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급

D-29
구중간계급은 많은 작은 요소들이 서서히 산산조각 났다. 경쟁의 중심이 생산에서 판매술로 옮겨가면서 많은 소규모 제조업체는 대형 제조업체의 직접적인 위성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많은 소매업체는 사실상 대형 제조업체의 유지보수 대리점이나 유통업체로 전락했다. 소규모 제조업체와 소규모 소매업체는 동맹을 맺기는커녕 시장을 둘러싼 투쟁에 갇혀 있으며, 그 과정에서 둘 다 대기업의 지배를 받게 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74~75,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유자이자 관리자, 그리고 노동자로서 한계 상황에 몰린 희생자는 대개 가족으로 하여금 상점, 농장, 가게에서 일손을 돕게 한다. 따라서 경제생활은 가족생활과 일치한다. 구멍가게라고 불리는 영세 기업에서는 부부가 서로와 자식을 계속 지켜볼 수 있다. 가족 기업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는 흔히 가족 단위 내부에서의 자유 결여의 대가다. 빌헬름 라이히가 지적했듯이 실제로 가부장적 행로 속에서 곧잘 극단적인 억압이 행사되는 것이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삶의 특징이다. 아동 노동은 종종 저임금 착취 노동이며 룸펜 부르주아지에게 그 본거지를 두고 있다. … 그리하여 사업상의 경쟁과 경제적 불안이 가족 관계 속에서, 그리고 빚지지 않기 위해 요구되는 엄격한 기강에서 드러난다. 가게나 농장 밖으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출구가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은 수익에 대한 탐욕이 커질 수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78~79,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룸펜 부르지아지를 저는 '자영업자'의 개념으로 이해하며 읽었습니다. 사업가라고 하기에는 사업과 조직의 규모가 가족 단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에게 고용된 입장은 아닌 점에서 자영업이 가장 유사해 보였거든요.분량이 길지는 않음에도 룸펜 부르지아지들의 사고와 가치관을 분석한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모든 자영업자에게 통용될 수 있는 해석은 아니고, 또 과거 시대다보니 남녀평등이 지금보다 뒤처지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그러나 수입과 소득이 적은 소小기업가 가정에서 어떻게 갈등이 시작되고 심화되는지를 심리와 경제적 여유를 연결지어 설명하는 내용이 와 닿았어요. 경제생활과 가족생활이 구분되지 않기에 각자의 사생활이 없으며, 언제나 경제적 성취에 대한 압박이 모두를 짓누르는 분위기에서 오히려 더 권위적으로 변하는 가장의 모습.. 주변의 가족과 인간관계, 정신적 여유 같은 요소들마저 투쟁해서 얻어내야 할 계산의 영역이 된다는 게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신중간 계급의 직업들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재산 위에서 타인을 위해 일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경영자에게 안정성이란 존엄과 성과에 대한 인정, 그리고 재량에 대한 자유에 심지어 여가라니.. 이 모든것을 다 누리고 있는 경영자가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해요. 특히 여가 부분이 가장 힘들지 않을까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338051?sid=101 경영자의 여가라고 하니 재밌는 기사가 있어서 가져와 봤는데요. 마이애미 대학에서 경영진이 골프를 여가로 즐길 경우, 업무나 회사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조사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골프를 많이 하는 경영진들이 오히려 경제적 보상이 낮았다고 해요. 연구진은 골프를 많이 하는 임원은 그만큼 시간이 남아돌고, 이는 어느 정도 업무상의 태만과 연관되며, 그 태만함으로 인해 여러 보상을 받을 기회나 동기가 남들보다 적으므로 보너스나 보상액이 적다고 분석했어요. 어쩌면 책에서 언급한 안정성은 구성항목들은 서로 상반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그저 소망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관료제 안에서 인정을 받고자 하면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면 개인의 여가는 그만큼 줄어들 테고요. 골프 자체를 정말로 좋아서 하기 보다는 사업과 네트워킹 때문에 업무적 취미로 시작하는 분들이 많죠. 회식을 업무의 연장으로 인정하는 통념이 지배적이듯, 골프도 제2의 사업 또는 조직생활과 마찬가지고요. 조직원이라는 공적인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해 배운 취미이지만 정작 그것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조직에 해로운 취미가 된다니.. 아이러니하네요.
