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이승만 1941년 4월 해외 한족 대회에서 주미위교위원부 위원장으로 추천되어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게 됨으로써 임시정부와 관계를 회복했고, 대미 외교의 중심인물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 이승만이 임시정부와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해방 직후 이승만의 국내 지위는 전혀 다른 공간에 위치했을 것이다. 여기에 김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3권 7장 4절, 538쪽,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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