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운형의 사후 김규식은 단독정부 수립과 남북통일 협상이라는 두 가지 노선 사이에서 남북협상 노선을 택했다. 김규식은 1947년 하반기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고, 좌우합작운동 시기부터 품고 있었던 남북대화·남북협상의 길을 추진했다. 미소, 남북, 좌우로 대립하고 분열된 한반도에서 통일과 독립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한 내 좌우합작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협상·연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대결과 대립, 갈등과 투쟁보다는 합리적 협상과 대화를 통해 민족 내부의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노선이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김규식과 강한 추진력·돌파력의 김구가 결합하여 남북협상의 남측 동력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1948년 2월 김규식은 김구와 함께 김두봉, 김일성에게 남북 지도자 간의 정치협상을 제안하는 2월 서신을 발송했다. 김두봉(김백연)에게 쓴 편지에서 김구는 두 사람이 중경 시절 서로 그리워하며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위해 연락하던 때를 기록했다. 이제 또다시 민족의 운명을 걸고 우리가 만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절절하게 표현되었다. 북의 김일성, 김두봉은 이를 남북연석회의로 역제안함으로 남북협상이 성사되었다. 남북협상은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 남북 간의 최초이자 최후였던 평화통일 정치협상으로 기록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부록 논문,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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