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지장애 일인 추가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2. <김규식과 그의 시대> (2)
D-29

오구오구
aida
“ 임시정부, 안창호 등 개조파, 상해파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일부 등이 모두 반대하는 새로운 ‘정부’에 스스럼 없이 김규식이 참가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곤란하다. 파리강화회의의 경험, 대미 외교에서 느낀 좌절감, 대소 외교의 가능성을 타진한 후 국민대표회의라는 새로운 시세의 추향에 올라탔으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유연한 대응이 어려웠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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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국민위원회가 정부적 조직.성격.기능을 포기하고 정당적 조직.성격.기능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화였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헌법대 신 당의 강령을 채택하고, 당의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수준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 전반적으로 강력은 독립운동 정당으로서, 노동자.농민에 기초한 독립운동, 한국 민중의 조직화된 무장력에 기초한 운동, 국제연대에 기초한 독립운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상해 임시정부의 외교독립노선을 비판하고 무장투쟁노선을 내세운 것이다.
(..)
전격적인 대전환이었다. 1923년 6월 벌어졌던 국호 한, 국민위원회, 국무위원회 등의 정부적 조직체 결성과 창조론의 일관된 방향으로부터 또 한 차례 변신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동력과 결정권은 창조차 국민위원.국무위원이 아닌 코민테른 고려국에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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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코민테른이 권력을 경주했던 독일혁명이 실패하고, 코민테른을 총지배하던 레닌이 사망(1924.1.21)하자 소비에트의 정치 상황에 격변이 발생했다. 국민위원회의 상대역이었던 파인버그도 소환되는 지경이 되었다. 코민테른은 임시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외국 혁명운동의 지원보다 내부 수습에 몰두하게 되었다. 2월 15일 코민테른은 한국혁명에 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방침이 없으니 후일을 기다려 다시 만나고 국민위원회 인사는 다 국경 밖으로 나가 달라는 최후 통고를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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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어렵게 개최한 국민대표회의가 합의점을 못찾고 1/3만 남아 창조파의 국민위원회를 만들어지고, 코민테른의 방향대로 정부가 아닌 혁명당의 모양이 되어가고 어떻게 끝날지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레닌의 죽음을 마딱뜨리며 흐지부지 사라지는군요. 극과 극의 행보가 끝나고 이제 또 생업으로 들어가겠지요... 고지식한분.

YG
@꽃의요정 아, 저는 노화에 대해서는 (어떤 분들은 거부감을 가지실 법한) 래디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건강 수명(잘 관리했을 때 마지노선이 85세 정도)이 다하면 자발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게 본인, 가족 특히 공동체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타인에게 이런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꽃의요정 아버지께서는 정말 정정하신가 보네요! 복 받으신 겁니다.
(저 얘기 할 때의 동거인 나이고 일곱 살 정도였을 것 같은데, 일곱 살짜리한테는 쉰이 노년으로 생각이 되었나 봅니다. 하긴, 그게 본능적인 나이 감각이죠. 인간은 너무 오래 살고 있어요. :))

