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1년 김규식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후보당원이 되었고 극동 민족대회 대표로 선발되어 소비에트러시아로 출발했다. 김규식이 언제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에 가담했는지는 미상이다. 다만 그와 신한청년당을 함께 했던 여운형, 조동호 등은 물론 이후 민족주의 노선을 걷는 김승학, 김시현이 모두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당원이 되었고 박헌영과 함께 화요회계 3총사로 불린 김단야, 임원근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후보당원, 최창식.김원경은 당원이 되었다. 어제의 민족주의자가 오늘의 사회주의자로 변신하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의 주역들이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의 중심인물로 변화한 것이다. 상해는 독립과 혁명의 기운이 이글거리는 곳이었고 시대의 추향을 따라 독실한 기독교 지도자이던 김규식, 여운형, 현순이 고려공산당의 외피를 썼다. 파리강화회의에서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로의 전환은 혁명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외교대상이 미국에서 소비에트러시아로 대체된 것이었고 본질적으로는 외교독립 노선의 시대적, 상황적 변용이었다. p480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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