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의 이시바 총리가 이런 담화를 했었군요. 기존의 사과 반성을 넘어서 구조적인 분석을 제시한 부분이 이전 총리들과 다른 부분이죠?
무엇보다 시스템의 문제. 특히 여론의 위험까지.
훌륭하네요. 한국뉴스에서 볼수 없는 내용이네요
사이토 다카오 같은
소수를 제명한 부분까지 비판하였네요.
이 담화가 일본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궁금하네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2. <김규식과 그의 시대> (2)
D-29

오구오구

향팔
일본 총리가 이렇게 상식적이고 역사의식을 갖춘 얘길 하는 걸 저는 처음 본 것 같아요. 물론 단기간 재임 후 물러나기 전 개인 명의로 발표한 의견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할말은 하고 가겠다는?), 그래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여러 번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YG
@향팔 @오구오구 저는 그 글 읽고서 이런 헛생각도 했었어요;
[이시바 시게루와 헛생각]
예전에 『도련님의 시대』(세미콜론)를 재미있게 읽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고, 오늘(10월 13일)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종전 80주년 메시지를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 만약 이시바 총리의 비판적 평가대로 다이쇼 후기와 쇼와 초기(1920~1930년대)에 일본이 군부에 휘둘리지 않은 정상 국가의 길로 갔다면 지금 우리는 한반도에서 레이와 7년을 살고 있을 수도.
아니면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인도, 인도네시아 나중에 알제리, 베트남처럼 뒤늦게 독립했을까? 냉전기 그 독립의 과정은 어땠을까? 한국 전쟁이나 분단 없이 독립했을까? 독립 후에는 일본의 속국 형태로 경제적 식민지로 종속되었을까? 아니면 냉전기 동북아시아의 스웨덴이나 핀란드 혹은 독일 베를린처럼 서울이 나중에 세계 첩보 소설의 무대가 되었을까?
이시바 총리의 명문을 읽으며 출근하다가 든 헛생각.

향팔
으앜 ㅋㅋㅋ 레이와 7년이라니 (진짜 그랬을 수도.) 갑자기 소름이 막 돋네요

적륜재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의 부제가 "경성, 쇼우와 62년"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아니었으면(이토 히로부미는 병합에 반대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대신 위성국 같은 형태로 끌고 가려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은 일본 군부의 폭주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거란 생각에 동감입니다.

