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 작가님께서 펴내신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글항아리) 머리말에 우리 벽돌 책 모임을 언급해 주셨어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2. <김규식과 그의 시대> (2)
D-29

YG

꽃의요정
남편말에 의하면 지식인은 아닌데 지식인인 척하는 지식인병에 걸린 저는 벽돌책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근데 이 모임 아니면 인문학 벽돌책을 절대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매번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고, YG 님과 이 방에 계신 여러분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딱 50년만 더 해 주세요~

거북별85
전 지식인은 아닌데 지혜에 관한 열망이 있어서리^^;;
저도 이 모임이 아니면 인문학 벽돌책을 혼자서 읽을 수 없어서 저도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YG님과 여기 계신분들 없으면 혼자서는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답니다(뜬금 고백입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의 띠지 문구 좋더라구요
누가 쓰신건지 궁금^^
"어떤 크고 복잡한 생각은 최소한의 분량을 요구한다.
즉 하나의 사유가 중단 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영토가 필요하며,따라서 두께와 내용은 상관관계가 있다."

stella15
ㅎㅎ 앞으로 50년이면 YG님이 100살 언저리쯤 되시겠군요. 그럼 파파 할아버지가 된 YG님을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ㅠ 지금 보다 또 엄청 많이 읽으셨겠죠? 나름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을지도. ㅋㅋ

YG
@stella15 50년까지 갈 것도 없고 저는 (중간에 사고가 없다면) 2062년에 세상을 떠야 합니다. (그래도 아직 36년이나 남았네요;;;) 우리 작은 동거인이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정해줬어요. 아빠는 85세 정도까지 살면 적당할 것 같다고. 그 이유가 웃긴데, 그때가 되면 자기가 딱 50이 된다고. "한 집에 할아버지가 두 명이면 이상하잖아?" 저도 요즘 어르신들 모습을 보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정정한 시점의 마지노선이 딱 80대 중반 정도인 것 같습니다;;;

꽃의요정
85세가 할아버지는 맞 는 거 같은데 요즘 같은 세상에 50세는 아직 할아버지가 아닌 거 같습니다만 ^^;;
저야말로 저희 아버지가 120살까지 사시는 게 목표라 저 자신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땐 90대 중반 혹은?
듣기론 90세가 넘으면 눈도 귀도 거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 감각에 많이 의존해서 생활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눈을 잃는 건 책을 못 본다는 이야기라 넘 가슴이 아픕니다. 오디오북은 집중력이 3분만에 떨어져서 계속 다시 들어야 하거든요.

stella15
ㅎㅎㅎ YG님네 작은 동거인 넘 귀엽네요. 요즘 50과 옛날 50이 다른데 작은 동거인이 50일 때는 또 얼마나 달라있겠습니까? ㅋ 하긴 저도 틴에이저 때 50이면 엄청나다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렇지도 않더군요. 지금 85세는 할아버지 맞 지만 YG님 85세되면 역정 내실 걸요? 할아버지랬다고, 아저씬데. ㅋㅋ 그때 우리 기대수명이 120쯤 된다잖아요. 근데 작은 동거인 말도 맞아요. 그 나이되도록 부자가 한 집에 사는 건 잘 상상이 안 가잖아요. 하하

거북별85
ㅎㅎ @YG 님의 작은동거인 이야기 너무 재미있네요^^
이상하게 어릴 때는 노화된 모습이 굉장히 낯설어 보이잖아요
그 때는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런데 제가 참 좋아하던 작가님이 나이 먹으면 판단 흐려진다고 60대 이후로는 활동을 자제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던거 같은데 그분도 60대 넘어서도 정말 활발히 활동하시던데~~^^;;;
막상 나이들면 뒤로 물러나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거 같아요. 그래서 전 그냥 조용히 혼자 생각하고 장담 하지 않으려구요^^
aida
참 부지런하신 작가님... 오래 모임까지 주재하시는 YG님, 제가 띄엄띄엄 읽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뇌에는 읽고쓰기 영역이 과도하면 얼굴 인식 처리 기능을 몰아내어 잘 못하기도 한다고. 뇌가 독서중독자에서 맞추어 수정된 것인데 저자는 변명거리가 생겨 기뻤다고 쓰고 있더라구요.. 저는 전혀 그런 증상이 없지만..
그래서 이렇게나 벽돌책을 읽고 쓰는 @장맥주 @YG 님은 혹시 사람 얼굴 잘 못알아보는지 궁금해지더라구요. ㅋㅋㅋ

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문화적 진화의 역사를 해부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종의 독특한 특성과 그에 뒷받침되는 진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과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책장 바로가기

YG
@aida 저는 사람 얼굴 엄청 잘 알아봅니다. 하하하! :)