저희 대표님은 제가 입사하기 전(20년 전)부터 꾸준히 1년에 100일 정도는 골프치러 가시는데요. 회사일과는 1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저희끼리 '미골(미안하다 골프친다)'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요. 근데....저는 그 분을 보며 회사도 운빨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분이 10년 전쯤에 공황장애(이때도 저희끼리는 '연예인병'이라고 뒤에서 수근거렸습니다. 맨날 노는데 무슨 공황장애냐고요)인지 갱년기인지 와서 동생분이 사업을 이어받았는데, 이어받자마자 코로나 터져 회사창립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동생분은 돌아가셨죠. 이후에 다시 대표님이 사업을 맡자마자 코로나가 끝나고 회사창립이래 이런 호황은 없었다며 원래도 잘 됐지만 더 잘 되더니, 아직도 잘 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대표님이 인복이 있다고 하는데, 전 그 분의 타고난 운인 거 같습니다. '운칠복삼' 을 타고나신 분 그 분께 골프란?
어쩌면 동생분이 진짜 경영자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은 잘 나가는 때에는 겸손이 중요하고, 역경이 왔을 때는 인내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저는 대표님의 동생분이 기업을 끝까지 살리고 유지한 것이야 말로 진짜 성과라고 생각 드네요. 동생분이 회사를 버티게 했기에 결국 호황을 맞이할 기회가 온 거니까요. 골프는 지금도 제게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제가 사원일 적 저의 사수는 골프를 싫어했음에도 배우고 다녔습니다. 팀장들과 임원들이 다 치다 보니 본인 승진이나 인사평가를 위해 안 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군요. 사람이면 다 비슷할텐데 제 사수도 저렇다면 과연 팀장들도 사실은 골프를 싫어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골프치는 분들끼리 모여서 컨트리클럽에 1박2일로 가시던데 과연 그 안에서 '재미 있어서', '정말 좋아해서'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어요.그래서 저는 취미가 골프라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 항상 속으로만 물어봅니다. "진짜 좋아하는 취미 맞나요?"
근데 골프는 '스크린골프'까지 치느냐가 좋아함의 척도 아닐까요? ㅎㅎㅎ 제 친구 남편은 어디를 가든 '간이용 골프채'를 분신처럼 들고 다니면서 단 1시간의 여유만 있어도-일본 사람인데 한국어도 못하는 사람이 강남 한복판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스스로/직접 찾아 저희가 카페 간 사이에- 골프 치러 가더라고요. 영업 때문에 시작했지만 좋아진 케이스? 근데 그것도 케바케라 잘 모르겠어요~ 아님 집안일로부터의 공식적 탈출구?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릴게요. 전 골프 안치는 친한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즐거움과 기쁨을 골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데 그걸 안 해보고 죽을 운명이라니 안타깝다. 특히 부부가 나이들어서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최고로 재밌는 운동이 골프인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했든 저처럼 그냥 취미로 시작했든 골프의 재미에 빠지면 ’그저‘ 하고 싶어집니다. 재밌는 책을 마구 읽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임원으로서 주말마다 비즈니스 골프 치는 제 친구가 그와는 별개로 시간을 어떻게든 내어 저랑 골프치는 것을 보면 ’저렇게 내키지 않는 사람들과 자주 치면 골프가 지겨울 것 같은데 아닌가봐‘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라고요. 다만 우리나라에선 골프 비용이 많이 드는게 문제지요. 제가 돈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70세까지 부부가 함께 골프 칠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벌어두어야겠다는 동기부여까지 받았다니까요. ㅎㅎ 골프에 대해 들리는 각종 소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시고 여건을 만들어 골프를 쳐보시기 바랍니다. 잘 맞았을 때 손에 전해지는 그 타구감과 초록 잔디 위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하얀색 공의 아름다운 궤적에 반하게 될 겁니다. 참, 전 이 책을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정도 퀵하게 읽고 인터넷에서 요약본을 본 후 완독은 포기했습니다.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저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 방의 글들은 가끔씩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화이트 칼라라 미련을 못 버렸나봅니다.
