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리 작가님의 '아메리칸 학원'이라니 궁금해 지는 작품입니다 옛날 한국도 미국처럼 사교육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거 같은데 요즘 보면 미국도 학원이 꽤 흥행하는거 같더라구요
'학원'이라는 시스템은 계층이동이 가능하면서도 사회적 욕망이 강렬할 때 존재할 수 있을거 같아요 이미 신분제로 굳어진 사회라면 학원은 필요없을거 같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이 학벌이나 직업으로 계층이동을 꿈꿀 수 있는 시절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집이든 취업이든 부모의 능력없이 자녀 세대 혼자 힘으로 불가능해진다면 결국 조선시대의 신분제 사회와 같아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2. <김규식과 그의 시대> (2)
D-29

거북별85

향팔
“ 극동민족대회는 이후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공산주의운동·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경우 중국공산당은 ‘민족·식민지 테제’에 입각해 반제·반봉건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대회 참석 후 귀국한 대표들은 공산당 2차 대회에 참석했는데, 이것이 국공합작으로 이어졌다. […]
일본의 경우 대회의 결과로 볼셰비즘과 아나키즘이 확연히 구별되었고, 공산당 결성의 기반이 견고해져서 일본공산당이 결성(1922. 7. 5)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우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세계혁명, 일본 프롤레타리아운동과 연대에 대한 전망을 갖게 되었으며,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가 사회주의혁명에 선행하는 단계로 민족혁명·민족해방운동을 위치시키고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수용하게 되었다. 국민대표대회를 통해서 새로운 민족통일전선 조직·정당을 조직한다는 방향이 결정된 것이었다. 이것이 극동민족대회를 통해 공식화된 코민테른과 이르쿠츠크파의 입장이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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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김규식과 여운형은 파리강화회의-3·1운동-대미 외교(구미위원부)·대일 외교(여운형)로 명성을 얻은 한국대표였으나, 이 대회의 배후 실세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코민테른 원동부,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모스크바 레닌 정부였다. 전면에 내세워지지 않은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의 갈등과 분열은 극동민족대회가 성대히 개최되는 순간에도 거친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극동민족대회를 통해 아시아 민족해방운동, 사회주의운동을 고양시키려던 코민테른과 러시아정부의 의도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 공산주의운동의 정립과 방향 전환을 가져왔지만, 한국의 경우 두 파벌 간 분열의 골을 심화시켰다. 모스크바의 지원을 바탕으로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 한국 독립운동 고 조와 사회주의운동의 통일·확산을 꾀한 참가세력의 희망도 그 소용돌이 속에 출렁이고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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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그나마 자손분중에 잘 되신 분도 있군요. 다행입니다. 근데 YG님 이 글을 읽으니 정병준 교수의 책을 그냥 끝까지 읽을 걸 그랬나 싶네요. ㅋㅋ 암튼 알려주셔서 감사!

향팔
안미생 선생이 삽화를 그린 책이 <양자유경>이군요.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1992년판의 전체 원문과 삽화를 모두 볼 수 있네요. (신기합니다.)
揚子幽景: 전승을 기념하여 = The lure of the Yangt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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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l.go.kr/NL/contents/search.do?kwd=%EC%96%91%EC%9E%90%EC%9C%A0%EA%B2%BD&insiteschStr=#viewKey=CNTS-00124696944&viewType=C&category=%EB%8F%84%EC%84%9C&pageIdx=5&jourId=
‘安 수산나’가 안미생 선생님인가 봐요!
웰링턴 구의 머리말, 김우애의 원고 보관자의 말도 실려 있네요.


stella15
진짜 신기하네요. 화풍이 북한스러운데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거 향팔님 아니었으면 구경도 못했을 거네요. 역시 찾기 천재! 👍

향팔
“ 시집 맨 앞에 중국의 유명화가 양정명(梁鼎銘)이 대협곡과 아미산 풍경을 묘사한 그림 2점이 들어가 있으며, 그 외 삽화 15점이 시집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데, 김우애에 따르면 김구의 첫째 며느리이자 안중근의 조카인 안미생이 14점을 그렸다. 안미생의 삽화는 수묵화로 선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가득하다. 그림마다 장소나 화제(畫題)를 영어로 설명하고 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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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ㅎㅎ 중국풍이라고 하려다 너무 멀리 나가는 거 같아 북한풍이라고 했더니 땡이로군요. 😢

