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저자는 화이트칼라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 중 첫번째로 대중매체를 꼽습니다. 현대인은 개인이 시간을 들여가며 지역사회나 정치인에 대해 찾아보고 진정성을 분석할 여유가 없죠. 그래서 필연적으로 대중매체에 속한 언론을 통해 정치와 사건을 접하는데 언론사들은 '투명해보이지만 틀이 갖춰진 프레임워크'를 필요에 따라 조절하고 편집하여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거죠. 바로 이런 대중매체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자기자신의 의견에 대중문화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언론을 통해서만 정치를 접하고, 소식을 듣고, 의견을 형성하게 되니 개인은 축약된 마케팅이나 판촉물 같은 형태로만 정치를 인식합니다. 매체를 불문하고 언론들은 헤드라인을 통한 축약, 시사성이나 대중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사안 위주의 보도, 시민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 정치인 위주의 발언과 행보는 이런 연장선입니다. 상품에 반복 노출된 소비자가 상품을 실제 이해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의견을 형성하거나 구매하듯, 오늘날의 정치는 미디어로 인해 하나의 상품화가 되고 있는 거죠. 그 상품화의 과정에서 추가되는 양념(미사여구, 이미지, 명분)은 진부하고 뻔하기에 대중은 정치를 생생하게 체험하지 못합니다. 정치인도, 정당도 현대인에게는 또 하나의 광고에 불과할 뿐입니다. 정당이나 정책 자체의 판단보다는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나 공감 여부가 의견과 반응을 좌우하는 기준이 됩니다. 작가는 대중매체의 본질적인 지엽성이 정치의 전체적인 의미를 파편화한다고 말하는데요. 보다 지엽적이고, 사적이며, 세부적인 사안에 집중할수록 정치의 의미는 사소해집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언론이 보도하는 소소한 팩트만으로 사건을 접하고, 판단하고, 상징을 강화하고 자신의 기준을 강화합니다. 이런 지엽적 사건이나 소식은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의미없는 정보일 뿐이기에 결국 볼 사람만 보고 안볼 사람은 안보게 되고요. 한쪽에는 편파성이, 다른 한쪽에는 무관심이 자리 잡습니다. 그나마도 언론의 기능은 대중매체 안에서 유흥과 엔터테인먼트의 즉흥적이고 보다 직관적인 유희에 밀려나고요.
저도 이 부분 읽을 때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은화 님이 잘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제 경우에는 관심은 많지만, 정치인이 너무 많고 그들의 배경은 더욱 모르고요. 연예인 같이 매력적이라면 막 파고들겠는데, 볼 때마다 맨날 소리 지르거나 헛소리하거나...ㅜ.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 보려고요!
언젠가부터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누가 더 잘못했다고 고자질 하는 싸움을 보는 느낌. 책의 내용처럼 정치가 아니라 지엽적 사건의 잘잘못과 정정, 반박에 모든 기사와 활동이 꽂혀있는 것 같은.. 그때 즈음부터 저도 피곤해져서 정치 뉴스를 안보기 시작한 것 같고요. 어쩌면 유흥거리와 대중매체가 우리를 유혹해서라기보다, 정치 소식이 주는 매력이 피로도를 넘지 못해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교육받은 대중은 아마도 정치에 가장 무관심한 사람들일 텐데,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시민 교육 도서를 통해 정치에 가장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 그들은 대중매체의 표적이 되는 고등학교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신중간계급은 하층으로서 매우 열광적인 시장을 형성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49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1920년 이전 수십 년 동안 3,500만 명의 이민자가 미국으로 유입되어 사회 구조의 최하계층으로 진입했고, 이들이 어려운 일자리와 가장 낮은 존경을 받아들이는 동안 자기 위의 모든 계층을 밀어올렸다. 먼저 온 사람들은 자기 아래에 조만간 무시할만한 사람이 생겨났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501,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미국의) 두 정당은 각각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계층을 대변해야 하므로 일반적이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슈들만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경쟁은 보편적인 호소로 이어지고 따라서 많은 약속은 깨지며, 특정 계층들의 상충하는 이념보다는 공허한 보편적 수사학으로 이어진다. 후원 정당이 지지를 위해 호소해야 하는 대중이 다양할수록, 정강에는 결정적이고 대립적인 내용이 부족해진다. 그 결과 자신들이 반영하겠다던 이슈는 무뎌지고, 자신들이 충족시키겠다던 욕구는 약화된다. 누군가를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말을 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506~50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미국의 주요 양당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두 정당은 대규모 정치 조직과 정치 선정의 기회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런 정당 시스템은 대체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이다. 즉, 이런 사람들은 실제 이슈들을 해소하기 위한 권력 투쟁으로서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50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개인과 권력 중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개인은 무력함을 느끼게 되었다. 