안녕하세요 밥심님! 여기서도 뵙네요. 그런 감정과 경험의 세계가 있었군요! 어쩌면 저는 골프를 하는 분들을 다 회사에서만 접해서 그런 관념이 굳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관료제의 세계에서는 골프마저도 자유롭지 않나 봅니다. 😂 저도 이번 책은 작가의 통찰력이나 분석력이 분명 뛰어나다고 느끼지만 문장이 조금만 더 다듬어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치 조밥을 먹는 느낌이랄까요.. 좀 오래 씹어야 하는 책이라서 그런지 진도 빼기가 쉽지 않네요.
… 특히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 경쟁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왜냐하면 자유 경쟁이 있고 기업이 끊임없이 성쇠한다면, 기존 지위를 지키는 기업가는 “더 나은 사람”이고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87,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추상적인 영역에서는 누구나 경쟁을 믿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경제 상황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기업가는 거의 없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88,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말씀하신 자영업자와 엮이면서 이 부분이 저도 슬펐습니다.
가격 경쟁에 대한 두려움과 안정에 대한 욕망으로 '공정 경쟁'과 '공정 거래'법을 가장하여 일정 마진을 유지하도록 밀어붙이는 등 자유 기업의 부속물을 위한 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존재가 바로 이 독립 소매업자다. 그는 이제 체인점의 매장 수를 대폭 제한하고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라고 정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89,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소기업가들은 자유주의와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 했다는 지적도 재밌었는데요. 교통과 통신의 발전으로 대형 유통사와 판매업체가 들어오면서 시장의 경쟁구도가 바뀌자 소기업가들은 '공정한' 경쟁을 근거로 대형업체들의 저가 판매를 제한하려 들기도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보장하는 동결책을 주장하죠. 소기업가들에게 경쟁이란, 자신들의 생존과 유지를 위한 방편이지 실제로 몸으로 맞닥뜨리기를 원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말 같습니다. 사실 누구나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생각이죠. 시장논리와 경쟁이란 단어가 주는 가치와 의의를 표면적으로 접할 때는 모두가 동의해도, 막상 그 무한경쟁에 내던져지면... 경쟁을 회피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경쟁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권력과 영향력의 네트워크에 편입되어 보호받기를 원하는 건 다 똑같을 겁니다. 작가도 지적했듯이 이는 '경쟁'이 더 이상 자유로운 개별 집단의 장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고요. 무한한 경쟁 구도에 놓여 지쳐 나가떨어지는 위기가 한 편에 놓여 있고, 유통구조를 재편하려는 대기업 집단으로의 편입이라는 또 다른 위협이 반대편에 있죠. 양갈래 길로 사람을 몰아넣고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인가를 생각하면 누구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듯, 오늘날의 경쟁의 개념은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작가의 통찰이 인상깊습니다.
소기업가를 평가할 때 기존 상위계층은 지위와 '배경'으로, 하위계층은 소득과 겉모습으로 더 많이 판단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1~102,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대기업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도시를 떠나겠다는 위협이다. 이 거부권은 도시의 경제생활에 대한 사실상의 생사여탈권이며, 도시의 은행, 상공회의소, 소기업가, 노동자, 공무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화이트칼라 - 현대 중간계급의 초상 p.103, 찰스 라이트 밀스 지음, 조형근 옮김
저도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서로 대기업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마치 이 도시의 생사가 걸린 것처럼 구애를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한 대목 같았거든요. 특히 일자리와 인프라로 연결되는 부동산 가치로 까지 연결되는 모습을 보면 대기업이 가진 파워라는 것이 조금 무섭기도 했어요.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책에 있던 문장이 떠오르네요. 한때 노동자들은 연대를 통해 작업을 중단하거나 지연시킴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업이 그 반대로 회사를 옮기겠다는 협박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요. 그렇기에 노동자는 '일자리에 나갈 자유'라는 최소한의 마지막 권리마저도 빼앗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인데요. 당연히 들어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근처에서 대량의 산업 용수와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데 과연 이걸 다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이런 의견은 소수에 불과하고 현재 대부분의 시민단체와 위원회는 유치를 위해 여러 활동과 압력을 행사 중입니다. 대기업 집단의 경제적 영향력이 시민의 정치적 권리의 행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대기업은 직접 행동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대기업이 소기업가들을 오히려 본인들의 경제적 이권을 대변하는 존재로 활용하는 대목도 이와 비슷할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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