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운동 발발 이후 상해에는 1천 명 이상의 독립운동가가 집결하였고, 임시의정원·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설립(1919. 4. 11)되었다. 상해 임시정부는 4월 13일 김규식을 외무총장, 평화회의 대한민국 위원 겸 파리 주재 위원으로 임명하고 신임장을 파리로 발송했다. 3·1운동의 에너지를 반영한 임시정부로부터 공식적 지위가 부여되자, 김규식은 4월 하순경 파리 제9구 샤토덩가 38번지에 사무실을 연 다음, 사서함-전화-텔렉스를 갖추고 본격적인 외교 홍보 활동을 펼쳤다. 이곳은 프랑스 시인 블라베 부부의 자택이었다. 김규식이 샤토덩가 38번지로 옮긴 정확한 일자와 배경, 블라베를 만나게 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욱영, 진우인, 오조추 등의 조언과 인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파리위원부에 합류했던 여운홍의 회고에도 중국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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