정치적 희망과 정치적 현실 사이에는 두 정당과 연방 관료제가 존재하며, 이들은 정치적 행동의 수단으로서 종종 직접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신경을 잘라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 개인의 일상생활과 멀리 떨어진 정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에서 개인은 힘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509~510,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화이트칼라가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두 번째 이유로 찰스 라이트 밀스는 미국의 역사와 정치구조를 꼽습니다. 정치적 관심은 현재의 상태에 대해 문제의식과 불만이 있어야 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작가는 1920~30년대에 이주민 노동자의 유입으로 기존 하층계급이 상대적으로 상승할 여지가 계속 있었고, 비교대상이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새로운 마중물이 계속 투입되기에 하층계급이 불만을 품을 기간이 길지 않고, 심리적으로 현상태에 상대적으로 만족할 비교군이 생기기 때문이죠. 한편 다양한 인구, 국가, 종교의 출신에 따라 사람들이 소속감이나 연대의식을 갖더라도 직업의 변동으로 위신과 소득이 바뀌면 그들을 묶던 연결고리가 끊겨 집단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고 지적하고요. 직업의 필요로 거주지나 근무지가 바뀔 경우, 소규모 도시나 농촌에 살던 개인들은 물리적으로 떨어진 대도시로 이동해야 했으니까요. 더구나 대도시는 그 기능성 때문에 사람들이 연결될 개인적 경험도 줄어듭니다. 다른 요소인 정치적 환경으로 작가는 양당제를 꼽는데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여 흥미롭습니다. 양당제 구도에서는 권력을 위해 두 정당이 최대한 많이, 최대한 넓은 스펙트럼의 대중까지 끌어모아야 하죠. 문제는 중도층으로 확장하고자 다양한 이슈에 중립적/원론적 입장만 내놓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이 오게 됩니다. 대중이 돌아설까봐 두려워 본래의 색깔에 기반한 확고한 입장을 말하기보다 지지율과 표 확보를 위한 기계적 중립성만 유지합니다. 그 결과, 중도층은 중도층대로 뻔한 말만 한다고 생각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기존 지지층은 지지층대로 배신감을 갖고요. 지금의 지지 정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편으로 가더라도 그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죠. 몇 번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시민은 양갈래 갈림길 밖에 없는 극단적 선택지에 싫증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15장은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개인을 무관심하게 만드는지 분석하는 내용으로서 흥미롭지만, 화이트칼라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겁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일반 정치/사회 도서의 폭넓은 내용으로 다뤄도 될 정도로 비판적이라고 느꼈거든요.
어쩌다 보니 마지막 날짜까지도 책 얘기로 쉼없이 달려왔네요 ㅎㅎ 분명 쉽지 않은 책이지만 화이트칼라를 이렇게 낱낱이 파헤치는 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화이트칼라의 태동과 등장과정, 다양한 직업과 그 직업 내에서 일어난 변천사와 개인의 심리, 화이트칼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과 위치, 정치적 역할까지.. 고봉밥으로 꾹꾹 눌러담은 내용에 조금 벅차기도 했지만, 이만큼 분석적인 내용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생각되네요. 어떨 때는 미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또 어떨 때는 1950년과 현재라는 시간의 차이 때문에 공감이 덜 되거나 이해가 안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유효한 관료제라는 사회구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도 피해가지 못한 관료조직의 거대한 존재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대중매체에 익숙해져 매체의 프레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직에 속해있는 걸 당연하게 느끼고 인식하느라 정작 근원을 파헤쳐 볼 생각을 못하는 현대인에게 거울을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겐 좀 어려운 책이라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래도 다 읽어서 뿌듯합니다. 이해 안되는 부분을 보통 땐 그냥 넘어가는데 이 책은 그랬다간 반은 날릴것 같아 몇 번씩 읽은 부분도 있고요. 마지막까지 감사했습니다!
개인의 일상생활과 멀리 떨어진 정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에서 개인은 힘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510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문제는 누가 실제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인데, 왜냐하면 복잡하고 은밀한 시스템은 종종 복잡하지만 조직화된 무책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511p,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요새 특.히.나 그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조직체계를 보며 한심함을 많이 느꼈는데 예전부터 그랬던 거 보면 이러는 게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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