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 1940년 4월에 이르러 중국국민당은 광복진선(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병존, 한국청년전지공작대(광복군)와 조선의용대의 병립을 결정한 것이다. 중국국민당이 유일하게 인정했던 한인 무장부대였던 조선의용대의 위상이 저락하고, 김구의 지원을 받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대한 후대가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중국국민당이 제1차 반공고조기(1939. 12~1940. 3)에 접어들면서, 국공합작 대신 중국공산당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하는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중국국민당의 반공 활동은 환남사변(1941. 1)으로 폭발했으며,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이 적지 않던 조선의용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조된 반면 반공적 입장이 확실한 임정을 우대한 결과 광복군 창설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또한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일련의 사태가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조선의용대 주력이 화북으로 북상하게 된 것이다. 중국국민당의 지원과 지지를 둘러싼 김구-김원봉의 대립과 대결은 중일전쟁과 환남사변 사이의 시대 상황에 따라 출렁거렸던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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