향팔
“ 김규식은 사천대학 시절 오통교의 찻집과 감귤원에서 중국의 화가, 문인, 예술가 등과 교류했고, 배를 타고 양자강을 오르내리면서 절경을 감상하고 시와 예술을 얘기하고 항일전쟁을 논했다. 양정명이 빌린 작은 배는 수천 집의 불빛이 빛나는 저녁에 양자강을 거슬러 돌아왔다. 『양자유경』의 시상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중국 친구들과 주고받은 시인·묵객의 대화가 마음 한편에 쌓이고 직접 목격한 양자강의 풍광·감상이 농밀하게 온축되었다가, 일본이 패망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순간 격정적으로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양정명이 두 폭의 삽화 그림을 선물한 것도 오통교 시절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김규식의 유일한 시집이자 문학적 감수성과 아름다운 삽화가 들어간 『양자유경』은 결국 김규식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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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stella15 헤헤 저도 우연히 발견했어요.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D

오구오구
와 감사합니다. 안미생선생님 관련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검색해보았어요.

향팔
책(3권 375쪽 주)에서 인용한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https://naver.me/Gx6DpfoI
"안중근 조카·女독립운동가, 안미생 흔적 75년 만에 찾았다"



오구오구
네 저도 이거 봤어요~ 미소가 아름다와서 한참 바라봤네용 ㄴ

향팔
정말 웃는 얼굴이 참 인상적이에요.
aida
오 저도 잘 봤습니다.. 책에 실린 양정명의 대협곡 풍경과 아미산 풍경이 컬러로 나오고 확대해서 볼수 있어서 책에서 설명한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삽화도 꽤 많군요.!!

향팔
“ 극동민족대회가 성대히 종결되고, 그 유산으로 김규식을 대표로 하는 외교교섭단이 조직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이르쿠츠크파와 코민테른 원동 비서국의 입장이 관철되고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 상해파 이동휘·홍도 등과, 임시정부의 이희경·안공근이 모두 모스크바에 집결해 있었다. 외교교섭단(이르쿠츠크파), 상해파, 임시정부 등 3대 세력은 소련정부와 코민테른을 상대로 레닌자금을 둘러싼 쟁탈전,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둘러싼 충돌을 벌였다. 또한 고려공산당 연합중앙간부 내부에서는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대충돌이 벌어졌다. 갈등과 혼란, 대충돌은 중층적이고 복잡했다. 레닌자금은 한국 공산주의운동, 혁명운동, 민족해방운동의 통일이 아니라 극한적 분열적 대립의 단초가 된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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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친미·기독교 민족주의자는 돌연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후보당원이 되어 모스크바 외교의 주역이 되었다. 그가 건너온 프랑스 파리, 미국 워싱턴, 러시아 모스크바는 외교의 다른 장소일 뿐이었지만, 자신이 대표해 온 임시정부를 대체하고 국민대표회의를 통해 새로운 조직체를 수립하겠다는 계획은 완전한 대변신이었다. 이 외교적 시도와 계획은 상해파의 격렬한 반대와 임시정부 특사단의 감정적 반발을 불러왔다. 상해파-이르쿠츠크파- 임정 세력 간 대충돌 와중에서 김규식은 1918년 이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게 된 셈이다. 상해파는 그가 상해 임시정부 대표로 친미 외교 활동을 벌인 주역이라고 비난했고, 임시정부 특사단은 임정을 폄하하는 가장 사악한 인물이자 중풍환자·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코민테른이 그의 고려공산당 활동을 중단시키기에 이르자 짧은 고려공산당원 생활도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의 삶을 규정해 온 상해 임시정부와의 연계망, 인간관계의 그물망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은 듯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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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1930년대 김규식의 활동은 정중동의 그것이었다. 1920년대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워싱턴군축회의 등 대서방 외교 활동과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등 대러시아 외교 활동이 중심을 이루었다면, 1930년대는 세계대공황이 정세를 움직였다. 미국의 경제공황 이후 세계는 금융공황과 경제대공황으로 접어들었고, 세계경제의 블록화와 제국주의의 식민지 재분할 경쟁이 심화되었다. 동북아시에서는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일제는 만주사변을 통해 만주를 침략하고 괴뢰 만주국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반식민지였던 중국의 동북3성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다. 중국 내 반일여론과 반제국주의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중국과 한국의 반일국제연대의 가능성이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1932년 도쿄에서 이봉창 의거,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거 등이 이어지면서 한국 독립운동 및 한인데 대한 중국인의 긍정적 평가와 원조가 본격화 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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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안창호는 1920년대 국민대표회의, 1930년대에는 민족유일당 형태로 임시정부를 대체할 수 있는 독립운동 정당 건설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 김구, 이동녕, 조소앙,이유필,김철 등과 함께 1930년 1월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 즉, 한국대일전전통일연맹은 1930년대 안창호의 중국 관내 독립운동 진영 통일을 위한 노력의 귀결로 파악할 수 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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