 자식이 자기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를 열망했다. 두 계층 모두 '교육 기회'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자녀에게 더 나은(더 많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희생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399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딱 우리나라 중산층 부모들의 모습이네요. 저도 저기서 자유롭지 못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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