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은 애국금을 폐지하면 국민회의 자금이 구미위원부 공채로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구미위원부와 국민회 모두의 재정 궁핍으로 귀결되었다. 391
전력을 경주했던 워싱턴회의가 실패하자, 재미 한인사회는 오랫동안 침체를 면치 못했다. 서재필은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사임했고,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탄핵, 면직되었으며, 구미위원부도 임시정부로부터 해체를 명령받았다. 393
고정휴의 분석에 따르면 이승만은 미주 본토에서는 구미위원부가 책임을 지고 자금을 모금하되 하와이 교민들로부터 거두는 자금은 구미위원부가 아닌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401
김규식은 송헌주가 해임되는 과정에서 구미위원부에서 자신의 역할이 종결되었음을 깨달았다. 대통령 이승만과 상해 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구미위원부를 정부기관이자 외교기관으로 재미 한인들에게 설명했던 자신과 송헌주가 이승만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404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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