향팔
“ 이승만과 서재필은 미일 갈등설·미일 개전설은 물론 신임 미국 대통령 토머스 하딩이 취임 전 한국 독립을 약속했다는 주관적 확신을 바탕으로 태평양회의를 향한 기대를 부풀렸다.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기대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외교독립노선의 관성은 아직까지 중요한 동력이었다. 재미 한인사회는 또다시 태평양회의를 위한 재정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 이승만 지지세력의 열성적 지지가 이어졌다. 태평양회의와 해군군축회의가 영일동맹 해체와 미일 개전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을 세계 3위 군사강국으로 인정한 결과로 이어졌고, 한국대표단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실패가 명백해지자 1차 대전 후 경기 하락 속에 최선을 다해 지원했던 재미 한인사회의 독립열은 급속히 냉각되었다. 재정 궁핍을 당한 구미위원부는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1925년 임시의정원에 의한 대통령 탄핵(1925. 3. 18) 후 면직(1925. 3. 23)이라 는 이중 과정을 통해 임시정부에서 추방되었다. 재미 한인사회는 만주사변이 발발할 때까지 원기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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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이동휘는 임시정부 명의로 레닌 정부에서 지원받은 자금 40만 금 루블을 확보하고, 1921년 5월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한 후 원기 왕성하게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이르쿠츠크파와의 뼈아픈 갈등과 분쟁이었다. 1921년 6월 러시아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 러시아혁명 후 스보보드니)에서는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관련된 독립군·사할린 의용대가 이르쿠츠크파 고려혁명군과 러시아군에 의해 대학살되는 자유시참변(흑하사변)이 벌어졌고, 코민테른 극동부는 이르쿠츠크파를 지원하며 극동민족대회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모스크바 “노농정부 레닌 직속”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이동휘는 모스크바 외교 로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통일과 지도를 명분으로 한 모든 시도는 2개의 고려공산당 간 파쟁을 심화시켰고, 코민테른이 주선한 양파의 통일당대회도 무산되었다. 상해파는 레닌자금 40만 금을 횡령해 국내에서 사기공산당 사건을 일으켰다는 횡령 혐의를, 이르쿠츠크파는 자유시참변을 일으켜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양파의 대립은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와 창조파 간 대립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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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여운형은 “세계대전을 통해 강탈한 수확을 분할하는 것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국가 간에 일어난 알력과 모순을 완화하고 전리품 분배를 다시 새로 하자고 하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회합(워싱턴회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의미의 사명을 띠는 것이 극동 피억압 약소민족의 회동(극동민족대회)”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는데, 당시 중국공산당의 장국도(張國燾)의 견해와 유사한 것이었다. 김규식도 베르사유조약 체제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말하는 정의·인도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김규식은 여운형과 함께 극동민족대회를 선택했다. 동아시아에는 파리강화회의·국제연맹에 대한 실망과 반비례해서 혁명러시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고조되었다. 사회주의, 모스크바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희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짜르전제를 무너뜨린 1917년 혁명의 힘, 1918~1922년간 제국주의 국가들의 간섭, 시베리아 출병 및 시베리아 내전을 이겨낸 군사적 저력, 식민지·반식민지·약소민족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연대를 표명한 국제연대 정신 등이 이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모스크바로 향하게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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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혁명 후 러시아는 내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베리아 출병으로 백위파 정권이 수립되어 다수의 전선에서 내전을 치러야 했다. 1920~1922년간 극 동공화국 수립에서 드러나듯 소비에트러시아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타협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소비에트러시아는 극동의 식민지·반식민지 및 다양한 민족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출병 국가 가운데 막강한 군사력을 시베리아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일본이 가장 위협적 존재였다. 일본에 맞서 거세게 반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한국 독립운동 세력은 소비에트러시아가 현실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연대의 대상이었다. 1920~1924년간 소비에트 러시아의 상해 임시정부, 한인사회당, 고려공산당에 대한 재정적, 조직적, 정치적 지원은 소비에트러시아가 당면한 국내·국제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소비에트러시아의 현실적 지원은 한국 독립운동 진영에 절호의 기회였다. 관대하고 우호적인 호의가 제공되었으나 이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이후 한국 독립운동 진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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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파리강화회의에서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로의 전환은 혁명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외교 대상이 미국에서 소비에트러시아로 대체된 것이었고, 본질적으로는 외교독립노선의 시대적·상황적 변용이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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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3월 14일 주말에는 3장 '생업에 돌아가 일상을 돌보다'를 읽습니다. 195쪽부터 234쪽까지입니다.
이번 장은 중국으로 돌아온 김규식의 생활인으로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장이라서 저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아래 인용하는 글을 보면서 기시감도 들었는데, 그건 바로 밑에서 얘기하겠습니다.

