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 김규식, 김원봉, 이청천, 조소앙, 유동열 등은 함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세력이었고, 사상·이념·노선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해방 전후 연합·연대·통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또한 재미한인들도 미군정 시기 임시정부 계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친미적, 대미 우호적 세력이었지만, 양자 모두 미군정하에서 고립 분산적으로 활동하며 연대·연합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해방 후 한국 정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연대했어야 할 세력의 분열은 임시정부 계열의 불행이었고, 해방 후 임시정부의 위축과 몰락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었다.
반면 임시정부와 재미한인 간 결별을 초래한 이승만은 귀국 후 임시정부 대표로 자임하며 한국민주당 및 친일파들과 결합해 세력을 확대 강화했다. 임시정부와 이승만의 선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김구·임시정부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재미한인사회와 결별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 이승만은 1945년 5월 유엔 조직을 위한 샌프란시스코회담에서 얄타밀약설을 스스로 만들어 주장함으로써 반소·반공 선전에 전념했고, 임시정부에 정치적·외교적 타격을 가했다. 이로써 이승만은 반소·반공 성향의 맥아더 등 군부 매파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조기 귀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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