거북별85
완전 부럽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시는데 사람 얼굴도 잘 알아보시구요!!
전 영업쪽 일하는데도 안면인지장애가 좀 있던데~이런 것도 개선되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오구오구
안면인지장애 일인 추가요
aida
“ 임시정부, 안창호 등 개조파, 상해파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일부 등이 모두 반대하는 새로운 ‘정부’에 스스럼 없이 김규식이 참가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곤란하다. 파리강화회의의 경험, 대미 외교에서 느낀 좌절감, 대소 외교의 가능성을 타진한 후 국민대표회의라는 새로운 시세의 추향에 올라탔으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유연한 대응이 어려웠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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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국민위원회가 정부적 조직.성격.기능을 포기하고 정당적 조직.성격.기능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화였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헌법대 신 당의 강령을 채택하고, 당의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수준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 전반적으로 강력은 독립운동 정당으로서, 노동자.농민에 기초한 독립운동, 한국 민중의 조직화된 무장력에 기초한 운동, 국제연대에 기초한 독립운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상해 임시정부의 외교독립노선을 비판하고 무장투쟁노선을 내세운 것이다.
(..)
전격적인 대전환이었다. 1923년 6월 벌어졌던 국호 한, 국민위원회, 국무위원회 등의 정부적 조직체 결성과 창조론의 일관된 방향으로부터 또 한 차례 변신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동력과 결정권은 창조차 국민위원.국무위원이 아닌 코민테른 고려국에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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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코민테른이 권력을 경주했던 독일혁명이 실패하고, 코민테른을 총지배하던 레닌이 사망(1924.1.21)하자 소비에트의 정치 상황에 격변이 발생했다. 국민위원회의 상대역이었던 파인버그도 소환되는 지경이 되었다. 코민테른은 임시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외국 혁명운동의 지원보다 내부 수습에 몰두하게 되었다. 2월 15일 코민테른은 한국혁명에 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방침이 없으니 후일을 기다려 다시 만나고 국민위원회 인사는 다 국경 밖으로 나가 달라는 최후 통고를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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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어렵게 개최한 국민대표회의가 합의점을 못찾고 1/3만 남아 창조파의 국민위원회를 만들어지고, 코민테른의 방향대로 정부가 아닌 혁명당의 모양이 되어가고 어떻게 끝날지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레닌의 죽음을 마딱뜨리며 흐지부지 사라지는군요. 극과 극의 행보가 끝나고 이제 또 생업으로 들어가겠지요... 고지식한분.

YG
@꽃의요정 아, 저는 노화에 대해서는 (어떤 분들은 거부감을 가지실 법한) 래디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건강 수명(잘 관리했을 때 마지노선이 85세 정도)이 다하면 자발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게 본인, 가족 특히 공동체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 물론, 타인에게 이런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꽃의요정 아버지께서는 정말 정정하신가 보네요! 복 받으신 겁니다.
(저 얘기 할 때의 동거인 나이고 일곱 살 정도였을 것 같은데, 일곱 살짜리한테는 쉰이 노년으로 생각이 되었나 봅니다. 하긴, 그게 본능적인 나이 감각이죠. 인간은 너무 오래 살고 있어요. :))

향팔
“ 이승만과 서재필은 미일 갈등설·미일 개전설은 물론 신임 미국 대통령 토머스 하딩이 취임 전 한국 독립을 약속했다는 주관적 확신을 바탕으로 태평양회의를 향한 기대를 부풀렸다.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기대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외교독립노선의 관성은 아직까지 중요한 동력이었다. 재미 한인사회는 또다시 태평양회의를 위한 재정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 이승만 지지세력의 열성적 지지가 이어졌다. 태평양회의와 해군군축회의가 영일동맹 해체와 미일 개전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을 세계 3위 군사강국으로 인정한 결과로 이어졌고, 한국대표단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실패가 명백해지자 1차 대전 후 경기 하락 속에 최선을 다해 지원했던 재미 한인사회의 독립열은 급속히 냉각되었다. 재정 궁핍을 당한 구미위원부는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1925년 임시의정원에 의한 대통령 탄핵(1925. 3. 18) 후 면직(1925. 3. 23)이라는 이중 과정을 통해 임시정부에서 추방되었다. 재미 한인사회는 만주사변이 발발할 때까지 원기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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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이동휘는 임시정부 명의로 레닌 정부에서 지원받은 자금 40만 금 루블을 확보하고, 1921년 5월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한 후 원기 왕성하게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이르쿠츠크파와의 뼈아픈 갈등과 분쟁이었다. 1921년 6월 러시아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 러시아혁명 후 스보보드니)에서는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관련된 독립군·사할린 의용대가 이르쿠츠크파 고려혁명군과 러시아군에 의해 대학살되는 자유시참변(흑하사변)이 벌어졌고, 코민테른 극동부는 이르쿠츠크파를 지원하며 극동민족대회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모스크바 “노농정부 레닌 직속”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이동휘는 모스크바 외교 로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통일과 지도를 명분으로 한 모든 시도는 2개의 고려공산당 간 파쟁을 심화시켰고, 코민테른이 주선한 양파의 통일당대회도 무산되었다. 상해파는 레닌자금 40만 금을 횡령해 국내에서 사기공산당 사건을 일으켰다는 횡령 혐의를, 이르쿠츠크파는 자유시참변을 일으켜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양파의 대립은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와 창조파 간 대립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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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여운형은 “세계대전을 통해 강탈한 수확을 분할하는 것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국가 간에 일어난 알력과 모순을 완화하고 전리품 분배를 다시 새로 하자고 하는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회합(워싱턴회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의미의 사명을 띠는 것이 극동 피억압 약소민족의 회동(극동민족대회)”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는데, 당시 중국공산당의 장국도(張國燾)의 견해와 유사한 것이었다. 김규식도 베르사유조약 체제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말하는 정의·인도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김규식은 여운형과 함께 극동민족대회를 선택했다. 동아시아에는 파리강화회의·국제연맹에 대한 실망과 반비례해서 혁명러시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고조되었다. 사회주의, 모스크바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희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짜르전제를 무너뜨린 1917년 혁명의 힘, 1918~1922년간 제국주의 국가들의 간섭, 시베리아 출병 및 시베리아 내전을 이겨낸 군사적 저력, 식민지·반식민지·약소민족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연대를 표명한 국제연대 정신 등이 이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모스크바로 향하게 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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