YG
“ 김규식의 또 다른 공개 활동은 학원 운영이었다. 김규식은 외교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물러나 돌아갈 생업이 있었다. 바로 교육자로서의 생활 세계였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냉각기와 마주하면 극도의 생계난을 겪다가 국내로 귀국하거나 투항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것이 김규식과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선택과 처신에서 차이를 불러온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김규식은 이미 1910년대 신규식과 동제사를 함께하면서 박달학원 등 일종의 기숙 학원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유학을 알선해 본 경험, 국내 외에서 교육자로서의 경력, 영어 능통자로서 능력도 있었다. 김규식은 1923년 남화학원을 창립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3권 2장 1절, 137쪽,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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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2장에 이미 이런 대목이 나오죠.
저는 이 대목 읽으면서 당시부터 비교적 최근까지(LLM AI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외국어(특히, 영어)를 잘하는 게 얼마나 큰 기득권이었는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김규식은 운이 좋게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생계에 쪼들릴 때마다 먹고사는 방편이 되었으니까요.
괜히 웃었던 또 다른 대목은 사회운동하다가 궁지에 몰리면 학원을 차리는 전통은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아시다시피, 1980년대 학생 운동을 하다가 졸업을 제대로 못하거나 혹은 취업의 기회를 잃은 많은 이들이 1990년대에 대치동 등의 사교육 시장으로 진출했고 그들 가운데 자산을 크게 축적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괜히 그런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답니다.

YG
저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당시 대학생으로서는 상당히 큰 돈을 준다는 아르바이트를 한 달 집중해서 한 적이 있는데(그렇게 번 돈의 반은 당시 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 살리기 운동 자금으로;;;) 구로의 간판도 없는 논술 학원에서 조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이었어요. 고3 학생들이랑 같이 강의 듣고, 글 써오면 일차로 첨삭해 주고, 코멘트해 주는 그런 아르바이트였었어요.그런데 그때 그 강사들이 다 왕년의 운동하셨던 분들. :) (그 가운데는 지금은 대학 교수 된 분도 있고, 유명한 셀럽 지식인이 된 분도 있고 등등등.)

꽃의요정
외국인들에게 학원이란 개념을 설명하기가 참 힘든데, 학원만큼 우리나라 국민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직업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제 친구 아들(이 아이는 아버지가 의사고 강남 부잣집 아이인데, 80년대 고학생처럼 과외를 하루에 3개씩 밥도 안 먹고 뛰고, 들어갔던 의대가 맘에 안 든다고 더 좋은? 의대를 집에 부담 될까봐 알바하면서 반수해서 들어간 아이)은 '시험문제를 만들어서 파는' 알바를 하더라고요. 허허. 이런 알바가 있다는 것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이 아이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더 있지만, 사교육 시장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더군요.
참고로, 김규식 씨와 다르게 이 아이는 어학쪽은 아니고 수학쪽에 재능이 있습니다.

오구오구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군이 학원과 사교육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욕망을 추구하는 직업... 가난했던 그 시절부터 풍요로운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분야 ㅋ

꽃의요정
안 그래도 어제 친구들이 AI 때문에 걱정이 엄청 많던데, 저만 태평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아무리 AI가 발달을 해도 제가 가르치는 건 제 학생에겐 외국어라서요. 외국어라는 게 번역기 돌리는 건 쉽지만, 배우는 이유는 본인이 '직접' 이야기 하고 싶은 거잖아요. 게다가 외국어 잘하면 있어빌리티 최강자처럼 보이는 환각 효과도 누릴 수 있고요.
게다가 제가 일할 수 있는 것도 최장으로 봐도 15년 정도라....너무 제 생각만 하고 인류애가 없는 사람이네요. ^^;;

오구오구
저의 직업은 AI에 곧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데, 퇴직까지 남 은 시간 고려하면, 저는 막차 탄 상태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인류애 없는 일인 추가입니다.

stella15
와~ 그런 일도 있나요? 저도 처음 듣습니다. 사교육에 대한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 더 듣고 싶네요. 썰 좀 풀어 주시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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