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현대사의 경로가 증명하듯이 김규식이라는 인물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주요한 학문적 연구주제가 되기 어려웠다. 김규식은 성공과 실패가 분명치 않은 길을 걸어간 사람인 데다 정치적 추종자를 거느리지 않은 외로운 존재였고 납북되어 사망함으로써 정치적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김규식과 함께 중도파를 대표하는 여운형의 경우, 그의 정당인 인민당, 근로 인민당 추종자들이 1960년 4.19시기까지 현실 정치에서 재기를 모색할 정도로 일정한 응집력과 구심점이 존재했다. 그러나 김규식에게는 그러한 개인적 추종자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좌우합작, 남북현상이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중도파의 노선은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김규식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주의적인 학자형 정치지도자라는 정도가 세간의 보편적 인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규식이 사라지자 그의 노선과 역할 지향이 함께 증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대중적 관심이나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기 어려웠다.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군중을 호령하고 이끌고 지배하는 영도자, 생사를 불문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강한 독재적 지도자상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가 선뜻 이해하고 수용하기 어려웠다. 이분법적 세계관에 익숙한 현대 한국 사회가 흑백, 좌우, 미소, 남북이 분명하지 않은 인물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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