향팔
두분 글을 보니 한편으론 아찔하면서 정신이 번쩍 드네요. 이시바 총리의 합리적인 담화 속에 숨은 서늘한 가능성, 어쩌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튈 수도 있었을 역사의 아이러니…. 역사는 정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공부라고 하던데, 왜 그런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3월 읽기 표입니다. 이미 확인하셨겠지만, 3권은 1권과 2권보다 분량이 많아요. 본문 697쪽에 꼭 읽어야 할 부록의 30쪽 분량 논문까지. 그래서 빡빡하지만, 3월 29일까지 완독하는 일정입니다. 1권, 2권 호흡으로 따라오시면 무리가 없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향팔
“ 7. 일본에 병탄된 뒤 1,870여만 명에 달하는 한인이 일본의 가혹한 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다. 한인의 자유가 회복되지 않는 한, 원동의 평화도 보장할 수 없다. 한국이 발칸 반도의 전철을 밟아 또 다른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한국이 독립을 회복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8. 만일 한국이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면, 일본은 분명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차지하려는 야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아시아의 모든 민족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려 들 것이다.
9. 일본이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 분명 열강 각국의 경제와 상업이익을 해치게 될 것이다.
- 「신한청년당이 평화회의에 제출한 청원서 역문」 중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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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이에 따르면 김규식의 본뜻은 “13. 열강이 만일 한국과 영구중립조약을 맺을 의사가 있다면, 우리 한국도 기꺼이 응할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00년을 전후한 시점에 데니의 청한론을 필두로 한반도 중립화 혹은 전시중립 문제가 다각도로 검토된 바 있다. 이승만과 김규식 등 미국에서 공부하고 국제정세를 파악했던 외교독립론자들은 미약한 한국의 현실과 강대국 포위라는 객관적 상황 속에서 한반도 중립화를 독립 유지나 독립 회복의 방안으로 고려했던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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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김규식은 파리 도착 후 20일 이내에 프랑스 재야인사, 하원의원, 각국 기자들과 긴밀히 접촉했고, 상해에서 준비해 간 신정·김성 명의의 청원서, 파리로 오며 준비한 신한청년당 명의의 비망록, 이를 간략화한 서신을 윌슨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것이다. 김규식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강대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침묵과 무시로 일관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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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3·1운동 발발 이후 상해에는 1천 명 이상의 독립운동가가 집결하였고, 임시의정원·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설립(1919. 4. 11)되었다. 상해 임시정부는 4월 13일 김규식을 외무총장, 평화회의 대한민국 위원 겸 파리 주재 위원으로 임명하고 신임장을 파리로 발송했다. 3·1운동의 에너지를 반영한 임시정부로부터 공식적 지위가 부여되자, 김규식은 4월 하순경 파리 제9구 샤토덩가 38번지에 사무실을 연 다음, 사서함-전화-텔렉스를 갖추고 본격적인 외교 홍보 활동을 펼쳤다. 이곳 은 프랑스 시인 블라베 부부의 자택이었다. 김규식이 샤토덩가 38번지로 옮긴 정확한 일자와 배경, 블라베를 만나게 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욱영, 진우인, 오조추 등의 조언과 인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파리위원부에 합류했던 여운홍의 회고에도 중국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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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김규식·파리위원부가 재불 중국 지식인 및 중국대표단의 도움을 받고 협력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대표단은 산동성 문제로 조선 문제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강화회의에서 중국대표단과 김규식이 협력한 흔적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있었던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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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파리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 집에는 전등도 없어서 대표단은 촛불을 켜 가며 밤새 각지에서 오는 정보를 받고, 각지로 보낼 카피를 쓰고, 전보를 놓고 편지를 쓰고, 누군가를 방문하고, 신문사를 찾는 등 “실로 눈코 뜰 싸이 업시 우리 전원은 김규식 이하 만흔 분주를 거듭”하였다고 한다.
[…] 결국 김규식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던 한국 독립을 요구하는 공식 청원서·비망록·부록 세트를 5월 10일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했을 시점에 파리위원부에는 김규식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이관용, 여운홍, 조소앙, 황기환 중 아무도 파리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바꿔 얘기하면 김규식이 혼자 힘으로, 파리평화회의에 한국 측 청원서·비망록·부록을 제출했음을 알 수 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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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당신들이 아는 바와 같이 나는 만국공법이나 외교상 법문(法文)에 그리 한숙(嫺熟)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나는 우리의 법식적 청원서를 저술하는데 조역할 사람이 있는 것이 제일 필요한 줄로 생각하였으나 그러나 나는 할 일 없이 나 혼자 모든 일을 보는 동시에 각국 외교원도 심방하며 인쇄소에도 가보아야 하며 통신도 하여야 됨으로 어떤 때는 앉아서 전보 한 장을 쓸 시간도 없었나이다.
[…] 나는 아메리카에서 보내는 3대표자를 도와줄 목적을 가지고 유럽으로 건너올 때에 이와 같이 정계 파도가 흉흉한 가운데 호을로 일엽편주를 타고 애쓸 줄을 알았으리오. 어떻든지 우리는 우리 정형에 대하여 할 수 있는데까지는 능력과 정성을 다할 것뿐이라 하며 또는 우리 성공할 희망은 전능하신 하눌님께 맏겨둘 뿐이외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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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일본의 한국 점령이 대륙 팽창으로 이어지고 , 나아가 태평양 지배로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한 부분은 선견지명이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강대국을 상대로 한 한국 독립 주장의 근거이기도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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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김규식과 그를 조력한 국제법 전문가들의 공략 지점이 어디였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1910년 병합조약이 사기와 강압으로 이뤄져 원천 무효이며, 국민주권론에 입각하여 한국의 주권은 4천 년 이상 지속되어서 황제가 마음대로 넘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한국인 모두가 이 병합조약에 반대했고, 개항 이래 한국이 여러 국가와 맺은 조약 및 국제조약에서 한국의 독립 및 주권이 보전되었으니 이것이 지켜져야 하며, 국제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윌슨의 14개조를 기본 정신으로 한 파리강화회의는 당연히 병합조약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자 논리였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청원서·비망록의 제목이 1910년 병합조약의 폐기·무효였던 것이다.
*「통신전」 제7호(1919. 5. 10)도 청원서·비망록의 핵심이 “1910년 8월 22일에 서울에서 체결된 한일 합병조약을 취소하라고 평화회의에 요구”하는 것이라며 위의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6. 이 청원서는 한국과 폴란드, 그리고 알자스 로렌의 입장이 같음을 강조하는 바이다”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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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사랑하는 동포여! 생각하시오. 원수의 멍에를 벗고 자유를 회복함이 어찌 한두 주일에 성공될 리가 있으리오. 일제한 단결력과 무수 한 사람의 핏방울을 흘리지 않고는 결단코 되지 않을 일일 것이외다.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이 그들의 독립을 위하여 무수한 생명과 재산을 희생하여 가며 나중에 성공한 것을 돌아보시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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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종전 전에 일본의 군대가 통제되지 않았었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는데 . 군통수권 자체가 독립권한이었군요. 시스템의 문제를 제대로 비판하고 있어서 놀랬습니다. 잘못한 역사를 제대로 보고 경계하자는 태도가 매우 생경한 이유가 그 전 70주년이 아마 아베 때이기도하고 개인 명의라는 점에서도 한계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주변국 국민인 저에게 신뢰를 주는 효과를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3월 3일 화요일은 5장 3절 '파리에서의 선전 활동'과 6장 2절 '대통령 이승만과 공채표 판매 세일즈맨 김규식'을 읽습니다. 313쪽부터 351쪽까지입니다.
파리 강화 회의에서 고군분투했음에도 성과가 없었던 김규식은 미국으로 건너가고, 드디어 이승만과 엮입니다. 정말 이 시점부터 이승만을 둘러싼 소동을 보노라면 혈압 올라요;
참고로, 정병준 선생님은 이승만 평전(연구서)을 쓴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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